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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이 사회에 복을 주다-교사편(6)

글/ 정신(正信)

[밍후이왕] 중국 대륙에서는 일찍이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중국공산당이 박해하기 전부터 이미 1억 명이 파룬궁을 수련했습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기초 교육에 종사하는 초·중등학교 교사였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이런 교육 종사자들은 진선인(眞善忍)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일에 마음과 책임을 다했고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었으며 그들은 모두 이 업계의 엘리트들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시 살아난 산둥 서우광시 교사

양루이친(湯瑞琴)은 산둥성 서우광(壽光)시의 은퇴한 중학교 수학 교사입니다.

양루이친은 업무에서 부지런하고 성실해 학교 지도자와 동료들의 두터운 신임과 학생들의 전폭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해마다 현, 인민 공사(규모가 작은 지방 도시)의 우수 교사 및 현의 수학 교육 일인자로 평가 받았습니다. 서우광시를 대표해 시급(市級)이상 수학교육 개혁 연구에 참가한 적이 있으며 현에서는 종종 그녀의 시범 강의를 들으러 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풍운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1987년 봄, 양루이친은 유방암 진단을 받고 성 정부 소재지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1994년 그녀는 또 자궁절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몇 번의 수술로 양루이친의 건강은 더 급격하게 쇠약해졌고 마지막에는 암 세포가 확산되어 그녀는 자신이 무수한 심혈을 기울였던 일터와 사랑하는 학생들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런 정신과 신체적 고통은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녀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1996년 새해가 갓 지났을 무렵, 한 파룬궁 수련인이 그녀에게 사부님의 ‘지난(濟南)설법 비디오’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녀는 당시에 정신과 힘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른 채 단숨에 3개의 설법 비디오를 다 보았습니다. 기적은 그 자리에서 바로 나타났습니다. 어깨의 우묵한 곳 견와(肩窩) 안의 종양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 며칠 만에 그녀는 마치 딴 사람처럼 정신 건강과 신체가 모두 좋아졌습니다! 그녀는 다시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시 그녀의 몸에 나타난 파룬따파(法輪大法)의 기적은 주변에 널리 퍼져 매우 많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파룬따파의 수련에 걸어 들어오게 됐습니다!

그때 공직자들이 약을 먹으면 현지 병원에서 85퍼센트의 약 값을 정산해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양루이친의 남편은 이 규모가 작은 지방도시의 유능한 사람으로서 해마다 병원 원장은 모두 그녀에게 100퍼센트 정산을 해주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이것이 매우 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파룬따파를 배운 후 그녀는 3천여 위안(약 49만원)의 약 값 영수증을 전부 찢어버렸습니다. 찢으면서 그녀는 말했습니다. “파룬따파는 저를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습니다. 제가 스스로 병에 걸려 약을 먹는데도 나라에서 저에게 돈을 주어야 합니까?!” 그때 산둥성에서 한 중학교 교사의 월급은 고작 2-3백 위안(약 3-4만원)이었으므로 3천 위안은 그녀의 1년 동안의 임금과 맞먹었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누가 해낼 수 있었을까요?

환골탈태의 변화를 겪은 산둥 가오미시 여교사

천슈진(陳秀貞)은 산둥성 가오미(高密)시 고성(古城)의 은퇴한 교사입니다.

천슈전은 각종 질병을 앓았습니다. 배가 더부룩하고 복통, 고질적인 결장염, 요통, 류머티스 관절염이 있었으며 두 무릎은 시큰시큰 쑤시고 아팠습니다. 오른손, 오른팔 등 몸 오른쪽을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없었습니다. 일을 조금만 힘들게 해도 오른쪽 어깨가 수축됐고 오른손은 조금만 일해도 바로 붓고 힘을 잃게 되어 거의 마비됐습니다. 그 외에도 그녀는 뇌종양, 유방종양, 기관지염, 비염을 앓았으며 두 눈은 거의 실명됐습니다. 그녀는 병이 없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모를 정도로 여러 해 동안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1997년 7월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천슈전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녀의 신체는 파룬따파에 의해 정화되어 모든 병이 전부 다 좋아지게 됐습니다. 그로부터 병이 없어 온몸이 홀가분해졌고 그녀는 파룬따파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체험했습니다.

파룬따파는 그녀의 신체를 정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마음도 정화시켰습니다. 그녀는 인생의 참뜻이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眞)’임을 알게 됐고 진선인(眞善忍)은 우주의 특성으로 생명이 오직 진선인 특성에 동화하고 순응해야만 하나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녀는 환골탈태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수련 전 그녀는 돈과 재물을 특별히 중히 여겼고 자질구레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을 지나치게 따지는 것을 좋아했으며 물건을 살 때 흥정하며 매우 집착했습니다. 수련 후 그녀는 일을 함에 있어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물건을 살 때 지나치게 따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전혀 물건 값을 흥정하지 않았으며 여러 번이나 판매자가 많이 거슬러준 돈을 되돌려주었습니다. 한 번은 여동생과 함께 신발을 사러 갔는데 돈을 지불하는 것을 깜박 잊고 가게 문을 나오게 됐습니다. 나온 후 아직 돈을 지불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서둘러 서비스 카운터로 되돌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계산하는 곳에 가서 금액을 지불했습니다. 이것은 수련하기 전이라면 그녀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수련 전 그녀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자신에 대한 불공정함에 늘 원망했고 항상 다투며 즐거웠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수련 후 그녀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가르침을 깊이 마음에 새기고 갈등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보며 부족함을 바로 잡고 다음에는 잘했습니다. 점차 그녀는 선량한 마음이 많아졌고 사람도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소집단 속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다시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부딪히는 일들은 모두 좋은 방향으로 바꾸었으며 가정도 화목해지고 생활도 행복해졌습니다.

랴오닝 차오양(朝陽)사 유치원의 훌륭한 원장

징페이(景菲)는 차오양시 솽타구(雙塔區) 제1유치원 원장입니다.

1995년 8월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둘째 동생이 여름 방학을 맞아 징페이의 집에 왔습니다. 둘째 동생은 매우 정중하게 징페이에게 말했습니다. “언니, 이 세상에서 내가 언니에게 오직 1권의 책만 추천하도록 허락한다면 바로 이 리훙쯔 사부님의 ‘전법륜(轉法輪)’이야.” 둘째 동생은 그녀에게 책 속의 서두에 있는 ‘논어(論語)’와 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문득 책 속에 설명한 생각과 관점이 그녀의 삶의 진리와 인생의 참뜻에 대한 추구를 해결해 주었다고 생각했고 그녀로 하여금 인생 속에서 줄곧 깨닫고 싶었으나 깨달을 수 없었던 문제들을 깨닫게 되어 그녀는 매우 감동했습니다.

나중에 여러 방면의 노력을 거쳐 그녀는 ‘전법륜’ 이 책을 빌렸습니다. 책을 다 읽고 그녀의 사상 경지에는 매우 큰 승화가 일어났고 세계관과 인생관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사람이 왜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책 속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 결심했습니다.

수련 전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 달래기’ 유아 교직에 종사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고 늘 자신이 재능이 있으면서도 펼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탄하곤 했습니다.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지나친 이상만 추구했고 방황하며 막막해했습니다. 수련 후, 그녀는 이런 생각을 내려놓았고 마음 상태도 밝아졌으며 사람을 진실하고 선량하게 그리고 관용으로 대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유아교육 업무에 종사하는 것 때문에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았으며 방향을 바꾸어 일을 함에 있어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책임졌고 성실하게 일하며 명예와 이익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당시 유아교육 강의를 개혁해 실질적인 성과를 얻었으며 교육계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징페이는 물질 이익에서도 담담하게 보았고 자신의 물건이 아니면 추구하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수련한지 얼마 안 되어 그녀는 자발적으로 수련하기 전에 허위로 꾸며 정산 받은 자기 자식의 위탁관리비를 재무팀에 되돌려주었습니다.

직업윤리 방면에서 징페이는 학부모가 보내온 선물과 금품을 받는 것을 거절했으며 진심으로 아이들의 성장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한 번은 징페이가 주방에 일을 검사하러 갔는데 요리사가 고기를 반쯤 썰어 한쪽에 놓고 말했습니다. “이 고기가 너무 많아 사용할 수 없으니 넣어두죠.” 징페이가 대답했습니다. “급식은 양심의 장부입니다. 고기를 마저 다 썰고 메뉴에 따라 다 사용해 아이들의 영양이 충분하도록 보장하세요. 학부모들이 아이를 우리 이곳에 데려오는 것은 우리에 대한 신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떳떳해야 합니다.” 그녀의 선량함은 수많은 학부모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몇몇 유치원을 봐왔지만 가장 대충대충 하지 않는 곳은 당신들 이곳의 급식뿐입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징페이는 베이징에 찾아가 법에 따라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갔다가 직장을 다니지 못하게 됐습니다. 강제 전향 기간 동안 많은 학부모들이 유치원 책임자를 찾아와 상황을 말했고 징페이가 우수교사임을 실증하며 그녀에게 직장에서 일하며 계속해 반을 이끌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가정 속에서도 리훙쯔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됐습니다. 그녀와 시어머니는 함께 20년 가까이 살면서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한 번은 아이의 교육 문제 때문에 시아버지는 그녀에게 화가 나 심하게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녀는 대법 사부님의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기며 심성을 지켜냈으며 평온하고 관대하게 대하자 시누이들과 시어머니가 내심으로부터 그녀에게 탄복했습니다.

파룬따파가 징페이에게 인생의 항로를 밝혀주어 그녀로 하여금 심성과 경지가 고상한 사람이 되도록 했습니다. 대법이 있는 삶은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온 가족이 혜택을 받은 지린성 자오허 중학교 교사

류장(劉江)은 지린성 자오허(蛟河)시 쑹장진(松江鎭) 9년제 학교의 교도 주임입니다.

1996년 1월 친척의 소개로 류장과 아내 판쉐링(潘學玲), 어머니 쑨수칭(孫淑清) 그리고 딸 류둥싱(劉東興)은 함께 파룬궁을 수련해 온 가족은 심신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수련 전 류장은 가족의 유전적인 천식을 앓고 있어 자주 기침을 했습니다. 수련 후 그의 천식은 좋아졌고 학생들에게 강의를 아무리 오래 해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그는 업무에서 더욱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직무와 책임을 다 했습니다. 그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끌었으며 여러 차례 ‘우수교사’로 평가를 받았고 지린성 자오허시 쑹장진 9년제 학교의 교도 주임으로 승진되어 학생과 학부모의 깊은 존경과 환영을 받았습니다.

류장씨의 아내 판쉐링은 원래 심한 위출혈을 앓고 있어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하여 수혈했으며 자주 쇼크 증세가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녀는 신체가 허약하여 힘든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흉금이 넓지 않아 자주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었고 돈과 재물 이익도 중하게 여겼습니다. 수련 후 그녀는 위장병이 완전히 좋아져 살도 쪘습니다. 그녀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했고 자발적으로 더 많은 가정 일을 맡아 시어머니의 부담을 덜어주었으며 돈과 재물에서도 더 이상 따지지 않아 고부관계가 이때부터 돈독해졌습니다.

어머니 쑨수칭씨는 심장병을 앓고 있었고 자주 두통과 어지럼증이 있어 매일 진통제를 먹으면서 가사노동을 유지해왔습니다. 수련 후 이러한 질병들은 전부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걸음걸이가 가볍고 빨랐으며 온 얼굴에 혈색이 돌면서 좋아졌습니다. 그녀를 본 사람마다 그녀의 신체가 좋아 그렇게 연세가 많은 사람 같지 않다며 칭찬했습니다.

딸 류둥싱은 법을 얻었을 때 8살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진선인’ 법리의 영향을 받으면서 생활 속에서 보통 아이들보다 철이 들어 자상함을 알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알며 일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류둥싱은 학습 성적이 매우 우수해 항상 1등을 했습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모두 영리한 아이로 부모와 선생님의 걱정을 덜어주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맺음말

교육은 국가의 근본적인 문제로 품성이 우수한 선생님만이 재능과 덕을 함께 갖춘 학생을 교육해낼 수 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한 이런 선생님들은 파룬궁을 수련한 후 그들의 품행은 모두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그들은 명예를 구하지 않고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열심히 가르치고 모든 아이들에게 차별 없이 선하게 대했습니다. 이것은 국가 교육의 커다란 행운입니다! 그러나 1999년 7월 사악한 중국공산당의 우두머리 장쩌민은 파룬따파가 ‘국가와 인민에게 백가지 이로움이 있어도,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고집대로만 전국적으로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발동했습니다. 한순간에 무수히 많은 ‘진선인’ 신앙을 견지하고 일편단심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파룬궁 수련인들이 불법 체포되어 가혹한 형벌에 시달렸으며 중국 땅에서 무수한 인간의 비극을 만들어냈습니다.

양루이친은 여러 차례 ‘6.10’ 및 학교 측으로부터 방해를 받았고 임금을 압류 당하고 승진을 거부당했습니다. 가족들도 모두 공갈 협박과 공포의 고통을 겪을 대로 겪었습니다.

천슈진은 파출소와 학교로부터 감시, 추적, 소란을 당했습니다. 불법적으로 임금에서 5천 위안(약 82만원)을 압류당해 그녀와 가족들에게 극대한 압력과 고통을 조성했습니다.

징페이는 여러 차례 납치되어 박해를 당했으며 불법으로 2년 동안 노동을 통한 개조를 받았으며 불법으로 4년 형을 받아 랴오닝 마싼자(馬三家) 노동 수용소 및 랴오닝성 여자감옥에서 가혹한 형벌의 시달림과 모욕을 당했습니다.

류장은 매번 2년씩 두 차례 불법적으로 노동을 통한 개조를 받았고 불법으로 6년 형을 판결 받았으며 결국 몸이 쇠약해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 쑨수칭은 아들이 반복적으로 박해를 당한 충격 속에서 억울함을 품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러한 잔혹한 박해에 직면해서도 파룬궁 수련인들은 여전히 ‘진선인(眞善忍)’ 신앙을 확고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19년 동안 이번 인류의 도덕적 한계선을 넘어선 박해는 오늘날 이미 몰락해가는 막바지에 들어섰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중국인들도 세계 다른 나라의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자유롭게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되는 그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원문발표: 2018년 8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8/3/3710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