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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췌장암 환자가 새로운 삶을 얻다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9년 이전에 파룬궁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나는 출근 중이었는데, 갑자기 허리에서 뼈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도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진단이 나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허리가 이렇게 아픈데 병원에서는 왜 원인을 찾아내지 못할까?

친한 동료에게 내가 겪은 일을 알려주자 그가 말했다. “파룬궁을 수련해봐! 파룬궁은 병을 치료할 수 있어.” 내가 말했다. “우리 어머니도 사람들과 함께 파룬궁을 수련해.”

이튿날 나는 요통을 억지로 참으며 친정으로 갔다. 우리는 모두 6남매인데, 자매가 4명, 형제가 2명이다. 식구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이 대법과 인연을 맺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올케 두 명이 모두 수련을 한다. 내가 정황을 이야기하자 어머니는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가져와 보게 하고는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를 정화해주실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좋다고 대답했다. 연달아 아홉 강의를 들었는데, 과연 허리가 지금까지도 아프지 않다.

나는 친정에서 돌아와 연공장을 찾았다. 나는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했고, 날마다 새벽 5시에 공원에서 연공을 했다. 그러나 1999년 어느 날 갑자기 공원에서 연공을 못하게 했다. 내가 말했다.“이렇게 좋은 공법을 왜 연마하지 못하게 해요?” 나는 대답을 듣고서야 상부의 지도자가 연공을 금지한 것을 알았다. 그래서 수많은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러베이징으로떠났고, 우리 큰오빠와 형부도 나를 데리고 베이징으로 갔다. 하지만 베이징 외곽에서 단속이 너무 심해 우리는 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당시는 아직 법에 대한 나의 이해가 그렇게 깊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아무튼 나는 나이가 적어 30이니 지금은 연공하지 말고 기다렸다가 나중에 다시 연마하자고 생각했다. 그 일념이 한번 나오자 18년이 흘러가버렸다.

2016년 겨울, 내가 식당에서 일을 하는데 배가 아프기 시작해 몇 시간 동안 아팠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20여 일이 지나자 복통이 더 심해져 나는 일을 중단했다. 내 생각으로는 집에서 며칠 쉬면 괜찮을 것 같았다. 집에서 한 달을 넘게 지내는 동안 배가 두 차례 아팠는데, 갈수록 통증이 심했고, 체중이 10kg이나 빠졌다. 나중에는 한번 아프면 하루 밤낮으로 계속돼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 큰언니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언니가 말했다.“집에서는 버틸 수 없어. 빨리 병원에 가봐.”내가 말했다. “그럼, 언니랑 동생이랑 같이 가자.” 우리 세 사람은 현에 있는 병원에 갔다. 의사는 검사를 마치고 나에게 말했다.“병이 아주 심각해요. 큰 병원에 가 보세요.”

셋째 여동생 집이 성도(省城)에 있어서 우선 여동생을 시켜 병원에 가서 진찰표를 뽑게 하고 우리 세 자매는 병원으로 갔다. 딸과 외지에서 일하는 남편이 소식을 듣고 달려 왔다. 엑스레이, 화학검사 등을 한참 한 후에 의사는 췌장암이 의심된다며 급히 입원을 시켰다. 입원 3일 동안 하나씩 연달아 검사를 했다. 내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3일 동안 검사를 했는데, 검사를 할수록 문제가 더 많아졌다. 복통은 그치지 않았고, 안색은 노랗게 변하고, 눈알까지 노랗게 변한데다 구역질, 구토, 설사, 심지어 검은 대변에 몸은 더 여위어 기력이 없고 복부에는 덩어리가 생겼는데, 이 모두는 의사가 말한 췌장암 말기 증상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췌장암이 암 중에서 가장 나쁘다며 환자가 최대한 오래 살아도 3개월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다. 수술 날짜는 5일 후로 잡혔다. 이 수술은 대수술이라 10시간이 넘게 걸리고, 어떤 위험이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둘째 오빠, 자매들과 남편이 상의를 해 결정을 내렸다. 수술은 해야 하는데 우리 집에 돈이 모자라므로 사람을 먼저 살리기 위해 함께 돈을 모으기로 했다.

7·20 이후 모든 친지 중에서 큰오빠, 큰올케, 그리고 어머니만 대법 수련을 견지해 왔고, 다른 사람은 나처럼 잇달아 공부를 그만두었다.

큰오빠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나에게 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해?” 나는 수술이 끝나면 오빠와 함께 법공부를 하겠다고 말했다. 큰오빠가 말했다.“그렇게 생각하면 틀렸어. 이 수술은 하면 안 돼. 네 병은 사부님만 고칠 수 있어. 집에 가서 나랑 같이 법공부를 하자! 만약에 네가 이번 관을 넘길 수 있다면 크게 제고될 거야.” 나는 오빠의 말을 듣고서야 사부님과 대법이 생각났고, 정념이 일어났다. 내가 말했다.“그럼 오빠랑 집에 가서 법공부를 하고 수술은 안 할래. 모든 걸 사부님께 맡기고 나는 제고되어 올라갈 거야.”

우리 두 사람은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나는 병실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말했다.“나는 수술을 안 하고, 집에 가서 연공할 거예요.”

가족들은 다급해졌다.“수술을 안 하면 안 돼! 이 병이 얼마나 심각한 줄 알아?” 딸이 말했다.“수술을 반드시 해야 해요. 하지 않는 건 포기하는 것과 같아요.” 그들 중 몇몇은 큰오빠가 수술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을 알고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잘 들어. 쟤를 집으로 보냈다가 변이라도 생기면 책임질 거야!” 큰오빠는 아무 말도 없었고, 내가 말했다.“큰오빠를 원망하지 마. 이건 내 결정이야. 이제 집으로 돌아들 가. 여기에서 나를 도울 건 없어.” 나는 그들을 모두 쫓아냈다.

나는 큰오빠에게 오늘 오빠네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큰오빠는 나에게 정성을 다해“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외우라고 말했다.

그들이 가자마자 나는 집으로 가려고 링거를 뽑고 계단으로 내려갔다.딸은 필사적으로 나를 붙잡아 제자리로 보내고 급히 큰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모두 돌아와 나를 붙잡아 병상으로 되돌려 보냈다.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이제 돌아들 가요. 내가 먼저 가지는 않을 테니까.”

의사가 다시 와서 나에게 링거를 꽂으려 했고, 나는 먼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화장실로 가면서 나는 끊임없이“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외웠다. 돌아와 링거를 꽂을 때 링거 줄이 갑자기 터져 안에 있던 약물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그것을 사부님께서 나에게 관여하시는 증표라고 생각해 더 완강하게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남편과 딸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나는 남편을 옆으로 불러 말했다.“나는 이 수술을 못해요.” 남편이 말했다.“돈을 얼마를 쓰든 당신을 고칠 거야.” 내가 말했다.“돈 문제가 아니에요. 당신도 알지만 이 병은 돈을 아무리 많이 써도 목숨을 살릴 수 없는 병이에요! 하지만 대법 사부님은 나를 구할 수 있어요. 나는 집에 가서 연공을 해야 해요.”

남편은 반신반의하며 말했다.“가능할까?” 내가 말했다.“돼요. 나한테 두 달만 시간을 줘요. 건강해져서 당신에게 돌아갈게요.” 내 생각이 확고한 것을 보더니 그가 말했다.“만약 수련이 잘 된다면 정말 기적일거야!” 나는 또 딸을 옆으로 불러 말했다.“얘야. 내가 여기서는 정말 견딜 수가 없어. 수술하려면 아직 5일이나 남았으니 집에 가서 기분전환을 하고 싶어.” 딸이 말했다.“그럼 내가 따라갈 테니,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곧장 돌아와야 해요.” 나는 알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성도에 사는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가지고 와서 우리를 태워 가라고 했다. 딸은 내가 토할 것에 대비해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차에 탔다. 그리고는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어떤지, 구역질이 나지 않는지를 계속 물어댔다. 병원에서 큰오빠네 집까지 120여 km를 가는 동안 나는 한 번도 토하지 않았다.

큰오빠네 집에 도착하자 올케가 우리에게 국수를 삶아 주었는데, 나는 반 그릇을 먹고도 토하지 않았다.

새해를 맞아 올케와 한 수련생이 탁상달력과 대련 두 주머니를 들고 가가호호 전하려 나가려 했다. 내가 말했다.“나도 같이 가고 싶어요.” 올케가 그러자며 나에게도 탁상달력 한 주머니를 주었다. 그날 20여 km를 걸었지만, 나는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큰오빠네 집에서 나는 날마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연공을 하고, 오전에는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공부하고, 오후에는 나가서 달력을 배포하고, 저녁에는 오빠 내외와 함께‘전법륜’을 공부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나의 몸은 나도 모르는 새에 날마다 호전됐다. 병원에서 나는 밥도 먹지 못하고 복통과 구토 등에 시달렸는데, 현재는 모든 증상이 사라졌다. 수련한 지 20일 만에 빠졌던 체중도 회복됐다.

현재는 언니, 형부, 막내 여동생, 둘째 올케도 수련의 길로 들어왔다. 내가 큰오빠네 집에서 지낸 지 5개월이 지났을 때 큰올케가 말했다.“여기에서 허송세월하면 안돼요. 아가씨는 자기 수련의 길을 가야하고, 자신의 중생을 구해야 해요!”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법공부 반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하고 생각했다. 나는 날마다 사부님께 수련생을 찾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과연 어느 날 나는 류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18년 전 우리는 같은 학습반에서 법공부를 했다. 나는 류 언니에게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했고, 그녀는 기꺼이 나를 법공부 팀으로 받아들였다. 현재 우리 법공부 팀의 네 사람은 모두 아주 정진하며, 날마다 나가서 사람들과 대면해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한다.

우리 시댁 사람들은 내가 위중한 환자였다가 파룬궁 수련으로 나은 것을 보고는 대법을 인정하고 모두 3퇴를 했다. 당연히 남편과 딸은 나의 수련을 적극 지지한다. 남편이 외지에서 차를 몰고 올 때면 저녁에 나의 연공을 방해할까봐 먼저 차 안에서 휴식하다가 내가 연공을 마치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온다. 어떤 사람이 남편에게 아내의 병을 어떻게 고쳤는지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파룬궁을 수련해서 나았어요. 파룬궁은 정말 신기해요. 정말 보통이 아니에요!” 그도 대법을 실증하고 있다.

1년이 넘게 흘렀지만, 우리 온 가족은 목숨을 구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나는 사부님께서 연장해 주신 수련 시간을 소중히 여겨 정진, 또 정진하며 많은 사람을 구하고, 세상에 온 사명과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18년 6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다시 수련하다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8/6/5/3684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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