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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신수련생, 짙은 안개 속을 헤치자 광명이 보이다

글/ 독일 대법제자 웨웨(悦月)

[밍후이왕] 난 지난해 9월에 영국의 해변도시 브라이턴에서 살았는데 예쁜 연꽃 액세서리를 받았다. 연꽃 펜던트를 보면서 나는 그해 3월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그때 하이난(海南)에 한번 갔다 왔다. 막내 이모와 외사촌 여동생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차에 오르자 막내 이모는 “혼자 외국에 있으면 자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읽어. 평안을 보장해줄 거야!”라고 했다. 나는 “네”라고 담담히 대답했다. 몇 년이 지났지만 막내 이모는 여전했기 때문이다. 내가 중3에서 고1로 진학할 때 줄곧 기공에 열광하던 둘째 이모가 동생을 나은 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온 가족이 아직 슬픔 속에 있는데 파룬궁 박해로 인해 또 온 가족이 나서서 막내 이모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넌 왜 그렇게 고집이 세니! 한 마디 하는 게 이렇게 어렵니!”라고 막내 이모는 날 훈계했다. 사촌 여동생은 “엄마! 형부가 과학자인데 언니가 어떻게 그걸 믿겠어요!”라고 말했다. 난 “그런 건 아니에요. 사실 이 우주의 정화는 고상한 정신이고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이렇게 말하자 사촌 여동생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나도 ‘금방 말이 내가 한 말일까?’ 싶을 정도로 자신도 아주 의아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믿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연꽃 펜던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노트북을 켜고 구글 검색란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입력해봤다…….

10일 정도 침식을 잊고 인터넷에서 모든 대법 경문을 다 읽어봤다. 눈이 붓고 머리가 무거웠다. 공법을 가르쳐주는 영상에 따라 5장 공법을 아주 빨리 배웠다.

또 며칠이 지나고 ‘전법륜’도 도착했다. 이 생에 이 시각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전에 늘 ‘난 5천년을 살았다…….”라고 농담을 했다. 5월에 여행을 갔을 때 갑자기 영국 친구들에게 “우리는 원숭이에서 진화된 것이 아니야”라고 했고 기타 여러 가지도 말한 적이 있다. 이 시점에서 드디어 알게 됐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진상을 알고 있는 다른 ‘나’에게 감사한다! 정법이 최후의 시각에 드디어 날 일깨워줬다!

일상생활 속에서 심성을 닦다

스마트폰 사용을 거절하는 남편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가 늘 핸드폰을 갖고 노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남편은 말했다.

“당신은 자신을 아주 과시하고 자랑하기 좋은 사람이면서도 입으로는 허영심이 강하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어. 그 사진들을 올리는 목적은 당신이 어디에 놀러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니야? 당신만 놀러 다니고 다른 사람은 안 다녀? 또 사진을 언제나 무심결에 찍은 것처럼 하는데 허영심이 얼마나 강해!”

그러자 난 조건반사처럼 “내가 언제 그랬어요! 내가 무슨 허영심이 강한 사람이에요! 친척이 다 중국에 있어 자주 근황을 올려 알리는 것뿐이에요!”라고 했다.

남편은 “아, 그래?”라고 말하고 또 “그럼 같은 사진을 왜 또 페이스북에 올리는 거지? 중국에서는 페이스북을 사용할 수 없다는데. 또 누구에게 보여주려고?”라고 하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잔뜩 머리를 굴려 또 “페이스북은 기록부이잖아요. 모든 일들을 기록하고 가끔 보면 역시 아름다운 기억이지!”라고 말했다.

깊은 밤에 이르러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염치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렴치한 핑계로 깊이 숨겨져 있는 허영심을 덮어 감추다니. 사실상 바로 과시심과 쟁투심이었다. 모멘트에서 누가 무엇을 올린 것을 보고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또 온갖 궁리를 다해 더 좋은 것을 올리려고 했다! 스쳐지나가는 생각 같지만 아주 깊은 집착이 숨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저도 모르게 서로 비교하는 깊은 연못에 빠져있지만 스스로는 모르고 있다. 매일 사진을 올리는 것이 습관이 됐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법을 얻기 전이었다. 법을 얻지 않았기에 자신을 잘 통제할 수 없었고 다른 사람이 올린 것을 또 보면 허영심이 간질간질해 또 사진을 올리고 사진 같은 것을 올리는 게 별거 아니라고 계속 핑계를 댔다. 법을 얻은 후에는 난 완전히 태도가 달라졌다. 과시심은 반드시 없애야 할 집착심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빨리 없앴다. 지금 핸드폰 벨이 울리지 않으면 그것의 존재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일상생활 중 순정한 자신을 찾고 도덕성이 날로 타락하는 인간세상에서 반본귀진(返本歸眞)하면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는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데”[1]를 체득했다. 아주 보잘 것 없는 일상생활 속의 일이라도 시시각각 수련인의 마음을 닦을 수 있었다.

나는 대법 중 하나의 입자

법을 얻은 지 얼마 안 돼서 독일의 한 작은 도시로 이사를 왔다. 운 좋게 영국에서 하던 일을 재택근무 하는 형식으로 계속 할 수 있었다.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외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중국공산당이 대법을 박해한 진상을 점차 알게 됐다. 한동안 정서상의 분노, 슬픔을 쏟아낸 후 점차 이성을 회복했다. 이렇게 소중한 법, 이렇게 운 좋게 법을 얻었고 또 해외의 자유로운 환경 속에 있으므로 비할 바 없이 그를 소중히 아낄 뿐만 아니라 그를 수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어떻게 진상을 알려야 하는지 자신에게 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 작은 도시에 수련인이 오로지 나 밖에 없다. 인근 큰 도시에 대법제자가 조직해 진상을 알리는 활동이 있으나 시간과 교통비 문제로 인해 가끔 한 번씩밖에 갈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때마침 설날이라 남편 실험실의 비교적 친한 동료들을 초대해 집에서 샤브샤브를 먹으며 명절을 보낼 겸 그들에게 중국의 새해를 소개해주고 싶었다. 대학교 과학연구원들은 유럽 각국이나 북미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자유롭고 포용하는 개성이 있고 다문화를 접촉하기 좋아했다. 이런 식사 자리에서 여러 음식을 먹으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체험한 적이 없었다. 모두들 아주 기뻐했다.

우리가 영국에 살고 있을 때 해마다 중국인이 조직하는 중국 새해 파티에 참가했다. 남편은 사자춤도 추고 당랑권을 시연한 적도 있다. 나도 춤과 노래, 여러 특기를 발휘했다. 해마다 모든 프로그램을 DVD로 만들어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 DVD를 보면서 중국의 인문예술을 소개해줬다. 모든 사람은 아주 기뻐했고 궁금한 것이 아주 많았으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한담하다가 중국 쿵푸, 기공에 대해서도 말했고 자연적으로 파룬궁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박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중국공산당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비열하고 악랄한지는 모르고 있었다. 내가 말한 것을 듣고 모두 깜짝 놀랐다.

모두들 의자를 가까이하고 더욱 똑똑히 듣고 싶어 했다. 갑자기 ‘이것이 바로 진상을 알리는 기회가 아닌가?!’라는 것을 의식했다. 이때 제기한 많은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할 줄 모르는 어려운 상황이 좀 나타났다. 머리에 내용들이 많이 떠오르지만 서술이 똑똑하지 않고 논리적이지 못한 것 같아 힘들어 했다.

사부님께서 “불법은 끝이 없나니, 전적으로 당신의 그 마음에 의지해 수련하는 것”[2]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번에 우연히 진상을 알린 후 대법을 시시각각 수호해야 하는데 법공부를 잘했는지 잘하지 않았는지, 문제를 처리할 때 심성이 법에 있는지 없는지, 발생한 갈등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지 없는지,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면 층층의 짙은 안개를 파헤치고 사물을 똑똑하게 볼 수 있으며 진상을 똑똑하게 알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독일로 이사 온 후 저녁에 학원을 다니며 독일어를 배웠는데 소규모 수업반이라 선생님까지 합해서 7명밖에 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7명의 국적이 서로 달랐고 뜻밖에 그 중 4명이 의학에 종사했다. 선생님은 학생에 따라 의학에 관련된 문장을 찾아 독일어 훈련을 강화했다. 이것은 내게 계발을 줬다! 독일어 인터넷에서 중국공산당의 생체 장기적출 보도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의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여기에 접근해 진상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영문에서 독일어로 번역된 보도를 찾았다. 한 신장(新疆) 의사가 영국으로 이민을 간 후 자신이 직접 겪은 중국공산당이 양심수와 파룬궁 수련자의 장기를 생체 적출한 악행을 폭로한 보도였다. 그리고 국제추적조사 사이트에 접속해본 후 여기에 하나하나의 박해사례가 열거되어 있고 아주 중요한 증거도 제공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자료를 찾아봤다. 독일어 보도 및 사이트 주소링크를 복제해 워드 파일로 만들고 기타 사이트 주소를 참고로 첨부해 7부를 복사했다. 또 독일어로 1분가량의 연설문을 썼다. 연설문을 쓸 때 반드시 정념정행해야 하고 일리 있고 근거 있게 써야 한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일깨웠다. 문법을 검사하고 외운 후 연설문을 보지 않고 몇 번 연습했다. 마지막에 선생님에게 마지막 수업시간에 2분가량을 시간을 빌려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지금 관심하고 있는 일부 문제는 반의 의학계 동창들도 관심이 있을 것 같아 한번 발표하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의 답변을 받지 못했지만 초조한 마음으로 복사한 자료를 들고 마지막 수업을 들으러 갔다. 뜻밖에 수업을 시작하자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내 생각을 말해주고 연설하라고 격려하셨다. 이것은 처음으로 독일어로 연설하는 것이었다. 비록 내용이 길지 않고 관중도 많지 않았지만 난 여전히 긴장했다. 절반도 연설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온몸이 떨고 마음이 두근두근 해 갈수록 기가 죽었다!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비록 처음으로 독일어로 연설하지만 늘 무대에서 연출했고 늘 영어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했는데 이렇게 큰 신체 반응이 나타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했으나 갈수록 떨었고 머리가 텅 비기까지 해 연설을 잠시 멈추기도 했다.

두 손으로 머리를 잡고 속으로 ‘안 된다. 이렇게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미리 써놓은 순서대로 하지 않고 무엇이 기억나면 무엇을 말하기로 했으며 천천히 말하는 속도를 낮췄다. 그러나 시각 똑똑히 알지 못하는 것을 감정으로 과장해서 말해서는 안 되고 연설문을 잊었다고 말하는 편이 낫다고 자신을 일깨웠다. 점차 그렇게 떨지 않았고 연설도 드디어 끝났다.

그리고 모두들 내가 나눠준 자료를 보기 시작했는데 표정은 엄숙하고 슬펐다. 선생님도 적지 않은 문제를 제기했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박해를 들었지만 설마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도 이렇게 악랄한 수단으로 아직 박해하고 있을지는 몰랐다고 했다. 학생들은 토론하며 많은 문제들을 제기했다. 줄곧 정념정행을 명심하고 있었다. 비록 감성적으로는 많은 중국의 상황을 알고 있지만 사람들 앞에서 결론을 내리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증거가 없으면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더욱 많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지 알려줬다. 그들은 내가 제공한 사이트에 대해 아주 관심이 있고 계속 알아보겠다고 했다. 2, 3분은 이렇게 아주 빨리 지나갔다. 선생님은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싶은데 시간이 짧아 아쉽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후에 내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나는 아주 위로가 됐다. 이 사건을 관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박해를 감소시키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진상을 알리는 형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 중 한 걸음마다 정념정행해야 한다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명심했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한 수련인이 정법시기에 자신의 위덕을 세우는 과정이라고 깨달았다. 아마 이럴 것이다. 위덕을 세우면서 정념정행하는 것이다. 나는 진정한 수련인이고 대법의 하나의 입자이므로 대법을 수호하는 것은 내 책임이다.

강대한 공(功)

영국에서 법을 얻은 후 대법 사이트에 있는 사부님께서 공법을 가르치시는 영상을 보고 5장 공법을 배웠다. 셋째 날 저녁에 연공하는데 제5장 공법을 할 때 비록 결가부좌를 할 수는 있었지만 20분 후에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지난 이틀에 30분도 견지하지 못했는데 오늘 적어도 30분 견지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팠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느낌이 올라왔다. 이를 악물면 통증을 좀 덜 느껴지는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싶지만 사부님께서 혀를 입천장에 붙여야 하고 마음속으로부터 자비로움이 우러러 나와야 한다고 하셨기에 이를 악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 얼굴 근육이 뛰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1]라는 말씀으로 수련인을 격려하셨다. 그리하여 그래! 견지, 견지 좀 더 견지하자, 이 한 동안 음악이 끝난 후에, 다음 한 동안…… 38분을 견지해냈다! 나는 힘들어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갑자기 누군가 내 침대 앞으로 걸어왔다. 투명한 고무인간인데 키가 나와 비슷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그것이 갑자기 내 이불을 꾹 눌렀다. 아무리 이불을 젖히려고 해도 젖힐 수 없었다. 이때 그것이 침대 위로 넘어오더니 내 옆에 눕고 손으로 날 막았다. 어디에서 힘이 생겼는지 돌아서서 주먹으로 힘껏 그것의 얼굴을 내리쳤다. 고무인간이라서인지 얼굴이 푹 꺼져 들어갔다. 그러나 주먹은 멈추지 않고 계속 그것의 얼굴을 내리쳤다. 주먹이 얼마나 빠른지 나도 똑똑히 볼 수 없었다. 그것이 침대에서 내려가고 그것이 뒤로 물러서면 쫓아가 때렸고 문밖에 쫓아낼 때까지 때렸다! 이때 눈을 떴다. 아! 꿈이구나! 침대에 누워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봤는데 아주 조용했다. 아주 생생한 꿈이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용감해졌지? 내가 때린 게 뭐지? 그제야 좀 두려웠다. 이후에도 줄곧 이 꿈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 몸에 무슨 부체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혹은 병의 근원의 영체인가? 그놈이 무엇이든 아무튼 문밖으로 쫓아냈으니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주신 거겠지!

한번은 아침에 제2장 공법을 하는데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비록 눈을 감고 있지만 눈앞이 까맣게 되고 귀가 들리지 않고 구토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며 배가 간간히 쿡쿡 찌르는 듯이 아팠다. 여전히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1]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들고 있던 팔을 견지하지 못하고 축 내렸다. 몸이 나른해지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약간의 감각이 있어 바로 눈을 떠봤더니 눈앞이 캄캄하고 개미가 몰려오는 것 같았고 아무런 생각이 없고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끊임없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배가 또 쿡쿡 찌르는 듯 아팠다. 그리하여 일어나 비틀비틀 거리며 화장실로 갔다…… 큰일을 본 후 모든 증상이 없어졌다! 아주 상쾌했다! 너무 신기했다!

이후 연공할 때 나타난 각종 상황에 대해 모두 섬세하게 체득했다. 매일 법공부하고 심성을 끊임없이 제고하고 있고 진정한 수련인이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비로소 신체를 정화를 해주시는 것이고 따라서 자신도 빨리 소업하고 끊임없이 승화할 수 있다는 것을 깊게 깨달았다.

법을 얻은 지 7개월이 되어서야 인류 존재의 의미를 점차 똑똑 알게 됐다. 만고의 기연, 광명은 이미 날 향해 대문을 열어줬다. 광명으로 가는 길에 또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고생과 어려움이 끊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부님의 가르침은 이미 시시각각 귀가에서 울리고 있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1] 내가 어떻게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법해’

 

원문발표: 2018년 8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8/12/3723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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