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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 속에서 심성을 제고하다

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을 시작한지 눈 깜짝할 사이 벌써 5년이 흘렀고, 이제 더 이상 저는 신수련생이 아닙니다. 수련의 깨달음의 깊이도 실로 많아져 펜을 들어보니 어디서부터 글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거의 2년간 지속해온 항목에서 수련한 체험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체험을 했는지를 막론하고 수많은 말들의 귀결(歸結)은 결국 사부님에 대한 감사함입니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저는 오늘날까지 걸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2016년 8월부터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점심시간에 회사 부근의 거리에서 전단지를 배포했습니다. 다행히 그때부터 지금까지 중단된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누락된 적이 없었습니다. 작년 7, 8월에 캘리포니아 주 ‘220생채장기적출반대결의’ 서명이 시작되었고, 단순한 전단지 배포에서 서명모집과 전단지 배포로 바뀌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 이런 방식을 통해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아울러 이 과정 중에 끊임없이 각종 사람마음을 제거했습니다.

매번 나갈 때마다 대체로 10명 이상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서명이 목적이 아니고 서명한 것이 구도되었다와 동등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일부 사람들은 서명을 통해 태도를 표명하고, 또 기회를 빌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상을 알릴 수 있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진실로 진상을 알고 진정하게 구도되게 할 수 있습니다.

한 동안 저의 어머니가 찾아오셨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상대적으로 신수련생이며, 출근할 때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했는데 법공부를 하도록 독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저의 서명 받는 항목에 동참하셨습니다. 저는 좀 내키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영어를 모르셔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서 이미 다 할 수 있었고, 어머니가 동참하면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니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갈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명할 때 저는 어머니에게 전단지와 작은 연꽃을 가득 담은 가방을 들게 했고 한 사람이 서명한 후 그 사람한테 전단지 한부와 작은 연꽃 한 송이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눈에 거슬렸던 어머니가 가방을 든 자세와 전단지를 상대방한테 주는 타이밍이 맞지 않게 느껴졌고, 연꽃 색상을 골라서 주는 것도 맞지 않다고 여겨졌습니다. 어머니가 한편에 서 있으니 사람들이 다 놀라서 도망간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한 시간 넘게 서명을 모집했지만 간신히 10개를 받았습니다.

집에 돌아간 후 어머니에 대한 저의 태도는 좋지 않았고, 저의 서명모집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법공부를 통해 안을 향해 찾는 것을 잊지 않았고, 매우 빠르게 저의 이 생각은 크게 어긋난 것임을 알았습니다. 수련생이 법 실증 항목에 참여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수련생을 데리고 진상을 알리는데 어찌 일을 지체할 수 있는가? 왜 일에 부딪치면 정면적인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나의 정념은 또 어디로 갔는가?

두 번째 주에 저의 어머니는 다른 용무가 있으셔서 같이 갈 수 없었고, 저 스스로 모집한 서명의 수량이 평소보다 몇 개나 더 많아져 지난주의 수량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오지 않았기에 저 스스로 많이 받은 것이라는 얕은 인식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마침 제가 안을 향해 찾았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저로 하여금 수련생을 데리고 있어도 일을 지체하지 않도록 보게 한 것입니다.

3주째에 저의 어머니는 저의 예전의 태도를 개의치 않아하셨고, 여전히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저와 함께 서명모집에 가셨습니다. 이번에는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보니 조금은 지혜로워져 자발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머니를 소개했고, 우리는 모두 자원봉사자이며, 어머니께서 기념품(작은 연꽃)을 드리고 싶어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자 효과가 아주 좋았고, 서명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의 어머니에게 매우 기쁘게 인사를 드렸고, 그리고 기뻐하며 어머니 손에 있는 전단지와 작은 연꽃을 받았습니다. 한 시간은 매우 빠르게 지나갔고, 서명하는 인원수도 전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저의 어머니도 매우 기뻐하셨으며, 이 도시에 머무는 시간에서 션윈 포스터를 붙이지 않는 날에는 거의 매주 저와 함께 서명을 받으려 다녔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사람은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은 아마 내가 기억나지 않겠지만 나는 몇 달 전에 서명한 적이 있고, 그때 당신과 당신 어머니께서…”

일반적으로 진상을 듣고 서명한 사람들은 모두 아주 즐겁게 저에게 감사함을 표했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마땅히 감사하게 여겨야 할 분은 사부님이시고, 사람을 구도하는 것은 사부님이십니다. 저는 평상시 다른 국가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저는 지금도 확실히 많고 많은 사람들이 생체장기적출을 알고 있음을 느끼는데 저는 몇 번 영국, 캐나다, 스위스, 북부 캘리포니아, 산티아고의 사람들을 만났으며, 이들은 그들 국가와 지역에서 수련생들의 진상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 여성은 그녀가 중국 대륙에서 몇 달간 일하면서 그녀의 동료가 진상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여성에게 중국대륙의 수련생이 당신한테 진상을 알려주는 것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상을 알린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그녀는 시원스럽게 서명했습니다. 우리 중국 국내의 수련생들은 정말로 매우 잘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서명한 적이 있는 한 할아버지가 지나가시며 다시 한 번 서명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저는 그 당시 서명수량을 추구하는 관을 넘었는데, 어떻게 거절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머뭇거리자 할아버지도 이렇게 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깨달으시고 그의 아내를 대신해서 서명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아내 분이 서명하는 데 동의하겠다고 했는지 물었고, 할아버지는 틀림없이 그렇게 한다고 말씀하셔서 할아버지에게 서명하게 했습니다. 서명한 후 할아버지는 자리를 뜨지 않고 거기에 서서 저의 서명활동을 한동안 도와주셨습니다.

서명할 때 각양각색의 사람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그들의 외적인 이미지나 그들의 표현을 보지 않고 가능한 한 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한 번은 문신하고 담배를 물고 비교적 험상궂게 생긴 남성 두 명이 다가왔고, 저는 마음속으로 다가가서 물어볼까 머뭇거리다 마음을 단단히 하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 그들에게 다가가 생체장기적출 제지를 도와달라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조금 당황스러워 하는 듯 보였지만 설명을 듣고 난 뒤에 두 사람 모두 서명을 결정했습니다. 그 중 특히 흉악하게 보이는 남성이 서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반드시 좋은 일을 해야 하고, 반드시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 두 사람에게 전단지와 작은 연꽃을 주었고, 두 사람은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는데 다시 보니 조금도 흉악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근에 정류장이 한 곳 있는데, 점심에 학생들이 와서 차를 기다립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서 묻습니다. 한 학생이 거의 매번 차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고, 그때마다 생체장기적출 저지를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일곱 번째로 물었을 때, 그는 끝내 흔쾌히 수락했고, 친구들에게도 같이 서명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여러 번 물어보았고, 예전부터 매번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가버리거나 반복적으로 거절당해도 저는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음번에 다시 만날 때 여전히 처음 본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상대방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느 날 태도가 변했고 발걸음을 멈추고 진상을 들은 후 서명했으며, 이후로 저를 다시 만나면 즐겁게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여러 번 오고 가는 사람들 중에 진상을 못 들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며, 결속되지 않는 한 그들은 여전히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열 몇 번, 몇 십번의 질문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사람 구하는 것은 이미 아주 쉬운 일입니다.

‘견지하다’를 말하자면 하나의 항목을 견지해 나가는 것은 쉽지 않으며, 각종 고난을 극복해야 합니다. 항목을 시작한지 거의 2년 가까이 되었지만, 매번 문을 나설 때면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은 설명 할 수 없는 압력과 저항력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상했습니다. ‘이는 분명히 중국대륙수련생들처럼 생명을 걸고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그것에 관해 이토록 두려운 마음이 있는 건가? 처음 갓 시작할 때는 모든 것이 새로워 긴장할 수 있지만 백여 차례 하고도 어떻게 매번 압박감이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후에 이는 소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평소에 너무나 편안했고, 소업 할 기회가 없어서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왜 압박감 없이 홀가분하게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추구하는가? 왜 항상 세차게 달려 나가다 나중에는 조금이라도 휴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늘 떠오르고, 어느 때야 이렇게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와 같지 않을 수 있는 날이 오겠는가라고 생각하는가. ‘이것도 일종의 집착이 아닌가? 편안하게 어찌 소업하고 어찌 공이 자라는가? 왜 이렇게 더는 참기 어려운가? 저는 겨우 5년밖에 수련 안 했는데 10년, 10여년, 20여년을 수련한 수련생과 근본적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연공인은 반드시 참아야 한다.”[1]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2]

매번 문을 나서기 전 저는 일반적으로 발정념을 하고 시간이 있으면 법 공부를 한 후 서명지, 전단지, 작은 연꽃을 준비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계단을 내려가서 길을 나섰습니다. 길옆에 서 있는 그 순간에 모든 압박감은 마치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고 마음은 홀가분해 졌습니다.

또 갖가지 시련이 있었는데, 가끔은 이렇게 서명하는 것이 도대체 의미가 있는가, 사람을 구하는 효과를 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성적인 분석을 통해 결국에는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청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보기에 자질(資質)이 없고, 제가 알고 지내지 않는 사람이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이 학생들 찾아 서명을 받지 말아요. 그들은 아직 18세 미만이고 저는 당신이 돈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요. 서명 한 개에 돈을 얼마나 받기에 당신은 이렇게 많은 서명을 원하는 건가요.” 저는 그 당시 듣고서는 엄청난 억울함과 모욕감을 느꼈었고,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실로 자질이 낮고 사실상 구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그 며칠간 항목에서 수련생과의 협조에서 모순이 생겼는데 이 일까지 더해져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이치가 있는가, 얼마나 억울한지 상대방이 잘못된 것이 더욱 터무니없이 한심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때 저는 마음속으로 한 번, 또 한 번 사부님의 법을 읽었습니다.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3] 점차적으로 이 억울함과 불평스러운 마음을 누를 수 있었고, 다시 계속 읽으니 점차적으로 제거되었습니다. 제거된 후 다시 이지적으로 생각하니 진짜로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였습니다.

저는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두 번째는 그가 아무리 듣기 거북한 말을 하더라도 저는 18세 미만의 학생을 찾아서 서명을 받지 말아야 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은 얼마나 많은 서명 숫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가 저에게 돈을 받는다고 했는데 아직도 이익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 일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서 자세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네 번째는 제가 비록 돈을 구하지 않지만 공덕을 구하려는 사심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아, 이렇게 분석해보니 과연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전반적으로 이 항목도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고, 단지 그 고난들을 지나온 후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어떤 것은 심지어 생각조차 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보호해주시고 정성들여 배치해주신 것이며, 담이 작고 나약한 이 제자가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한 수련생이 밍후이 교류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한번은 그녀의 5살 된 어린 아이가 저녁에 주방에 가면서 기어코 엄마가 같이 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몇 미터 간격의 거리여서 수련생은 아이 혼자서 가게 했고, 그녀는 한 쪽에 서서 아이를 보고 있었지만 아이는 어둠이 무서워서 감히 가지 못했습니다. 수련생은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가끔은 이 5살 난 아이와 같이 수련 중 몇 미터 되지 않는 어두운 길을 감히 혼자서 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시각각 곁에서 부모가 아이를 돌보듯이 우리들을 보살펴 주고 계심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수련하면서 사람을 구하는 중에서 제가 어떠한 제고를 했다면 모두 사부님의 심혈이 흠뻑 담겨 있음을 깊이 느낍니다. 저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매우 많고 사람의 마음도 많아서 늘 사부님의 고생스러운 제도에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지금 이후로 오직 끊임없이 견지하여 더욱 잘 할 것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무엇이 참음인가’
[3] 리훙쯔 사부님 시사:‘홍음’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원문발표: 2018년8월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8/1/3718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