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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력은 수련의 거대한 장애이다(1)

사부님의 경문 <청성(淸醒)>을 배운 느낌과 체험

글/ 재미 중국 수련생

[밍후이왕] [편집자 주: 사부님께서는 ‘구세력’에 관해 이미 많은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미혹 속에서 수련하는 대법제자는 수많은 역사와 현실의 원인으로 인해, 우리 중 많은 이는 사부님께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기 바라신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종종 매우 제한적이어서 여러 해 동안 잘못 깨달은 사람들은 가짜를 진짜라고 속이고 사람마음을 현혹시키는 것을 끊임없이 퍼뜨리고 있다. 바르지 않은 마음과 극단적으로 문제를 인식하는 등 서로 다른 상태의 수련생들은 흔히 법과 직접적으로 대립되는 그릇된 논리를 만들어 내어 교란받고 있는데 아직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수련생들은 늘 진짜와 가짜, 시비(是非), 흑백, 이런 간단한 양극단의 이분법적 공식을 모든 사람과 일 등에 적용하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대법제자가 이성적으로 구세력을 인식하고 교란을 돌파하는 문제에 있어서, 사부님의 요구에 제대로 도달하지 못하게 잡아끌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구세력은 관건적인 위치에서 일부 사람들을 배치한다’는 전제를 세우며 ‘밍후이왕과 불학회의 통지를 모두 듣지 말라’는 그릇된 논리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 자신의 첫 일념은, 이것이 법에 위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또, 그에 미혹되어 시장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또, 누군가 자신이 어떻게 더 깊이 깨달았고 구세력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과장해서 말할 때, 우리 스스로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분명히 알아, 마음이 고인 물처럼 차분하게 이끌리지 않을 수 있을까? 교란과 고험 중에서 곤경에 처하였을 때, 어떤 생각이 자신의 진념(真念)에서 온 것이고, 어느 것이 구세력이 강요한 외부의 교란이며, 어느 것이 자신의 금생 혹은 전생에서의 사람 마음과 관념의 속박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분명히 구분할 것인가? 어떻게 법으로 자신을 지도해 곤경을 돌파할 것인가? 진수(真修)제자로 말하면 셀 수 없는 진짜와 가짜, 복잡하게 얽힌 배치와 교란은 사실 모든 대법제자를 고험하는 실전(實戰)이고, 모든 수련생이 제고하는 기회로서, 결과는 각자 자신에게 달렸다. 진짜 금은 제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백번 제련되어야 순금으로 된다. 모든 대법제자들은 서로 도우면서 법 중에서 다 함께 정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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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8일 사부님께서 경문 ‘청성(淸醒)’을 쓰셨다. 사부님께서는 경문에서 말씀하셨다

“수련생으로서, 당신이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구세력은 모든 대법제자에 대하여 그것들의 것을 한 세트 배치하였는데, 만약 대법제자가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바로 틀림없이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구세력은 실제로는 바로 정법 중에서 대법제자가 능히 걸어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와 시시각각 당신들을 동반하는 거대한 관(巨關), 거대한 난(巨難)을 겨냥한 것이다.

이번 마난(魔難)을 겪고 나서, 어떤 수련생이 아직도 청성(淸醒)하지 못하다면, 당신은 이 일체를 곧 잃게 될 것이다.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는 것만이 비로소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있으며 자신을 수련하고 있는 것으로, 비로소 진정한 대법제자이다.”[1]

사부님의 이 경문은 200자가 채 되지 않는다. 아주 많은 내포가 포함되어 있다. 매번 읽고 나면 마치 망치로 북을 치는 소리가 여전히 귓전에 맴도는 것처럼 수많은 정보가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많은 수련생이 지금까지 구세력에 대해 여전히 개념이 없는 것을 나는 보았다. 마치 자신과 거리가 아주 먼 것처럼 보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구세력은 절대로 당신에게 사람 마음이 있는 것을 보고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2] 그것들이 배치한 한 세트와 더불어 제자들의 사람 마음 때문에 모든 대법제자가 통제, 이용당하고 있다. 따라서 사부님이 배치하신 길을 가려고 하면 그것들은 방해하고 교란하며, 심지어 진수(真修)제자에 대해 잔혹하게 박해를 가한다. 이것은 이미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진수제자는 모두 구세력의 교란과 박해에 대해 깊은 체험이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그것들은 많은 나쁜 일을 하여, 사부님께서는 최근 몇 년간 여러 차례 설법 중에서 그것들에 대해 그 문제의 성질을 규정해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악은 좋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깨끗이 제거되어야 할 뿐이다. 깨끗이 제거되기 전에 그것은 표현할 것이며, 특히 최후의 발악을 할 때에, 그것은 그렇게 할 것이다. 마치 이 독약처럼, 당신이 그것에게 독해지지 말라고 해도, 그것이 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독약이다.”[3]

여기에서 대법제자에 대한 구세력의 교란과 박해는 정법이 결속될 때까지, 그것들이 철저하게 소멸되는 순간까지 계속 지속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최후에 그것들이 발악할수록 대법제자에 대한 교란과 박해는 더욱 심각하다. 그것들은 대법제자 수련의 가장 큰 장애이자 최후의 장애이다. 따라서 최후의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장애를 돌파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구세력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결핍되면 자신도 모르게 흐리멍덩하게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4] 그리하여 표면적으로는 수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1. 구세력의 배치와 사부님의 배치에 대한 나의 이해

표면적으로 볼 때 진수(真修)제자는 선택을 아주 쉽게 할 수 있다: 누가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착실한 수련에 있어서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 중에 가장 관건적인 이유는 바로 구세력이 모든 대법제자에 대해 “그것들의 것을 한 세트 배치한 것이다.”[4] 만약 수련 중에서 사부님의 법에 따라 진정하게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고, 자신의 사람 관념을 고집하고, 집착을 붙안고 내려놓지 않는다면 구세력의 안배 속으로 떨어지게 된다. 아울러 구세력은 천방백계로 당신을 방해하고, 파괴하고, 교란할 것이다. 심지어 기만, 유도, 협박 등 수단을 채용하여 수련생들이 정념정행(正念正行)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한다. 게다가 그것들이 배치한 한 세트, 그 자체에 커다란 현혹이 있다.

그럼 구세력은 어떤 배치를 하였는가? 거시적으로 보면 인류사회에 대한 배치로써 어떤 사람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어떤 사람이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가 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것들은 대법이 인류사회에 전해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수련인 개인에 대해 배치한다. 사부님의 정법(正法)을 좌우하기 위해 그것들은 법을 얻은 대법제자에게 치밀한 배치를 하였다. 그것들의 배치를 성공적으로 보증하기 위해 일부 수련생과 서명 같은 것을 한다. 또 수련생의 집착과 업력을 이용하여 이른바 ‘고험’을 실시하여 사부님의 정법과 중생구도를 파괴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대법제자에게 배치한 구세력의 한 세트 것들은 매우 치밀하여 대법제자의 모든 방면에 다 포함된다. 예를 들면 어느 때에 법을 얻고, 어떤 방식으로 법을 얻고, 당신의 수련환경과 당신의 가족, 심지어 어느 때에 감옥에 들어가고, 또 감옥 안에서의 표현 등이 포함된다. 실제로 속인의 인생도 다 배치되었다. 그것들은 이 배치를 이용함으로써 그것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고 한다.

이런 이른바 ‘배치’는 수련생의 수련을 돕는다는 것을 구실로 삼기 때문에 커다란 사기성이 있어 식별하기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매 하나의 배치는 모두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부 이유는 심지어 매우 그럴듯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5]

낡은 우주의 생명과 구세력은 서로 다른 각각의 개념이고, 사부님의 정법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구세력이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구세력은 왜 대법제자에 대해 이런 배치를 하는가? 그것들의 목적은 오직 대법제자를 통해서야만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배치는 모두 대법제자를 핵심으로 진행한다. 그것들이 많은 정성을 들여 배치한 것은 모두 대법제자를 겨냥하고, 대법제자를 둘러싸고 진행한 것이다.

수련 중에서 나는 대법제자가 수련이 잘된 부분을 제외하면, 수련이 잘된 부분(사람 속에 있는 주체를 포함)이 없다는 것을 체험했다. 사실 구세력과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의 사유, 관념, 생명의 근원 및 생생세세 윤회 중에서의 모든 은혜와 원한을 구세력은 아주 똑똑히 볼 수 있다. 심지어 그것들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이런 요소를 이용하고 거의 그것들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 대법제자가 자신도 모르게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가게 되는 것은 이러한 배후의 요소가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이 속에는 또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즉 우리는 미혹 중에, 밝은 곳(드러난 곳)에서 그것들을 볼 수 없지만 구세력은 ‘어두운 곳(은폐된 곳)’, ‘막후’에서 아주 똑똑히 우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고층의 구세력이 이 한 차례의 마난(魔難)을 배치했는데, 근본 목적은 이른바 대법제자들을 단련시키는 동시에 우주 중의 그러한 좋지 못한 생명들을 이 기간에 함께 청리해 우주를 정화(淨化)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세력이 이렇게 하도록 배치한 것이다. 그것들은 그것들이 갖고자 하는 것을 우선시 하고, 내가 법을 바로잡는 목적을 우선으로 하지 않는다.”[6]

대법제자를 놓고 말하면 우리의 사명은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사부님의 요구를 원용(圓容)하려면 이 주요 줄거리를 꼭 잡아야 구세력의 배치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다.

구세력의 배치에 대해 어떤 제자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사부님께서 왜 관여하지 않으실까? 사부님께서 왜 그것들을 개변시키지 않으실까?

대법제자가 수련 중에서 마난에 부딪혀 문제가 나타날 때 흔히 모두 정념이 부족하거나 정념이 없어 조성한 것이다. 구세력에게 약점을 잡히면 마난이 커져 대법에 대한 신념이 아주 쉽게 동요되고 심지어 사부님에 대해 원망이 생기기도 한다. 이것은 바로 구세력의 계략에 걸려든 것이다. 이때 그것들은 가장 큰 약점을 잡았는데 바로 “당신은 동요되어 사부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 제자들은 끌려가게 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구세력은 당신이 넘도록 놔두지 않는데, 또 당신이 정념마저 충족하지 못하다면 당신이 말해보라,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이 말해보라, 사부가 어떻게 하겠는가? 사부는 당신을 무조건 보호하지만, 당신은 도리어 정진하지 않거나 심지어 속인과 같다! 당신이 나는 대법제자라고 말하지만, 당신의 사상과 행위는 바로 속인이다. 내가 오늘 제도하는 것은 대법제자이지 한 속인을 아무런 이유 없이 보호할 수는 없다. 속인의 생로병사는 하늘의 이치이므로 이유 없이 간섭할 수 없다. 당신들은 오늘날 사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나는 우주의 법을 바로 잡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바로 잡는가? 내가 무엇으로 바로 잡는가? 내가 옳지 않은 방법으로 우주의 법을 바로 잡을 수 있겠는가?”[7]

사실 제자가 수련의 길에서 정념정행할 때가 바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가는 것이다. 당신이 ‘염(念)’이 바르기 때문에 사부님의 법신(法身)과 우주 중의 모든 정신(正神)들은 모두 와서 당신을 돕고, 가지해줄 수 있다. 이때 구세력의 배치는 억제되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당신이 정념이 없을 때에는 바로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가는 것이기에 그것들은 당신을 조종하고 통제하며, 또한 그것들의 배치에 따라가도록 필사적으로 잡아당긴다. 그것들의 배치에 따라 갈 때, 그것은 당신 자신의 선택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우주 중에는 이런 이치가 있는데, 당신 자신이 가지려고 하는 것은 누구도 상관할 수 없다.”[8] 많은 때 수련생들이 스스로 잘못된 길을 걸었고, 좋지 않은 결과가 있는데, 그 때 가서는 ‘사부님이 왜 나를 관여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법리가 명확하지 않아 조성된 것이다.

사부님의 배치와 구세력의 배치에 직면하여 제자는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사부님이 배치하신 길을 가는 것, 아니면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가는 것이다. 다른 선택은 없다. 오직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확고하게 나아가야만 비로소 법의 효력과 사부님의 가지(加持)가 나타날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청성(淸醒)’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청성(淸醒)’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7]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8] 리훙쯔 사부님 저작: ‘轉法輪(전법륜)’

(계속)

 

원문발표: 2018년 9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9/15/3738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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