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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제자 “집으로 돌아가다”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수련하는 대학생입니다. 4년 전 한국에 유학을 왔고 그 때부터 해외에서의 저의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저의 수련 체득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어려서부터 법을 얻다

1998년 초봄, 큰아버지의 소개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법을 얻었습니다. 저는 운 좋게 이러한 대법(大法) 수련환경 속에서 자랐기에 대법은 자연히 제 생명 중에 없어선 안 될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겨우 세살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인 제가 기억할 수 있을 때부터 시작해 대법은 저의 기억과 함께 했습니다. 그때 어른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 하던 장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그러나 자유롭게 수련할 수 있던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고, 1년 후 박해가 시작되면서, 저희 가정은 반(反)박해 및 진상을 알리느라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항상 저희를 어둠 속에서 보호해주셨습니다. 저는 밤에 어른 수련생들과 함께 전단지를 배포한 적 이 있고, 천안문 광장에서 평화청원을 한 적도 있는데, 모두 사부님의 보호 하에 무사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도 인간사회의 ‘염색 항아리’에 지나치게 물들지 않도록 저를 지켜주시는 사부님의 보호를 항상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대법 속에서, 대법에 용해되는 그런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14년 7월, 저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으로 오게 됐고 이때부터 해외에서의 저의 수련을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도소에 갔을 때, 들어서자마자 격동되어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보도소 내부 전체가 밝고 널찍했으며, 벽 가운데에 걸린 사부님 법상에서는 무한한 빛이 발산됐습니다. 순간, 저의 마음은 비할 바 없이 자비롭고 따뜻한 에너지에 감싸여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수련생들과 큰 소리로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을 읽었는데, 개개인의 표정은 모두 그렇게 상화로웠습니다.

해외에 와서 처음 법공부를 할 때 교란이 심했습니다. 잠이 많아 법공부 시간을 놓치거나 법공부 도중에 졸음이 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돌파하려고 많은 노력도 했습니다. 한번은 수련생끼리 아침 9시에 모여 법공부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제시간에 법공부 할 수 있도록 잠자기 전에 발정념을 하고 알람도 많이 설정해 놨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이미 9시가 지난 때였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실망하며 너무 낙심했습니다. 화가 나고 괴로워서 그대로 엎드려 울고 싶었고 일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때, 저는 콘크리트 바닥에 넘어져 엎드려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저의 뒤에서 “일어나거라!”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엔 미처 알지 못했으나 몇 초 뒤 정신을 차리고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점화해 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서 말씀하신 한 단락 법이 떠올랐습니다. “당신들은 수련 중에서 한 가지 뚜렷한 표현이 있는데 바로 어떤 일을 잘하지 못하고 일을 끝낸 후, 그곳에서 후회만 하고 새롭게 다시 할 줄을 모른다. 당신이 후회를 많이 해도 또 집착이다. 잘못했으면 어디서 잘못했는지 보고 알았으면 다음에 그것을 잘하고 새로 하라. 곤두박질쳐 넘어져서 한사코 그곳에 엎드려 있는데, (뭇사람 웃음)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1]

저는 다시 털고 일어나며 “사부님께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데 나 스스로 자포자기하면 안 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즉시로 일어나 법공부 장소로 달려가 법공부에 참여했습니다. 법공부를 하는 중에 졸리면 가부좌하거나 서서 읽거나 하면서 정념으로 대했습니다. 안을 향해 찾으면서 제가 졸게 된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의 바르지 않은 관념이 수(睡)마를 불러오게 된 것임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어떤 때 전념해서 법공부하다가도 갑자기 ‘오늘은 안 졸았네.’라는 염두가 떠오르기만 하면 환희심이 잇따라 나왔고 얼마 안가서 곧 머리가 무거워지며 졸리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애써 머릿속의 여러 가지 생각을 배제하면서 졸든 안 졸든 그것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법에만 전념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또 저의 의지력이 단련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효과를 보든 안 보든 관계없이 저는 매일 법공부를 견지하며 오로지 법을 얻고자 하는 순정한 마음만을 가졌습니다. 나중에 무심코 발견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이미 법공부 할 때 조는 그 단계를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2. 션윈(神韻) 홍보에 참여하다

2014년 말, 저는 처음으로 2015년 션윈 홍보에 참여했습니다. 보도소 책임자가 중부 보도소 청년 제자들에게 PPT 션윈 소개 문구를 외우라고 하면서 제게도 중국어학원에 홍보도 할 겸 새로운 방식으로 홍보할 수 있게 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당시에는 저 자신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생각하며 너무 어렵게 느껴져 정말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보도원의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외우기로 했습니다. 바로 그 다음 주 단체 법공부 시, 책임자는 예상치 못하게 우리에게 수련생들 앞에서 실전처럼 외운 것을 한번 발표해보라고 했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과거 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자 너무 긴장한 탓에 기억도 잘 나지 않았고 당황하여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습니다. 정말 창피했는데, 수련생들의 지적을 받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뜻밖에도 수련생들은 웃으면서 저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수련생들의 도움 하에 저는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고, 그 이후부터는 갈수록 더 원활하게 잘 할 수 있었습니다. 후에 다른 수련생과 함께 어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우는 한국인들에게 중국어로 션윈을 소개했으며, 이리하여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습니다.

학교에서도 기회를 찾아 교수님과 학우들에게 션윈을 소개했습니다. 한번은 ‘축제’라는 주제로 수업이 열렸는데,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알고 있는 축제 중에 어떤 것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이 기회에 션윈 공연을 추천했습니다. 큰 화면을 통해 션윈 소개 동영상 화면이 방영되자 교실에서“와, 와.” 하는 탄성이 나왔습니다. 교수님도 “진짜 아름답구나. 나도 한번 가보고 싶네.”라며 감탄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뿌듯했습니다.

션윈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의존심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번화가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며 홍보하던 중, 함께 하던 중년의 한국 수련생이 갑자기 일이 생겨 잠깐 가봐야 한다며 아무 걱정 없다는 듯 떠났습니다. 순간 수련생과 같이 했을 때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낯선 거리와 낯선 사람들… 혼자 남은 저는 한국어도 서툴었기에 아주 당황스러웠고 두려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문득 ‘이것은 의존심을 버리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수련은 남에게 대신해달라고 할 수 없잖아. 나의 수련 길은 오로지 나 혼자 걸어야 한다. 수련 중에 의존관계가 없지 않은가. 나는 이 의존심을 꼭 닦아버릴 테다.’이렇게 생각하며 이 집착심을 인식하자 정념이 생겼고 사부님께서 제 곁에 계신다는 느낌이 들어 더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하루가 끝나면 몸이 정말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힘든 줄 모르고 항상 행복했습니다. 얼마 후 션윈예술단이 한국에 와서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션윈 공연을 처음 관람하던 날, 막이 오르면서부터 1부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저는 울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감격과 감은(感恩)의 감정이 솟구쳐 나왔습니다. 바로 사부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바와 같았습니다. “당신이 전 세계 어디에서 생활하든지, 이 문화를 보고 이러한 것을 보면, 모두 아주 친숙한 느낌이고, 마치 그 환경에 있는 것 같으며, 마치 자신이 일찍이 그곳에 있었던 것 같은, 바로 이런 느낌일 것이다.”[2]

몇 년이 지나면서 션윈 마케팅 홍보는 수련생 모두가 참여하던 데서 그렇게 많은 일손이 필요 없게 되었고 전문팀 위주로 변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여러 수련생의 공동의 노력이 필요했을 때 그 속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매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3. 학교에서 진상을 알리다

대학교 생활에서도 ‘진선인(眞善忍)’을 실천하며 교수님과 친구들에게 기회를 찾아 진상을 전했습니다. 제 생활과 경험을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진상으로 인도했고, 리포트나 과제를 할 때 다양한 각도에서 진상을 과제와 연관시켜 알렸으며, 학교에서 인권문제를 다루면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인권 탄압으로 진상을 알렸습니다. 역사를 다루면 중국공산당의 설립과정과 정치 운동의 역사로 진상을 알렸고, 예술과 관련된 수업이면 순수예술의 각도에서 션윈을 예로 들어 분석하고 소개했으며, 개인생활과 연관되는 문제를 다루면 어렸을 때 중국에서 가족이 당한 박해를 이야기하며 진상을 알렸습니다.

지난 학기에 <중국문학개론> 수업을 들을 때 일입니다. 초반에 교수님의 강의 방식에 호감을 가졌다가 도중에 교수님이 공산당을 칭찬하는 것에 의아했습니다. 저는 놀랍고 화가 났습니다. 중국의 역사와 문학을 그렇게 잘 아시면서, 왜서 공산당이 중국문화를 파괴한 것을 무시하고 칭찬하는가? 더군다나 학생들이 많은 수업시간에 그런 말을 했기에 학생들에게 영향이 미칠까 더욱 원망스러웠습니다. 마음이 평온치 않고 화가 난 제 자신을 의식하면서 자신에게 “왜?”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왜 지금 화가 나는가? 단지 법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나의 표현은 마땅히 선해야 할 것이며 이렇듯 많은 사람마음이 올라오지 말아야 한다.’이렇게 안으로 찾아보니 그것은 자신의 정(情)에서 비롯된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사랑과 미움, 전반 인류사회의 모든 것이 전부 이 정(情)에서 나온 것이다.”[3]

교수님이 저의 관념에 부합했을 때 존경하는 마음과 호감이 생겼지만, 자신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을 때는 실망과 함께 화가 났던 것입니다. 저는 교수님도 중생이기에 마땅히 이런 사랑과 증오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비롭게 대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을 평정한 뒤 교수님에게 제 생각을 예의를 갖추면서도 객관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저는 용기를 내어 교수님에게 찾아가 저의 생각을 말씀드렸는데 교수님은 제 관점에 매우 공감했습니다. 뜻밖에도 이후 수업에서 공산당 관련 화제가 나왔을 때 교수님은 유머러스하면서 사람을 깊이 사색하게 하는 방식으로 공산당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수련인이 계속 자신을 제고하듯, 교수님도 매일 매일의 수업에서 자신의 관점을 갱신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전반 수업 분위기도 모두 바로잡아졌습니다. 저는 교수님이 바른 선택을 함으로써 수업을 듣는 많은 학생들에게도 바른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돼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4.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리다

관광지 진상거점 진상 알리기에 처음 참여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욕도 먹고 여러 번 울기도 하면서 많은 심성고험을 겪었습니다. 사람들의 각양각색 질문 앞에서 저는 어떻게 지혜롭게 중생들의 의문을 풀어줘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리하여 저는 밍후이왕(明慧網)에서 파룬궁 관련 기본문제 해답과 진상을 알리는 글들을 검색해 출력하여 반복해서 외웠습니다. 낮에는 진상을 잘하는 수련생을 따라다니며 진상 알리는 방식에 대해 배우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미소 지으며 당원 같아 보이는 키다리 중년 남성 4명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들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욕을 퍼부었고 게다가 대법을 모독했습니다. 억울하고 화가 나 몇 마디 더하자, 그들은 더욱 기고만장해서 저를 둘러싸고 큰소리로 중국공산당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까맣고도 빨갰으며, 흉악스러운 표정은 마치 지옥의 마귀 같았습니다. 그 순간 정말 두려웠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누군가가 저를 이렇게 욕한 적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진귀한 대법을 모독하는데도 저는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한동안 그 장면이 떠오르기만 하면 눈물이 글썽이었지만 저에 대한 고험이라고 여기면서 진상을 알리겠다는 자신감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미 여러분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선(善) 그것은 가장해 낼 수 없으며, 표면적으로 유지하는 하나의 상태도 아니며, 선은 진정으로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며, 그것은 수련을 통해서만 비로소 얻을 수 있고, 비로소 체현되어 나올 수 있다. 중생들 앞에서, 당신의 말이 입에서 나오자마자, 당신의 염(念)이 움직이자마자, 좋지 않은 요소를 바로 해체시킬 수 있고, 세인들을 독해하는 것과 사람의 사상요소 중의 좋지 않은 것을 바로 해체시킬 수 있어, 사람은 알게 되고 당신은 그를 구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이 진정한 선(善)의 강대한 역량의 작용이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해체시킬 수 없고, 당신은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중에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4]

이후 일상생활에서 저는 선(善)을 닦는 것을 더욱 중요시했습니다. 모욕을 당할 때면, 변명하려는 쟁투심을 없애고 심성을 지켰습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대했을 때 충돌이 서서히 줄어들었습니다.

한동안은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을 하느냐?” 라고 하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대법이 무엇이고, 자신은 어떠한 사람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기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계속 듣게 되자 마땅히 안으로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제 안에 ‘나는 어리다’라는 생각에 집착하는 마음이 매우 컸던 것입니다.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 중 연세가 많은 분들이 많았고 나처럼 어린 사람이 적었기에 심성 관을 넘길 때마다 ‘나는 아직 어리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내가 어리기에 수련을 잘하지 못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또 내가 어리기에 노년 대법제자처럼 그렇게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지 않아도 어물어물 관을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어찌하여 이런 생각이 있게 됐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는데, 저의 성장과정에서 저는 사부님께 마치 부친에 대한 정과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부모가 잘못을 저지른 어린 자녀를 항상 용서해주듯 사부님께서도 저를 항상 용서하실 거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사람의 정으로 자신과 사부님과의 관계를 대하고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대법은 자비로우나 표준이 있으며, 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제가 어려서 이런다고 욕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고 모두 제 나이를 듣고는 “와, 젊은이, 파룬궁(수련생)에도 이렇게 젊은 사람이 수련하고 있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동대문 진상거점은 신호등 옆에 설치됐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신호등이 빨간색일 때 멈춰 서서 진상 보드판을 보지만 녹색으로 바뀌면 바로 떠납니다. 그래서 한마디만 더 하면 중국인을 삼퇴(三退-중국공산당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산주의청년단, 소년선봉대에서 탈퇴하는 것)시킬 수도 있었는데 갑자기 신호등이 바뀌어 놓친 상황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이후 저는 진상을 좀 알리다 보면 또 사람들이 채 듣지 않고 그렇게 떠날까 봐 걱정하면서 조급해졌습니다. 안에서 찾아야 함을 인식하고 찾아봤더니 ‘중생이 진상을 듣다가 녹색 신호등을 놓쳐서 갈 길이 지체되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오랜 세월동안 기다려온 목적이 바로 이 진상을 듣기 위함인데 신호등 한번을 놓친다 해서 어찌 지체됐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저 자신이 생각을 바로 잡자 사람들도 더는 신호등이 바뀌는 시간을 그리 급하게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진상을 듣던 중 신호등이 바뀌자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제 생각에 신호등 하나의 시간뿐인데 빨라도 얼마 빠르지 않고 늦어도 얼마 늦지 않아요. 특히 당신들처럼 해외에 여행을 온 경우라면 다시 진상을 듣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해줍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그러네요.”라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제가 말하는 진상을 끝까지 듣습니다.

한번은 동대문 진상거점에서 예쁜 젊은 여성 2명이 전단지를 놓아둔 책상 앞에 서있었습니다. 다가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자 한 명이 중국어로 이게 무엇인가고 물었습니다. 보통 중국인들 중 파룬궁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이가 매우 적은 편인데, 그녀의 순수한 눈빛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저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진지하게 듣더니 갑자기 격동되어 옆 친구에게 “이분 너무 착하다. 왠지 모르게 말을 더 듣고 싶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수련인의 자비를 느꼈음을 알게 된 저도 감동했습니다. 제 말이 끝나자 한마디도 없던 여성이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신들이 좀 반동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실을 알고 나니 당신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애국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당신들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며 모두 선량한 사람 같습니다. 당신들의 신념을 지지합니다. 힘내세요!”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 많은 신들이 따라서 내려왔다. 그 후부터 해마다 모두 있었고, 신들은 줄곧 아래로 내려왔다. 내가 법을 전할 때가 되어서는, 그 신들이 마치 눈꽃처럼 내려왔다. 바로 그렇게 많았다. 내가 이 나이를 계산해 보니, 내가 법을 전할 때부터 현재까지, 25세 전후의 이런 젊은이들인데, 정말 아직도 많은 사람이 구도 받지 못했다. 모두 신이 온 것이며, 그들은 지상에 내려와, 전 세계 각지에 분산되어 있다.”[5]

당시 이 설법이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날 동대문에서 진상을 알리는데, 한국 청년 한 명이 장쩌민 고발장에 서명을 한 뒤 대법 전단지에 적힌 “파룬궁은 1992년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에 의해 창춘에서 전해졌다”라는 부분을 유심히 보더니 격동된 심정으로 저에게 “1992년이요? 1992년에 전해졌다고요? 저랑 나이가 똑같네! 저랑 나이가 똑같아요! 저도 1992년생이고 올해 25살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 역시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하면서 그저 감동에 겨워 그를 바라봤는데,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래오래 울리는 그런 격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그 한 단락 법을 거듭 생각하며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와 은혜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세상에 내려온 또 하나의 신이 구도 받은 것입니다.

5. 맺음말

한번은 법공부를 견지하면서 관을 넘자 며칠간 기묘한 느낌이 찾아왔습니다. 제 발이 땅을 밟고 있지만 전혀 이 한 층 공간에 있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또 한옥마을 진상거점에서 오고 가는 중국인 관광객을 보면서 처음으로 그들이 세상에 내려오기 전에 가졌던 신성하고 위대한 왕의 모습을 그처럼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수천만 년의 기다림은 오로지 오늘 눈앞에 펼쳐진, 보건대 간단해 보이는 이 진상전단지 하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법제자에게는 이들을 일깨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최후에 기다리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이 몇 년간의 해외 수련 중에서 사부님께서는 저 이 제자에게 가장 위대하고 신성한 일체를 주셨고 제 생명을 새로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곧 대법이 사람을 용해하는 힘과 자비일 것입니다! 저의 수련을 돌이켜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은 수련인 이며 대법제자라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잊지 않는다면 많은 법리가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올라 저를 도와 난관을 넘게 해주었습니다.

이상은 현재 제 이 층차에서 수련하며 겪어 온 이야기와 체득입니다. 수련생 여러분과 공유하면서 같이 정진하자고 합니다. 또한 이 자리를 빌어 청년대법제자들이 함께 공동 정진하여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사존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8년 아시아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발표 원고)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 를 해야 한다’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10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해외법회원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0/16/3758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