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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과 불치병 환자들이 구사일생한 이야기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종합보도) 현재 과학기술과 의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의료나 요양 조건도 특별히 우월하며 각종 체육단련과 운동방법도 다양하다. 하지만 많은 질병 앞에서 여전히 어쩔 수 없다. 사람은 여전히 병마의 시달림 속에서 고통스럽게 생활하고 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은 가난 때문에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파룬따파(파룬궁이라고도 함)가 중국 대지에 널리 전해졌다. 진선인(眞善忍) 법리는 1억 명의 수련자의 심신을 정화해 주고 도덕이 승화하게 했다. 무수한 사례가 실증하다시피 파룬따파는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데 신기한 효과가 있다. 그리고 속인이 보기에 불가사의한 기적이 매우 많이 출현했다. 여기에서 어렸을 때부터 난치병과 불치병에 걸렸던 다섯 사람이 다양한 인연으로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심신건강을 얻은 이야기를 예로 들겠다.

파룬따파는 진정한 성명쌍수(性命雙修)의 불가 수련대법이다. 진선인(眞善忍) 법리의 지도에 간단하고 우아한 5세트 공법을 곁들여 배우고 연마하는 사람은 심신이 건강하고 도덕이 승화하며 지혜를 열 수 있고 인생과 우주의 비밀을 통찰할 수 있는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일찍이 1998년 중국 의료계에서는 이를 위해 5차례 연구조사를 했다. 그리고 북미 및 대만의 의료인들도 관련 건강 조사를 진행했다. 결과 파룬궁이 질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효율은 98%에 도달했다.

1) 미운 새끼오리가 백조로 변하다

린이리(林依力)는 미국에서 자란 소녀다. 6살 때 피부 괴질을 얻었는데 전신과 얼굴에 홍진(紅疹: 열꽃)이 가득 났고 피와 고름이 흘렀다. 벗어놓은 속옷은 자주 핏자국이 얼룩졌다. 일상 음식물 중 98%는 먹을 수 없었다. 맥편(麥片), 빵, 두부도 먹지 못한다. 먹기만 하면 피부병이 더욱 심해졌다. 그 시기 어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한방, 양방을 다 찾았고 전갈, 뱀도 사용했다. 의사는 린이리 어머니에게 알려줬다. “따님은 아마 평생 병을 달고 있어야 할 겁니다.”

린이리의 병은 칼처럼 밤낮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할퀴었다. 어머니는 결심을 내렸다. 가산을 탕진하더라도 딸의 병을 낫게 할 거야. 아무리 비싼 약이라도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머니는 구해왔다. 아무리 쓰고 넘기기 어려운 약도 6살 난 린이리는 주저 않고 먹었다. 몇 년 지나자 불쌍한 린이리는 얼굴색이 무서울 정도로 퍼렇고 누렇게 변했고 손발에 힘이 없고 떨었다. 몸은 갈수록 약해지고 전신의 피부와 살은 참을 수 없이 아팠다.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몸에 흐르는 피와 고름을 보고 학우들은 모두 멀리 피했다.

린이리는 고통스러운 나머지 주방에 뛰어들어 식칼을 들었다. 더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 나는 이렇게 비참해? 차라리 죽을래.” 딸의 처참하고 절망적인 외침에 어머니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것 같아 딸을 꼭 끌어안고 통곡했다……. 어머니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명의를 찾을 때 린이리와 어머니는 다행스럽게도 파룬궁을 만났다.

어느 날 어머니는 거실에서 친구가 보내온 파룬궁 연공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관심이 생긴 린이리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이 공의 동작이 정말 보기 좋아요.” 어머니가 물었다. “연마하고 싶니?” “네!” 생각지 못하게도 린이리의 이 한 마디 “네!”로 인해 고생이 끝나고 낙이 왔다. 건강을 얻을 수 있는 신기한 계기를 얻은 것이다!

린이리는 어머니와 함께 ‘전법륜’을 읽고 파룬궁 5장 공법을 연마했으며 책 속의 ‘진선인(眞善忍)’ 원칙으로 자신을 개변했다. 부지불식간에 린이리는 자신의 세계관이 재빠르게 변한 것을 발견했다. 자신을 괴롭히고 자살하고 싶게 하던 통증과 고독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린이리의 눈은 더 이상 자신의 병과 불행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여전히 선의와 너그러움을 품고 주변의 사람들을 우대했다.

한번은 학교에서 다음 날 교외로 소풍을 가게 됐다. 린이리는 아빠에게 도시락을 사러 가자고 했고 아빠는 마작을 하느라 가지 않으려 했다. 어머니가 돌아오자 린이리는 눈물이 글썽해서 어머니에게 알려주었다. 어머니와 함께 문을 나설 때 방금까지도 아빠에게 화가 나 있던 린이리는 갑자기 매우 다정한 말투로 아빠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했다. 길에서 어머니가 린이리에게 물었다. “아빠에게 화가 나 있다가 갑자기 바뀐 건 무엇 때문이니?” 린이리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사람에 대해서는 선하게 대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좋지 않게 대해도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좋게 대해야 한다고 알려주셨어요.” 어머니는 매우 기뻐했다.

또 한 번은 린이리가 학교에서 점심밥을 사려고 줄을 섰다. 한 학우가 갑자기 달려오더니 1달러를 빌려 달라고 했다. 당시 린이리의 손에는 모두 1달러 25센트밖에 없었다. 린이리는 생각도 안 하고 1달러를 학우에게 건넸다. 학우가 간 후 린이리는 수중의 25센트를 보았다. ‘뭘 살 수 있지? 사탕이나 한 알 사자.’ 이후에 학우 몇 명이 알고 서로 음식을 나눠줬다. 돈을 빌려간 학우는 더욱 감동해 린이리를 포옹하며 물었다. “너도 돈이 부족한데 왜 나에게 빌려 줬어?” 린이리는 매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내 생각은 안 하고 그저 네가 나보다 더 돈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어머니는 이러한 일들을 들은 후 기쁘게 웃었다. 파룬따파를 수련해 위사위아(爲私爲我)에서 선타후아(先他後我)로, 생명의 선량한 본성이 회귀한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린이리는 도량이 서서히 넓어졌다. 심경이 넓어짐에 따라 그녀의 피부도 어느새 변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 학생들은 모두 머리를 숙이고 답안지를 적고 있었다. 린이리가 이마를 만졌더니 피부각질이 눈꽃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제야 원래 곪았던 곳이 이미 말라서 뱀 허물처럼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지 겨우 몇 주 밖에 안 됐는데 린이리의 병은 기적처럼 나았다. 원래 짓물렀던 피부는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지금 린이리는 성인이 되어 우아하고 예쁘고 자신감이 넘친다. 미국 TABA 금은방 매니저가 된 그녀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회가 깊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만약 우리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내가 오늘까지 살아 있었을지 알 수 없어!”

2) 간질병 아이가 미남으로 변하다

야링(雅玲)의 시댁은 대가족인데 특히 남자를 중시한다. 야링의 아들 멍쉬안(孟軒)이 태어날 때 친척 친구 모두가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엄마가 된 야링은 당연히 매일 희색이 만면해 정성껏 아들을 돌봤다. 하지만 어린 멍쉬안은 그녀를 마음 편히 있지 못하게 했다. 매일 탈이 나더니 태어난 지 17일 되자 병원에 입원했다. 이때부터 그들 가족은 병원의 단골손님이 됐다.

겨우 3살이 됐다. 어느 날 저녁에 또 고열이 나서 야링은 남편과 함께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갔다. 금방 도착하자 멍쉬안은 거품을 물고 얼굴이 검자주색으로 질리며 호흡이 없었다. 야링은 놀라서 크게 소리쳤다. 의사는 얼른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야링은 아이를 안고 나는 듯이 응급실로 달려갔다. 의사가 산소호흡을 시키고 한참 지나서야 겨우 숨을 쉬었다. 구급처치로 목숨은 살렸지만 이때부터 총명하고 사랑스럽던 어린 멍쉬안은 눈빛이 흐리고 쉴 새 없이 눈을 찡그리고 안면 신경이 경련을 일으켰으며 대뇌 반응이 느렸다.

야링은 멍쉬안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사촌언니(병원 모 과 전문의)를 찾아 전문의의 검사를 받아봤다. 검사 결과는 청천벽력 같았다. 멍쉬안이 간질병에 걸렸다고 했다. 병세가 점점 심해지는 아이를 보며 야링은 마음이 칼로 에이는 듯 했다. 온종일 눈물로 지새고 절망으로 가득 찼다.

예쁘고 사랑스럽던 어린 멍쉬안은 눈과 안면이 경련을 일으키다가 목까지 발전했다. 몸을 뒤로 틀기도 하는데 매우 무서웠다. 이름난 병원 전문의의 검진도 받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약을 한 보따리 처방해 주고 집으로 돌려보낼 뿐이었다.

매번 약을 먹는 것은 멍쉬안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7, 8가지 약을 작은 손바닥에 다 놓지도 못한다. 아이는 약을 들고 기대 어린 눈으로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이 약으로 고칠 수 있어?” 어머니는 눈물을 겨우 참으면서 말했다. “고칠 수 있어.” 멍쉬안은 매우 믿었다. 약을 입에 털어 넣고 고개를 들었다. 사레가 들려 눈물이 나왔다. 약에 진정제가 있어 어린 멍쉬안은 매일 기운이 없었다.

아들이 무섭게 변한 모습을 보고 야링은 심신이 지쳐갔다. ‘어떻게 하지? 죽고 말자. 사는 게 너무 힘들고 너무 고통스러워.’ 야링은 자전거에 아들을 태워 도로를 건널 때 일부러 뒤로 보지 않았다. 속으로 ‘우리 모자가 차에 치이면 죽고 말지’라고 생각했다. 뒤에서는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났고 이어서 기사의 욕설이 따랐다. 멍쉬안은 뒤에 앉아 어머니에게 알려주었다. “엄마, 기사 아저씨가 우리에게 욕해.” 야링은 감히 돌아보지 못하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멍쉬안이 1학년에 올라갔다. 학교 선생님은 자주 야링을 찾았다. “이 아이는 왜 이렇죠? 온종일 기운이 없고 책상에 엎드려 머리도 들지 않아요.” 야링은 선생님에게 감히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아이들이 따돌리고 괴롭힐까 봐 두려웠다. 고통스러운 눈물을 속으로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1995년 섣달 22일은 야링과 아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다. 이날 그들은 병원에 사촌언니(모 과 전문가)를 찾아 진료를 받으러 갔다. 사촌언니는 기뻐하며 그들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 나에게 와서 파룬궁을 배우자.” 저녁을 먹고 야링네 세 식구는 사촌언니를 따라 직장의 파룬궁 연공장에 갔다.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면서 야링은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왜 이제 알았지?’ 머리를 돌려 어린 멍쉬안을 보니 꼼짝도 안 하고 온 정신을 집중해 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 사람은 몸이 가볍고 매우 편안한 감을 느꼈다.

멍쉬안이 부모님을 따라 파룬궁을 수련한지 얼마 안 되어 간질 동작이 모두 사라지고 모습은 점점 준수해지고 활발하고 사랑스러워졌다. 멍쉬안은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고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해도 대꾸하지 않았다. 학교의 선생님과 학우들은 특히 그를 좋아했는데 그야말로 보는 사람마다 좋아했다. 어린 멍쉬안 집에도 매일 즐거운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친척 친구들은 누구도 행복과 즐거움이 다시 이 가정에 가득할 수 있을지 생각지 못했다.

생생한 사실 앞에서 그들 대가족은 거의 모두가 파룬따파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멍쉬안은 총명하고 배우기 좋아해 시험 성적은 반에서 늘 1, 2등을 다퉜다. 해마다 우수학생으로 선정됐다. 2004년 순조롭게 성(省) 명문중학교에 입학하고 2007년 자신이 원하는 유명 대학에 입학했다. 멍쉬안은 다재다능했다. 182센티미터의 키에 매우 잘 생겨서 이름난 미남이다. 안에서부터 밖으로 정직, 선량, 소탈함이 묻어난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발동했다. 야링은 생각했다. ‘중국공산당은 너무 나쁘다. 이렇게 좋은 공법은 사회와 국민에게 백 가지 이로움이 있을 뿐 한 가지 해도 없는데 왜 못하게 하지?’ 사람들이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에 속지 않게 하기 위해 야링은 여러 차례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고 중국공산당 정부에 진실한 상황을 반영했다. ‘아파서 거의 바보가 됐던 아이가 연공을 통해 매우 우수한 아이가 됐다! 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부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시고 파룬따파가 얼마나 좋은지 알릴 거야.’

매번 간질병 아이와 뇌성마비 아이들이 개인과 가정에 큰 고통을 주는 것을 보면 야링은 감격하며 말한다. “저는 그 시기를 생각하기 싫어요. 그것은 마치 칼처럼 제 마음을 찔러요. 지금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글썽해요. 하지만 더욱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기 위해, 특히 지금도 고통 속에 있는 간질병 환자가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드디어 결심을 내리고 봉인한지 오래된 기억을 열었어요. 저는 모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제 아들이 만약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일 것입니다!”

3) ‘소아마비 환자’가 건강해지다

마이슈(麥秀)는 산둥 룽청(榮成) 사람이다. 3살 때 고열로 마이슈의 오른쪽 몸은 불구가 되어 ‘소아마비 환자’가 됐다. 어린 시절 마이슈는 기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이슈 어머니는 집안에 돈이 되는 물건을 모두 팔아서 마이슈의 병을 치료했다. 그 후 마이슈는 겨우 서서 걸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평형을 유지하지 못해 자주 넘어지고 걷는 자세도 매우 보기 싫었다.

학교 다닐 때 학우들이 체육수업을 하거나 노동을 하러 가도 마이슈는 참가하지 못한다. 매번 학우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묵묵히 눈물을 흘리곤 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넘어질 때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마이슈가 걸을 때면 체중이 오른발 엄지발가락 뼈에 실린다. 학교 다닐 때 신발은 모두 그 위치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그 뼈는 점점 아파졌다. 한 걸음 걸어도 칼날을 밟은 것 같았다. 이렇게 극도의 고통과 다른 사람의 동정과 비웃음 하에 마이슈는 어렵게 중학교를 마쳤다. 졸업한 후 마이슈는 노동을 할 수 없어서 집에서 수를 놓았다. 오른쪽 팔을 들지 못하기에 수놓기도 매우 힘들었다.

결혼할 나이가 되자 어머니는 마이슈가 다른 마을에 시집가면 괴롭힘 당할까 봐 본 마을에서 혼처를 정했다. 결혼한 후 일이 단번에 많아졌다. 수도 놓아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했다. 본래도 행동이 불편한 마이슈는 시간이 부족해 밤을 새 수를 놓았다. 시간이 길어지자 몸이 버티지 못했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매번 아플 때면 구토했다. 하늘과 땅이 돌아서 아무것도 못했다. 이후에 심각한 신경쇠약으로 발전했다. 식욕이 없고 시달려서 얼굴이 누렇게 뜨고 몹시 수척해졌다. 생활이 매우 고생스럽고 힘들다고 생각했다.

신경쇠약을 치료하는 약이 매우 비싸고 계속 먹어야 했기에 경제적 부담이 매우 컸다. 마이슈는 먹기 아까워서 매일 곡유소(谷維素: 약 이름)를 조금 먹었다. 먹고 나면 머릿속은 흐리멍덩했다. 마지막에 어쩔 수 없어 노인 잡지에서 본 편법을 따랐다. 돈을 들이지 않고 편두통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는데 매일 아침 일어나서 자신의 오줌을 한 컵 마시는 것이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마이슈는 참고 마실 수밖에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맛에 오줌만 보면 구토가 났다. 이렇게 보름을 마셨는데 머리는 여전히 아팠다.

팔이 아프고 발이 아프면 일을 적게 하고 적게 걸으면 된다. 하지만 두통은 어찌할 수 없었다. 마지막에 진통제를 연속 사흘 먹었는데도 듣지 않아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때 마이슈의 큰 올케가 말했다. “파룬궁을 연마하면 괜찮다던데, 파룬궁을 연마해봐.” 마이슈가 말했다. “저는 팔, 다리가 다 불편한데 어떻게 연마해요?” 큰 올케가 말했다. “팔을 들 수 없으면 가부좌 해봐.” 가부좌가 되자 큰 올케는 된다고 했다. 1997년 음력 2월 2일, 마이슈는 파룬궁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 연마하고 머리가 아프지 않자 즉시 약을 끊었다. 잘 먹고 잘 잤다. 서서히 발도 아프지 않았다. 이후에 마이슈는 구두를 신고 장보러 갈 수 있었으며 얼마나 멀리 걸어도 힘들지 않았고 집 안팎일을 다 할 수 있었다.

그 때 마이슈의 부모는 모두 80세에 가까웠다. 어머니가 99년도에 중풍에 걸려 밥을 짓지 못하자 마이슈는 혼자 어머니를 돌봐드렸다. 아침과 저녁밥을 짓고 빨래하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할머니(마이슈 아버지의 계모)는 90세였다. 역시 마이슈가 만두를 쪄 드리고 설에 물만두를 만들고 죽을 끓여 드렸다. 마이슈는 말했다. “제 몸은 이전에 형제자매 중에서 가장 약하고 또 장애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 나았고 다른 사람을 보살필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은 모두 파룬따파가 저에게 준 것입니다. 파룬따파가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습니다.”

2002년 7월 마이슈는 냉동 창고에 일하러 갔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르기에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잔업 할 때 가장 많이는 연속 7, 8일에 매일 17시간 넘게 일했다. 집에 돌아와 누우면 잠들고 일어나면 가서 일했다. 원기가 넘쳤다. 이웃들은 모두 마이슈가 ‘철골’이라고 했다.

마이슈 집에는 도급지가 7, 8무(畝: 토지 단위) 된다. 가을에 집의 땅콩을 다 수확하고 나면 언니와 여동생 집에서도 도와주는데 매일 열 몇 시간씩 일한다. 아침에는 날이 밝기도 전에 집에서 키우는 20여 마리 토끼를 먹여야 했다. 마이슈네 집에 과수원이 있어 봄에 10여 일 동안 봉지를 씌우고 가을에는 봉지를 벗기고 이어서 사과를 딴다. 마이슈는 매일 4시에 일어나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한다. 과수원에서 돌아와도 조금도 피곤하지 않다. 마치 하루 종일 일하지 않은 것처럼 몸이 가볍다.

마이슈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수년간 약 한 알 먹지 않았다. 마이슈는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언어로도 사부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했다. 사부께서는 마이슈의 신체를 정화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마이슈의 마음도 정화해 주셨다. 마이슈와 시어머니, 이웃 간의 관계는 모두 매우 좋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배려해야 하며 모순이 발생하면 안으로 찾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마이슈는 시시각각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수련해 신체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 도덕수준도 매우 크게 향상됐다. 마이슈는 내심 깊은 곳에서 생활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꼈다. 파룬따파를 얻은 것은 그야말로 너무 행운이라고 여겼다.

4) 림프암 소년이 구사일생하다

위톈룽(于天龍)은 헤이룽장성 우창(五常)시에 거주하고 있다. 2002년 15살이 되어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한번은 감기로 열이 났는데 치료할수록 심해졌다. 현지 병원에서는 하얼빈에 가서 검사하라고 했다. 가족이 그를 데리고 하얼빈시 의과대학 제2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뜻밖에도 암이었다.

가족은 놀라서 믿을 수 없었다. 다시 헤이룽장 종양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림프암과 폐암으로 확진이 나왔다. 가족은 체념하지 않고 성내 몇 개의 큰 병원을 다녔지만 진단 결과는 모두 같았다. 이후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전문의 진찰을 받았지만 여전히 두 가지 암이었다. 이런 사실에 가족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초조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톈룽을 데리고 성 종양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며칠 안 되어 종양병원에서 치료를 거부하며 그들에게 집에 돌아가서 후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집에 돌아온 후 톈룽은 온종일 침대에 누워 한 끼에 죽 한 국자 밖에 못 먹었다. 아이가 하루하루 허약해지는 것을 보고 가족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톈룽의 고모가 오더니 가족들에게 말했다. 그녀에게 방법이 또 하나 있는데 톈룽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가족들은 시험해 보겠다고 했다. 고모는 톈룽을 자신의 집에 데려갔다.

톈룽의 고모는 파룬궁 수련자다. 이전에 톈룽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었었고 톈룽은 그 이념에 매우 공감했다. 고모는 톈룽에게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설법비디오를 틀어주었다. 서서히 톈룽의 신체는 호전이 있었다. 설법을 한 번 다 듣기도 전에 죽을 한 공기 먹고 소시지 하나를 먹을 수 있었다.

톈룽의 아버지는 아들의 병이 호전되자 또 톈룽을 데리고 성(省) 종양병원에 항암치료를 받으러 갔다. 당시 톈룽은 병원에 실려 갔다. 온 몸은 부어서 이미 변형이 됐다. 의사와 환자들이 보더니 이렇게 됐는데 뭐 하러 왔냐고 말했다. 의사는 톈룽에게 약을 처방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인맥을 동원해서야 약을 조금 썼다.

그런데 입원한 그날 밤 톈룽의 전신에 붓기가 갑자기 빠졌다. 아침에 주치의는 회진하다가 환자 카드를 보면서 아이가 이미 사망해 다른 아이인 줄 알았다. 가족은 이 아이라고 했다. 주치의는 깜짝 놀라서 병실 밖으로 달려 나갔고 조금 후 10여 명 의료진이 달려왔다. 다른 병실의 환자까지 톈룽의 병상 앞에 2, 30명이 모였다. 의사는 말했다. ‘너무 신기하다, 정말 기적이야! 기적! 불가사의해!’

당시 설이 가까워 오기에 톈룽은 7일간 입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에 가족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또 톈룽을 데리고 종양병원에 방사선치료를 받으러 갔다. 의사는 필요 없다고, 병소가 아예 없기에 건강한 사람과 같으며 약도 먹을 필요도 없다고 했다.

톈룽이 기사회생한 이야기는 친척 친구들 사이에서 전해졌다. 많은 사람이 파룬궁 책을 보기 시작했고 파룬궁 진상을 알려고 했다. 지금 톈룽은 이미 31살이며 매우 건강하고 유쾌하게 생활하고 있다.

5) 아시아계 러시아 소녀 제니아가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다

제니아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아시아계 여아이며 부모는 그녀를 애지중지 키웠다. 가족은 그녀가 건강하고 선량한 사람이 되길 기대했다.

7살 되던 해 제니아의 오른손에 종양이 하나 자랐다. 확진 결과 암이었다. 의사는 종양을 절제했고 당시 수술 후 회복은 괜찮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8개월 후 암이 재발했다.

의사는 제니아에게 총 4번의 수술을 해 주었다. 그리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과정을 몇 차례나 받았다. 고통스러운 치료과정 후 증세는 통제됐다. 의사는 제니아의 체내에 이미 암세포가 없다고 선포했다. 가족들은 이후로 제니아가 정상적인 아이들과 같이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암은 마치 제니아가 떨쳐버리지 못하는 가위눌림 같았다. 2012년 암세포가 재차 맹렬한 기세로 다가왔다. 20살의 소녀 제니아는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다시 한 번 입원했고 의사는 항암치료로 그녀 체내에서 재빨리 퍼지는 암세포를 통제했다. 병상에 누워있는 딸을 보며 부모는 절망에 빠졌다.

제니아의 친척 친구 중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이가 4명 있었다. 어머니는 그들의 심신 변화에서 파룬궁이 질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데 신기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머니는 허약한 딸이 더 이상 항암치료의 고통을 견딜 수 없음을 알았다. 만약 지금의 치료법을 계속한다면 마지막에 딸은 이 항암치료로 죽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딸에게 말했다. “우리 함께 파룬궁을 연마하자.”

이리하여 제니아는 어머니와 함께 이모를 따라 파룬궁을 배웠다. 매일 대부분 시간에 그녀들은 연공하고 파룬궁 수련서 ‘전법륜’을 배웠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제니아는 재빨리 체력을 회복했다. 항암치료 약물의 부작용인 빈혈, 구역질, 식용부진, 위장 문제도 사라졌다. 몇 개월 후 제니아는 종양센터에서 초음파검사를 했는데 종양이 뚜렷이 작아졌다.

파룬궁을 수련해 제니아는 자신의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현재 6년이 지났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결혼을 했다. 지금은 남편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해 디자인 직업에 종사하며 열심히 영어를 배우고 있다. 과거의 악몽은 철저히 그녀와 멀어졌다.

13년 간 5차례나 암이 재발했던 제니아는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드디어 진정하게 건강을 회복하고 행복한 인생을 시작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경험을 알길 바랐고 다른 사람들도 진심으로 파룬궁을 수련해 심신의 행복과 유쾌함을 얻기 바랐다.

 

원문발표: 2018년 9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9/25/3744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