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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이 감격으로 변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4년 봄 나는 태어난 지 50일 된 아이를 안고 남편이 있는 도시에 왔다. 생각 외로 줄곧 나의 수련을 지지하던 남편이 크게 변했다. 시어머니의 종용 하에 그는 온종일 대법수련을 포기하라고 아이와 이혼으로 나를 협박했다.

그는 죽어라고 귀찮게 굴었다. 내가 문을 나서기만 하면 범인을 심사하는 것처럼 끝까지 캐묻는다. “누구랑?” “어디 가지?” “뭐하러 가지?” “몇 시간 후에 돌아와?” 특히 노년 수련생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어디를 가든지 모두 물어보며 슈퍼에 가도 영수증을 보여 달라고 하고 물건 비용을 지불한 시간도 확인했다.

아침에는 직장에 가서 출근 체크를 하고 다시 차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와 내가 있는지 본다. 만약 집에 없으면 부근의 슈퍼, 공원, 식당에 가서 나를 찾는다. 한창 수련생과 함께 공원에서 진상을 알리다 머리를 들어보니 뜻밖에 그가 옆에서 나를 보고 있던 적이 여러 번 있다.

거의 3일에 한 번씩 다퉜는데, 1주일에 한 번은 크게 다퉜고 한 달에 한 번은 거의 전쟁이었다. 다 내가 수련을 포기하게 하려는 ‘포위토벌’이었다. 그때 나는 자신이 비록 감옥에 있지 않지만 남편이라는 ‘감옥경찰’이 단단히 보고 있고 가정이라는 감옥에 수감당해 나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간혹 아이를 안고 기차역으로 갈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가차를 타고 어디에 가지? 친정에 가면 안 된다. 또 대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면 안된다.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했다. 수련생 집으로 피하거나 시댁에 가서 따지자고 생각하다가도 다른 사람에게 번거로움을 끼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계속 고민을 했다.

낮에는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한 끼 식사를 가져오시는데, 만약 내가 밍후이왕을 보거나 설법녹음, 션윈 음악을 듣거나 혹은 수련생을 보기만 하면 모두 남편에게 알렸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와 히스테리를 부리고 한밤중까지 크게 떠들며 소란을 피웠다. 간혹 새벽 3, 4시까지 소란을 피웠다. 물건을 부수고 의자를 발로 차고 악에 받쳐 욕설을 퍼부었다. 나의 이불을 제치고 아이의 두 팔을 들어 올려 아이가 놀라 발버둥질하면서 크게 울었다. 내가 아이를 뺏으니 그는 그 기회에 나의 휴대폰을 빼앗아 땅바닥에 힘껏 내리쳤다. 나는 심신이 지쳐서 울면서 바닥에서 휴대폰을 주웠다.

‘고압’하에 나는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고 ‘배후 주모자’인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극에 달했다. 그런 뼈에 새겨진 미움에 나는 식사를 할 수 없고 잠을 잘 수 없었다. 뱃속에 가득한 불만을 풀 곳이 없었다. 나는 수련생에게 말했다. 시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설령 매우 가까이 있어도 천산만수(千山萬水)처럼 거리가 떨어져 있어요. 비유가 아니라 나의 진실한 느낌이에요. 수련생은 웃으며 말했다. “문제는 당신에게 있어요.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선(善)으로 감화하고 당신의 진심을 보이세요.”

나도 시어머니께 잘해드리려고 생각했지만 정말 어려웠다. 마음을 내려놓자고 말하자마자 또 원망하는 마음이 용솟음치고 간혹 불평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입을 벌리기만 하면 나왔다. 시어머니의 말투, 표정을 보기만 하면 화가 났다! 매번 애써 참고 억제하고 주먹을 쥐고 견뎠다. 장시간 발정념으로 그 마음을 소멸하고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고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해주십사 빌었다. 거듭 반복하면서 반년이 되었지만 뿌리를 뽑지 못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불법적으로 재판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했다. ‘시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을 제거하는 것은 이렇게 오래도록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데, 지금은 상관할 시간이 없으니 발정념을 해 수련생을 구출해야지.’ 나는 아침에도 발정념을 하고 저녁에도 하고 식사를 하거나 잠자리에 들거나 가사를 하면서 발정념을 했다.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으면 수련생에게 발정념을 했고 1개월 동안 발정념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그리 강렬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뜻밖이라는 생각에 멍하니 있다가 자세히 생각했다. 시어머니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무슨 일을 했는지 그 표정과 태도를 뜻밖에 다 잊어버렸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고 깨끗이 잊어버렸다. 오늘 이 원고를 쓸 때까지도 조금도 생각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수련생을 도와주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도와 그동안의 좋지 않은 물질과 기억을 지워버리셨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더는 남편의 질책어린 말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밥이 차네 뜨겁네 많네 적네 짜네 싱겁네 말만 하면 나는 모두 고치고 그를 기준으로 했다. 낮에 수련생이 우리 집에 온 것을 보면 저녁에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간혹 그와 말이 통하지 않으면 마음속으로 말했다. ‘미안해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모두 내가 좋지 않은 것이에요.’ 조금씩, 조금씩 나는 참는 것을 배웠다.

간혹 참지 못하면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려 내게 점화(點化)해주셨다. 그는 갑자기 “제재에도 동요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거나 혹은 질문했다. “당신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지 않는가? 당신은 해냈는가?” 나는 자신이 참지 못해 사부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간혹 관(關)을 거의 넘으면 그는 갑자기 말했다. “양쪽 기슭 원숭이 울음소리 그치지 않는데, 가벼운 배 이미 첩첩산중을 지나고 있구나.” 과연 하루가 지난 후 나와 1개월간 말을 하지 않던 그가 나에게 외식하자고 했다. 식탁에서 그는 말했다. “나는 입이 거칠어도 마음은 약하다. 당신이 또 이겼다.”

또 한번은 남편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나에게 세 번 절을 했다. 나는 놀랐고 또 마난(魔難)이 온 것을 알았다. 이번에 그는 이혼 합의서를 다 쓰고 이혼하려 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사전에 아이를 시어머니 댁에 보내고 나와 이야기를 하려 했다. 나는 그가 결과를 요구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했다. “나는 결혼 전에 수련을 했고 내가 수련을 한다는 것을 당신도 알아요. 뿐만 아니라 나는 당신의 의견을 구했어요. 당신은 신앙이 있는 것은 좋으며 나의 수련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해 우리는 결혼을 했어요. 지금은 마음이 변했나요? 또 말하자면 나는 연공을 해 좋은 사람이 되고 선의로 남을 돕고 나쁜 일을 하지 않았어요. 연공도 나는 나의 자는 시간을 이용하였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보살피는데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우리 집의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았어요. 뿐만 아니라 나는 연공을 한 후 몸이 좋아졌고 이로움을 얻었기에 계속 수련을 하는 것이에요. 당신도 이로움을 얻고 아이에게도 이롭게 하려 하는데 무엇이 나쁜가요?”

처음에 그는 태도가 부드러웠다. 그는 내가 늙은 후 다시 수련하라고 하더니 또 아이가 성년이 되면 스스로 선택해야 된다는 등 회피하는 말을 했다. 나중에 내가 외출하는 것을 속박하고 수련생을 찾아가면 안 된다는 따위의 말을 했다. 나는 이것은 나의 신앙자유이며 당신은 상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고 삿대질을 하면서 이리저리 마구 날뛰었다. 나는 아예 침대 머리맡에 앉아 눈을 감고 가부좌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노해 단번에 침대에 뛰어올라 와 나를 발로 차려했다. 그가 너무 힘껏 뛰어 올랐기에 그의 다리가 가까이 오기 전에 나는 몸이 저절로 뒤로 젖혀졌다. 그는 기진맥진해 말했다. “기다려! 기다려!” 다음 부랴부랴 주방으로 가더니 식칼을 들고 내 앞에 왔다. 그는 식칼을 휘두르며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다고, 믿어?” 그는 끊임없이 욕설을 퍼붓고 말을 하며 왔다 갔다 하면서 식칼을 흔들었다. 나는 조심하지 않으면 베일 것만 같았다!

이상하게도 조마조마한 장면에서 나의 마음은 유달리 평온했다. 나는 방금 전 내 말투와 행위가 그의 부정적인 정서를 격노하게 했고 더는 이러면 안 되며 냉정하자고 생각했다. 눈을 감고 정서를 가라앉혔다.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내 이름을 부르며 식칼을 내 목에 들이댔다. 머리를 수그리자 칼날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가까웠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명을 사부님께 맡겼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말했다. “당신 왜 이러는 거에요? 어찌 한 나약한 여인에게 이렇게 할 수 있나요?” 그는 화가 났지만 또 방법이 없어하며 말했다. “당신은 나약한 여자가 아니야. 당신은 나약하지 않아. 이렇게 긴 시간 내가 어떻게 말해도 당신은 수련을 하겠다고 해 이렇게 된 거야. 당신은 그래도 수련을 할 거야?” 나의 말투는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칼을 내려놓고 우리 다시 이야기해요.”

나는 말했다. “우리는 모두 위로는 부모가 있고 아래로는 자식이 있어요.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집은 어떻게 할 건가요? 누가 책임질 수 있나요? 당신도 선량한 사람이잖아요. 떠돌아다니는 고양이나 강아지 새끼를 보면 불쌍히 여기죠. 저는 당신의 본의가 나를 죽이려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아요.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신중하지 않으면 뒷감당하기 두려운 결과를 만들 수 있어요. 만약 일시적인 충동으로 사람을 해치면 부모님과 아이는 모두 고통스럽지 않겠나요? 그때는 후회해도 늦어요! 이렇게 이지적이지 못한 일은 이번 한 번이고 더는 하지 마세요. 우리 두 사람은 어리지 않아요. 가정을 생각해야죠.”

남편은 듣다가 머리를 수그렸고 후회했다. “방금 전 내가 너무 충동적이었소!” 그의 이 말에 나는 가책을 느꼈다. 1년 넘게 매번 그가 나에게 큰소리를 치고 욕설을 퍼붓고 떠들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할 때 나는 단지 억지로 참았다. 매 번 관(關)은 사부님께서 나를 끌고 가셨고 끊임없이 점화하셨기에 억지로 지났다. 나는 스스로 주도적으로 법에 동화하지 않았고 가정에서 더욱 잘하지 않고 진정으로 남편을 생각하지 않았다. 간혹 참았다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미워했다. ‘내가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당신과 일찍 이혼하고 하루도 당신과 살지 않을 것이고 다음 생이 있다면 당신과 살지 않겠다!’ 간혹 화가 나 한 마디 대답하고 몇 번 때렸다. 그가 이성을 잃고 때려부수는 것을 보면 때로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염두도 있었다. 그에게 진심이지 않고 선하지 않고 참지 못한 것이다. 그는 속인이며 본성이 착하며 중국공산당에게 세뇌당하고 기만당한 것이다. 어찌 그를 원망하고 미워할 수 있겠는가? 나는 진정으로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고 그가 불쌍했다. 나는 그를 구하고 싶어 대법의 진상을 말했다. 그는 비록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이후 당신이 연공을 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겠어. 당신 마음대로 해! 이혼 얘기도 더는 하지 않을게.”라고 말했다. 나는 사부님께 너무 감격스러웠다. ‘홍음’에 이런 시가 있다.

“인간사 어지러움 그 얼마이든가쌓이고 쌓인 은혜와 원한 수없이 거쳐왔구나마음은 악하고 업은 커 희망이 없으나대법은 연원(淵源)을 모조리 풀어 가누나”[1]

사부님께서는 그 제목을 ‘대겁(大劫)을 풀다’라고 하셨다. 나는 대법이 정말 나의 생명 중의 대겁을 풀어준 것을 느꼈다.

그 후 여러 번 모순이 나타났지만 우리 사이는 갈수록 완화되었다. 그는 친척들에게 말했다. “아내가 34세 고령에 해산해도 몸이 빨리 회복하고 좋아질 줄 생각지도 못했다. 모든 집안일은 아내가 하고 나는 옆에서 휴대폰을 본다. 간혹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내가 너무 게으르고 아내는 현숙하고 부지런하고 또 노부모님과 아이를 매우 아낀다.” 그는 또 우리가 모순이 발생하면 늘 아내가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참고 양보를 해 매우 의외라고 생각을 한다며, 그래서 그도 참고 양보하는 것을 배웠고 다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내가 출근했다 집에 늦게 돌아와도 남편은 내가 오기를 기다려 함께 식사한다. 이에 대해 나는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집에서 대법 책을 보건 밍후이왕에 접속하건 밍후이 달력을 걸건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사당(邪黨) 당원을 늘릴 때 그는 나에게 가만히 말했다. “어머니께 알리지 말아요. 나는 사악한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어요.”

시어머니와도 사이가 좋아졌다. 명절마다 나는 잊지 않고 선물을 사다 드렸고 식사를 대접해 드렸다. 나는 또 시어머니께 TV, 냉장고를 사다 드렸다. 시어머니는 매우 기뻐했다. 천천히 시어머니도 나와 대화를 나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와 진심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내가 산 포장지를 보고 마음에 안 드신다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다. “너무 구식이야. 다른 사람은 알록달록한 색을 샀는데 정말 보기 좋더구나. 나는 이 색깔이 싫구나!” 나는 듣고 웃었다. 이것은 시어머니가 처음으로 나에게 한 마음의 말이다. 나는 매우 따뜻한 것을 느꼈다.

시아버지가 위암으로 입원을 했을 때 나는 거의 그 전후 1개월간을 출근하지 않고 기차를 타고 가서 돌봤다. 시아버지가 열이 나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나는 밥을 떠먹여드리고 등을 두드려드리고 발을 씻겨드렸고 보이는 일을 모두 했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께 말했다. “애 엄마는 진심이에요. 이렇게 하는 며느리는 없어요.”

한번은 시할머니께 옷을 사드리려고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너는 치수를 모르니 제대로 사지 못해. 내가 사마!” 이튿날 시어머니는 옷을 한 벌 사오더니 말했다. “네가 산 것으로 하마!” 나는 매우 감동했고 시어머니의 배려에 감사드리고 싶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일찍이 나와 ‘천산만수’ 떨어졌던 분에 대해 한번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사부님을 생각했다. ‘제자는 반드시 사부님 말씀을 잘 듣고 일체를 내려놓고 가정에서 더욱 잘하겠습니다.’ 나는 앞으로 걸어갔고 또 한 발을 내디뎌 시어머니를 가볍게 포옹을 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너무 좋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어머니는 매우 기뻐했다. 이 간단한 포옹은 정말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영원히 오늘 같은 날이 있을 수 없다.

이전에 나는 이 과정을 회억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시종 이것은 한 기간 상처라고 생각을 했다. 법공부를 깊이 하면서 마침내 은혜와 원한을 철저히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고 마음속에 한 줄기 감격이 올라왔다.

가족이 일찍이 나에게 마난을 ‘만들어 준’ 것에 감사드린다.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중에서 나는 쟁투, 억울함, 불평과 원망, 미움을 버려 마음의 용량이 커졌다. 위대한 법, 위대한 사부님께서 은혜와 원한을 풀어주시고 위사위아(為私為我)에서 걸어나오게 인도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2-대겁(大劫)을 풀다’

 

원문발표: 2018년 8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8/21/3727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