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시골 사람으로 법을 얻은 지 16년이 되었습니다. 올해 51세이고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다녔기 때문에 아는 글자가 많지 않아 사람의 말 이치나 함양(涵養)을 잘 모르고, 성격이 솔직하여 거침없이 말하며, 쟁투심이 강하여 득실을 따져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 차례 분쟁 중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1. 전화위복, 뜻밖의 좋은 일이 하늘에서 떨어지다
그날은 2001년의 3월이었습니다. 마을위원회에서는 땅을 외지 사람에게 팔았다고 우리와 다퉜습니다. 남편은 공사를 부탁받아 며칠 동안 터를 다지느라 파냈고, 마을위원회의 권력이 있는 한 남자가 그것을 메워버렸습니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남편은 울분을 참지 못 하고 눈물을 흘렸고, 저는 위원회 사람에게 “왜 메워버렸나요?”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거친 어투로 “내가 메웠다. 당신이 감히 나에게 해보려고?”라고 말했습니다.
저녁 무렵에 이르러 이민자들은 남편에게 “터를 다지는 작업을 이제 시작했는데 벌써 방해를 세 번이나 받았어요. 여기에서 집을 짓지 않겠어요. 돈을 되돌려줘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다투는 것을 듣고 밥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가 지켜보았습니다. 한 여자가 그들과 욕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저에게까지 욕을 하여 저는 그 여자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며 몇 마디 당부를 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난폭하게 달려들어 저의 머리를 때렸고, 화가 난 저는 손에 있는 밥그릇으로 때려 그녀의 머리에 피가 나게 했습니다. 그녀는 병원에 입원하여 퇴원하려 하지 않았고, 그들의 세력을 믿고 저를 고소했습니다. 법원에서는 그녀가 먼저 날 때렸다는 것을 똑똑히 알면서도 상대방에게 약값 1,700위안(약 29만원)을 배상하라는 강제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저는 인정하지 않고 그들과 이치를 따졌습니다. “별 일이 다 있네요. 먼저 때린 사람은 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반격한 사람이 법을 위반했다고요? 이건 무슨 법률이에요? 국민을 위해 복무한다고 말해놓고 도무지 국민을 위한 복무는 없네요. 당신들처럼 이렇게 일 처리 하다간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들은 말이 없었습니다. 후에 법원에서는 여러 차례 우리 집으로 찾아와 돈을 달라고 했고, 돈을 빌려 집을 지었기 때문에 돈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빌릴 곳도 없었습니다.
1년 후 3월에 현 법원에서는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를 구치소에 수감했습니다. 화가 치밀어 사흘 밤낮을 자지 못하고 통곡했습니다. 저는 분한 마음에 큰 소리로 ‘이 법원도 대단히 억지를 쓰네. 나의 유일한 방법은 나가서 몇 명 죽이고 나도 죽는 것 밖에 없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곁에 있던 파룬궁을 수련하는 두 언니가 조용히 “절대 사람을 죽이지 말아요. 바보짓하지 말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의 시를 들려주었습니다.
“명예를 위하는 자 평생 화내고 원망하며
이익을 위하는 자 육친마저 몰라보고
정을 위하는 자 스스로 번뇌를 부르나니
고달픈 다툼에 일생토록 업을 빚는구나
명예를 구하지 않으니 유유자득이요
이익을 중히 여기지 않으니 인의지사요
정을 움직이지 않으니 청심과욕이라
참답게 수신(修身)하며 일생토록 덕을 쌓네”[1]
그녀들은 또 “오늘 다른 사람이 당신을 때리고 내일 당신이 다른 사람을 때리면 평생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없을 거예요. 한번만 참으면 화(祸)는 저절로 사라져요.”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그녀들이 한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언니들은 아는 것이 왜 이렇게 많아요?”라고 물었습니다. 한 언니가 “이건 우리의 지식이 아니에요. 저희 사부님의 경문, 불법의 법리입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보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대로 좋은 사람이 되고 수련인이 되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장쩌민은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하여 저희 사부님을 비방했기 때문에 우리는 사부님의 결백을 요구하고 파룬궁의 결백을 돌려달라고 주장하여 우리도 수감됐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들이 저보다 더욱 억울하고 저의 이까짓 억울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단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과 함께 경문 ‘사람 되기’를 외우고 가부좌를 했습니다. 가부좌하자 마음이 조용해지고 머리가 어지럽지도 않고 헛된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파룬궁은 정말 신기하네요. 어쩐지 언니들은 수감되어도 포기하지 않더라고요.”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파룬궁에 대해 호감이 생겼습니다. 남은 날은 매일 언니들을 따라 법공부하고 연공을 배워 연마했더니 이전의 근심거리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위가 아픈 것도 다 나았습니다. 매일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었고, 그야말로 전화위복으로 좋은 일이 뜻밖에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15일간의 구류시간이 도래했고, 구치소 소장은 저에게 생활비 300위안(약 5만1천원)을 지불하면 보내주겠다며 가족에게 전화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집에 돈이 없어요. 여기에 살면서 연공 할 것이고, 정말로 파룬궁 언니들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10일 후 아버지가 면회를 왔고, 집의 볏모가 자랐는데 아직 모내기를 못했다고 했습니다. 소장은 180위안(약 3만 6백 원)밖에 없는 아버지의 돈을 받고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는 또 친절하게 “법원의 돈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을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아 경작지가 황폐해졌기 때문에 저와 남편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까지 모심기를 했습니다. 법원의 사람들이 불과 3개월 만에 돈을 요구하러 또 우리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소장의 말이 생각나 마음속에 힘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끝이 없네요. 내가 지금 모심기를 하지 않고 민원실로 찾아 갈 거예요. 반드시 잘 처리해줘야 해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강하게 나가는 것을 보고 법원의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얼마 안 되어 법원의 편지를 받았고, 다시는 날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 이것이 모두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을 알며 화(禍)가 복(福)이 되었습니다.
구치소에서 돌아온 후 만나는 친척과 마을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궁이 저를 구했어요.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파룬궁 언니들이 저보고 대법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했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대로 좋은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과 다투지도 싸우지도 말며, 다른 사람을 많이 생각하고, 모순이 생겼을 때 자신에게 찾고, 관용을 베풀고 양보해야 하고, 평화롭게 성실하고 착하게 사람을 대하라고 알려주었어요. 만약 파룬궁 언니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곳에서 나와서는 분개하여 정말로 사람을 죽였을 것이고 저도 악보를 받았을 거예요. 앞으로 저는 결코 충동적인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곳곳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궁하오(法輪功好-파룬궁은 좋습니다)’ 이야기 하기를 몇 개월 후 다른 사람에게 무고(誣告)를 당했고, 현 구치소에 강제 연행되어 한 달 동안 불법적으로 수감되었습니다. 저는 구금기간 중에 경찰들에게 “원래 전엔 이기기 좋아하고 싸우기 좋아해 법원에서 날 구치소에 잡아넣었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 마음을 닦고 착하게 살고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는데 경찰이 또 날 구치소에 잡아넣었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경찰들은 “연공하기 좋아하면 집에서 하고 나와서 하지 말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좋은 공법은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해주고, 나쁜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데 왜 말하지 못하게 해요?”라고 하자 그들은 할 말이 없는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2. 박해를 당하고 정념으로 극복하다
구치소에서 돌아온 지 3개월 후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치는 어두운 밤을 틈타 마수(魔掌)소굴에서 두 수련생이 벗어나는 것을 도와주고, 저는 외지로 가서 난민생활을 했습니다. 이후로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얼마 안 돼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하에 외지 수련생이 저에게 가정부 일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명리정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에 2년 후 저는 딸과 남편도 데리고 와 이곳에서 일했습니다. 몇 개월 후 손아래 시누이의 아이가 성소재지에 있는 병원에 오면서 손위 시누이와 시어머니를 우리 집에서 모시라고 데려왔습니다. 그녀들은 제가 바깥에 나가 법공부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전부터 깊은 원한이 있는데다가 그녀들이 거짓말에 속아 현 ‘610’에게 전화하고 저를 모함해 저는 또 현 구치소에 잡혀 들어갔기 때문에 그녀들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수련생이 정념으로 구치소에서 나온 것이 나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소장 몇 명은 처벌을 받았고, 때문에 경찰서의 경찰은 저에 대해 고의로 보복을 가했습니다. 제가 죄수복을 입지 않고, 교도소의 규칙을 외우지 않자 제게 수갑과 족쇄를 채웠습니다. 일주일 단식한 후 경찰들이 제게 음식을 주었지만 여전히 협조하지 않자 교도관은 제가 밥을 먹기만 하면 죄수복을 입히지 않을 것이고, 구치소의 규칙을 외우지 않아도 되며, 수갑과 족쇄도 풀어준다고 하여 저는 밥을 먹었습니다.
몇 개월 후 구치소에 또 한 노년 수련생이 불법으로 수감됐습니다. 마약 범죄녀(감방방장)는 노년 수련생이 그녀에게 200위안(약 3만 4천원)의 ‘감방비’를 내지 않았다고 감방 청소하는 일을 매일 시켰습니다. 수련생의 나이가 많은 것을 보고 저는 이튿날 아침에 그녀를 도와서 변기를 닦고 판자(침대용)와 바닥을 닦았습니다. 감방방장인 마약 범죄자는 기회를 노려 복수하려고 했습니다. 어느 이른 아침에 그녀는 제가 새벽부터 청소 해 그녀를 깨웠다고 야단치며 남의 일에 신경을 끄라고 했습니다. 제가 노인을 도와주는 것도 잘못이 있냐고 하자 그녀는 화가 치밀어 수중의 담배꽁초를 제 머리에 던졌지만 저는 참았습니다. 오후에 바람을 쐬고 노년 수련생이 갈아입은 옷을 받침대 위에 두었는데 그녀는 또 트집을 잡으며 “그곳은 밥 먹는 곳인데, 나이를 먹고 그것도 몰라.”라며 질책을 했습니다. 노년 수련생은 바로 옷을 가져가며 “미안해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라고 사과했습니다.
저는 마약범죄녀가 구실을 잡아 말하는 그녀에게 “이 화장실 판자에 옷을 놓은 건데 무슨 상관 인가요. 정말 시끄럽네요.”라고 했습니다. 수련생을 위해 말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저를 크게 욕했지만 저는 화를 내지 않고 참았습니다. 순찰하는 교도관은 우리가 싸우는 것을 듣고 옳고 그름을 묻지 않고 소장에게 보고했습니다. 조금 지나 소장은 저를 감방에서 불러냈고, 당시 구치소 복도 양쪽에는 사람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교도관은 저를 교육실로 데려가 기세가 등등하게 “왜 아직 이렇게 시끄럽게 굽니까!”라고 화를 내며 저보고 잘못을 사과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나는 시끄럽게 굴지 않았어요. 시끄럽게 한건 감방 방장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소장은 흉악스러운 표정으로 “남에게 뒤집어씌우려고! 수갑 채워!”라고 했습니다. 저는 잘못이 없다고 있는 힘을 다해 반항했습니다. 이때 복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저를 바닥에 제압해놓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당신들과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왜 날 때려요?”라고 물었습니다. 한 교도관이 “바로 널 때리는 것이야, 때려 죽여도 개 한 마리 죽이는 것과 같아!”라고 흉악스럽게 말했습니다.
몇 명의 경찰은 저를 붙잡고 폭력적으로 수갑과 족쇄를 채우려고 했고 저는 필사적으로 반항하며 “파룬궁을 배우고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데 무슨 죄를 지었어요?”라고 했습니다. 한 경찰은 흉악스럽게 “때려죽여도 자살로 간주한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방에 마약범죄자도 있었는데 그가 놀라서 차마 볼 수 없어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내게 족쇄를 채우지 말라고 빌었으나 소용없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두려움이 없었기에 큰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轮大法-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줘라. 우리의 자유를 돌려줘라. 대법을 잘 대하면 하늘에서 평안과 행복을 줄 것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구호를 외치자 그들은 내 뺨을 때려 피가 났습니다. 그들이 때려도 나는 여전히 외쳤습니다. 내게 겁을 주지 못하는 것을 보고 두 다리를 잡고 감방으로 질질 끌고 가 나무판자에 내던졌어도 여전히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저녁에 이르러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으나 발정념을 하여 다른 공간의 사악을 제거하는 동시에 온몸의 통증이 악인과 악한 경찰 몸으로 전이되라고 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바람을 쐴 때 또 마당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등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러자 교도소 지도원은 저를 사무실로 끌고 가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는 강제로 30kg되는 두 번째 족쇄를 채워놓고 감방으로 끌고 가는 도중에도 여전히 구호를 높이 외치자 그 지도원은 “계속 외쳐봐라, 계속 외치면 돼지 똥을 먹게 할 것이야.”라고 협박했습니다.
이틀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저를 때렸어도 당시 전혀 아픈 줄 몰랐습니다. 사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감당해주신 것입니다. 이튿날 저녁에 발정념을 한 후에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습니다. 공중에 붉은 악한용이 나타났는데 쫓아가 발정념을 하자 그놈이 공중에서 떨어졌고 또 쫓아가 발정념을 했더니 그놈이 없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노년수련생은 제가 그녀를 도와주다가 이유 없이 당한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괴로워했습니다. 당일 그녀와 함께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수련생은 저보다 법을 일찍 얻었고 아는 법리도 저보다 많았으며 여러 차례 불법수감 당했었습니다. 그녀는 법에 근거하여 교도관과 주재 감찰에게 권선편지와 고소장을 보냈고, 대면하여 진상을 알렸습니다. 고소장을 쓴 셋째 날 수련생을 이웃 현 구치소로 옮겨갔습니다.
그날 저녁 번개가 치고 천둥이 땅을 흔드는 것 같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 교도관의 딸은 나에게 폭력적으로 수갑을 채우는 처참한 장면을 보았고 그날 저녁에 40도의 고열이 났으며, 구치소의 많은 교도관들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그들은 며칠 동안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으며, 그 중 저의 얼굴을 때린 사람은 온몸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일주일 후 교도관은 내게 음식을 주었습니다. 당시 이미 빼빼 말라서 뼈와 가죽만 남았고, 몸무게가 60kg이었는데 40kg이 채 안되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생길까봐 저를 달랬고 밥을 먹기만 하면 수갑과 족쇄를 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족쇄에 녹이 쓸어 열수 없어 그들은 쇠톱질을 해서야 풀어냈습니다.
그때 제가 있는 감방에 사형수도 있었는데 그녀는 저와 수련생에게 “일찍 파룬궁과 인연을 맺었으면 죄를 짓지 않았을 거예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진·선·인(眞·善·忍)을 지키고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 좋은 사람들이에요. 이 몇 년 동안 수갑과 족쇄를 차고 있어 행동이 불편했는데 당신들의 사심 없는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저도 당신들에게 마땅히 잘 대해야 해요.”라고 했습니다. 수갑과 족쇄를 차고 있는 기간에 생리가 왔을 때 그녀가 언제나 생리대를 갈아주었습니다. 그녀는 또 마약 범죄자에게 “또 그녀를 괴롭힌다면 이 수갑으로 당신을 때려죽일 거야. 나는 어차피 죽을 사람이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날부터 마악범죄자는 다시는 저를 때리지 않았습니다.
후에 마약 범죄자는 저에게 조용히 “제가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소장과 교도관들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것이에요.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제가 왜 당신을 괴롭히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교도관들에게 뇌물로 많은 돈을 주었는데도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어요. 그녀들이 제일 나빠요.”라고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법원이 개정하여 불법적인 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여자 교도소로 보내지는 길에 저는 여자 교도관과 소장에게 “당신들이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또 마약 범죄자보고 매일 절 때리라고 했지만 약을 먹지 않고 주사를 맞지 않았어도 저는 몸이 아프지 않았어요. 당신들이 그렇게 그녀를 돌봐 주었는데 매일 주사를 맞고도 온몸에 고통을 겪고 있어요. 파룬궁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저는 벌써 당신들에게 맞아 죽었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녀 둘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우리의 사부님은 결백하다, 우리의 자유를 돌려줘라, 대법을 잘 대하는 일념이 있으면 하늘에서 행복과 평안을 준다.’라고 교도소까지 들리게 외쳤습니다.
3. 시부모님을 잘 봉양하다
2017년 고모 여동생의 딸이 현 시내에서 고등학교 졸업반을 다니고 있었고, 매일 저녁 시아버지께서 삼륜차로 외손녀를 태우고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4월의 어느 날 저녁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시아버님의 삼륜차는 전복되었으며, 시아버지는 혼수상태로 한 달 넘게 입원하셨습니다. 여동생은 10만위안(약 1천 7백만 원) 배상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차주인은 배상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료비용도 주지 않았습니다.
시아버지께서 깨어난 후 이틀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셨고, 시어머니, 시누이, 아들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을 듣고 바나나, 물만두를 사들고 병문안을 갔습니다. 시아버지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저는 아들과 딸이 없어요. 좋은 며느리 밖에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차 주인이 배상금을 주지 않았고, 자식들은 감히 노인을 집으로 모시고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노인을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저는 남편에게 “차 주인이 돈을 배상해주지 않으면 아버님 혼자서 넘어졌다고 생각해요. 우리 집으로 모시고 가서 우리가 성심껏 보살펴드려요.”라고 했습니다.
남편도 선량한 사람이기에 매번 저의 말을 들었고, 지나간 원한을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시아버지께서 입원한 후 고모는 차 주인이 배상해주지 않는다고 몰래 비싼 남자 간병인을 여자 간병인으로 바꾸었습니다. 남편은 3,000위안(약 51만원)의 간병비를 지불하고 시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왔고, 시어머님도 우리 집으로 모셔왔습니다.
시아버지께서는 외손녀를 데리러 가다가 차 사고를 당했는데 맏형, 시누이들은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 원망심이 나오면 시부모님에게 “그때 두 분께서는 저를 고발해 공을 세우고 돈을 받으셨고, 저는 감옥살이를 당했어요. 현 ‘610’ 사람이 식당에서 두 분을 청해 식사하셨죠. 아무튼 이 집안의 며느리인데 두 분은 밥이 내려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땐 어찌 그렇게도 마음이 독하셨어요! 고발당한 후 애 아빠는 넘어져 입원했고 어머님도 연속 3번이나 넘어져 골절상을 입으셨죠. 이건 모두 나쁜 응보를 받은 것이에요. 파룬궁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돈을 써가며 두 분을 돌보지 않았을 거예요. 대법 사부님께서 저의 목숨을 구해주셨고 사부님께서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두 분께서 ‘파룬따파하오(法輪轮大法),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기억하셔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분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다만 묵묵히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마지막에 차주인 이 4만 위안(한화 674만 원)을 배상했는데 시누이는 또 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어요. 이후 장례식을 치르는데 돈이 필요해요.”라고 했습니다. 3개월 후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저와 시아버님이 쓸모없다던 아들이 그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시아버지께서 계실 때 시어머니는 매일 시아버지의 삼륜차를 타고 현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책을 보거나 연극을 보셨습니다. 50여세부터 몇 십 년 동안 이렇게 보내오셨고,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의 다리가 불편한 것을 보고 외로워하지 않으실까 걱정되어 매일 삼륜차로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동시에 시어머니도 모시고 나와 찻집까지 데려다 드렸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우리 막내며느리는 딸보다 좋아요. 나를 욕하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제게 “시어머니께서 이전에 그렇게 못살게 굴었는데도 잘 대해주시네요. 저라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진·선·인(眞·善·忍)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에요. 대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저도 이렇게 대하지 못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이웃과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나의 변화를 보고 모두 대법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두 당, 단, 대(중국 공산당,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에서 탈퇴했습니다. 남편의 한 친구는 파출소 소장으로 자주 우리 집에 놀러왔으며, 그에게도 진상을 알렸고 그도 ‘삼퇴’를 했습니다.
사실, 시어머니께서 저를 괴롭히고 모욕했던 일을 생각하면 원망심이 다시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사부님의 설법을 생각했습니다.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 사람을 구하는 도다”[2] 사부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적을 두지 말라고 하셨고, 증오하는 사람이 없어야 하며, 모든 사람은 우리가 구도해야 하는 가족이라고 하셨습니다. 반복적으로 사부님의 법을 외웠고 동시에 발정념을 통해 원망하는 마음을 제거하여 지금은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82세의 시어머님은 저의 변화를 보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대법의 특별함과 신기함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매일 밤마다 시어머니도 ‘전법륜’을 들고 함께 대법책을 봅니다. 지금 시어머니의 몸에서 교활하고, 각박하고, 억지를 부리는 예전의 흉악스러운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시어머니의 예전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다투고 싸우다가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생사의 고비에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절 구해주셨고, 우리 온 식구도 구해주셨습니다. 작년에 우리 집에서 한 무(중국식 토지면적: 우리나라 200평) 남짓 한 곳에 상앗대 한 꾸러미를 심었고, 다른 사람보다 늦게 심었지만 다른 사람들 보다 일찍 팔았습니다. 가격이 좋고 생산량이 높아 한 무쯤 되는 상앗대를 9,000위안(약 1백 53만원) 넘게 팔았으며, 다른 사람의 수입보다 많았습니다. 남편은 일 년 내내 건축공사장에서 목공 일을 하며 건강하게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세 명의 노인을 보내고 맞이하는 외에 5묘쯤 되는 경작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가족은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없는 것이 없이 모두 갖추어져 자전거와 삼륜오토바이까지 샀고 딸과 사위는 외지에서 번 돈으로 승용차와 미니버스도 샀습니다. 이 모든 것은 대법이 우리 집에 가져다 준 행복입니다!
저는 생명을 대해 사부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로지 정진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여 집착심을 많이 제거하고, 사람을 많이 구해야만 구도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가: ‘홍음-사람 되기’
[2]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2-법정건곤(法正乾坤)’
원문발표: 2018년 6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6/3/3683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