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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인의 잘못을 용서하자

사람과 신을 대비하니 자비심이 나오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정법의 홍세가 지나가면 중생은 얼마나 남게 될까? 미혹 속에서는 죄를 모르니 속인의 잘못을 용서하자.

사악이 극히 잔혹하게 박해한 후 줄곧 나는 장쩌민 주범과 사악에게 늘 증오심이 있다. 사악에 통제된 경찰에게는 어찌해도 자비심이 나오지 않고 보복심이 나왔다. 2017년 전에 나를 교란하는 경찰 한 사람에게만 진상을 알린 적이 있다. 이후에 이 경찰은 거리에서 나를 만나면 열정적으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전혀 대꾸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형편없다. 2016년 나는 재차 심한 박해를 받았다. 제보자와 사악한 610요원, 사악한 경찰에게 일정한 증오하는 마음이 생겼다. 비록 이전처럼 강렬하지 않지만 얼마쯤은 아직 남아있었다.

이번 시련을 거쳐 수련생의 도움 하에 나는 이전에 나쁜 사상과 사람의 집착심을 정리해 제거하고 한편으로 되도록 법공부를 많이 했다. 이로써 나의 많은 관념이 다른 방향, 좋은 방향으로 개변됐다. 그중 한 방면의 변화는 자비심이 증가된 것이다. 사악을 정념으로 철저히 제거하고 우리는 사당을 미워할 필요가 없다. 사부님께서 ‘상유심생’[1]이라는 법리를 말씀하셨다. 우리는 어떤 ‘미움’도 없어야 한다. 사당의 요소는 철저히 정념으로 제거해야 한다. 우리는 필경 신의 길을 걷는 수련인이다. 어쨌든 간에 우리의 최종 결과는 ‘조사정법’의 사명을 완성하고 신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속인은 고생 속에서, 미혹 속에서 있어 가련하고 비참하다. 법정인간이 다가올 때 남을 수 있는 지도 모른다. 그들도 우주에서 찬란한 생명이었고 비장하고 오랜 역사를 걸어왔다. 그들도 사부님의 소중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에게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하면 마음속에 ‘매듭’이 있고 이런 것을 생각하니 마음속에서 일념이 나왔다. ‘속인은 그렇게 비참하구나. 그와 따질 게 뭐가 있을까?’ 이렇게 모두 담담하게 보고 내려놓았다. 나를 고발한 자, 사악한 경찰에 원망심이 사라졌고 단지 안으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고 동시에 그들에 대한 깊은 동정심이 생겼다.

그들의 근원이 어디인지 막론하고 그들의 결과는 모두 비참하다. 그들은 사악에 통제되어 완전히 미혹됐으며 자신을 잃어버렸고 대법에 죄를 범하고 구도되는 기회는 더욱 적고 일단 사악한 생명에 의해 도태된다. 그들은 우주에서 가장 두려운 비참한 결말에 직면할 것이다. 이런 것을 알고 나의 태도와 방법이 개변됐다. 지도자가 나를 찾아오면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경찰이 나를 찾아오면 경찰에게 진상을 알린다. 이전에 이런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쨌든 이런 법리를 더욱 똑똑히 알고 ‘사람과 신’의 비교를 통해 나는 스스로 이전보다 더욱 자비로워졌다. 자비도 대법의 거대한 위력이 있다.

2016년 심한 박해를 받은 후 지금 이 회사에 전임되어 일하게 됐다. 회사 안전을 책임진 부책임자가 회사에서 내 감시를 책임졌다. 매일 오후 4시에 그는 반드시 상사에게 내 상황을 보고한다. 작년 9월 한번 그와 함께 회사 일을 완성했다. 그는 어떻게 해도 보통 생명이라 그에게 진상을 알게 하는 기회를 줘야 한다. 그에게 정념을 좀 보내고 진상을 알렸는데 투철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는 듣기 싫어 일부러 떠났다. 우리는 나누어 일했다. 결국 그는 주요 책임자에게 보고했다. 주요 책임자는 나를 찾아 면담을 했고 나는 또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다음날 파출소장이 한 경찰과 나를 찾아왔다. 나는 또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하지만 그들은 가부를 결정하지 않고 말도 많이 없었으며 나에게 “밖에서 활동하지 마세요.”라고 권했다. 그런 후 문답형식의 표를 작성하고 나에게 보여주며 서명하라고 했다. 그들은 나에게 강요하지 않고 떠났다.

‘사악한 진영’의 사람도 모두 스스로 나쁜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많을 때 이른바 ‘책임을 다하면 책임을 피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그럭저럭 대처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필경 박해 체계의 나쁜 일이고 박해가 끝나지 않으니 우리는 절대 대수롭게 여기면 안 되고 수시로 정념을 강화해야 하며 사악이 틈을 타게 하면 안 된다. 이런 일은 이렇게 흐지부지됐다. 그런 후 나는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반대로 그를 구하지 못해 유감스러웠다. 이것은 사악이 나에 대한 교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안으로 찾고 동시에 끊임없이 발정념을 해 그의 배후 및 회사 안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다.

얼마 후 나는 이 동료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그 동료는 내가 자신에게 진상을 알린 일을 회사 책임자에게 알렸다. 책임자는 동료 중에서 어떤 동료에게 진상을 알렸는지 조사했다. 그날은 금요일 오후다. 한 동료는 이 일을 알고 나에게 알렸다. 나는 당시 말했다.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동료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며칠간 마음이 그리 당당하지 않았지만 나는 ‘비밀을 누설한’ 동료에게 전혀 원망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속인,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법제자라 그들과 따질 필요가 있는가? 이런 시기인데 그들을 용서하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안으로 찾는 것이었고 동시에 발정념을 강화했다. 반대로 나는 그들의 ‘안위’를 걱정했다. 그들이 삼퇴한 후 후회하면 구도되지 못한다. 한 사람이 ‘책임자 조사’ 이 사건에서 부정적인 언론을 내보냈다. “OO가 우리에게 탈당하라고 하는데 만약 탈당하면 그가 이후 다시 무슨 처벌을 받으면 우리도 손해를 보지 않겠소?” 그 사람이 이 말을 할 때 탈퇴한 2명이 현장에 있었고 ‘비밀을 노출한’ 사람도 현장에 있었다. 나는 그 두 명에게 각자 진상을 알렸다. 그들이 ‘후회’하는 뜻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안전’이라는 큰 짐을 내려놓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시 가장 관심이 가는 문제였다. 이 일도 이후에 흐지부지됐다. 나는 시종 어떤 원망심도 없었지만 속인이 미혹 속에 있어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고 탄식했다.

이상한 것은 사부님 설법은 이전부터 줄곧 배우고 있었는데 어떤 법리는 다시 배울 때 이전에 읽지 못한 느낌이 든다. 더욱 많은 법리는 다시 배우자 알게 됐고 지난 후에는 또 생각나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 자신이 법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 그 일념 ‘속인은 그렇게 비참하구나. 그와 따질 게 뭐가 있을까’와 같다. 이치는 아주 간단하다. 하지만 법리에서 깊이 깨닫지 않고 이해만 하고 심성이 그 경지에 도달하지 않으면 수련은 그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 즉 속으로 ‘속인은 그렇게 비참하구나. 그와 따질 게 뭐가 있을까’만 생각하고 속인의 것을 담담하게 보지 않으면 자비심이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법공부할 때 마음에 닿게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10-따지웬회의 설법’

 

원문발표: 2018년 7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7/23/3714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