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4년 새해에 가족들의 도움으로 저는 법을 얻었습니다. 파룬따파 수련 이후 자신의 신체와 주변 환경 속에 나타났던 각종 신기했던 일들은 여기에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하는 것은 제가 결혼 이후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삐걱거리며 걸어온 경력인데, 부당한 곳은 수련생들께서 자비롭게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2016년 제가 남편과 서로 알게 된 지 반년도 안 돼 연애를 시작했고, 두 달 후 결혼했으며 결혼한 뒤 생활 속에서 많은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남편은 사람이 매우 후덕하고 성격은 내성적인 편입니다. 외동아들이라 성격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으며 어릴 때부터 줄곧 부모님이 곁에 함께 계셨습니다. 반면에 저는 성격이 외향적이고 말하기 좋아하며 잘 웃기도 합니다. 성깔도 만만치 않으며 10여 년 동안 줄곧 집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해왔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저는 계속 그의 여러 생활 습관이 좋지 않고, 일을 함에서도 이것도 좋지 않고 저것도 할 줄 모르는 것 때문에 그와 말다툼을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정말로 부모에게 총애받으며 자란 아이구나, 아무것도 모른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매우 화가 났고 우리 두 사람은 늘 크게 다투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임신을 하게 되자 그도 감히 저와 말다툼하지 못했고 제가 화를 내기만 하면 그는 곧바로 참았습니다. 사실 그도 매우 화가 나 있었으며 때로는 화가 나 얼굴마저 일그러지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가끔은 너무 무기력하고 괴로워하며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의 무엇이 좋지 않다고 하면 내가 고칠게요, 내가 모두 고칠게요. 하지만 당신은 화내지 말아요.” 그러나 제 눈에 비친 남편에게는 나쁜 버릇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흔히 그는 이것을 아직 고치지 못했는데 저는 또 저것 때문에 화가 났으므로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다급해서 갈피를 잡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언젠가 그는 갑자기 변했습니다. 그의 각종 나쁜 버릇을 제가 아무리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화를 내더라도 그는 모두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습니다. “좋아요. 알겠어요. 제가 고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멍해져 곧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왜 그래요? 왜 나와 다투지 않아요? 왜 화내지 않아요?” 그는 말했습니다. “가령 내 이전의 흉금이 컵과 같았다면, 오늘 나는 그것을 곧 하나의 항아리로 바꾸겠어요.”
저희는 마침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교류하게 되었으며 남편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 이것저것을 가르쳐주셔서 집 안팎의 모든 일을 할 줄 알지만 나는 당신과 비교할 수 없어요. 나는 우리 엄마에게서 총애를 받으며 자라서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내 문제점들을 당신은 잘 짚어줘요. 나는 모두 고칠 거예요. 그런데 나의 나쁜 버릇이 너무 많아서 고치려면 하나의 과정이 필요해요. 당신은 내게 시간을 줘야 하고 내게 기회를 줘야 해요.”
저는 자신의 몸에 무서운 공산당문화 요소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줄곧 다른 사람을 질책하고 다른 사람의 결점만 보며 장점을 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여러 해 동안의 생활 습관을 순식간에 전부 고치도록 요구했고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생활습관으로 고치게 했는데 이것은 얼마나 무섭고 극단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며 이기적인 자아인가요. 스스로 그의 이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저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또 얼마나 무서운 질투심인가요. 저는 3일이 멀다 하고 그와 말다툼을 해도 그는 여전히 저를 이렇게 감싸주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의 불량한 생활습관을 따졌고 이처럼 마음이 옹색했는데 어떻게 자기 세계의 무량한 중생을 포용할 수 있겠습니까? 줄곧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을 보지 않는 이것은 마도(魔道)를 수련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안을 향해 찾고 있던 순간에 남편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제게 말했습니다. “결혼한 이래에 내가 가슴을 후벼 파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그런 아픔으로 제고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당신에게 감사해요……” 저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서 말했습니다. “당신도 나를 도와줘요.” 그는 말했습니다. “아직은 감히 할 수 없어요.”
시어머니도 성격이 좋지 않았고 가끔 매우 경우가 없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가 깔끔하지 않고 일을 대충대충 하는 바람에 늘 화를 내곤 했습니다. 가끔 시어머니는 두루뭉술하게 일부 트집 잡을 만한 일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부른 배를 안고 친정집에 숨어 있거나 방문을 닫고 지냈습니다. 남편은 고부갈등을 해결하느라 지치고 매우 피곤했습니다. 가운데서 수련생들이 화해시키느라 도움을 줘서 일부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안 되었습니다. 한 번 다툼이 일어났을 때 저는 중얼중얼 매우 많은 말을 했는데 시어머니는 한마디 말씀도 없이 참으시면서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후에 남편에게서 들어보니 시어머니는 방으로 돌아간 후 남편에게 “나는 네 말대로 할게. 오늘 며느리가 화를 냈는데 트집을 잡지 않았고 나는 참아냈어.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들을 거야……”라고 말씀을 마친 후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셨다고 합니다.
저는 단번에 자신이 좀 지나쳤다고 느꼈으며 진정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어떻게 된 걸까? 시어머니가 내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도록 해야만 했을까? 입으로 반드시 승부를 가려내야만 통쾌할까? 시어머니의 여러 해 동안 깔끔하지 못한 습관을 고치려고 했는데…… 이것은 쟁투심이고 다른 사람을 강제로 개변시키려는 공산당 문화이며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강한 독선이 나를 이런 모습으로 괴롭혔던 것인데 나는 아직도 수련인일까?’ 이러한 문제들을 분석해본 이후에도 자신은 그다지 크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남편이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큰 병으로 바꿔 봐요. 꼭 당장 하나의 항아리로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남편은 저를 일깨워줬습니다. “나 스스로 약간의 습관 또는 성격을 바꾸는 것마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하물며 시어머니는 이렇게 60여 년을 살아오신 분이신데 단번에 여러 해 동안의 생활습관과 일하는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저의 나타남은 안 그래도 시어머니를 필요 없는 사람처럼 느끼게 했는데 계속 이렇게 다툼을 이어가다가는 시어머니에게 고독감을 더해드릴 수 있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부갈등이 나타난 것은 기본적으로 모두 일부 생활습관의 문제였는데, 그러나 제가 트집을 잡음으로써 곧 제 잘못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수련으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단지 다른 사람을 도와 제고하도록 하면서 자신이 제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덕(德)을 모두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주었고 자신의 업력도 없애지 못했습니다. 한 60여 세의 할머니가 법을 배운 지 몇 개월 밖에 안 되는데, 이런 저와 같은 ‘노 수련생’에 대해서 참아내는데 저는 왜 관용하지 못할까요? 어느 날 시어머니가 견딜 수 없고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의 성격이 하나하나드세다고 느껴 대법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된다면, 심지어 저로 인해 수련하지 않게 된다면 누구의 잘못일까요? 인터넷상의 교류 문장 중에 수련생들은 모두 자신이 수련 이후 고부갈등이 좋아졌고 가정이 화목해졌다고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어째서 갈수록 더욱 심하게 다투게 되었을까요?
자신을 잘 찾아보니 자신의 마음이 옹색했고 줄곧 다른 사람을 개변시키려고 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저의 뜻을 따르도록 하게 하면서 자신은 오히려 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순을 만나면 기회를 찾아 안을 향해 찾아 자신을 제고하지 않고, 오히려 줄곧 밖을 향해 보았으며 한 차례씩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을 깨달은 후 마침내 용기를 내어 시어머니께 다가가 사과드렸습니다. 이것은 제가 처음으로 시어머니께 했던 사과입니다. 나중에 저도 시어머니께 관심을 기울였고 실천으로 제가 확실히 큰 병으로 바뀌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항아리로 바뀌지는 못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또 시어머니와 모순이 발생했는데 제가 사과를 마치자 시어머니는 뜻밖에도 눈물을 흘리시면서 저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며느리는 사람이 좋아. 이건 말할 나위 없는 거야. 그런데 이 성격을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네가 대법을 수련하면 개변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정작에 네가 얼마나 성격을 고쳤는지 보지 못했어. 나는 이 심장도 좋지 않은데 매번 다투고 나면 화가 나서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숨이 올라오지 않아. 화가 나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그만인데 이처럼 죽지도 않아. 계속 여기서 사람을 화나게 만들고 있어. 나는 그래도 가버려야겠어.” 저는 재빨리 시어머니를 가로막으며 마음속으로 모자가 워낙 잘살고 있었는데 제가 이렇게 오게 되면서 시어머니가 화가 나서 집을 나가시면 저는 기본적인 사람 됨됨이마저 잘 해내지 못했고, 대법 수련은 더욱 말할 수도 없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로하신 시어머니는 한평생 곁에 부모님 아니면 남편과 아들이 늘 함께 있었고 눈도 침침해진 데다가 마지막에는 저의 나타남으로 인해 이러한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야 이것이 모두 공산당 문화이고 쟁투심이 초래한 나쁜 결과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공산당 문화와 쟁투심을 고치고 자신을 단속하겠다고 결심을 내렸습니다. 지금의 시어머니는 여전히 설거지를 깨끗하게 하지 못하며 밥과 반찬에는 늘 시어머니의 머리카락이 있습니다. 저는 저의 마음을 없애야 함을 인식했고 다시는 그런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느낌이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눈이 어두워 물건을 똑똑히 잘 볼 수 없는 것이 가련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시어머니는 줄곧 저를 도와 보배처럼 사랑하며 아이를 돌봐주셨고 저에게 연공 시간을 절약해 주셨으며 또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아이가 밤에 젖을 먹으니 며느리가 편히 쉬지 못하게 되어 낮에 내가 많이 돌봐주는 거야.” 또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말했습니다. “우리 며느리는 나를 끔찍이 아껴줘요. 종래로 바닥을 닦지 못하게 하고 모두 며느리 혼자서 일을 도맡아 해요. 얼마나 부지런한지요.” 시어머니는 이미 저의 식습관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늘 앞다투어 밥을 짓고 제가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어주시며 남은 밥과 반찬은 제가 젖을 먹여야 하니 저에게 못 먹게 하며 직접 드셨습니다. 남편은 저와 시어머니가 고집을 부리며 서로 양보하지 않던 것에서부터 서로 간에 살뜰히 보살피는 것으로 돌아온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하고 위안을 느꼈습니다.
매일 밤 저는 아이를 안고 저희는 함께 법 공부를 합니다. 마침내 저희는 갓 결혼했을 때의 그 상태로 되돌아왔으며 온 가족이 화기애애하게 함께 법 공부를 하고 공동으로 정진하게 되었습니다.
원문발표: 2018년 7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7/6/3706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