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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대법제자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를 읽은 느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문제를 보는 데는 여러 가지 각도가 있다. 대법제자는 당연히 대법제자의 기점에 서서 문제를 본다. 밍후이왕 편집부의 통지에서 말하는 것은 안전 문제인데, 우리는 대법제자로서 어떻게 정확하게 이 문제를 대할 것인가?

밍후이왕 통지를 보고 나도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부득불 웨이신을 사용해야 한다는 핑계 같은 것이 있었고, 밍후이왕의 통지에 따라 해야 하는지 결단내리기 어려웠다. 도움을 구해보자, 마치 더욱 많은 사람이 다 근심하는 것 같았고, 더욱이 각종 ‘대체 해결’방안이 나왔으며, 심지어 마음이 움직였다. 나는 갑자기 깜짝 놀랐다. 이것은 바로 밍후이왕 통지 중의 “관련 수련생들은 각종 구실로 고집하고 있는데 더 이상 전하지도 믿지도 말아야 한다.”에서 가리킨 표현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 광명이 나타나네”[1]라고 말씀하셨다.

관념이 바뀌자마자 정념이 나왔고, 사부님께서 곧 나에게 진상을 통찰하는 지혜를 주셨다. 대법제자의 주체는 중국에 있는데, 일억의 대법제자에 그들의 가족, 친지, 친구를 더하면 이것은 얼마나 방대한 군중인가. 배후에는 또 무량하고 더 방대한 생명 군체와 연결된다. 모든 생명은 정법 중에서 선택에 직면하고 있는데, 웨이신 등 소프트웨어도 생명으로서 마찬가지다. 만약 웨이신이 정법에 의해 도태되는 생명인데, 대법제자 상당수가 각종 이유와 핑계로 계속 그것을 사용한다면 이는 정법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우선 말하지 않더라도, 이 배후에는 관련된 더욱 심원한, 우리는 잠시 인식할 수 없는 더 많은 현묘한 안배가 있다.

다시 다른 한 각도에서 말하자면, 상당수의 수련생이 밍후이왕 통지에 직면하여 다른 태도가 반영되어 나왔는데, 동의하지 않거나 그다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 마음대로 하거나 웨이신을 떠나면 어떡하느냐고 도처에 묻거나, 심지어는 온갖 궁리를 다 하여 대체 방안을 찾는 등등이다. 이것은 하나의 강대한 동요가 아닌가. 얼마나 강한 집착인가. 그래 아직도 우리로 하여금 깊이 자성하게 하기 부족하단 말인가.

사실 웨이신이 없어도 사람 마음 집착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엉망이 되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서는 다른 한 광명천지가 펼쳐진다. 밍후이왕 교류 중에서도 웨이신을 사용하지 않는 수련생이 많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사람 마음 집착 중의 편협한 관념, 각종 망상,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이유, 보기에는 상식에 부합되는 것 같은 등등은 마침 더욱 혼잡함을 일으키는 근원이다.

밍후이왕 통지에 따라 그대로 하고 그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크게도 작게도 보지 않으면, 사람 마음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여기에는 사실 또 신사신법의 문제가 있다. 바로 소련이 갑자기 해체된 것처럼, 더욱 방대한 매우 거대한 물건, 방대한 생명이 만약 정법에서 도태가 결정되었다면, 오늘 도태되라고 하면 곧 오늘 도태될 것이며, 내일은 오히려 더욱 아름다운 세계가 될 것이고, 더 아름다운 생활방식이 있을 것이다. 대법제자로서 이런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믿는가 믿지 않는가? 사람의 교활함을 부리겠는가 아니면 대법이 부여한 지혜를 내보내겠는가.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여기는지 아니면 상유심생(相由心生)인지, 관건은 대법제자의 마음에 달렸다. 대법제자만이 비로소 모든 생명의 희망이다.

물론 수련 제고에 있어서 일률적으로 해내기는 어렵다. 속인에서 대법수련생이 되고, 다시 대법수련생에서 대법제자가 되기까지, 이 과정 중에서 어떤 상태든 모두 나타날 수 있는데, 쟁론과 불일치도 모두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정법의 전체적인 진도는 이미 후기의 후기에 도달했다. 많은 때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는데, 다시는 맞는지 아닌지,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토론하지 말고, 어떻게 더욱 빨리 대법에 따라 귀정(歸正)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2]라고 말씀하셨다. 삼가 수련생들과 함께 용기를 북돋아 주고자 한다.

개인의 체득이니 부족한 곳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 ‘홍음-신생(新生)’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 ‘홍음-착실한 수련’

 

원문발표: 2018년 7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8/7/9/3707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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