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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대법제자, 사부님께서 나의 생명을 구해주시다

글/ 영국 서양인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05년에 파룬궁(파룬따파라고도 함)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브래드퍼드대학의 학생이었다. 브래드퍼드는 영국 북부의 작은 도시이다. 나는 직장이 없어서 다시 학교에 돌아가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그 기간에 다른 학생과 집 하나를 나누어서 세를 들었는데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국학생이었다.

어느 날 나는 룸메이트와 이야기하면서 그에게 나는 줄곧 인체가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이 많아 무술, 심리학, 심리 상담과 요가를 배웠고 나의 마음과 건강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 룸메이트는 그의 중국의 한 친구가 기공을 한다고 말했다. 그가 그 친구를 말할 때 나는 그의 말을 주의 있게 듣지 않고 침묵만 지켰다.

다음 그는 나에게 다른 한 친구 어머니가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알려주었다. ‘파룬궁’이라는 단어가 마치 큰 망치처럼 나의 주의력을 불러일으켰다.

룸메이트는 말할 때 사무용 책상 앞에 앉아있었고 나는 그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 단어를 듣고 나는 즉시 앉아서 주의 깊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었다. 이것은 매우 신기하였다. 이전에 이렇게 나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호기심을 가지게 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대화를 대충 마치고 방에 들어가 인터넷에서 ‘파룬궁’을 검색했다. 내가 발견한 첫 번째는 박해에 대한 정보였기에 이 공법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나는 줄곧 박해 받고 있는 소수 단체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지난 후 나는 다른 한 하우스 메이트(같은 집에 거주하는 사람)와 리즈 도심 거리를 지나갔는데 한 중국 남성이 그녀에게 파룬궁에 관한 전단지를 주었다. 그녀는 전단지를 나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흥미를 갖던 것이군요. 아닙니까?” 나는 재빨리 그 중국 남성 앞에 가 그에게 전단지를 가리켜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라 다른 파룬궁수련생이 있는 방향을 가리켜주었다. 그들은 그때 사람들에게 파룬따파와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알리는 활동을 했다.

내가 파룬궁 자료가 많이 놓인 책상으로 갔을 때 한 젊은 여성이 나에게 이번 박해를 알려주었다. 나는 이곳을 발견한 것에 매우 놀랐기에 그녀가 뭘 말했는지 주의하지 않았다. 나는 이번 박해를 저지하는 청원서에 서명하고 멀리에 가서 일부 파룬따파 수련자가 가부좌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매우 평온해보였다. 나는 친구에게 “그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야.”라고 말한 기억이 났다.

이렇게 나는 법을 얻었다.

사부님께서 나의 목숨을 구해주시다

나는 노력하여 수련했지만 나의 수련 상태는 좋지 않은지 한참 됐다. 나는 이 글을 써야 정확한 궤도로 다시 돌아갈 것 같았다.

2015년 12월 나는 심각한 사고를 당했다. 두 자동차가 사거리 길목에서 부딪칠 때 나는 중국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 걸어 나왔는데 그 중 한 대가 가로등을 들이받아 가로등 기둥이 나의 머리에 부딪쳐서 척추가 부서졌다. 그때 나는 이 점을 의식하지 못하고 테이크아웃점에서 나온 다음 땅에 쓰러진 것만 기억났다. 한 경찰이 허리를 굽히고 나를 보았다.

내가 앉으려고 시도할 때 피가 나의 귀에서 흘러내린 것을 보았다. 나의 첫 반응은 ‘이건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였고 머리는 다시 땅에 닿았으며 다른 대법제자가 이런 정황에 부딪혔을 때 뭘 했는지를 생각했다. 나는 밍후이왕에서 본 교류문장을 생각해봤다.

나는 그곳에 누워 발정념을 했다. 나는 그때 전혀 걱정하지 않았으며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생각이 매우 강렬했다.

이 교통사고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진상을 알릴 좋은 기회가 되었으며 매우 간단했다! 처음 사고현장에 도착한 경찰부터 시작하여 구급차 안의 의료인과 병원 직원과 병실의 다른 환자들은 모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때 나는 버밍엄에서 열릴 션윈 공연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던 중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션윈을 소개하고 그들에게 프로그램을 관람할 것을 추천했다.

나는 수술할 필요는 없었지만 6일 동안 병원 침대에 있어야했고 의사가 나에게 집으로 갈 수 있다고 동의해야 했다. 이틀 후 나는 퇴원하겠다고 했는데 그 중 한 의사가 그들은 내가 반신불수가 될까봐 우려되어 한 선배의사가 MRI 결과를 보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한참 놀란 가슴을 달랬다. 나는 나의 미래를 결정하시는 분은 사부님이지 의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집에 가고 싶었지만 그땐 성탄절 기간이어서 당직을 하는 의사가 매우 적었다.

병실의 다른 환자들은 매우 고통스러워 대량의 약을 복용했다. 내가 겪은 유일한 고통은 위경련이었다. 너무 오래 누워있었기에 나는 진통제와 기타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었다. 속상한 것은 다른 환자가 이렇게 많은 종류의 약을 대량으로 먹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며칠 후 간호사가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그들은 나에게 약값 절반을 돌려줘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사부님께서 보호하시기에 당연히 필요 없는 것이다.

나는 집에 돌아간 후 왜 이 사고가 발생했는지 생각해보았다. 구세력이 내가 션윈 마케팅을 돕는 것을 저지하느라 사고가 난 건지? 나에게 집착이 있어 이용당한 건지? 두 가지가 다 있을 수 있다!

내가 거대한 업을 갚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어릴 때 늘 사냥하러 다녔다. 어느 날 나는 한 친구와 나갔다가 나무 아래에 섰다. 비둘기 한 마리가 나무 가지 위 에 있어 나는 이 비둘기를 죽였다.

후에 나는 오른쪽 다리 뒷부분 피부에 종양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한 후 나는 늘 그 비둘기가 생각났고 늘 내가 저지른 잘못이 생각났다.

이 사고가 발생한 후 장기간 나를 괴롭히던 이런 생각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그 종양도 사라졌다.

나는 병원에 가서 이 종양을 검사한 적이 없었다. 나의 다리 종양은 비둘기의 죽음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을 뿐이다. 나는 아마도 나중에 나의 목숨으로 비둘기에 빚진 것을 갚게 될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지금 빚을 이미 갚았기에 이 종양이 사라졌고 나의 생각을 괴롭히던 비둘기도 떠난 것이다.

사부님께서 나를 사고에서 반신불수나 사망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나는 적은 고통만 감당했을 뿐이지만 사부님께서는 나를 위해 많고 많은 것을 감당하셨다.

나는 진정하게 사부님께 감사한 적이 없었다. 사부님을 만났어도 감사한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사부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것은 단지 말일 뿐이다. 내가 사부님께 나의 가장 큰 존중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잘 수련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사부님을 만나다

어느 날 나는 나에게 교류회 질서를 유지해달라는 통지를 받았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사부님께서 오실 수 있으니 반드시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회의실 문 앞에서 보안을 하면 나는 사부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양 풍습대로 사부님과 악수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을 하면서 사부님을 맞이해야 하는지? 그곳은 호텔이었다. 다른 손님이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매우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나는 매우 근심이 되어 한 중국수련생에게 물었다. “나는 어떻게 사부님과 인사를 해야 합니까? 악수해야 합니까?” 그가 나에게 “당신은 여왕님과 악수할 수 있습니까?”하고 반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정확한 예의가 아니기에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없다.

나는 사부님을 잘 접대하는 것은 사부님께 문을 열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좀 서툴기에 줄곧 문 여는 연습을 했다. 내가 문을 열 때 카펫에 걸려 넘어지거나 나의 머리가 유리에 부딪히거나 다른 기타 어리석은 동작을 할까봐 두려웠다.

복도에 장애물이 좀 있어 한 대법제자가 나에게 그것을 옮기라고 했다. 내가 몸을 돌려 이 일을 하려고 할 때 사부님께서 바로 내 앞에 계시는 것을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그렇게 신속하셔서 내가 손을 들어 합장하려 할 때 사부님께서는 이미 지나가셔서 가장 먼 문으로 회의실에 들어가셨다.

회의가 끝난 후 사부님께서 곧 떠나실 때 나는 사부님에게 문을 열어드리고 합장을 했는데 사부님께서 나에게 손을 내밀어 나는 매우 놀랐고 의아했다. 내가 사부님의 손을 잡았을 때 나의 머리는 완전히 공백이었지만 이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의 아내는 후에 “당신은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당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하셨는지 알아요?”라고 말했다.

이 글을 쓴 후에도 나에게는 엄중한 병업이 있었지만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신체를 청리해주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줄곧 나의 수련을 도와 나를 제고시켜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나의 맹세를 실현하지 못했고 잘 수련하지도 못했다. 나는 꼭 방법을 바꾸어 더 많은 중생을 구하겠다.

 

원문발표: 2018년 6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6/25/3702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