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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은혜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의 사부님의 말씀 “사부는 오늘날 바로 한 육신 형상으로 인간 세상에 있다. 그러나 사부는 많고 많은 능력이 있다. 나는 무수한 법신이 있어 모두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결해야 할 일들을 해결하고, 정법 중에서 정법의 일을 해결하고 있으며, 많고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이쪽에 체현되지 않는다.”[1]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났다. 이것은 사부님의 은혜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의 눈물이었다!

지난 일이 한 장면씩 눈앞에 펼쳐졌다.

법을 얻다

어려서부터 나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줄곧 알고 싶었다. ‘서유기’를 볼 때 줄곧 여래불이 배치한 조화와 법리에 감탄을 했고 당승, 손오공의 정신에 탄복했다. 신선의 신적(神跡)을 보면 나는 이것은 정말이라고 믿었고 또한 수련을 할 염원이 생겼다. 1989년 고등학교 1학년일 때 나는 집을 떠나 사부님을 찾으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사부님은 어디에 있는가. 머릿속이 온통 망연해졌다…….

후에 기공을 접촉했다. 나는 확실히 신기함을 느꼈다. 그러나 한동안 지난 후 나는 매우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나의 몸에 나타난 특별한 현상은 기공사가 말하는 것보다 월등했다. 나는 나의 몸에서 가는 것이 빛이고 기가 아닌 것을 발견했다. 친구에게 말하면 모두 믿지 않았다. 나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기공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하고 가부좌를 해 부처수련을 하겠다고 맹세를 했다. 매일 가부좌를 했다. 1994년 수련의 많은 문제가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사부님이 없으면 이 문제를 풀 수 없었고 제고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호소했다. 사부님, 어디에 계시나요?

1994년 4월 초의 어느 날 저녁 시간이 끝나자 대학 실험실의 한 선생님이 나에게 남으라고 말했다. 한담을 하는 중 그는 ‘돌, 벽이 말을 한다’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나의 이해를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는 놀라면서 ‘파룬궁(法輪功)’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얼굴과 파룬 도형이 너무 익숙한 것을 보았다. 본 것 같은데 생각나지 않았다. 이튿날 나는 일어난 후 연공장소에 갔다. 연공동작을 보고 내심 깊은 곳에 이것은 불가상승(上乘佛家) 대법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의 기쁜 마음은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마침내 찾았다!

연공장소에서 돌아온 후 나는 일각도 지체하지 않고 ‘파룬궁(法輪功)’을 읽었다. 법공부를 하면서 다년간 수련을 하면서 모르던 대량의 문제를 전부 알았다. 사부님과 대법을 찾았다는 그런 느낌은 형용할 방법이 없었다. 정말 너무 행복했다! 그날부터 나는 진정한 수련을 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1994년 말, 나는 사부님의 다롄 보고회에 참가해 사부님의 설법을 조용히 들었다. 그 홍대(洪大)한 자비는 순식간에 나를 녹였다. 학교에 돌아왔을 때 학우들은 나의 변화에 놀랐다. 그들은 순식간에 대법의 자비로운 법력을 느꼈다. “부처가 아닌가?” 한 마디로 설파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또 나에게 많은 것을 주신 것을 알았다.

정진(精進)

한 수련인으로 말하자면 하루아침에 법을 얻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안다. 오직 정진해야만 홍대한 사부님의 은혜에 떳떳할 수 있다. 수련의 길에서 사부님은 시시각각 나를 보호해 주셨다.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초범함도 체현해주셨다.

동북의 겨울은 매우 춥고 영하 20여 도는 정상이다. 나는 매일 밖에서 연공을 했다. 전혀 장갑을 사용하지 않았다. 처음에 손이 어는 것을 느꼈다. 후에 전신이 매우 두꺼운 에너지에 포위된 것처럼 따스했다. 대학교에서 아침에 기숙사 문을 열지 않아 대부분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연공을 했다. 하루는 작은 눈이 내렸다. 나는 창문에서 뛰어내려 곧바로 연공을 하러 갔다. 연공을 할 때 따스했다. 한 시간이 지나 연공을 한 후 돌아오다가 다리가 좀 찬 것을 느꼈다. 아래를 만져보니 솜바지를 입는 것을 잊어버렸었다. 정말 이상했다. 나올 때 왜 알지 못했을까?

한 번은 소업을 할 때 갑자기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고열이 났다. 후에 침대에서 몸도 움직이지 못했다. 한 기숙사의 친구는 놀라 병원에 갈 거냐고 물었다. 나는 “갈 필요 없다. 이것은 소업이다!”라고 말했다. 마침 여름방학이어서 친구는 차표를 사 집으로 가려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남겠다고 말했다. 나는 “괜찮아. 너희들은 가. 저녁 6시면 좋아질거니 걱정하지 마. 나도 집으로 돌아갈 거야.”라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저녁 6시에 나는 정말 일어났다. 열도 나지 않고 몸도 아프지 않았다. 마치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10분전 까지만 해도 열이 나 움직이지도 못했던 나다! 가지 않은 기숙사의 친구는 불가사의하다고 느꼈다. 내가 신속히 좋아진 것을 보고 밖에서 국수를 가져왔다. 온종일 먹지 않은 나는 정말 배가 고파 국수를 전부 먹었다. 후에 우리 세 사람은 기쁘게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사부님께서 또 나를 도와 큰 업을 없애주신 것을 알았다. 이런 소업은 수련의 과정에서 여러 번 있었다!

대법이 지혜를 열어준 것을 공부에서 충분히 체현했다. 나의 기억력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어떤 과목은 복습할 필요가 없었고 어떤 과목은 한 번 보면 기억을 했다. 나는 공부를 매우 쉽게 했고 대량의 시간을 법공부, 연공에 사용했다. 전혀 공부를 지체하지 않았고 성적이 좋아 줄곧 장학금을 탔으며 해마다 3호 학생으로 선정되었다. 학우들과 선생님은 대법이 신기하다고 느꼈다.

고험

1996년 졸업을 한 나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좋은 대법을 당연히 고향사람들이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연공장소를 만들고 법공부, 연공을 지도했다. 건강 방면의 대법의 신기한 효과에 사람들이 신속히 증가했다.

그러나 그때 중공중앙의 몇몇 꿍꿍이가 있는 사악의 무리는 이미 나쁜 일을 하려고 꿈틀거렸다. 1996년 12월 말, 중화 인민 공화국의 당정(黨政) 지도부에서 공포한 문건이 파룬궁(法輪功)을 헐뜯고 연공장소를 해체하라고 요구한 것을 보았다. 수련생들은 이것은 순 중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신체가 건강한 방면의 신기한 효과가 연공장소의 수련생들에게 매일 발생하고 사부님의 자비와 대법의 순정을 그들이 체득했기 때문이다. 선량한 수련생들은 ‘참고 용서하고 정부가 잘 조사하기를 희망하는 심태’로 여전히 계속 연공을 했다. 이때 한 수련생이 신분이 불명한 사람이 연공장소를 감시한다고 했다. 나는 수련생에게 말했다. 우리 파룬따파(法輪大法) 연공은 자발적이며 공개적입니다. 비밀이 없고 수시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련생들은 감시 하에 계속 연공을 했다.

1997년 3월의 어느 날 아침, 연공을 다하고 나는 녹음기를 들고 수련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한 건장한 경찰이 나를 가로막았다. 나는 ‘시험’이 왔다는 것을 즉시 의식했다. 그 전에 나는 시골마을의 한 수련생이 어떤 원인으로 붙잡히고 또 가택수색을 당했다는 것을 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저는 반드시 이 관을 잘 넘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우리 연공장소 직장의 지도자에게 전화를 걸어 연공장소를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다음 나를 향해 기세 흉흉하게 소리를 질렀다. “누가 당신에게 연공장소를 조직하라고 했나요? 나는 오늘 당신에게 창피를 줄 겁니다. 당신 직장에 통지를 하고 대학교 다닌 것을 헛 다닌 것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마음속에 법을 담았고 사부님께서 나를 가지하는 것을 느꼈다. 순간 나는 뜻밖에 그의 이름을 부르며 웃으면서 “당신은 모모모죠. 우리 둘이 평온하게 말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매우 놀라더니 나에게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다. 나는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후에 그는 “먼저 집에 돌아가 식사를 하고 8시에 공안국 정보과(政保科)에 오세요.”라고 말하고 나를 집으로 가게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가족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어머니는 긴장을 하더니 나에게 집을 정돈하자고 말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기에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法輪(파룬)은 당신을 보호해 줄 것이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2]

나는 정확한 시간에 정보과에 갔다. 나는 이미 타산이 있었고 사부님의 무한한 법력을 견정히 믿었다. 그를 만난 후 나는 그와 나의 관계를 바로잡고 일체 사람의 생각을 내려놓았다. 나는 오직 법만이 일체를 바로잡을 수 있고 오직 법만이 일체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자신을 심사를 받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자비롭게 그를 직면했다. 처음에 그는 태도가 매우 강경했다. 그는 당정(黨政) 지도부에서 공포한 문건을 꺼내들고 나를 위협했다. 나는 그에게 이것은 모함이라고 말했다. 나는 법리와 연공장소에서 발생한 대량의 사실을 결합해 그의 문제에 대답했다. 좀 지나 그는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나는 대법의 자비가 그를 감화한 것을 느꼈다. 처음에 그는 말끝마다 욕지거리하고 직접 사부님과 나의 이름을 부르다가 후에 ‘이 사부님’, ‘사부님’이라 부르고 나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나는 그의 모든 문제에 대답했다. 그는 서랍에서 사전에 준비한 나의 이름이 적힌 ‘구류장’과 ‘벌금 통지서’를 꺼내고 나에게 “오늘 당신과 면담한 결과 나는 당신을 구류하지 않고 벌금을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어요. 그러나 연공장소를 망쳐놓았어요.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요?”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우리는 밖에서 여러 개 팀으로 나눌 수 있어요. 그러나 당신이 더는 우리를 방해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기뻐하며 나의 요구에 승낙했다. 이후 그도 배우겠으며 그때 반드시 잘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국가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간섭하는데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는 연공장소에 수개월 동안 관찰했지만 약간의 약점도 찾지 못했다. 대법은 마침내 그를 변화시켰다. 헤어질 때 그는 나를 매우 멀리 배웅을 했고 이것은 처음으로 멀리 배웅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이것은 사부님과 대법의 순정하고 자비로운 위력이다! 후에 그는 정말 약속을 지켰고 더는 수련생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1999년 10월 그는 이로 인해 직장에서 강등 당했다고 들었다. 나는 대법을 위해 대가를 치른 매 사람은 후에 보답을 받는다고 믿는다.

그 후 사부님께서는 또 나의 신체를 정화해주셨다. 얼굴에 갑자기 많은 더러운 것이 나오더니 후에 갓 태어난 아이처럼 희고 보드랍고 매끄러워졌다. 직장의 여직원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했다. 나는 그녀들에게 이것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결과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부끄럽다. 이상의 수련심득은 2004년 ‘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을 보고 쓴 것이며 다 쓰지 못했다. 다시 계속 쓰려했지만 이미 15년이 지났다. 회상해보니 그 해가 눈에 선하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가 제자의 일체를 단련시켰다.)

호법(護法)

1999년 7월 20일 정세가 급변했다. 사악한 당의 장쩌민은 방송, TV, 신문 등 매체를 이용해 파룬따파(法輪大法)와 사부님께 극히 사악한 모함, 요언을 날조해 선전을 했다. 거짓말은 순식간에 하늘과 땅을 덮었다. 나는 순정하고 자비로운 사부님과 대법을 이렇게 대하는 것을 보고 대법제자로서 반드시 정부가 우리 수련생의 마음의 소리를 알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먼저 성(省) 정부에 청원하려고 결정을 했다. 그날 저녁 기차역은 베이징과 선양으로 가는 기차표를 팔지 않는다고 규정을 했다. 나는 대법제자가 하려는 일을 어찌 그들이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매표원과 그들 상사에게 당신들은 이럴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몇 번의 교섭으로 그들은 나에게 표를 파는 것에 동의했다. 나는 순리롭게 선양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선양에 도착하자 새벽 1~2시가 되었다. 길에는 온통 경찰이고 이미 계엄이 시작되었다. 경찰은 우리를 붙잡아 한 체육관에 보냈다. 그곳은 이미 붙잡혀온 대법제자들로 꽉 차 있었다. 모두 그곳에 조용히 앉아 성 지도자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아름다움과 수련자에게 가져다 준 신체와 사상의 승화를 반영하려 했다. 날이 밝은 후 대법제자들은 교류도 하고 법공부를 시작했다. 12살 되는 어린 수련생이 ‘전법륜(轉法輪)’을 읽었다. 한 경찰이 우리가 아이를 앞장세운다고 조롱했다. 나는 즉시 깨달았다. 이것은 대법제자의 마음을 향해 온 것이다. 나는 책을 받아 법을 읽었다. 경찰은 긴장해졌다. 대법은 자비하다. 대법제자의 마음은 순정했다. 좀 지나 모여 있던 경찰의 적의는 없어졌다. 후에 수련생은 나에게 ‘홍음’, ‘정진요지’를 읽게 했다. 광장의 낭랑한 법공부 소리가 주위의 사악을 제거했다.

이튿날 아침 8~9시쯤 경찰차가 모이기 시작했다. 또 한 무리 경찰이 사람을 잡기 시작했다. 먼저 잡혀온 사람은 선양대학의 교수와 대학생이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대법제자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선양 건축단과대학의 한 교수는 보기에는 40여세 되는 여 수련생이었다. 그렇게 고상하고 우아하지만 몇몇 경찰이 팔을 당기고 다리를 잡아당겨 차에 실었다. 남자 수련생은 더욱 처참했다. 경찰 4명이 한 팀이 되어 들어서 차에 던져버렸다. 그 순간 나는 성(省) 정부는 우리의 청원에 응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이 나의 앞에 왔다. 나는 경찰에게 “우리는 성 정부에 평화롭게 우리가 대법 수련에서 받은 심신의 이로움을 반영하려 합니다. 대법은 국가와 민족에게 백가지 이로움이 있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어요. 만약 정부가 우리가 진실한 정황을 반영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당신들이 끌고 가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갑니다.”라고 말했다. 이때 그 총 책임을 진 경찰이 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말하지 못하게 하세요. 그는 우두머리에요!” 나는 대답했다. “나는 우두머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두머리가 없습니다.” 이어 경찰은 나를 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결인을 했다. 좀 전에 나는 줄곧 결가부좌를 했다. 그 순간 쏴하더니 나는 조용해졌다. 몇 몇 경찰이 나를 들어도 갈수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총 책임을 진 경찰이 이 정황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고 사람을 붙잡는 것이 중지되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사악을 해체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의 법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2]가 또 한 번 나의 눈앞에 떠올랐다.

정오가 되어 청원을 할 희망이 없자 수련생은 연이어 떠났다. 각 지역의 청원을 가로막는 차가 사람을 데리러 왔다. 당시 한 수련생은 우리는 경찰차에 오르면 안 된다고 깨달았다. 그래서 나와 몇몇 수련생은 스스로 집으로 돌아가자고 결정을 했다. 경찰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간 수련생은 현지의 공안국에 끌려갔고 구치소에 보내졌다.

집으로 돌아온 후 이튿날 출근을 하니 직장에서는 이미 알고 나를 대대 사무실(나의 직장은 공안국 모 처에서 책임을 진다.)에 데려갔다. 주임이 직접 나와 면담을 했다. 그는 나에게 스스로 사직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그는 명확히 밝혔다. 이것은 국(局)에서 회의를 한 결과며 당신을 심하게 박해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나에게 세 가지 평가를 내렸다. 1. 당신은 절대적으로 제일 좋은 사람입니다. 2. 당신의 업무처리 능력이 뛰어나며 1년 만에 선진인으로 평을 받았습니다. 3. 당신은 산하업체에서 여러 번이나 표창하고 격려하라고 요구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주도적으로 사직을 하게 한 것은 정치임무며 우리는 확실히 방법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해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나는 사직 당했다. 그러나 우리와 합작을 한 한 업체의 지도자는 불공평하다고 생각되어, 사람들이 자신도 연루될까 봐 두려워 나를 멀리하던 때, 도리어 여러 사람 앞에서 나를 청해 식사를 했다. 나는 이 정의감이 있는 지도자에게 정말 위안과 기쁨을 느꼈다. 대법은 반드시 정의를 선택한 사람에게 복을 줄 것이다.

직장이 없는 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시골을 돌아다니고 남의 집을 방문하면서 물건을 팔고 힘든 일도 해보았다. 비록 고생을 하고 힘들어도 형형색색의 사람을 만났고 한 차례 한 차례 심성을 제고했다. 그러나 사부님의 법은 시시각각 나의 귓가에 울렸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3] 대법의 혜택에 푹 빠진 나는 충실함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7·20’이후 대법제자들은 줄곧 교류를 했다. 정부가 대법은 좋고 대법의 사부님이 청렴결백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많은 수련생은 연이어 베이징에 가 청원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장(江)을 수호하기 위해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고집대로만 하면서 선량하고 무고한 좋은 사람을 제멋대로 붙잡고 박해를 했다. 대법제자가 박해치사 당한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2000년 ‘7·20’ 전에 나는 베이징에 가서 청원을 했다. 베이징에 도착해 국가 신방센터(信訪中心)가 사람을 붙잡는 곳이 되어버리고 대법제자가 말할 어떤 기회도 주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톈안먼에 가서 현수막을 펼쳐 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알려주자고 결정을 했다.

그날 오전 나는 톈안먼 광장에 갔다. 나는 많은 대법제자가 현수막을 꺼내든 다음 이어 경찰에게 붙잡혀 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톈안먼 성루에 올라 현수막을 펼치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러나 그때 성루에 들어가려면 층층의 단속과 검사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나는 대법제자가 하려는 일은 어떤 사람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견정히 믿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가지해달라고 빌었다. 나는 주머니에 현수막을 넣고 검사를 하는 쪽을 향해 걸어갔다. 당시 안전검사 요원 4명이 두 번이나 나의 몸을 꼼꼼히 수색을 했다. 그들이 현수막을 간직한 나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나의 일념은 강대하고 견정했다. 그 순간 요원이 현수막을 잡았지만 마치 생각이 없는 것처럼 또 내려놓았다. 또 한 요원도 현수막을 만졌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수색을 다 했나요? 저 지나갈게요.”라고 말했다. 그는 얼빠진 것처럼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떠나면서 그들의 멍한 모습을 보았다.

톈안먼 성루에 올랐다. 나는 사복경찰이 세 걸음에 한 명씩 있는 것을 보았다. 만약 이때 내가 현수막을 펼친다면 펼칠 기회가 전혀 없었다. 나는 재차 사부님께 가지해달라고 빌었다. 즉시 주위의 환경에 기회가 생겼다. 한 경찰이 갑자기 손목시계를 꺼내들더니 “이게 어찌된 일이지, 이게 어찌된 일이지?”라고 말했다. 다른 경찰과 사복경찰은 마치 구경을 하는 것처럼 그를 에워쌌다. 이때 주위의 관광객도 나의 신변에서 멀어지면서 빈 공간이 남았다. 나는 이때 반드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순식간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라고 쓴 현수막을 꺼내 두 손으로 세인들을 향해 현수막을 펼쳤다.

그 순간 나는 자신의 신체가 비할 바 없이 높고 큰 것을 느꼈다. 시간도 마치 멈춘 것 같았다. 이때 관광객은 이 장면을 보고 잇달아 나타났다. 그러나 그 경찰은 멈춘 것처럼 주위에 발생한 일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성루의 2층 보초병이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일이 났어요! 일이 났어요!” 이때서야 그 경찰들은 정신을 차리고 나를 향해 덮쳐왔다. 그들은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나의 팔을 당기고 매달려 현수막을 빼앗았다. 사실 나는 몸이 말랐고 그들은 모두 우람하고 건장한 남자였다. 대법의 신기한 힘이 그 순간 남김없이 드러났고 이 장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좀 대치를 하다가 나는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되어 팔을 내려놓았다. 한 무리 경찰이 나를 빼곡히 둘러쌌다. 그들이 나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모두 놀랐다. 이때 그들의 휴대용 무전기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국제적인 영향이 조성되었는가?” 그 경찰 대장이 우물우물하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했다. 아래에서 달려온 한 사복경찰의 반응이 매우 빨랐다. “그는 영향을 조성하지 않았습니다. 현수막을 꺼내지 못하고 우리에게 발견되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어 그 한 무리 경찰은 나를 톈안먼 성루에 있는 한 큰 사무실에 데려갔다. 안에서 경찰복을 입은 한 여 상사가 다가왔다. 그들은 나를 벽에 밀었다. 키가 족히 190cm되는 몸집이 우람한 경찰대장이 긴 팔을 휘둘러 양쪽 따귀를 번갈아 때렸다. 그는 단숨에 나의 따귀를 20여 차례 때렸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금속 물통 같은 것이 씌워진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나는 그의 손이 금속 물통을 때린 것처럼 “땅, 땅”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물통 안에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 이때 그는 멈추고 손을 들고 신변의 그 여 상사에게 말했다. “보세요, 제가 그를 때려 손이 다 부었는데 그는 왜 멀쩡하죠?” 그 사람은 “그를 건드리지 마세요. 그는 진짜 파룬(궁 제자)입니다. 그의 얼굴에 자국도 없는 것을 보지 못했나요?”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 경찰들도 일부러 나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좀 지나 몇몇 몸을 수색하던 안전요원이 달려와 나를 보고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현수막을 갖고 왔어요? 어디에 숨겼나요? 우리는 허리띠와 다리도 다 보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나요? 당신은 법술을 할 줄 아나 봐요!” 그 후 그들은 나를 톈안먼 파출소에 보냈다. 그곳에서 많은 경찰이 나를 보러 왔다. 그들은 내가 몸이 마른 것을 보고 어떤 경찰은 다가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작은 목소리로 “훌륭하다! 대단하다!”고 말했다. 또 어떤 사악한 경찰은 나를 가까이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상스럽게 욕을 퍼부었다.

나는 한 철장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수십 명의 대법제자가 감금되었다. 남녀노소 모두 있었다. 남방에서 온 11~12살 되는 어린 남자아이는 두 차례나 심문을 받았다. 경찰은 성명과 주소를 말하라고 어린 아이에게 손을 댔다. 돌아올 때 그의 얼굴에는 깊은 손자국이 남았다. 우리는 함께 교류를 시작해 단체로 가부좌를 해 항의를 하자고 결정을 했다. 이때 구치소의 경찰이 다가와 욕하고 수련생을 밟았다. 우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그들은 의기소침해 입구에 가서 더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 기간에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사실 두 차례나 이 감옥을 벗어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경찰은 나를 파출소에 데려가 복도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를 압송한 경찰은 상급에 보고하러 갔다. 이때 갈 수 있었지만 나는 도리어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른 한 차례 기회는 경찰이 나와 수련생에게 물건을 들어달라고 했다. 일을 다 한 후 우리는 이미 감금당한 곳을 나왔다. 그러나 수련생이 당시 우리는 대법을 실증하러 왔기에 도망을 가면 안 된다고 인식을 해 가지 않았다. 당시 우리가 철장에 돌아왔을 때 한 경찰이 “당신들은 왜 돌아왔어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마땅히 돌아오지 말아야 했다.

그날 밤 우리는 미윈(密雲) 구치소에 보내졌다. 나를 심문한 경찰은 베이징 정법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그에게 나의 수련노정을 말했다. 그는 처음에 이해를 하지 못하고 적대시하다가 후에 나를 존경했다. 나는 경찰이 피동적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하며 이 생명의 어쩔 수 없음과 가련함을 느꼈다. 그는 나에게 미윈 구치소에서 이미 여러 명의 대법제자가 박해치사 당했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떠나라고 암시했다. 나를 데려간 어린 경찰이 좋지 않은 마음으로 감방안의 수감자에게 그는 파룬(法輪)이라고 말했다. 수감자에게 나를 혼내라고 암시한 것이다. 감방에는 10여명의 수감자가 있었다. 내가 감방 중간까지 오자 감방의 수감자 우두머리가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수련을 계속 할 건가요? 하지 않을 건가요?” 나는 평온히 그들에게 말했다. “대법제자의 수련은 어떤 사람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이때 그는 모든 수감자에게 신발로 나를 때리라고 했다.

그들이 나를 향해 덮쳐왔을 때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들의 손이 반공중에 멈춘 것을 보았다. 그들은 멍하니 나를 보았다. 좀 지나 우두머리가 “그는 진짜 파룬(궁 제자)이다. 우리는 그를 건드릴 수 없다. 건드리지 말라.”고 말했다. 온 감방은 장시간 적막에 빠졌다. 좀 지나 우두머리가 나를 불러 수련에 관해 물었다. 나는 그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했다. 마지막에 그는 감화되었다. 그는 모든 수감자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우리 여기의 좋은 것은 이 파룬(法輪)이 먹게 하고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말라!”

이튿날 그 우두머리는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또 다음 우두머리에게 반드시 나를 잘 보살피라고 분부했다. 후에 수감자들은 정말 매일 그렇게 했다. 그들은 라면과 두유를 사 양이 많은 것을 먼저 나에게 주었다. 받지 않아도 안 되었다. 사실 미윈 구치소는 그때 매우 사악했다. 내가 감금된 그날 저녁 악한 경찰은 한 여 대법제자를 남자 사형수 감방에 밀어 넣고 장려와 음식물을 조건으로 이 대법제자를 전향하게 하라고 했다.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후에 수감자들이 그날 저녁에 그 여 수련생이 고초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 전에 몇몇 수련생이 고초를 겪다가 치사 당했다고 말했다. 내가 구치소에 들어간 후 새벽 1~2시에 20살 정도의 수련생이 들어왔다. 대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수감자들은 깨어났다. 우두머리가 그에게 수련을 하겠는가 물었다. 그는 너무 고생스러워 수련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 수감자들이 마치 미친 것처럼 느닷없이 한바탕 심하게 때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그들에게 때리지 말라고 해서야 비로소 멈추었다. 그러나 그를 물을 뿌린 바닥에서 자게하고 이불도 주지 않았다. 이 장면에서 나는 수련이 엄숙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수련생은 적당히 얼버무리려고 했다. 후에 그는 나에게 마음을 어기고 말한 것이며 자신이 틀린 것을 의식했다고 말했다. 그날부터 매일 수감자들은 좌판에 앉았고 우리는 가부좌를 하고 연공을 했다. 수감자들은 나를 몰래 보호했다.

8일 후 나의 거주지 파출소 경찰과 가도 서기가 나를 데리러 왔다. 이 서기는 매우 사악했고 나의 신과 손목시계를 버렸다. 그 경찰은 군인출신이며 대학생이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어떻게 수련을 했는지를 말했다. 마지막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수갑을 차고 맨발차림으로 베이징 거리를 걸었다. 그는 나에게 “당신이 보세요. 얼마나 흉측하나요!”라고 말했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나는 흉측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이렇게 좋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야말로 흉측스럽지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뜻밖에 옷으로 내가 찬 수갑을 감쌌다. 이렇게 나는 거주지에 돌아와 현지 구치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현지 구치소에서 새로 온 수감자에게 감방안의 다른 수감자가 찬물 한 대야를 머리부터 쏟아 붓는다. 이것을 ‘대야를 부수다’라고 말하며 매 사람이 10번은 한다. 내가 감방에 들어서서 대법제자의 신분을 밝히자 그들은 ‘대야를 부수다’를 하려고 했다. 나는 대법제자는 자비와 존엄이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위엄어린 눈으로 그들을 정시했다. 그들은 누구도 감히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지막에 감방 우두머리가 뜻밖으로 “파룬(法輪)과 다른 수감자는 같지 않다. 대법제자는 모두 좋은 사람이다. 이후 그를 건드리지 말라.”고 말했다.

이후 나는 또 다른 감방에 옮겨 갔다. 이 감방의 환경은 매우 사악하고 공포스러웠다. 그 전에 사람을 때려 죽였고 모두 강력범이었다. 사형수도 여럿이 있었다. 우두머리는 사람 몇 명을 죽인 죄수였다. 감방에 들어서자 그들은 내가 대법제자인 것을 알고 판자 중간에 앉게 하고 고함쳤다. “내 이 방에서 전향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는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대법제자는 어떤 사람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어 그는 수감자에게 나를 잡으라고 명령을 했다. 나에게 대변과 소변을 부어넣으려고 했다. 그 순간 대법의 힘이 재차 나타났다. 그들이 나에게서 50cm 떨어졌을 때 순식간에 멈추어 있었다. 나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경직된 체구가 빙 둘러 싼 것이었다. 좀 지나 모든 사람이 회복되었다. 얼굴에는 놀라움이 어려 있었다. 우두머리는 작은 목소리로 다른 수감자에게 말했다. “이 파룬(法輪)은 건드리지 말자.” 그때부터 그들은 더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 후 내가 매일 연공을 할 때 경찰이 소란을 피우면 그들이 모두 보냈다. 내가 감방에서 그들에게 대법진상을 말하자 그들도 차츰차츰 명백해졌다. 경찰은 나에게 사형수 두 명을 바오자(包夾)로 배치했다. 그들은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후에 인품과 덕성이 극히 차한 수감자가 늘 감방에 숨겨놓은 큰바늘로 17~18세 되는 한 수감자를 찌르려고 했다. 나는 차마 볼 수 없어 여러 번 하지 말라고 권해 그의 불만을 야기했다. 한 번은 그는 감시가 되지 않는 구석에서 나를 때리려고 했다. 그가 손을 머리까지 들자 내리지 못했고 좀 지나서야 비로소 손을 내릴 수 있었다. 그날 그는 팔이 온밤 아팠고 자신이 대법제자를 박해해 벌을 받은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그는 나를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 2개월이 지나 나는 구치소에서 나왔다. 그때부터 정법의 거센 흐름에 합류했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더욱 많은 대법의 신적(神跡)이 나의 몸에서 발생했다. 사부님의 은혜에 대한 마음은 수많은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 오직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을 하는 것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어긋나지 않겠다!

개인 체득이며 층차의 제한으로 부당한 곳은 수련생 여러분이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사: ‘홍음2-정념정행(正念正行)’

 

원문발표: 2018년 7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7/22/3707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