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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력은 수련의 거대한 장애이다(3)

사부님의 경문 <청성(淸醒)>을 배운 느낌과 체험

글/ 재미 중국 수련생

[밍후이왕] [편집자 주: 사부님께서는 ‘구세력’에 관해 이미 많은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미혹 속에서 수련하는 대법제자는 수많은 역사와 현실의 원인으로 인해, 우리 중 많은 이는 사부님께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기 바라신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종종 매우 제한적이어서 여러 해 동안 잘못 깨달은 사람들은 가짜를 진짜라고 속이고 사람마음을 현혹시키는 것을 끊임없이 퍼뜨리고 있다. 바르지 않은 마음과 극단적으로 문제를 인식하는 등 서로 다른 상태의 수련생들은 흔히 법과 직접적으로 대립되는 그릇된 논리를 만들어 내어 교란 받고 있는데 아직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수련생들은 늘 진짜와 가짜, 시비(是非), 흑백, 이런 간단한 양극단의 이분법적 공식을 모든 사람과 일 등에 적용하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대법제자가 이성적으로 구세력을 인식하고 교란을 돌파하는 문제에 있어서, 사부님의 요구에 제대로 도달하지 못하게 잡아끌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구세력은 관건적인 위치에서 일부 사람들을 배치한다.’는 전제를 세우며 ‘밍후이왕과 불학회의 통지를 모두 듣지 말라’는 그릇된 논리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 자신의 첫 일념은, 이것이 법에 위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또, 그에 미혹되어 시장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또, 누군가 자신이 어떻게 더 깊이 깨달았고 구세력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과장해서 말할 때, 우리 스스로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분명히 알아, 마음이 고인 물처럼 차분하게 이끌리지 않을 수 있을까? 교란과 고험 중에서 곤경에 처하였을 때, 어떤 생각이 자신의 진념(真念)에서 온 것이고, 어느 것이 구세력이 강요한 외부의 교란이며, 어느 것이 자신의 금생 혹은 전생에서의 사람마음과 관념의 속박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분명히 구분할 것인가? 어떻게 법으로 자신을 지도해 곤경을 돌파할 것인가? 진수(真修)제자로 말하면 셀 수 없는 진짜와 가짜, 복잡하게 얽힌 배치와 교란은 사실 모든 대법제자를 고험하는 실전(實戰)이고, 모든 수련생이 제고하는 기회로서, 결과는 각자 자신에게 달렸다. 진짜 금은 제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백번 제련되어야 순금으로 된다. 모든 대법제자들은 서로 도우면서 법 중에서 다 함께 정진하기 바란다.]

(지난 편에 이어)

3. 구세력의 기만과 복잡성

구세력의 기만과 복잡성으로 인해, 상당수 수련생은 구세력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부족하고 심지어 그것들을 감히 대면하지 못한다.

구세력의 기만의 주요 표현은 이러하다: “구세력이 ‘신(神)’, 즉 고급생명이다”라는 것인데, 이는 일부 수련생 특히 사람마음이 많은 수련생들이 감히 대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것들이 매우 높은 능력과 아주 큰 재주가 있기 때문에 이 한 점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그것들은 사부님의 정법을 방해하고 파괴하여 우리와 대립각을 세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에 대해 부면(負面) 작용을 일으킨 것은 모두 난신이다.”[1]

그 기만은 또 그것들이 사람마음을 이용해 수련생들을 교란하고 박해할 때, 수련생의 수련을 돕는다는 변명으로 표현된다. 이때 수련생의 개인 수련을 놓고 말하면 확실히 어려움이 있다. 사람마음이 있으면 이용당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소극적인 상태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련생도 자신이 사람마음이 있는 것을 알지만 왜 늘 제거하지 못하는가? 바로 그것들이 배후에서 잡아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것들은 또 끊임없이 수련생들의 집착을 확대시켜 수련생들이 부정적으로 나아가게 부추긴다. 만약 수련생들이 이것이 구세력의 소행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아 정념으로 부정할 수 있다면 사부님께서 관여하실 수 있고, 법의 효력도 나타날 수 있다.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하고, 구세력의 배치도 부정하고 배척해야 하는 것이 바로 대법제자 수련의 어려움이다. 박해를 받아 세상을 떠난 많은 수련생들은 이 방면에서 의식이 흐리멍덩해서 조성된 것이다. 법을 많이 배우고, 법리가 명백해야 완전히 피할 수 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나더러 “구세력 역시 매우 높은 신이다”라고 했는데, 말 속에 숨은 뜻이란 ‘당신이 ‘신’과 겨룰 능력이 있나? 결과를 잘 가늠해야 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알았다. 이것은 구세력이 그의 입을 빌어 나에게 경고를 날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구세력이 얼마나 높든 모두 도태될 생명이고, 사부님께서도 이미 그것들의 결말을 정하셨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곧 이루어질 새로운 우주의 생명이고, 사부님과 같이 있고, 정법과 함께 있어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때로 그것들은 음성, 영상 등 가짜 정보를 직접 수련생들의 두뇌에 주입해 수련생들이 고급생명이 전달한 정보로 착각하게 만든다. 심지어 사부님의 목소리와 형상을 사칭해 사람을 속이는데 수련생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렵게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의 어떠한 마음이든지 모두 일종 집착이 될 수 있고, 모두 사악에게 이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염두(念頭)가 생겨나올 때면, 사악은 아마 당신에게 일종 가상(假相)을 연화해 줄 수 있는데, 그때 일종의 교란이 일어날 것이다.”[2]

나는 또 한 가지 현상을 보았다. 어떤 수련생은 항목 중에서 아주 많은 일을 하였지만 장기적으로 자신이 책임자에게 배척당했다고 느끼고, 어떤 이는 이 때문에 납득이 되지 않아 자신에게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또 어떤 사람은 속인의 수단으로 반격하려 하고 있다. 사실 이것이 구세력의 소행이라는 것을 모두 의식하지 못하고, 정법(正法) 수련의 법리로 자신을 지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수련생은 이런 잘못된 인식이 있다. 구세력이 고급생명이라면 왜 우리는 자비롭게 대하지 못하는가? 이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명확하게 설법하셨다. “정법, 이 일의 출현은 한 생명의 자아 수련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다. 한 생명이 당신을 교란하고 대법을 교란하는데, 마땅히 없애야 할 생명은 이미 당신 개인이 자비롭고 자비롭지 않은 문제가 아니며, 당신이 대법에 대해 책임지느냐 책임지지 않느냐 하는 문제이다.”[3]

개인적 체험으로 말하면 우리와 구세력의 관계는 바로 정(正)과 사(邪), ‘물과 불’의 관계이다. 물과 불은 서로 어울리지 못하므로 서로 간에 어떠한 타협의 여지도 없다. 정법이라는 우주 대사(大事)를 대하는 그것들의 출발점과 목적, 방법은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과 다르다. 만약 사상 상에서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조금만 모호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모두 구세력이 빈틈을 탈 수 있다. 그것들은 바로 당신을 수련성취하지 못하게 당신을 끄집어 내리는데 당신이 아직도 망설이고 있으면 되겠는가?!

진수(真修)제자를 놓고 말하면 그것들은 시시각각 모두 호시탐탐 당신을 노리고 있다. 항상 당신과 동반하며 당신을 끄집어 내리려고 생각하는데 당신이 중시하지 않으면 되겠는가?! 대법제자의 자비는 그것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4. 구세력의 죄악과 최후의 말로

사부님의 정법은 천체 대궁(大穹)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지고무상(至高無上)한 일로서, 모든 대궁 속의 생명과 관계된다. 구세력의 갱신(更新)도 포함되지만 구세력은 변이된 관념으로 참여해 들어와서 사부님의 정법을 방해한다. 예를 들면 그것들은 인간 사회의 이번 박해를 배치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없도록 많은 대법제자를 떨어뜨렸으니 그 죄악은 실로 너무나 크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우주는 개변되고 있고, 이처럼 큰 우주 천체가 개변 과정 중에서 무량(無量)한 중생을 구도해야 하므로, 어떠한 생명이 와서 교란하든 모두 죄악이 지극히 큰 것이다.”[4] “그것들의 죄악은 크기로 이미 그것들의 생명으로도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들은 미래에 끝도 없이 그것들의 죄를 갚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다 갚지 못하는바 이런 정도로 크다.”[3]

사부님의 여러 차례 설법을 통해 우리는 구세력의 최후는 바로 파멸이고, 또한 이 결과는 그것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구세력을 놓고 말할 때, 그것들은 여전히 그것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한사코 하고 있다. 물론, 현재 그것들은 이미 알게 되었는바, 그것들이 한 이 일체가 바로 그것들 자신을 훼멸시키는 것임을 알았다. 그것들이 행한 일체 역시 구세력이 더 높은 층에서 이런 것을 빌려 그것들 아래의 이런 죄가 큰 생명을 포함해 훼멸시키는 것인데, 왜냐하면 가장 큰 죄악은 바로 그것들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개변했기 때문이다.”[6]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정법 중에서 어떤 생명이 어떻게 했든지 반드시 그것들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결말을 지어야 하는데, 어떤 생명이 무슨 나쁜 일을 했다 하여 단번에 훼멸시키고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안 되는바, 깡그리 멸하는 중에서 저지른 일체의 나쁜 일을 또 갚아야 한다. 나는 최대의 자비로써 중생을 대하고 있으며, 일체 생명이 역사상 그가 아무리 큰 죄를 범하고 아무리 큰 잘못이 있어도, 나는 그들의 잘못과 그들의 죄를 모두 개의치 않을 수 있으며, 나는 또한 그들의 죄를 없애줄 수 있다. 물론 전제는 정법 중에서 정법을 교란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설사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나는 모두 당신을 구해준다. 그러나 일단 정법을 교란하였으면 직면하는 것은 바로 도태이다. 죄가 극악에 달하는 것은 또 도태되는 과정 중에서 그가 저지른 일체를 갚아야 한다. 저질렀으면 저지른 만큼 갚아야 하며 크게 저질렀다면 그만큼 크게 갚아야 한다. 그래서 이 한 차례 정법을 교란한 사악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들이 어떻게 사악하든지 직면하는 것은 모두 우주 중에서 전례 없었던 그야말로 무서운 결말이다.”[7]

사부님의 설법을 통해 구세력의 표현이 얼마나 사악하고, 난폭하든지 사실 바로 이 한 시기의 표현임을 볼 수 있다. 특히 현재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는데도 구세력은 여전히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겉으로는 강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나약하며, 마음이 허전하고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른다. 대법제자가 모두 정념이 일어나기만 하면, 그것들이 멸망하는 순간은 멀지 않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장 슬픈 것은 바로 그런 박해를 받은 세인과 구세력 그 자신이다. 그들의 끝장이야말로 진정으로 슬픈 것이다.”[8]

5.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확고한 진수제자가 되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구세력은 실제로는 바로 정법 중에서 대법제자가 능히 걸어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와 시시각각 당신들을 동반하는 거대한 관(巨關), 거대한 난(巨難)을 겨냥한 것이다.”[9]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동반(時時伴隨)’과 ‘거대한 관, 거대한 난’이란 두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매우 관건적인 두 개의 개념이라고 인식한다. ‘시시각각 동반’이므로 구세력은 어디에나 다 있고 제자마다 반드시 직면해야 하며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거대한 관(巨關), 거대한 난(巨難)’은 그것들의 난도를 가리키신 것이다. 만약 명백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용기가 충분치 않다면 걸어 나오기가 매우 어렵다. 다시 말하면 일부 사람들은 걸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나의 이해로는 대법제자(大法弟子)로 놓고 말하면 걸어 나올 수 있다. 즉 구세력의 배치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구세력은, 우주를 갱신(更新)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데 있어 가장 밀쳐버리기 어렵고, 자칫하면 방향을 잃게 하며, 진짜와 가짜의 구별을 어렵게 하는 가장 넘기 어려운 장애물과도 같은 것으로서, 새로운 궁체가 탄생할 무렵의 생사존망의 열쇠이자 갱신의 가장 큰 관(大關)이다.”[10]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구세력의 배치에서 걸어 나올 수 있는가? 사실 법 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잘 배우는 방법밖에 없다. ‘7.20’ 이후 사부님의 설법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둘 있다. 하나는 ‘법 공부(學法)’이고, 다른 하나는 ‘구세력(舊勢力)’인데 사실 이 양자 간에는 긴밀한 연결이 있다. 오직 법 공부를 많이 해야만 구세력의 본질을 명백히 알 수 있고, 오직 법을 잘 배워야만 사부님의 지도하에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우리에게 구세력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하라(全盤否定)”고 말씀해 주셨다. “대법제자의 발정념은 구세력의 배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사악의 박해를 깨끗이 제거하는 것이다.”[10]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마난(魔難)에 부딪힐 때 자신을 닦아야 하고 자신을 보아야 하는데, 이는 구세력이 배치한 마난과 그것들이 배치한 마난 속에서 어떻게 잘할 것인가 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것이 아니다.”[11]

어떤 수련생들은 “내가 부정했는데도 그것은 아직도 있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구세력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은 일종의 태도이다. 즉 확고부동하게 하나의 신념을 세우고, 완전히 사부님의 말씀대로 해야 그 배후의 내포가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사실 사부님에 대한 태도는 바로 정법(正法)에 대한 태도이다. 사부님의 요구를 원용하는 것이야말로 한 생명의 가장 큰 선념(善念)이다. 사부님의 말씀대로 확고하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은 정법에 대한 태도가 아닌가! 다른 태도에 따라 다른 결과가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마치 사부님의 정법에 하나의 과정이 필요하듯이 수련도 하나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부님의 정법 과정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수련이 개인의 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요구를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구세력을 부정하고 승인하지 않는 과정 중에서, ‘정념(正念)’은 지극히 중요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은 삼계 내에 속하는 생명이 전혀 아니며 당신은 이미 속인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정념이 강하면 당신은 무슨 문제든지 모두 해결할 수 있다.”[13] “비록 구세력이 존재해도, 당신들에게 그 마음이 없다면, 그것들은 방법이 없다. 당신의 정념(正念)이 매우 충족하다면 구세력은 방법이 없다.”[14]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사람, 정념이 매우 충족한 사람을 그것들은 모두 건드리지 못한다.”[7] “누구도 정념 정행하는 대법제자를 조종하지 못한다.”[10] “만약 정념이 강하다면 사부와 호법신은 당신들을 위해 무엇이든 모두 할 수가 있다.”[10]

다년간의 수련 실천 중에서 나는 보았다. 진수제자가 잘 수련한 가장 관건은 바로 그들이 견정하여 금강불파(金剛不破)한 신념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신사신법(信師信法)하고 동요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 구세력은 정말로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수련 중에서 나는 또 사부님의 정법 형세가 순식간에 변하여 구세력이 박해하는 가장 심각한 시기가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체험했다. 최후시기에, 확고하게 걸어 나올 수 있는 진수제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럼 구세력에게 통제, 이용당하고 심지어 큰 잘못을 범한 수련생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부님께서는 홍대한 자비로 모든 중생을 대하시는데 이것은 오늘날 세인들의 특별한 복이다. 하지만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아주 나쁜 일을 하고 심지어 큰 잘못을 범한 그런 사람들은, 만약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한다면 아마 정말로 기회가 없을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 아직도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거나 감히 대면하지 않고 숨기려 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우주 중에는 도처에 눈이 있는데, 이미 한 것과 아직 하지 못한 것을 모두 보고 있다.”[15]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반드시 정신을 차리고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사상 중에서 그것들과 철저하게 갈라서고, 끝을 맺고, 그것들의 모든 소행을 승인하지 않고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확고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구세력은 생존기반과 존재 이유를 잃게 되어 대법제자의 강대한 정념 중에서 점차 제거될 것이다. 오직 이렇게 하여야만 우리는 “생사존망의 열쇠”[10]와 관련되는 구세력을 돌파할 수 있다.

사부님의 설법 중에서 우리는 구세력의 높은 곳은 사부님께서 진즉에 제거하셨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남은 것은 삼계 내와 표면공간의 사마난귀(邪魔爛鬼)인데, 그것들만이 아직도 계속 악을 행할 뿐이고, 요만한 나쁜 것들은 바로 제자의 수련(修煉)에 쓰기 위해 남겨놓은 것이다. 만약 아직도 걸어 나오지 않는다면 평생의 후회로 남겨질 것이다.

사실, 사부님의 법에 따라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해서,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고 되돌아보면 이른바 구세력은 역사의 길고 긴 과정에서 짧은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실제로 구세력은 바로 정법이 아직 오기 전의 이 빈틈 중에서 연출(表演)하고 있다.”[12] “구세력 그것들이 어떻게 배치하였든지 그것들대로 배치하게 하라. 하지만 최후의 이 일은 절대로 그것들의 요구대로 할 수 없다.”[12] “내가 우주 중에서 한 그 일체, 그것은 가장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그것은 내가 장래에 긍정하고 내가 승인하는 것이다. 내가 가지려고 하지 않는 그것은 승인할 수 없으며 긍정할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은 치욕이다. 그러므로 정법 중에서 어떠한 마난(魔難)에 부닥치고 어떠한 충격에 부닥쳐도 모두 나의 의지를 개변할 수 없으며 모두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개변할 수 없다.”[17]

최후일수록 관건이기에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말이다. “일의 최후는 아직 다 하지 못했다. 개인 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매 일보(一步)는 모두 매 대법제자가 원만에 이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관건일 지도 모른다.”[18]

이상은 개인수련의 체험일 뿐이다. 본인의 층차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수련생들에게 단지 참고로 제공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8-2007년 뉴욕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도항(導航)-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7]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3년 애틀랜타법회 설법’
[8]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3년 워싱턴DC법회 설법’
[9]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청성(淸醒)’
[10]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11]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1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 순회 설법’
[1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
[1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15]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2-2002년 보스턴법회 설법’
[17]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8-미국수도설법’
[18]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7-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

(전문 완료)

 

원문발표: 2018년 9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9/19/3728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