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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구하는 길에서 분발해 바짝 따라잡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억에 달하는 대법제자가 법을 얻은 과정은 모두 제각각 다르다. 96년도 여름, 나는 가게 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1시 넘어 갑자기 이웃 가게에 새로 온 아가씨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반쯤 닫힌 문으로 본 그녀는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나는 그녀를 놀라게 하려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녀의 팔 아래 책 한 권이 눌려 있는데 진한 파란색의 책뚜껑에 예쁜 동그라미들이 있었다.

호기심에 단번에 책을 뽑아냈다. 깜짝 놀란 그녀는 펄쩍 뛰더니 얼른 책을 뺏어 갔다. 그리고 말했다. “이 책은 함부로 펼치는 게 아니에요. 사람을 지도해 수련하는 책이라 당신은 못 알아봅니다.” 나는 말했다. “네가 알아볼 수 있으면 나도 알아 볼 수 있어. 나 좀 빌려주라.” 그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요, 당신도 인연 있는 사람 같아요.” 그녀는 나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책 모서리를 접으면 안 된다는 등 주의 사항을 알려준 후 정중하게 책을 건네주었다.

이어서 이 아가씨는 나에게 5장 공법을 가르쳐 주고 사존께서 내 신체를 정화해 주시는 과정을 함께 했다. 나에게 많은 배려와 격려를 해주었다. 나는 심각한 위궤양이 있고 마른기침을 하며 피부 알레르기 등 질병이 있었는데 모두 나았다. 이렇게 나는 법을 얻는 행운을 가졌다.

그 기간에 잊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어느 날 오후 대략 2시쯤에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와서 물었다. 자신의 산악자전거를 누가 바꿔 타고 갔는데 못 봤냐고 물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잃어 버렸어?” 그 산악자전거는 그녀의 오빠가 3백 위안(한화 약 6만 원)을 주고 사준지 며칠 안 됐다. 당시 우리 한 달 월급은 고작 2백 위안이 조금 넘었다. 나는 의문스러워서 같이 나가 보았다. 그녀는 문 앞에 있는 형편없이 낡은 자전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 자전거는 여기에 놓여 있었는데 보세요, 누군가가 이 낡은 자전거를 여기에 놓고 내 자전거를 바꿔 갔어요.” 당시 그녀 대신 아쉬워했다. 그녀는 오히려 말했다. “됐어요,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고, 잃는 것 또한 나쁜 것인바, 당신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1] 그녀는 시종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치 남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이후에 그녀는 비굴하지도 않고 거만하지도 않게 바퀴 두 개만 남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다. 한 달 후, 그녀의 오빠는 그녀에게 다른 직업을 구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연락이 끊겼다. 그 후 매번 ‘전법륜’ 제4강 ‘실(失)과 득(得)’을 배울 때면 그녀가 생각났다.

사람 구하는 길에서 분발해 바짝 따라잡다

2011년 가을 아버지께서 수련생과 연락이 닿았다. 나에게도 드디어 중국공산당이 1999년 7.20 이래 대법을 박해한 모든 진상과 10여 년간 대법제자가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한 힘든 여정을 알 기회가 생겼다. 나는 사당의 잔인함에 놀랐고 심정은 매우 침통했다. 사존께서 제자를 위해 거대한 난(難)을 감당하시고, 많은 수련생은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세인을 구도하기 위해 혹독한 대가 내지 소중한 생명을 바쳤는데 나는 지금까지 뭘 했는가?

한동안 심적 갈등을 거친 후 걸어 나가기로 결심했다. 장마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오후 ‘인생을 속삭이다(細雨人生)’와 ‘풍우천지행(風雨天地行)’ 진상CD 두 장을 가지고 한 친구네 집에 진상을 알리러 갔다. 우산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알록달록한 간판이 쭉 있는데 어느 집이 친구네 집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휴대폰도 안 챙겨 갔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물건 사러 나올지도 몰라.’ 나는 길 옆에 서서 기다렸다. 빗발이 거세어 10몇 분 지나자 바짓가랑이가 절반 이상 젖었다. 어느 집에서도 사람이 안 나왔다. 그녀가 집에 없을지도 몰라! 왜 사전에 연락을 안 했지? 길에 가끔 차가 지나가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을 쳤다. 나는 행인들에게 진상 알릴 용기가 전혀 없었다. 참! 나는 말도 할 줄 모르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화도 나고 실망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속으로 자책했다. 집에 도착해 푹 젖은 옷을 입은 채로 창문 옆에 서서 흐릿한 비바람을 보면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법을 얻은 10여 년간 속인 속에 미혹된 장면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법공부를 깊이 하지 않아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하고 속인과 같았다. 명(名), 리(利), 정(情) 속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첩첩한 죄업을 지었다. 결혼해 2년이 넘도록 불임이 지속되자 그때서야 사존이 생각났다. 여러 차례 사존께 도움을 요청하고 약속까지 했다. 장래에 반드시 아이와 함께 대법을 수련하겠다고. 이후에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이 태어났다. 시댁은 가정 형편이 어렵고 채무도 적지 않게 있었다. 나는 또 돈을 벌기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속으로 거듭 사존께 보증했다. ‘사존, 제가 빚을 다 갚고 돈이 있으면 수련을 잘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빚을 다 갚고 집을 사고 저금도 있다. 아이도 초등학교에 다닌다. 이 10여 년간 줄곧 법속에서 사부님께 얻어 내기만 했다. 더는 대법 속에서 그럭저럭 지낼 수 없다!

현지 수련생과 연락이 안 되기에 외지 부모님 집에 가서 수련생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의 수련상황을 안 후 수련생들은 내가 한참 낙오됐다고 생각했다. 신속하게 사존의 대법서적을 한 세트 갖추어 주고 컴퓨터를 사고 프로그램을 깔아 주었다. 밍후이왕에 접속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진상용 핸드폰을 하나 주었다. 그룹 방에 MMS 보내는 방법도 알려주고 자동 진상전화로 중생을 구하는 항목에 참여하게 해주었다.

그 며칠은 수련생 집에서 먹고 자면서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각종 항목을 하는 수련생들은 내 동의를 얻은 후 나를 데리고 거리에 나섰다. 수련생들이 정념 가득히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을 이행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수련생들은 나에게 일을 하는데 급급해 하지 말고 우선 체계적으로 법공부를 하라고 했다. 왜냐면 법을 잘 배우는 것만이 중생을 구도하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돌아가면 반드시 마음을 조용히 법공부하고 연공해 심성(心性)이 제고되고 정념이 생긴 후에 직접 대면해 중생을 구하는 항목에 참여하라고 진상자료가 필요하면 먼저 나에게 제공하겠다고 했다.

떠날 때 남동생은 내 트렁크를 보면서 말했다. “누나, 누나는 말 그대로 불경 구하는데 성공했네. 삼장법사보다 훨씬 쉽게 말이지. 이번에는 소중히 여겨야 해.” 이후에 남동생은 자료를 전해주면서 여러 차례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나는 너무 멀리 낙오됐다는 것을 안다. 뛰어도 수련생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업무 외에는 거리에 나가지 않았고 한담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아이를 데리고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하고 연공했다. 매일 저녁 밍후이왕에 접속해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보았다. 수련생들의 감동적인 정법 사례는 나를 격려했다. 그 시기 나는 사존의 가지(加持)를 더욱더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저녁 매우 적게 자도 졸리지 않았고 심성에 커다란 제고가 일어났다. 아이도 재빨리 진보했다. 대법 책을 거침없이 읽었고 ‘홍음’, ‘홍음2’, ‘홍음3’을 외웠다. 남편은 수련하지 않았지만 한 번도 우리를 반대하지 않았다. ‘9평공산당’ 등 많은 진상 CD를 진지하게 보았고 대법진상을 이해했다. 그는 자주 감개무량해서 말한다. “난 진작 공산당이 나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지경인지는 몰랐어. 너무 잔인해.”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일명(一名)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개인의 해탈은 수련의 목적이 아니다. 중생을 구도함이 비로소 당신들이 올 적의 큰 소원(大願)이며, 정법 중에서 역사가 당신들에게 부여한 책임과 사명이다. 그러므로 대량의 중생들 역시 당신들이 구도할 대상으로 되었다.”[2]

지금까지 앞장서 가는 수련생은 압력을 이겨내고 비바람 속에서 사존을 따라 오늘날까지 왔다. 사존께서는 거대한 난을 감당하시고 뒤떨어진 제자를 위해 시간을 연장하셨는데 우리가 얼른 따라와서 사명을 완성하게 하기 위해서다. 휴대폰으로 그룹에 MMS를 보내면서 진상용 휴대폰에 나타나는 번호가 외지 것으로 나타나면 MMS를 받는 중생은 너무 멀게 느껴질 것이란 생각이 항상 들었다. 만약 진상자료를 중생의 집에 보내주면 사람들은 진실한 것이라 생각할 것이고 이 일을 더욱 중시해 명석하게 미래를 선택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수련생들에게 연락해 진상자료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나의 상황에 근거해 수련생들은 처음에는 소량의 단일한 내용을, 이후에는 많은 양의 다양한 진상자료를 끊임없이 제공해 주었다.

처음 자료를 배포하러 나갈 때 소책자 두 권만 갖고 나갔다. 야시장에 가서 사람들이 휴식할 때 자주 찾는 돌계단에 한참 앉아 있다가 사람이 적을 때에야 소책자 두 권을 겹쳐서 황급하게 돌계단에 내려놓았다. 심장이 마구 뛰어서 도망치듯 얼른 떠났다. 남편은 오히려 바른 기운이 충분했다. 남편이 말했다. “무릇 정의로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알면 모두 구원의 손길을 내밀 거야.” 어떤 때 남편은 일부 자료를 갖고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배포하곤 한다. 일부 공장의 직원주차장도 차례로 돌았다. 방화벽 돌파프로그램 CD도 몇 장씩 가지고 다니다가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한 장 놓고 누군가가 가져가는 것을 보고 떠나곤 했다. 남편이 말했다. “이렇게 좋은 걸 낭비할 수는 없지.”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면서 우리의 정념은 점점 강해졌다. 나는 저녁에 아이를 데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주변의 향(鄕), 진(鎭)에 진상자료를 배포하면서 길 따라 스티커를 붙이고, 휴대폰을 갖고 다니면서 MMS를 보냈다. 처음에는 저녁 8, 9시 또는 더 늦게 나갔다. 나중에 발견했는데 거리에 감시카메라가 매우 많아 폭로되기 쉬웠다. 그래서 저녁 6시 발정념을 끝내고 나갔다. 사람이 많을수록 발각되기 어렵다. 매번 문을 나설 때 무릎을 꿇고 사부님께 가지(加持)와 보호를 요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나와 손발이 잘 맞았다.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일정 거리를 두고 아들 뒤를 따르면 아들은 자료를 두둑이 안고 영리하게 도로변 집집마다에 배포했다. 문 앞의 자전거 바구니, 오토바이 트렁크, 대나무 의자, 문손잡이.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다 배포하면 또 차에 와서 가져갔다. 우리를 주의해 보는 사람이 있으면 아들을 부른다. 그러면 즉시 멈추거나 쭈그리고 앉아 한참 논다. 사람이 가고 나면 급히 계속 배포했다.

어느 날 저녁 우리는 좀 먼 마을에 갔다. 그 마을은 매우 컸다. 우리는 한 사람이 한 쪽을 맡고 집집마다 배포했다. 가급적이면 자료를 땅바닥에 놓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아들은 자료를 대나무 의자에 누워 바람을 쐬는 사람의 배위에 놓았다. 그 사람은 깨어나서 ‘음’하고 자료를 들었다. 아들과 나는 깜짝 놀랐다. 전봇대나 벽에 진상 스티커를 붙일 때 나는 오토바이를 고정시킨다. 아들은 신속히 오토바이 의자를 밟고 발돋움하고 붙인다. 아이는 나이가 어리지만 경각심이 높았다. 여러 차례 멀리 있는 순찰 오토바이나 경찰차를 보고 나에게 알렸다. 우리는 에돌아가거나 멈춰 서서 경찰차가 지나가면 계속 붙였다.

한번은 비가 온 후였다. 우리 모자는 각자 자료를 한 가방씩 메고 좀 훼손된 도로를 걷고 있었다. 움직이는 블록에서 수시로 빗물이 튕겨 나와 우리 신발 속에 흙탕물이 들어갔다. 끈적끈적했다. 나는 왜소한 아들을 보았다. 목에 자료가 가득한 가방을 걸고 정신을 집중해 집집의 문에 걸었다. 다시 양측 아파트의 중생을 보니 그들은 마작과 카드를 하거나 회식을 하거나 또는 소파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보고 게임을 했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자비심이 나왔다. ‘중생이여, 얼른 깨어나세요. 대법제자가 당신들을 구하러 왔습니다. 목숨을 구해주는 진상을 받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존의 보호 하에 대략 1년의 시간을 이용해 인근의 몇 개 향, 진과 주변의 마을에 다른 내용의 자료를 한 번 돌렸다. 기간에 고무적인 일이 많이 발생했는데 몇 가지 예를 들겠다.

한번은 아들을 데리고 션윈CD를 배포하러 가는 길에 상가들에서 이벤트를 하는 것을 보았다. 세일 상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가게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토바이를 가까이 대고 가방에서 포장이 정밀하고 아름다운 션윈CD를 꺼내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이 CD는 천하 제1쇼로 불리는 중국인의 노래와 춤 파티 CD로 우리 중화민족의 5천년 신전문화를 선양합니다. 기세가 웅대한 동서양 밴드가 라이브로 연주합니다 ……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물었다. “얼마입니까?” 나는 말했다. “무료입니다.” 사람들은 와르르 몰려들어 다투어 가져갔다. 나와 아들은 미처 돌볼 겨를이 없을 지경이었다. 마지막에 얻지 못한 사람이 절박하게 물었다. “집에 또 있습니까?” 나는 매우 미안해하며 말했다. “아시는 분들끼리 서로 돌려서 보십시오!”

한번은 어느 시골에 장이 섰다. 저녁에 길 양 옆에 차량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우리는 VCD를 두 가방 가득 챙겨 식구대로 다 나왔다. 내가 한쪽에, 남편과 아들이 다른 한쪽으로 갔다. 남편은 나에게 고급 차량에 배포하라고 일깨워 주었다. 저가 차량에는 플레이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밀도가 높은 인파 속에 아이의 작은 키가 큰 몫을 했다. 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들이 가져간 한 가방을 다 배포했다. 반시간 후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놀러가고 나는 계속 배포했다.

돌아올 때 일부 차량도 시동을 걸었다. 여러 대의 차량에서 VCD를 플레이 했는데 소리가 매우 컸다. 게다가 차 창문도 올리지 않았다. 행인이 많기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행인들은 연이어 걸음을 멈추고 들었다. 보시라이(薄熙來)가 대법제자를 박해한 죄악과 국제조사(國際追查) 통지 등 내용이었다. 남편은 격동돼 내 어깨를 힘 있게 두 번 두드렸다. 나는 내심 사부님의 배치에 감사드리고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세인들에게 감탄했다.

대면해 진상을 알리다

대면해 진상을 알리는 것은 거의 근무환경 중에서 했다. 나의 직업은 성과급을 받는 일이기에 시간상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어느 공장에서 주문을 받으면 사장님은 우리에게 전화하여 그리로 보낸다. 노동자의 유동성도 매우 커서 매번 새로운 얼굴이 있다. 나는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했다. 근무 중 적극적으로 작업에 익숙하지 않는 노동자를 도왔으며 잘하지 못해 다시 만들어야 하는 건 모두 골라내 자발적으로 다시 만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나와 함께 일하기 좋아했다. 사장에서 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내가 대하기 편하고 득실을 따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비교적 순조로웠고 거의 다 탈퇴시킬 수 있었다.

다음은 진상을 알고 삼퇴해 복을 받은 예를 들겠다.

우리 마을에 안후이성 출신의 여성이 세 들어 살고 있는데 고혈압은 가족 내력이었다. 삼십 초반에 큰 딸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혈압이 200을 넘었다. 게다가 몸무게도 끊임없이 증가해 둘째를 임신하기 전에 병원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의사는 그녀에게 혈압계를 사서 팔에 부착하고 매일 혈압상황을 주시하라고 했다. 한동안 지난 후 의사가 낸 결론은 ‘임신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임신하면 생명에 위험이 나타날 수 있다’였다. 우리 마을에 앞전에 이런 병례가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임신한지 6개월 됐을 때 혈압이 계속 올라 제왕절개를 했고 아이는 인큐베이터에서 지내게 됐다. 결과 모자는 차례로 모두 20여 만 위안(한화 약 3천 6백만 원)을 썼다.

내가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녀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고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했다. 이후에 그녀는 임신했고 4개월 넘었을 때 신체에 여러 가지 불편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그녀는 매우 두려워서 온종일 걱정에 휩싸였다. 나는 그녀에게 진상호신부를 한 장 주고 성심껏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眞)·선(善)·인(忍)은 좋습니다”를 염하라고 알려 주었다. 그녀는 소중하게 호신부를 베게 커버 속에 넣었다. 그리고 매일 성심껏 염했다. 결과 그녀는 만삭이 되어 순산했고 4킬로그램이 넘는 통통한 딸을 낳았다. 출산 도중에 혈압은 기본적으로 안정적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녀의 병례를 본 의사는 연속 신기하다고 하면서 불가사의하다고 했다.

진상자료를 줄곧 외지에 의존했는데 매우 불편했다. 이후에 수련생의 격려 하에 스스로 자료 만드는 것을 배우기로 했다. 신속히 수련생은 프린터 주문을 도와주었고 자료점의 한 수련생은 세심하고 인내심 있게 프린터의 다양한 조작방법을 알려 주었다. 나는 보물을 얻은 것 같았다! 스스로 자료를 인쇄할 수 있으니 많이 편해졌다. 뭐가 필요하면 뭘 만들었다. 나는 너무 기뻤다. 자신이 직접 만든 소책자를 보면서 ‘성공’의 희열을 느꼈다.

오랫동안 현지 수련생을 찾지 못해 고생했다. 여기에는 대법제자가 많지 않기에 내가 반드시 이곳의 중생을 구도할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 해 인쇄하고 포장하고 배포했다. 지방 진상 간행물이 한 기 발표되면 우리도 한 기 배포했다. 일할 때 진상 휴대폰을 기계 위에 놓고 단체 MMS 발송을 중단하지 않았다.

사존께 요청드리는 것을 잊지 않다

중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보기에 위험한 일에 부딪히면 사존께 요청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존께서 수시로 우리를 가호해주신다는 것을 확고히 믿는다. 예를 몇 가지 들겠다.

한동안 스티커를 붙였던 일부 지역의 은폐된 곳에 경찰차가 정차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차 안에 경찰이 휴대폰을 갖고 놀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잠복근무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하여 다른 곳을 선택해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어느 날 저녁 익숙하지 않은 길을 따라 모 진에 갔다. 그 길은 공사 중인데 아직 개통되지 않은 걸 몰랐다. 길 옆에 승용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오토바이 불빛을 이용해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이 없었다. 차를 돌리니 길 옆에 세운지 얼마 안 된 전봇대가 보였다. 전단지도 안 붙어 있고 깨끗했다. 나는 스티커를 꺼내 아이에게 높이 붙이라고 했다. 나는 그 아래에 마크 펜으로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썼다. ‘好(좋습니다)’자를 아직 못다 썼는데 뒤에서 ’덜컥‘ 소리가 나더니 차문이 열렸다. 돌아다보니 두 사람이 그 승용차에서 내렸다. 나는 얼른 핸들을 돌려 떠났다. 그 두 사람은 재빨리 차에 오르더니 시동을 걸었다. 나는 좀 멍해졌다. ‘어디로 가지?’

큰 길로 가면 승용차가 더 빠를 것이고 작을 길로 가면 모 진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전방에 길을 차단하라고 연락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마음을 다잡고 사존께 말씀드렸다. “사존, 제자가 위험에 부딪혔습니다. 사존께서 저들의 차를 고정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오토바이 등을 끄고 되도록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브레이크 등이 우리가 가는 방향을 나타낼까 봐였다. 어느 정도 나간 후 뒤돌아보니 그 차는 정말로 따라오지 못했다. 전진했다 후진했다 하면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웃었다. 진짜 위험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큰 길에 올라 모 진에 들러 파출소 문 앞의 경찰차에 ‘풍우천지행(風雨天地行)’ CD를 한 장 놓았다. 그리고 가져간 자료를 전부 배포하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 왔다.

한번은 ‘9평’을 배포하면서 연속 6개 마을을 돌았다. 오토바이는 전기가 거의 다 소모됐다. 마지막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는 오르막이라 오토바이는 매우 힘들어 했다. 나는 좀 다급해졌다. 집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 즉시 사부님께 요청드렸다. ‘오토바이에 전기가 거의 다 소모됐습니다. 사존께서 오토바이가 조금만 더 견지하게 해 주십시오.’ 관성을 따라 다리에서 내려 핸들 손잡이를 틀자 뜻밖에도 속도가 올랐다. 계기판을 힐끗 봤더니 게이지가 가득 찼다고 나타났다. 사존의 보호에 감사드렸다!

어느 날 저녁 오토바이를 잘 세워놓고 아이의 손을 잡고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다. 양 옆의 문손잡이에 진상자료를 걸면서 골목 끝에까지 갔을 때였다. 어렴풋이 앞에 자그마한 막이 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유심히 살피지도 않고 계단에 올라 자료를 걸고 금방 돌아서는데 아이가 단번에 내 손과 팔을 붙잡았다. 눈은 땅바닥을 향하고 작은 소리로 불렀다. “엄마!” 흠칫하고 내려다보고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비대한 셰퍼드 한 마리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두 앞다리를 내밀고 머리를 들고 귀를 세우고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멈춘 발은 거의 그것의 발과 닿았다. 셰퍼드는 그렇게 조용히 엎드려 짖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우리가 금방 이 골목을 벗어나자 뒤에서 셰퍼드가 마구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단번에 알아챘다. 우리가 이 골목에 들어서서부터 사존께서 그것을 제압하셨던 것이다. 사존의 보호에 감사드렸다.

풍파

수련생이 나에게 보내온 CD는 보시라이와 그의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가 다롄 시체가공공장에서 실시한 죄악을 폭로한 것이었다. 공포적인 화면이 많았는데 모골이 송연했다. 남편은 미간을 찌푸리고 일부분만 보고 더 이상 보지 못했다. 이때부터 내가 아이를 데리고 자료를 배포하러 나가는 것을 극력 말렸다. 중국공산당이 이미 악마로 변했기에 만에 하나 우리가 그것의 손에 떨어지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나도 한동안 두려운 마음이 생겨 멈췄다. 집에서 법공부를 하고 재빨리 자신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존께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시면서 모든 중생을 구도하신다. 거대한 난을 감당하시면서 우리를 위해 시간을 연장하셨다. 우리는 오로지 정진하여 세 가지 일을 잘 해야 사존의 제도에 미안하지 않는 것이다.

중생을 구하는 것은 나의 사명이고 이 세상에 온 큰 염원이다. 사존께서는 나를 위해 생생세세에 조성한 큰 죄업을 감당해 주셨고 나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 나는 반드시 얼마 남지 않은 정법수련의 길을 잘 가야 한다. 그리하여 남편을 피해 몰래 나가서 자료를 배포했다. 남편은 박해당할까 봐 두려운 나머지 나에게 손찌검을 했고 그래도 나를 저지하지 못하자 노여움을 아이에게 풀었다. 하지만 아이도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나와 함께 중생을 구하러 갔다. 마지막에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묵인했다. 그리고 과묵해지고 많이 가라앉았다. 나는 사존의 법이 생각났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3] 그 후 발정념으로 남편의 배후에서 그가 법을 얻는 것을 저지하는 일체 사령(邪靈)요소를 깨끗이 제거하고 일상생활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알뜰히 보살폈다. 남편은 서서히 많이 바뀌었다.

나와 아이가 자료를 배포하고 집에 들어서면 남편은 우리를 보면서 말한다. “나는 줄곧 사부님께 기도했어. 당신들의 평안을 보호해 달라고.” 우리는 다 웃었다. 나는 기회를 타서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 법공부 해요. 금생에 우리가 한 가족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존의 세심한 배치예요. 당신은 꽤나 선량한 사람인데 늘 대법 문밖에서 보기만 하는 건 너무 아쉬워요.” 남편은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드디어 어느 날 저녁 나와 아이가 법공부 할 때 남편은 물 한 컵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와 정중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법공부를 할 거야!”

고난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고 중생을 구하다

어느 날 내가 근무한적 있는 한 가공공장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장에 주문을 받았는데 나보고 와서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우리 몇 명이 가서 밥을 한 끼 먹었다. 헤어질 때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만약 모 지역에서 일을 저지르면 절 찾아오십시오. 저는 모 지역 국보대대 부 대대장과 친분이 있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회식합니다.” 당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내가 모 지역에서 일을 저지를까? 나는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일을 저지를 수 있지?’ 난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보름 후 모 지역의 이 국보대대장이 사람들을 이끌고 우리집에 뛰어들어 나와 남편을 납치하고 가택을 수사했다. 그제야 나는 내 수련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식했다. 자신에게 누락이 있어 구세력이 빈틈을 탄 것이다. 수련의 부족점이 점차 폭로됐다. 한동안 나는 수련을 느슨히 하고 일을 하는 것으로 수련을 대체했다. 자료를 인쇄하면서 법공부를 하니 법공부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일을 좀 많이 하고는 스스로 일반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신도 모르게 자심생마(自心生魔)를 했다. 게으름 때문에 5장 공법을 단번에 하지 못하고 연공하면서 입정(入靜)하지 못했다. 자비심 수련이 부족하고 자주 동태망(動態網)을 둘러보고 교류문장을 읽을 때 수련생의 부족함을 주시했다. 또 수구도 안 하고 과시심이 있으며 색욕심을 철저하게 제거하지 못했다. 이때 나는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았고 아울러 사존의 자비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했다. 사존께서는 제자들이 수련에 정진하지 않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조급하시다!

국보대대장은 남편의 진술을 받은 후 나를 심문했다. 나에게 다른 수련생을 팔라고 강요했다. 감옥경찰도 공안과 협력해 박해에 참여했다. 생필품을 구매하지 못하게 하여 맨발로 지냈고 가족이 보낸 옷도 감옥경찰이 억류해 놓았다. 이때 사존의 시가 머릿속에 들어 왔다. “정법은 시공을 초월한 급박한 것인지라 거대한 난에도 뜻 굽히지 않고 사악이 날뛰어도 길 잃지 않으며 먼지 쓸어내듯 악을 제거하네 제자들 대법의 길을 바르게 걸으니 천지에 빛 비춰 악을 모조리 제거하네 정진하는 법도(法徒)들 추위 속 매화이거니 만고의 간난신고 오직 이 한차례 위해서라”[4] 나는 깨달았다. 지금은 커다란 시험 앞에서 신사신법하여 정념으로 고난을 돌파할 수 있는지 보는 시기다. 나는 반복적으로 이 시를 외우면서 일념을 확고히 하고 사존께 말씀드렸다. ‘어쨌든 저는 수련생을 팔아먹지 않을 겁니다. 사존께서 결정해주십시오.’ 결과 연속 수차례 심문과정에서 사존께서 나에게 지혜롭게 대처하라고 일깨워 주셨고 국보는 남편에 대한 불구속 입건 박해를 취소했다. 사존의 제자에 대한 보호에 언어로 다 감사드릴 수 없다.

요괴의 소굴에서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다. 매일 두 번의 정좌(靜坐)와 뉴스 보는 시간을 이용해 발정념 했다. 감금된 이튿날 감방의 사람에게 파룬따파가 세계에 널리 전해진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감옥경찰은 나를 다른 감방으로 이감시켰다. 감옥경찰은 비교적 못된 수감자를 배치해 나를 감시하게 하고 누구도 나에게 생필품을 주지 못하게 했다. 나는 좀 무기력해졌다. 속으로 끊임없이 물었다. “사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때 한 사람이 내 옆에 앉아 작은 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파룬궁인가요?” 내가 머리를 끄덕이자 그녀는 또 말했다. “저는 당신들에게 매우 탄복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두 가지 일은 하면 안돼요. 첫째, XX당이 나쁘다고 하지 마세요. 왜냐면 당신은 지금 그것들에게 잡혀 있기 때문이에요. 이들은 당신과 이치를 논하지 않아요. 둘째, 금식하지 말아요. 금식하면 다른 사람들이 오해해요. 당신들 파룬궁이 금식하여 자살한다고요.” 나는 매우 경악했다. 그녀는 또 말했다. “나는 진상을 알아요. 탈대도 했고요. 당신들의 사람이 밤낮 며칠 동안이나 수갑을 차고 매달려 있는 참상을 보았어요. 요즘은 당신도 괴롭힐 겁니다. 좀 약게 놀아요. 생활에 어려움이 있으면 제가 도와줄게요.”

얘기 중에 나를 감시하는 몇 사람은 다수가 악당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각자 안건을 말할 때 사건 담당자를 크게 욕했다. 그녀들을 얼리거나 윽박질러 자백하면 관대히 처리한다고 속였고 자백 결과 종신형을 살게 됐다는 등등이다. 나는 ‘9평’에서 중국공산당의 ‘가짜, 악, 투쟁’ 본질을 폭로한 예를 몇 가지 들었다. 그녀들은 매우 인정했다. 나는 이 기회에 이 몇 사람에게 삼퇴를 해주었다. 조장도 탈당했다. 이때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모두 못들은 척했다. 나는 매우 기뻤다. 매일 자발적으로 바닥을 닦았다. 사람들은 모두 말한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신발도 없고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도 이렇게 평화롭고 낙관적이며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아름다움을 그녀들에게 말해주었다.

구치소의 노역은 매우 심해 하루가 끝나면 모두 힘들어서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홀가분한 나를 보며 매우 부러워했다. 한동안 지나자 사람들은 내가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그런 사람과 전혀 다르다고 했다. 열정적이고 선량하며 남을 돕기 좋아한다며 모두 나와 마음속 얘기를 하기 좋아했다. 그리고 일부 생필품을 몰래 찔러 주기도 했다. 나는 가능한 다른 사람이 준 물건을 아꼈다가 새로 온 사람과 아직 영치금이 없는 사람에게 주었다. 50세 좌우의 아주머니가 있는데 예전에 허리를 다친 후 등이 활처럼 굽어서 솥을 엎어놓은 것 같았다. 가족이 아직 영치금을 넣어 주지 않아 머리 감을 때 물로 헹굴 수밖에 없었다. 샴푸 한 봉지를 그녀에게 주었더니 그녀는 뜻밖에도 소리 내 울었다. 이후에 매우 순조롭게 그녀를 탈대시켰다. 그녀는 나에게 몰래 알려주었다. 자신의 한 친척도 파룬궁을 연마하는데 나가면 나를 데리고 이 친척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싸움하고 들어온 젊은 부인은 내가 진상을 알리고 탈대한 후 작은 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녀는 예전에 ‘큰 일(마약밀매를 가리킴)’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일년 내 방방곡곡을 다녔다. 이번에 뜻밖에도 얕은 도랑에서 배가 뒤집혔다. 나는 대법 법리로 그녀를 일깨워 주었다. 선악에 응보가 있는 것은 하늘의 이치이기에 출소하면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했다. 그녀는 알아들었고 눈물이 글썽했다. 며칠 후 그녀는 다른 감방으로 이감될 때 자신의 머리를 묶었던 고무줄을 풀더니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떠났다. 그녀는 진작 눈치 챘다. 내가 쓰레기봉투를 묶는 고무줄로 머리를 묶고 있었다는 걸. 나는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중생이 진상을 알면 자연적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한다.

체격이 매우 작은 이혼한 30여 세 젊은 여성이 있었는데 들어올 때 역시 맨발이었다. 조장은 죄수복 한 벌을 가져다 그녀에게 주고 자신의 일을 보러 갔다. 그녀는 죄수복을 입고 바보처럼 복도에 서 있었다. 한쪽 발을 다른 한쪽 발 위에 놓고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누구도 그녀를 아는 체 하지 않았다. 나는 판자에서 뛰어 내려 공용 물품에서 슬리퍼 한 켤레를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주저하며 감히 신지 못했다. 나는 신발을 들고 그녀의 발에 신겨 주면서 말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얼어서 병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여기선 집과 달라서 아프면 엄청 고생이야.”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후에 누군가 나를 말렸다. 뜻인즉, 자신도 신발이 없으면서 주제넘게 조장이 할 일을 하느냐, 다음에는 눈치 없게 나서지 말라, 자신이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다 들은 젊은 여성이 겁에 질려 나에게 물었다. “왜 늘 맨발로 있어요? 옷도 홑옷이고, 가족이 챙기지 않아요?” 나는 이 화제를 빌어 그녀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려 주었다. 나는 나를 책임지는 사부님이 있기에 춥지 않다고. 그녀에게 성심껏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眞)ㆍ선(善)ㆍ인(忍)은 좋습니다’를 염하면 사부님께서 반드시 그녀를 보호해 주신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단, 대에서 탈퇴했고 얼굴에 웃음이 나타났다. 어느 날 아침식사 때,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절인 오리 알을 하나 주었다. 그녀는 흰자를 자신의 그릇에 담고 노른자를 내 그릇에 넣어 주었다. 나는 얼른 숟가락으로 퍼서 돌려줬다. 그녀가 들어온 후 지금까지 아무도 영치금을 넣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매우 단호하게 노른자를 다시 나에게 주면서 말했다. “제 마음이에요. 반드시 드셔야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침묵했다.

어느 날 저녁 또렷한 꿈을 꾸었다. 목이 너무 말라 온데 물을 찾고 있는데 길 옆에 어두운 작은 집이 하나 보였다. 들어가 보니 큰 항아리가 몇 개 있었고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들어 있었다. 마실 수 없어서 돌아서서 나오려는데 머리채가 잡혔다. 온 몸이 더럽고 우람한 남자가 내 머리채를 잡고 머리를 젖히더니 항아리 속의 더러운 물을 한 바가지 퍼서 나에게 먹였다. 이때 남편이 문 앞에 나타나 이 상황을 보더니 질겁하며 소리쳤다. “○○, 넌 끝장이야, 넌 끝장이야.” 나는 놀라서 단번에 깨어났다. 이튿날 몸이 불편했다. 머리는 깨진 것처럼 아프고 서서히 눈, 코, 목구멍도 아팠다. 얼굴 전체 피부가 타 들어 가는 것처럼 아프고 감기 몸살에 걸린 것처럼 온 몸의 뼈가 아프고 걸음이 불안정했다. 저녁에 잘 때 코가 막혀 입을 벌리고 호흡해야 했다. 입안이 매우 말랐다.

사흗날 아침, 허우적거리며 일어나니 저녁에 당직을 선 한 사람이 다가와 말했다. “당신 때문에 어제 저녁에 놀라 죽는 줄 알았어요. 호흡이 있다가 없다가 했는데 우리는 누구도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못했어요. 얼른 의사한테 가보세요.” 나는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말했다. “괜찮아요. 필요 없어요.” 오후에 숨도 못 쉴 정도로 기침이 심하게 났다. 조장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은 토요일이라 의사들은 출근하지 않아요. 문단속도 심해서 통풍이 안 됩니다. 당신 이 병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면 안 되니까 반드시 의사에게 보여야 합니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이건 병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일은 더욱 없고요. 얼른 나을 겁니다.” 그녀는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저녁에 정좌하는 시간이 됐다. 나는 속으로 사존께 말씀드렸다. “사존, 제자 사존께 가지를 요청합니다. 제자의 난(難)이라면 제자가 감당하겠습니다. 만약 구세력이 강요한 박해라면 제자는 조금도 감당하지 않겠습니다. 사존께서 결정해 주십시오!” 이 일념이 나가자 목구멍 쪽에 한번 잡아당기는 듯 했고 몸이 단번에 많이 홀가분해 졌다. 전반 정좌과정에 기침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정좌가 끝난 후 사람들은 나에게 몰려들어 신기해하며 물었다. “나았어요? 어떻게 기침을 한 번도 안 해요? 신기하네!” 나는 말했다. “제 사부님께서 절 대신해 감당해주셨어요.”

이 일을 통해 많은 사람이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고 진상을 알고 삼퇴했다. 그 후 한 마약범은 자주 합장하고 사람들에게 염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 나는 사존께서 말씀하신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한다는 법이 생각났다. 사존께 감사드렸다!

이후에 나는 불법 판결문을 받았다. 70이 다 된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자네처럼 좋은 사람이 이런 작은 방안에 이렇게 오래 갇혀 있다니 정말로 천지자연의 이치로 용납이 안 되네. 자네가 진선인으로 정신을 지탱하니 말이지 아니면 진작 미쳤을 것이네.”

감옥에 보내진 후 즉시 격리하고 전향을 강요당했다. 하루 24시간 감시를 당했다. 그녀들에게는 정신에서 육체에 이르기까지 한 세트의 사악한 전향 수단이 있었다. 나는 본의 아니게 전향했다. 출소한 후 현지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엄정성명(嚴正聲明)을 도와주었다.

후기

나는 사존의 최근 2년 최신 설법을 공부했다. 사존께서는 법속에서 대법제자는 자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박해자에 대한 증오를 갖고 원만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출소하기 전에 나는 줄곧 공안과 감옥, 박해에 참여한 모든 사람을 미워하고 있었다. 이번 노크운동에서 예전에 나를 체포했던 국보경찰과 대면했다. 그의 양쪽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것과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연민의 마음이 생겼다. 인사가 오고 간 후 나는 대법을 끝까지 수련한다는 태도를 밝혔다. 그리고 말했다. “오직 진선인만이 현재 도덕이 타락된 사회를 개변할 수 있습니다.” 그는 묵인하면서 화제를 돌려 일상적인 얘기를 좀 하다가 떠날 때 말했다. 일이 있으면 그를 찾으면 도와줄 수 있다고. 그 순간 나는 그의 서글픔을 보았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과거에 맹목적으로 장쩌민 집단을 따라 대법제자를 박해한 데에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나의 직장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에 언급한 그 친구는 내가 집에 돌아온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찾아와 그녀의 공장에 출근하게 했다. 그녀가 새로 개업한 공장은 이미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서 수익성이 끊임없이 오르고 있었다. 지금 한창 규모를 키우고 있는데 일손이 시급했다. 그녀가 나에게 제시한 조건은 매일 8시간 근무하고 월급은 5천 위안(한화 약 1백만 원)이었다. 사존께 감사드린다. 사존께서 진작 나의 직업을 배치해 주셨던 것이다. 지금 이 친구는 할머니가 됐다. 나에게서 대법과 대법제자가 박해당한 이야기들을 듣고 나서 말했다. “당신들은 정말로 속세중의 진수자(眞修者)입니다. 사람들을 탄복시키고 감동시킵니다.” 나는 각각 그녀의 남편, 아들, 며느리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해 줌으로써 수년간 품었던 소원을 이뤘다. 나는 매일 출근하여 MP3로 ‘9평’, ‘해체당문화’ 등을 틀어 놓는다. 공장 안 사람과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슬기롭고 자비롭게 진상을 똑똑히 알려 삼퇴를 시킨다.

예전에 굽은 길을 걷고 곤두박질을 친 제자가 여전히 사존께서 연장해온 소중한 시간 안에서 수련할 수 있음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제자는 사존의 위대한 은혜와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릴 언어가 없다! 온 가족과 함께 무릎 꿇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나에게 사심 없는 도움을 준 모든 수련생들에게 인사를 올린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4]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3-오직 이 한차례를 위해’

 

원문발표: 2018년 6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새롭게 수련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6/10/3685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