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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공부를 중시해야 굽은 길을 적게 걷는다

글/ 오스트레일리아 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매체에서 신문 발행하는 일을 5년 넘게 했다. 이 기간에 고생도 기쁨도 수확도 있었고 부족한 점과 곤두박질한 일도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에게 최근의 경험과 교훈, 체험을 보고하고자 한다.

1. 장기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항목 중 일할 때 쉽게 만족감이 생기고 게을러진다

호주에 온 첫해는 속인 회사에서 일했는데 8시간 일하면서 거의 쉬지 않아야 하고 작업량이 많았다. 사장의 마음에 들게 하려면 쉽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퇴근하여 장을 보고 밥을 하고 법 공부하고 연공을 보장할 수 있으면 좋은 편이었다. 진상 알리는 일을 할 정력이 없어 주말에만 활동에 참여했다. 그때 거의 매주 ‘겨우 외국에 나왔는데 어찌 또 속인의 생활에 매달려 산단 말인가?’라고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을 구하고 싶은 간절한 내 마음을 보시고 1년 후에 매체의 발행부문에서 일하게 배치해주셨다. 이번 기회를 아주 소중히 여겼다. 비록 낯선 곳이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시간을 다그쳐 일을 배우고 익혔고 수련생들의 협조로 점차 제 몫을 하게 됐다. 2년 뒤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었고 특수한 상황이나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 생길 때도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자 마음속의 긴장감이 풀리고 점차 만족감이 생기면서 게을러졌다. 매일 순서에 따라 규정대로 일했고 심지어 무감각할 때도 있었다. 어차피 매일 사람을 구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해 여유가 있으면 시간을 다그치지 않았다. 사실은 한 가지 임무를 완성했다는 심리였다. 사부님께서는 “이 한 순간은 천금(千金)보다 값지며 만금(萬金)보다 값지다.”[1]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다. 재미있는 생활을 하려고 오락을 했고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에서 월드컵 경기 등을 보기도 했다. 귀중한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사실 일할 때는 최고가 없고 오로지 더욱 잘해야 한다는 것밖에 없다. 순서에 따라 규정대로 일하면 좀 더 완벽하게 할 기회를 놓친다. 사부님께서는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2]라고 말씀하셨다. 매체 항목에서 더욱 끊임없이 완벽하게 하고 각 방면에서 자신의 기능을 높여야 한다.

2. 수련생의 부족한 점을 보고 불평불만이 가득한 것은법 공부를 적게 했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매체 수련생의 부족한 점과 매체 체제의 불완전함을 보고 불만이 아주 많았다. 비록 격렬한 언행은 없었지만, 몰래불만을 털어놓곤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의미 없이 동료 간의 간격만 만들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에 끈적끈적한 물질도 형성했다.

사부님께서는 수구에 관해 “당신을 놓고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순이 있어 당신은 좋다, 그는 나쁘다, 당신은 수련을 잘 했다, 그는 수련을 잘 못했다 하는, 이런 자체가 바로 모순이다. 우리 일반적인 것을 말해 보자. 내가 무엇을 하려면 바로 그것을 하고, 현재 이 일을 어떻게 해야겠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한다면, 무의식중에 누구를 해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은 모두 매우 복잡한 것으로서, 무의식중에 업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수련생의 집착에 집착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지 않는 것을 보면 ‘마음이 어찌 그렇게 독하단 말인가? 매일 법 공부하고 있는데 어찌 법 공부하고도 마음이 그렇게 독하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성격이 이상한 수련생을 보면 ‘매일 책도 읽고 법 공부하는 사람인데 성격이 고쳐지지 않고 아직도 그렇게 이상하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수련생과 접촉하는 것보다 속인 중 수양이 있는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 더 편안하다’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법에 있지 않자 서서히 ‘법 공부는 사람의 표면적인 마음을 개변하는 효과는 그리 크지 않구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게다가 오랫동안 스스로 법 공부하고 있지만, 법에서 별로 제고가 없고 오랫동안 법 중에서 새로운 내포가 깨달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자 점차 동력이 더욱 부족해지고 매일 법 공부하는 데 서서히 느슨해지게 됐다.

이렇게생활이 하루하루지나가고 법 공부를 적게 하는 것이 자연적으로 습관이 되어상태가 갈수록 나빠졌으나, 스스로는 전혀 알지 못했고 자신이 착실하게 수련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매일 법 공부하지 않지만, 매일 법 공부하는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태는 꽤 오랫동안 지속했다. 드디어 어느 날 무엇이 진정한 수련인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사부가 문으로 이끌어 들이나 수행은 자신에게 달렸다.”[2]라고 말씀하셨다. 수련은 절대 다른 수련생의 좋지 않은 일면만 눈여겨봐서는 안 되고 법으로 다른 사람을 가늠하고 요구해서는 안 되며, 심지어 수련생에 대해 어떠한 생각과 관념이 형성되어서도 안 된다. 폭로된 다른 수련생의 부족한 점은 아직 잘 수련하지 못한 일면이고, 여러 방면에서 이미 잘 수련된 것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본 다른 수련생의 부족한 점은 자신에게 무슨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사부님께서 보여주신 것이 아닐까?

매일 ‘전법륜(轉法輪)’을 통독하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나는 사부가 무엇이든 모두 그 대법 속에 압축해 넣었다고 말했지만”[3]라고 말씀하셨다. 최근 매일 ‘전법륜(轉法輪)’ 한 강씩 통독하는 것을 중시하기 시작했더니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책의 무한한 내포를 보여주셨다. 이렇게 매일 법 공부하는 것이 마치 학습반에서 직접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부님께서 어느 부분까지 말씀하셨으면 사부님께서는 그에 상응하게 제자에게 그 부분을 조절해주시고 연화해주시는 것 같았다. ‘전법륜(轉法輪)’을 통독할 때 어느 장절까지 읽었으면 우리를 위해 그 부분을 조절해주시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대법의 매 장절을 통독함에 따라 매 장절에서 말씀하신 수련과 관련된 것을 사부님의 법신께서 우리에게 한번 해주시고, 어느 집착을 말씀하셨을 때(예를 들면 과시심, 환희심, 질투심 등) 사부님께서는이전에 형성된 마음의 물질을 우리에게서 없애주시고, 관정(灌頂)과 천목에 관해 말씀하실 때는 바로 관정해주시고, 천목을 열어주시고 수련의 모든 기제를 넣어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전체 수련의 여러 단계와 층차에서 해야 할 일을 요구하신다. 펼쳐진 각 층차의 법리는 “수련생의 本體(번티)와 공의 연화(演化)와 제고, 이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가는 데에 이르기까지”[2]였다. 제자를 격려해주시고 점화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전법륜(轉法輪)’을 열심히 통독하는 것은 수련의 승패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서, 법 공부를 중시하라고 거듭 일깨워주셨고 아무리 바빠도 법 공부하는 것을 견지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셨다.

3. 일만 하고 마음을 닦지 않으면 속인이 대법의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사악이 방해하고 파괴한다

법 공부와 마음 닦는 것을 소홀히 하면 여러 가지 사람의 마음, 예를 들어 쟁투심, 과시심, 명리심, 색욕심이 무의식중에 부풀어 오른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인의 사상이 법을 이탈하면 사악이 파고들어 올 수 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인간과 인간세상의 일체는 입체(立體)적이다. 사실은 전반 인류 공간의 일체 물질, 꽃과 풀, 나무, 그리고 사람, 공기를 포함해 일체가 모두 그만큼 큰 입자(분자)로 구성된 것이다. 이 한 층의 입자 중에서 사람의 신체를 포함한 일체가 관통된 것이다. 사람 자신에게 정념(正念)이 없으면 우주 중에서, 삼계(三界) 중에서, 일체 좋지 못한 것이 사람의 신체를 끊임없이 흐를 것인데, 심지어 여기에 머문다 해도 사람은 의식(意識)하지 못한다. 사람은 바로 이처럼 통제당하고 있는데, 바로 이런 입자가 소통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4]라고 말씀하셨다.

신문을 배달하려면 오랫동안 차를 운전해야 하므로 혼자서 차 안에 6시간이나 있어야 한다. 바쁠 때는 하루에 10시간 넘게 차를 운전해야 한다. 이렇게 많은 적적한 시간에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신이 생각한 것인가? 설법 녹음을 듣지 않을 때 그것이 자신이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느낄 때가 있다. 다음 1분에 무슨 일을 생각하거나 무슨 일을 하려는 계획이 없을 때 다음 1분에 스쳐 지나가는 일사일념은 누가 생각한 것일까? 푸왠선(副元神), 관념, 사상업력, 아니면 다른 공간의 생명과 메시지? 수련인에게 있어서 일사일념을 수련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정념을 유지하지 못하면 관념과 사상업이 증가한다. 사악이 우리의 머리에 바르지 못한 생각을 넣었을 때 그것에 따라 생각한다면 바르지 못한 생각에 통제된 것이 아닌가? 그러면 빈틈을 타게 하는 것이다.

션윈을 보급하는 시기에 바빠지면 수련인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진다. 자신의 수련을 특별히 틀어쥐지 않는다면 일에 빠지는 것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금만 소홀히 하고 법 공부와 연공이 따라가지 못해 잡념이 많아진다면 사악은 방해하고 박해할 것이다. 예를 들면, 피로하여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시내에 아침 신문을 배달할 때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렵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다음 큰 지점 몇 곳의 배달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몇 부만 배달하는 호텔은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 또한 차를 도난당하거나 영문도 모른 채 차 사고를 당하거나 고장이 나게 해 많은 시간을 들여 차를 다시 사거나 수리하게 한다. 또한 이것을 잊거나 저것을 잃어버리게 해 다시 돌아가 가져오게 한다. 그리고 병업이 나타나고 몸이 불편하게 함으로써 왕성한 정력으로 일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등 모든 방해는 법 공부와 연공, 수련에 누락이 있기 때문에 초래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완전히 법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데”[5]라고 말씀하셨다. 이전에 나도 일사일념을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수련생은 일사일념이 법에 있는지 없는지를 아주 중시했다. 이 방면에서 다른 수련생과 격차가 아주 크다는 것을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갈수록 크다. 수련 중에 사람의 어떠한 것을 섞든지 모두 극히 위험하다.”[6]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많은 수련생이 모든 정력을 자신을 수련하고 사람을 많이 구하는 데 썼으며, 속인의 오락과 취미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봤다. 나는 견현사제(見賢思齊, 번역자 주: 어진 이를 보면 같아지기를 생각하라는 뜻으로, 자신을 항상 바르게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의미함)하여 부끄러움을 알고 과감하게 수련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련생 여러분이 나를 거울삼아 법 공부를 중시하고 마음을 닦고 굽은 길을 적게 걷길 바란다.

개인적인 깨달음이니 바르지 않은 곳이 있으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시카고 시 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8-2007년 뉴욕법회설법’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2-미국플로리다법회 설법’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6]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뿌리를 캐다(挖根)’

 

원문발표: 2018년 8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8/22/3727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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