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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 제자, 4900시간으로 수련 중의 맹세를 실천

글/ 서양인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서양인 파룬궁수련생으로서 1996년 6월에 뉴욕에서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최근 나는 유창하게 중문 ‘전법륜’을 읽을 수 있고 중문 법공부 팀에 참가해 법공부할 수 있게 됐다. 나에게 있어 법공부는, 영어로 읽었을 때의 평범함과 얄팍함에서부터, 지금 중문으로 읽었을 때의 완전히 집중하고 에너지로 가득 차며 많은 도를 깨우칠 수 있는 상태로까지 변화를 가져왔다. 나의 이야기는 기적이 아니라 길고 지루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 수련 과정이다. 그중에는 확고한 의지와 탐구가 필요했고, 또한 집착을 버리며 자신의 길을 걸을 것이 필요했다.

방금 대법 수련을 시작했을 때 많은 서양인 수련생이 아주 빨리 중국어를 배웠지만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내가 2001년 베이징 톈안먼에 대법을 실증하러 간 후 변화를 가져왔다. 서양인이 중국어로 중국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은 진상 알리기에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아주 바쁘다 보니 나에게는 정식으로 중국어 수업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중문 ‘전법륜’을 읽기로 했다. 내가 영문 ‘전법륜’을 숙달했기에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논어’를 배운 후 너무 어려워 금방 포기했다.

1년 뒤, ‘전법륜’ 병음 버전(拼音版)을 받은 후 한 번 더 시도해보려고 결심했다. 기본 성조를 배우니 내가 배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1년이 지난 2004년 쯤, 나는 법공부 팀에서 공부할 때 병음을 읽을 수 있게 됐고, 성조가 정확하다고 일부 중국수련생들의 칭찬을 받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나의 영어 법공부 상태는 갈수록 엉망이었다. 늘 피로를 느꼈고 법공부할 때 동시에 머리에서 세 가지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법공부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힘든 일이 돼버렸다. 이건 바로 잡아야 할 착오임이 분명하다. 반대로 내가 중문 병음을 읽을 때 비록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완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영문으로 읽는 것을 멈추고 빨리 중문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완전히 몰두해 중문을 배운다면 유창하게 읽기까지 1년을 초과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나는 각종 문제를 자습하는 데 능숙했다. 중문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전법륜’도 고작 332페이지밖에 안 되니 날마다 한 페이지 배우는 것은 문제가 없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2007년 나는 중국어 사전 판독기 프로그램을 구매했다. 이로써 한자를 배울 수 있고, 아주 빨리 발음과 영문번역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이는 나의 평소 법 공부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하나의 장애를 조성하기도 했는데, 이유는 모르는 단어를 아주 쉽게 찾을 수는 있었지만 기억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나의 진보는 상당히 느렸다. 날마다 적어도 한 시간은 포켓용 기기를 들고 읽었고 하루도 빠짐없이 배웠지만 중문 책을 들었을 때 여전히 한 단락을 넘게 읽지 못했다. 나는 여러 가지 학습 기교, 예를 들면 내가 모르는 글씨를 휴대용 카드에 적어 읽기 편하게 만들었지만, 여전히 효과가 없었다.

2014년쯤, 나는 더 포켓용 기기로 읽지 않았다. 하지만 날마다 책을 한 시간 읽는 것이 더욱 큰 도전이었다. 이때 나는 책의 글자를 75% 정도 알고 있었지만 두 구절을 채 읽기 전에 반드시 단어 하나를 찾아야 해서 정말 낙심했다. 가끔 머리가 폭발할 것 같고 더는 계속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 밖에 읽는 속도가 아주 느려 9강을 다 읽으려면 6개월이 걸렸다. 시간 낭비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고, 1강부터 9강까지 자주 보지 못해 내 수련에 영향 줄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진보가 느려 아주 절망했다.

이때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셨다. 짧은 시간 내에 내 주위에 편리한 중국어 법 공부 팀이 세 개 나타났다.

단체 법공부 중에서 집착을 버리고 신속히 진보

중문 법공부 팀에서 사람마다 한 단락 읽는 것은 나에게 큰 고비였다. 예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지만 일이 지난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명(名)에 대한 집착이 나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었다. 젊은 수련생과 함께 중문 법공부를 할 때는 괜찮았지만 다른 수련생들과 할 때는 잘하지 못했다.

운 좋게 우리 사무실에 수련생이 세 명 있어 점심시간에 함께 법공부할 수 있었다. 중국인 한 명과 서양인 두 명이었고, 나와 중국수련생이 법공부를 할 때면 나는 포켓용 기기를 들고 중문으로 읽었다. 중국수련생은 매우 인내심을 갖고 내가 매 구절을 배울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 과정이 아주 힘들어 땀이 나고 머리가 하얗게 됐으며 많은 글자를 기억하지 못했다. 만약 다른 서양인 수련생도 함께 법 공부에 참여하면 나는 영문으로 읽었다. 어느 날 반드시 이 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른 두 서양인 수련생에게 내가 중문으로 읽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들은 이에 동의했고 이 두 서양인수련생은 나와 알고 지낸 지 아주 오래됐다. 명을 구하는 마음, 쟁투심, 질투심이 나를 가로막고 있어 내가 읽을 차례가 되면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숨이 가빠졌다. 내 집착들은 전력을 다해 나를 교란하러 왔다. 비교적 긴 단락을 읽을 때면 너무 괴로웠는데 내가 늦게, 서툴게 중국어를 읽어서 그들 법 공부에 지장 줄까 봐 걱정됐다. 매번 내 차례가 돌아오면 왜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지 후회됐고 이것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자랑하고 싶고 자신을 실증하고 싶어 아주 빨리 읽었다. 동시에 수많은 실수도 저질렀다. 그 중 한 서양인 수련생은 중국어수준이 아주 괜찮았고 많은 글자를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었다. 내가 읽을 때 그는 나의 발음을 바로잡아주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나의 중문이 아주 괜찮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가 왜 이러는지 몰랐다. 내가 다 읽고 난 후 그는 많은 발음이 정확하지 않기에 읽은 내용도 정확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법이기에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나는 지금 배우는 과정이고, 결국 언젠가는 성조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밖으로 보고 있었다. 내가 법공부 팀에서 유일하게 중문으로 법을 읽는 서양인이기에 그가 질투한다고 여겼다. 이런 생각들은 나의 과시심, 쟁투심과 명을 구하는 집착에서 비롯됐다.

나는 사무실에서 머지않은 한 법공부 팀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월요일에 사람이 많을 때는 다들 같이 읽었다. 나는 낮은 소리로 따라 읽었고 잘못 읽어도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날에는 사람이 적어 돌아가며 읽었다. 내가 너무 느리게 읽어 처음에는 이 팀에서 법을 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시도해보려 했다. 포켓용 기기를 사용하면 빨리 정확한 발음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또 한 번 가슴 아픈 체험이었고 마치 명에 대한 집착을 닦아버리라는 배치 같았다. 내 차례가 됐을 때 가슴이 벌렁거리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으며 입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얼마 전 다른 한 가지 일이 발생했다. 문법과 말하는 능력을 강화하여 중국 관광객과 더욱 잘 소통하기 위해 나는 아주 괜찮은 휴대폰 강좌 앱을 찾았다. 그러면 길을 걸을 때도 들을 수 있었지만, 그것은 간체자 중문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배운 것이 줄곧 정체자였기에 간체자를 읽을 때 수많은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간체자 ‘전법륜’을 읽기로 했다. 그러면 관광객에게 줄 전단지와 현지 수련생이 간체자로 쓴 메일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다. 이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간체자는 중국공산당이 발명했기에 처음 간체 ‘전법륜’을 펼쳤을 때 나는 너무 괴로웠다. 마치 많은 글씨가 장애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어떠한 버전을 읽어도 다 괜찮다고 명확히 말씀하셨기에 나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의 출발점은 대륙관광객을 구하는 것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제자: 서양 수련생이 중문을 배울 때 마땅히 간체자를 배워야 합니까, 아니면 번체자를 배워야 합니까?

사부: 간체자ㆍ번체자 모두 큰 문제가 아닌바, 간체자를 배워도 되고, 번체자를 배워도 되며, 모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간체자를 배우는 사람은 번체를 알아볼 수 있고, 번체자를 배우는 사람도 간체자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은 장래에 논할 일로서, 우리가 지금 할 일은 바로 중생을 구도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주 많은 중문 간체자는 중공사당이 만들어낸 것으로, 내포가 좋지 못하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 십 몇 억 인구가 모두 간체자를 쓰고 있으니, 이 일은 장래에 다시 보자.”[1]

과거 1년 동안 나는 처음 법공부할 때 크나큰 에너지를 느꼈다. 내 머리가 얼마나 흐리멍덩하든 기분이 어떠하든 ‘전법륜’만 들고 읽기 시작하면 즉시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을 차렸다. 졸리지 않고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법공부할 때 결가부좌하려 했고 수시로 ‘전법륜’을 배우고 싶었다.

나는 발정념이나 연공을 할 때, 특히 제2장 공법을 연마할 때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예전 17년 수련 중에서 늘 고통을 느꼈고 종래로 에너지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비록 여전히 일부 고통을 느끼지만, 고통이 지나간 후 의식까지 잃게 할 정도의 크나큰 에너지로 변했다. 그 후 에너지가 폭발되면서 순식간에 부드러운 금빛 햇살에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내 신체는 늘 위로 날고 싶어 했지만, 발에 자물쇠가 있어 고정됐을 뿐이다. 또한 법공부와 발정념의 관계를 느꼈는데 내가 법공부를 아주 잘했을 때, 온몸에 사악을 제거할 수 있는 법의 힘이 가득 찼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마치 ‘전법륜’의 글씨가 직접 내 신체를 뚫고 날아간 느낌 같았다. 이제야 사부님께서 왜 그토록 법공부를 중시하라고 하셨는지 알게 됐다.

전반 수련 과정을 되돌아보다

요 몇 년간, 생활 속에서 발생한 일체가 내 수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 있어 매일 법공부하는 과정은 고비를 넘는 중요한 방식이 되었다. 과정 중에서 나의 집착이 폭로되고 각 층 법리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일부 수련생은 내가 중문으로 법을 읽는다고 칭찬하지만 사실 나의 진보는 아주 느리고 굼뜨다. 나는 약 14년이란 시간, 매일 한 시간씩 총 4984시간으로 나의 맹세를 실현했다. 왜 진보가 이렇게 느리고 흔한 글씨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왜 이제야 끝내 돌파하게 됐는지 나는 늘 생각했다. 내 직감에 이건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배치해주신 것 같았다. 이 과정을 연장해주셔서 법을 얻은 초기에 규칙적으로 법공부를 하여 정법이 곧 종결될 때 법공부에 대해 크나큰 재미를 가질 수 있게 말이다.

여러 해 동안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이 전반 과정이었다. 매일 자그마한 진보를 가져오고 조금 더 전진했다. 비록 헤매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집중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시도했던 첫해에 유창하게 중문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게 수련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가장 중요한 시각에 법공부에 대해 신기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나한테 중문을 배운 기교가 무엇인가 물으면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명확하게 잘 모르겠다. 현재 이해로는 이는 다만 수련의 배치일 뿐 나는 특수한 학습기교를 사용하지 않았고 종래로 이 일이 이렇게 진행될지 몰랐다. 사람마다 다 자기의 길을 걷기 바라고 너무 결과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배치해주셨다는 것만 믿으면 된다.

수련 중에서 우리는 모두 자기의 길이 있다. 이 길에서 자신의 일부 일들은 흔히 남에게는 의미가 없거나 작용이 없을 수 있다. 가끔 당신은 반드시 어려움을 무릅써야 하고 강대한 확신이 있어야만 진보할 수 있다. 보기에 시간 낭비인 것 같거나 받은 고통이 장점보다 훨씬 더 클 수도 있다. 전에 대법과 관련된 항목을 할 때 나는 종래로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기능을 배운 적이 있었다. 배우는 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항목에 시끄러움을 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넘어진 후 나는 다시 일어나 착오 중에서 교훈을 받아들였고 끝내 그 기술을 마스터하여 내 일을 잘 할 수 있게 됐다. 되돌아보면 이는 사부님과 법이 나의 매 한 걸음을 이끌어주신 것이었다. 형식으로 볼 때 갑자기 다른 수련생이 기적적으로 나타나 도와주거나 법공부를 한 후 갑자기 좋은 아이디가 머리에 떠오르는 등이었다.

몇 년 동안 나에게 수련을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사부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배치해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일종의 무위(無爲) 상태의 수련으로서, 오직 당신이 心性(씬씽)을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의 층차는 돌파되며, 당신에게 있어야 할 것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2]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5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31/3682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