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밍
[밍후이왕] 나는 올해 65세이고 1992년 한 단락 신기한 경험은 나의 관념을 바꾸었고 나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것은 1992년 대략 4, 5월이고 가족은 상하이에서 한 기공사가 와서 문화궁에서 기공보고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의 남편은 바로 가서 몇 장의 티켓을 샀다. 그 당시 나는 기공에 대해 흥미가 없어 가고 싶지 않았다. 거의 시간이 되어가자 남편이 말했다. “가요. 그렇지 않으면 티켓 한 장을 버리게 돼요.” 나는 원치 않았지만, 가족을 따라갔다.
보고회를 들은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잠자려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노란빛이 나의 전신을 비추었고 신체가 아주 편안해지게 비춰주었다. 온화하고 눈부시지 않았다. 나는 빛을 따라서 보았는데 남쪽 반공중에 대략 45° 방향에 한 사람이 단정하게 앉아 계셨고 마치 절의 부처님상과 같았으며 황금색 옷을 입었고 전신은 빛을 뿜고 있어서 나의 몸에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놀랍고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어찌 된 일인지 몰라서 급히 남편을 깨웠다. “빨리 일어나요! 봐요. 공중에 큰 부처님이 계세요. 노란색 옷을 입고 온몸에 빛을 뿜고 있는데 거기에 앉아 계세요!” 나는 그가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베란다에 가서 한참 서 있다가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아무것도 안 보여요!” 나는 “빛이 우리 집안까지 비춰요. 지금도 비추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한참 지나서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본 것은 우리 낮에 본 그 기공사가 아니요? 그는 노란 옷을 입었어요.” 나는 말했다. “아니요. 얼굴이 달라요. 그 기공사는 신체가 수척하고 작은데 당신은 왜 못 보나요? 다시 자세히 잘 보세요!” 그가 말했다. “나 진짜로 안 보여.” 나는 그가 보지 못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지만, 그의 표정을 보니 또 진짜로 못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주 신기하고 또 두려웠다. 남편이 나를 보호해주었으면 했고 나에게 담력을 키워주길 바랐는데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내일 또 출근해야 하는데 빨리 잡시다!” 그는 잠을 잤다.
그러나 그 빛 때문에 나는 어떻게 해도 잠들 수 없었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쓰고 눈을 감아도 소용없었다! 나는 또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 밑에 내려가서 눈을 감았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옷장에서 옷을 꺼내고 이불을 안고 옷장에 들어가도 소용없었고 빛은 여전히 나를 비추고 있었다.
이때 나는 비로소 발견했는데 눈을 뜨나 감으나 똑같았고 눈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았으며 머리가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또 주방에 가서 큰 철가마를 머리에 썼지만, 그 빛을 막을 수 없었고 진짜로 소용없이 여전히 나의 몸을 비췄다. 내가 어디로 가나 빛은 따라다녔고 할 방법을 다 해도 방법이 없었는데 비추려면 비추어라. 내일 또 출근해야 한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반이었다.
회사에 출근하여 동료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어젯밤에 공중에 큰 부처님이 앉아계시는 것을 봤어요? 노란색 옷을 입었고 온몸에 빛이 났어요.” 나는 어젯밤에 발생한 일을 그녀들에게 들려주었는데 모두 못 봤다고 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 꿈꾼 거 아니요?” 나는 꿈이 아니라고 말했다. “꿈이 아닌데 왜 우린 못 보았지?” 일부는 또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왜 미신을 믿고 있어?” 나는 말했다. “지금도 나를 비추고 있어요!” 그녀들은 믿지 않았고 모두 나를 비웃었다.
나 지신도 생각했다. 과거에 누가 신이요, 부처요. 기공이요 하면 나는 절대로 믿지 않았고 말하는 사람을 쫓아내고 듣지도 않았는데 어찌하여 지금 내가 맞닥뜨렸는가, 이는 진짜로 가짜인가? 가짜라고 말하면 그는 날마다 나를 비추고 있다. 진짜로 말하면 어찌 남들은 보지 못하는가? 나는 마음속으로 아주 모순되었고 마음속으로 그녀들에게 말하지 말고, 그녀들이 내가 미신을 말한다고 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이 일을 생각했지만 알 수 없었고, 이 빛은 날마다 나타나서 내가 어디를 가면 계속 따라다녔다.
한번은 내가 자전거를 타고 큰길을 가고 있는데 빛은 나의 온몸을 뜨겁게 비춰 갈수록 뜨거웠지만 땀은 나지 않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내심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목소리가 너무 커서 길 가던 사람들이 몸을 돌려서 나를 봤는데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는데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서 단지 웃기만 했다.
바로 이렇게 18일이 지나서 빛은 비로소 천천히 사라졌다. 그러나 이후로 나는 그가 마땅히 나의 사부님일 것이라고 인정했고 내심에서 저도 모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중에서 본 사부님을 찾으려고 했고 마음속으로 나는 찾은 후 그녀들에게 다시 알려주기로 생각했다. 내가 미신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렇게 나는 야생마처럼 눈앞의 이 한 막에 정복당했고 여덟 신선이 바다를 건너고 신불 등 신화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이런 것은 모두 진실이라고 여겼다. 후에 많은 기공사가 기공반을 열었지만 나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공사가 기공반을 연다고 하면 반드시 가서 그 기공사를 보았는데 모두 내가 찾는 이는 아니었다.
이런 일을 겪으며 나의 성격에도 변화가 생겼다.
1995년 나는 휴직에 들어갔다. 두 아들이 모두 대학에 들어가 나의 경제 상황이 아주 빠듯했고 나는 거리에서 남들이 꽃을 파는 것을 보고 나도 일부 꽃을 도매로 사서 야시장에서 팔았다. 남들은 한 송이에 25~28위안(한화 약 4천 원~5천 원)에 팔면 나는 12위안(약 2천 원)에 팔았지만 나는 아주 만족했다. 다 팔면 집에 돌아왔으며 사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져, 길을 가는 많은 사람이 이 꽃을 파는 아주머니를 알아보았고 꽃을 팔면서 속이지도 않고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1996년 연말, 큰아들이 졸업해서 나는 꽃을 팔지 않아도 되었지만, 병이 생겼다. 새로 걸린 병에 옛 병도 도져서 2~3일 간격으로 병원에 갔다. 무슨 관절병, 부인병, 위하수, 대뇌모세혈관수축, 임신중절수술 후유증 등으로 큰 수술 작은 수술을 6~7회 했지만 낫지 않았고 모두 같이 도졌다. 그 당시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나날들이었다.
1997년 10월경 우리 이웃의 한 큰언니가 나에게 말했다. “자네 신체가 이런 것을 보니 나를 따라 기공을 연마하러 갑시다!” 나는 무슨 공인지 물었고 언니가 말했다. “파룬궁입니다. 이 공은 불가공인데 아주 좋아요! 무료로 가르쳐주는 공법이고 연공하는 사람들이 모두 온화해요.” 나는 불가공이고 또 무료라는 말을 듣고 바로 답했다. “좋아요. 저 갈 겁니다.”
아침에 나는 연공장에 왔고 한 보도원이 나에게 연공을 가르쳐줄 때 일종의 느낌이 있었다. 마치 내가 먼 곳에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온 그런 느낌이었는데 집을 찾았다는 그런 흥분과 격동이었다.
다음날 보도원 언니가 나에게 한 장의 연공그림 해설서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손에 받고 펼쳤는데 그 속의 제5장 공법은 파룬궁 사부님께서 가부좌하고 계시는 사진이었다. 나는 자세히 보고서 깜짝 놀랐다. 사진 속의 기공사가 바로 5년 전에 반공중에서 본 그분이 아닌가! 모습이 똑같았고 역시 이런 자세였다! 나는 아주 격동했고 손은 조금 떨렸다. 아니, 전신이 움직이면서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맙소사, 오늘 나는 찾은 것이다!
나는 이 일체가 꿈이 아님을 알았다. 진실이고 현실이었다! 바로 이 순간에 나는 주저 없이 파룬궁 속으로 들어왔다.
20년 동안 나는 계속 파룬궁 속에서 수련하고 있으며 중단한 적이 없다. 이는 내가 그러한 신기한 경험만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사부님께서 나에게 진선인의 이념을 주시고 나의 심성이 끊임없이 제고되도록 하시고 인품이 끊임없이 고상해지게 하셨기 때문이다. 인생 몇십 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믿었지만 파룬따파 사부님을 제외하고 누가 나에게 이런 것을 줄 수 있었겠는가?
(밍후이왕 2018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경축’ 공모)
원문발표: 2018년 5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13/3651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