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국 대법소제자
[밍후이왕 2018년 7월 2일] 저는 2005년 아버지와 함께 정식으로 대법수련에 들어선 어린대법제자로 지금까지 13년을 수련했습니다. 이 13년간의 수련과정에서 전혀 철이 없던 아이에서 이제는 고등학생 대법제자가 되었습니다.
대법을 실증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책임이고, 자신을 잘 닦는 것은 대법을 실증할 수 있는 기초입니다. 저 역시 수련은 길고도 고달픈 과정이고 미혹 중에서 심성을 지키면 수련해 올라갈 수 있고, 지키지 못하면 원만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이 세상에는 유혹이 너무 많고, 과시심, 의지하는 마음, 질투심, 쟁투심, 원망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 정, 좋고 싫음 등 집착들이 있었습니다. 각 방면의 여러 마음들이 모두 제 수련의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12년 동안 집착을 버리는 중에서 느낀 일부 소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오니 부족한 부분은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과시심을 닦아버리다
어려서부터 저는 자신에게 강한 과시심리가 있다는 것을 줄곧 느끼고 있었습니다. 작은 성과가 있어도 급급히 남에게 보여주려 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면 몹시 기뻤습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이 집착은 갈수록 엄중해졌습니다. 칭찬을 들으면 겉으로는 겸손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한 일들을 모두 꺼내어 남의 칭찬을 받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저 역시 이 마음이 엄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마치 저주처럼 저를 따라다녔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기 힘들었습니다.
이치대로 말하면 깨달았으니 마땅히 즉시 발정념을 하여 제거해야 하지만 매번 저는 일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이럴 때마다 자신의 행위를 후회했고 다음에는 반드시 이 부분을 고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자비롭고 상화로운 마음을 유지하면 다음 번 고비를 넘길 때 잘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사부님께서는 일부러 저에게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셨습니다. 학교 회화수업 때 몇 점의 회화작품을 선정해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열리는 공개 전시회에서 전시하게 되는데, 저는 수채화로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두 가지 특별한 색상을 사용했고 선생님께서도 인정해주셨습니다. 뽑히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될수록 담담히 여기면서 이 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 후 어느 날, 미술수업에서 선생님께서 수상자 명단을 발표할 때 제 이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이름이 비슷한 학생이 뽑혔습니다. 그녀가 기뻐하며 가족과 학생들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마음이 좀 씁쓸했습니다. 당시 마땅히 이 마음을 버려야한다고 생각하고 즉시 발정념을 하여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연달아 오는 시험은 사람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제가 방금 마음속의 우울함을 제거하고 조금 편해졌을 때 선생님은 선정된 작품이 사실은 제 작품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선생님이 우리 둘 이름을 읽을 때 발음이 모호하여 그 친구로 여겼던 것입니다. 갑자기 찾아온 기쁜 소식 앞에서 저는 과시심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무 기뻐 즉시 그 친구에게 가서 그래도 내가 대단하다고 과시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이 떠오르자 즉시 깨달았습니다. 이게 바로 저의 과시심과 환희심을 제거하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게 바로 사부님의 시험이 아니겠습니까? 즉시 마음을 고요히 한 후 속으로 발정념을 하여 그것을 제거했습니다. 몇 분 뒤, 줄곧 제 몸 안에 있던 악성종양을 확실히 떼어버린 것처럼 온 몸이 홀가분해졌습니다.
2. 의지하는 마음, 이 근본 집착을 제거하다
속인사회는 크나큰 염색 항아리입니다. 수련 과정에서 저는 잘못한 부분이 아주 많고, 많은 마음들은 아직도 노력해 제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의지하는 마음이 저의 근본 집착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이 세상에서 이러한 마음을 갖고 아름다운 추구와 소원을 동경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수련하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안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러한 사상의 작용 하에서 대법(大法)의 문에 들어올 수는 있지만, 수련 과정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하여 이후에 책을 보고 법을 배우며 정진하는 중에서 자신이 입문할 때 어떤 생각으로 대법(大法)에 들어왔는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한동안 수련을 했지만 아직도 당초 생각인지, 사람의 이 마음이 자신을 여기에 남아 있게 한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나의 제자로 여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1]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은 엄숙하다’는 이 말의 의미를 성장하면서 차츰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법을 대하는 저의 태도는 사부님 말씀처럼 “중사(中士)가 도를 들음에 있는 듯 없는 듯하다.”였습니다. 처음 법을 배울 때 아버지가 이끌어주셨고, 법 공부와 연공도 아버지의 독촉 하에 완성했습니다. 나아가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며, 밍후이왕 교류문장을 보는 등 모든 일들을 아버지가 배치해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지휘만 따르면 되었는데 마치 꼭두각시처럼 다른 사람이 조종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나무 조각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줄곧 이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3년 저와 어머니만 미국으로 온 후 이 근본 집착 하에 2년 뒤 아버지가 오기 전까지 저는 ‘자연스럽게’ 법 공부와 연공을 느슨히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국내에 있을 때 전화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꿈에서 크나큰 건축물이 마치 도미노 놀이처럼 줄지어 넘어지는 것을 보았고 제 앞까지 오기 전에 아버지가 신속하게 뛰어와 저보고 빨리 떠나라고 알려주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종일관 갖고 있던 의지하는 마음을 좀처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법 공부, 연공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가정, 학교, 사회에서도 이 마음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몇 가지 가장 흔한 예를 들자면 길치이고, 감히 모르는 사람과는 교류도 못하며, 혼자 돈을 지불하지 못하고, 집안일을 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모두 부모님이 도와주셔야 했고, 집안일은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되도록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은 큰 일이 아니지만 절대 작은 일도 아닙니다. 다행히 이 몇 년 동안 열심히 안으로 찾고 수련생들이 도와주었기에 오랫동안 누군가 저에게 이 마음을 지적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도 차츰 독립적으로 되었고, 비록 법 공부와 연공을 함에 가끔 정진하지 않지만 날마다 노력하고 제고하는 중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질투심을 버리다
예전에 저는 종래로 질투심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느꼈더라도 자신을 위해 구실을 찾아 그냥 넘겨버렸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후 안으로 찾으면서 이 마음이 어려서부터 마음속에 뿌리박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질투에 대한 인식이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보는 것에만 국한됐지만 얼마 전 사부님의 설법을 보면서 남을 얕보는 것 역시 질투심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로서 질투심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개변됐고 왜 줄곧 이 마음을 찾지 못했는가를 마침내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법 공부가 너무 적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끝내 이 마음을 찾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관계나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는 당연히 기분을 풀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기분은 마침 질투심에서 체현됐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를 잘하지 못해 학업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성적이 좋지 못할 때 성적이 좋은 학생을 보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수업시간에 항상 적극적으로 문제를 대답하는 친구를 보면서 늘 아니꼽게 생각했습니다. 속으로 ‘나도 할 수 있지만 다만 너와 다투지 않을 뿐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강한 집착심입니까? 다만 이것을 줄곧 인식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남을 얕보는 것 자체가 아주 강한 질투심이고, 어려서부터 가장 큰 문제점이 모두 여기에 있었습니다. 매번 이 나쁜 마음이 올라와 교란을 피우려고 하면 저는 즉시 발정념을 하여 제거했습니다. 매번 그것을 승인하지 않으면 마음도 차츰 평온해졌습니다. 이토록 쉽게 제고할 수 있도록 줄곧 가지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4. 쟁투심을 버리다
쟁투심은 어려서부터 제 마음에 숨겨둔 시한폭탄 같았지만 줄곧 그것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모순이 나타나면 그건 여지없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최근 저의 쟁투심이 아주 엄중할 뿐만 아니라 두 가지 다른 표현형식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남의 권고를 듣지 않고, 모순이 왔을 때 제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면 남의 비평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번 심성 고비가 왔을 때 모두 언짢게 마무리했습니다. 비록 일이 지난 후에는 모두 제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매번 자신을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억울하다고 여기면서 심성을 제고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태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됐고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심성을 제고할 기회가 아닙니까? 제가 억울하다고 남과 도리를 따질 때, 쟁투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남과 도리를 따지려는 것은 여전히 사람 마음으로 문제를 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매번 고비나 시련이 닥쳤을 때 넘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이 마음을 찾으니 마치 큰 보따리를 버린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했습니다.
쟁투심의 두 번째 체현은 바로 이익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학교 체육수업 때 늘 일부 경기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을 네 팀으로 나누어 돌아가며 시합을 시켰고, 시합 전에 규칙을 정했습니다. 매번 상대 팀이 아웃될 것 같으면 저는 늘 속으로 “너무 잘 됐다. 우리 팀이 또 점수를 딸 수 있겠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팀원들은 늘 양보를 했습니다. 그들은 “아마 아웃되지 않았을 거야.”, “괜찮아, 다시 한 번 서브해.”, “이런, 우리가 또 졌네.”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의 이런 행동을 보고 저는 잔뜩 화가 났습니다. 속으로 ‘이건 분명 우리 점수인데 왜 또 남한테 주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착한 속인보다 못했습니다. 이 일은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런 방면에서 속인보다 못했기에 확실히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련과정에서 외부의 세계는 저에게 유혹으로 가득 찼고 영향도 많이 주었습니다. 또한 아직도 버려야 할 집착이 많이 있습니다. 멋을 내고 싶어 하는 마음, 놀기 좋아하는 마음 등은 지금 저에게 있어 엄중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토록 좋은 수련환경이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께서 늘 옆에서 감독하고 독촉하며, 주위 수련생들과도 배움과 수련을 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 하고 심성을 잘 지켜야만 수련해 올라갈 수 있고, 잘 지키지 못하고 자신을 방임한다면 원만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항상 자비롭고 상화로운 마음을 유지하도록 할 것이며, 대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정법노정을 따라잡아 사람을 더 많이 구하겠습니다. 또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대법진상을 명백히 알아 진정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수련제고의 기회를 주신 사부님과 수련생들께 감사드리고 부족한 부분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저작: ‘정진요지 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走向圓滿)’
원문발표: 2018년 7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7/2/3704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