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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바로 잡아 박해를 제거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금년에 56세인 저는 1997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노 제자입니다. 수련의 길에서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항상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1] 20여 년의 수련 중에서 저는 점차 수련이 엄숙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수련에서 어떤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법을 생각하고 사부님을 생각하며, 제때에 안으로 찾아 법으로 자신을 바로 잡으면 관을 다 넘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꾸고, 심성을 향상해야 층차가 높아집니다.

아래에 장쩌민을 고소한 일로 납치되었던 일에서의 수련 체험을 이야기해 보려고 하니, 법에 맞지 않는 곳이 있으면 자비롭게 시정해 주기 바랍니다.

1.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나는 수련인이다

2015년 5월, 장쩌민 고소 열풍이 일어나 저는 31일에 우리 지역 수련생 3명과 함께 우체국에 가서 최고검찰원, 최고법원으로 고소장을 보냈습니다. 우리 현에서는 제가 가장 먼저 보냈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조금도 없었으며, 현지 수련생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모두 함께 참여하자고 격려했습니다. 그리하여 소수만 빼고 거의 모두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시에서 더 일찍 고소장을 제출한 어느 수련생이 납치되고 집을 수색 당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마음이 조금 동요되었습니다. 이 일로 우리 지역 수련생들이 광범위하게 교류했지만, 저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직 두려운 물질이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즉시 청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했고, 이로 보아 저는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6월 29일 오전 7시 반쯤 저를 비롯한 우리 현의 수련생(모두 협조인) 3명이 현지 국가 보안, 순경, 형사 경찰, 파출소 등에 납치되었습니다. 모두 가택 수색을 당하고 컴퓨터 프린트 대법 서적이 모두 빼앗겨 피해가 컸습니다. 이번 계획적인 납치에 현지 경찰 수십 명이 동원되었고, 현 순경 대대에서 저를 납치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집에서 강제로 순경대대로 납치한 뒤 당직실로 데려갔습니다. 방 안에는 경찰관 8~9명이 TV를 보거나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있었으며, 공간장이 매우 혼탁하게 느껴져 저는 벽 구석에 있는 침대로 가서 가부좌하고 입장하여 발정념을 했습니다.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경찰 배후의 일체 사악한 생명요소를 해체한다. 그들이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죄를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20분 가까이 정념을 보내고 있어도 경찰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각자 볼 일을 봤습니다. 발정념을 하니 마음이 조용해졌고 저는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왕 온 바에는 마음을 편히 가지자. 당장 시급한 것은 일체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피동적인 것을 주동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법제자가 주역을 맡아야 하고 사부님의 법에 따라 해야 하며, 이번 기회를 이용해 이곳의 인연 있는 사람을 구도해야 한다. 평소에는 이렇게 많은 경찰을 만나지도 못한다.’

저는 그들을 향해 평화롭게 말했습니다. “목이 마른 데 물을 좀 주시겠어요.” 한 젊은 경찰관이 쌀쌀맞게 대꾸했습니다. “물 없어요. 밥도 못 먹었어요. 우리 마실 것도 없어요.” 저는 찬물도 괜찮다고 했고, 그는 또 찬물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차분한 어조로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저를 죄인으로 보지 마세요. 저는 수련인입니다. 파룬궁(法輪功)은 불가 상승 수련대법입니다. 분명히 말한다면, 부처를 수련하는 것입니다. 수련자에게 진, 선, 인(眞善忍)의 법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대법제자들을 선하게 대해주면 복을 받을 겁니다. 저는 경찰관님들이 수련인을 박해해 저우융캉, 보시라이처럼 벌 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말하니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경찰이 “방금 저 사람이 앉아있을 때 진짜 부처 수련하는 사람 같았어”라고 말하며 한 손을 가슴 앞에 세워 보였습니다. 모두 그 모습을 보고 웃는 바람에 방 안의 분위기가 경쾌하게 바뀌었고, 바로 한 젊은 경찰이 전기 포트를 찾아 물을 끓이고, 다른 경찰이 저에게 생수 한 병을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몇 모금 마시고 대법 진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끓인 물을 가지고 온 경찰이 다른 것은 없어도, 물은 얼마든지 있으니 마음껏 마시라고 했습니다.

2. 진상을 알리고, 경찰을 구하다

저는 그들에게 파룬궁은 무엇인지, 중국공산당이 왜 파룬궁을 박해하는지와 ‘천안문 분신’ 조작사건은 파룬궁을 모함하고,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또 중국공산당이 살아 있는 대법제자의 장기를 적출한 것, 3퇴(중국 공산당,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 탈퇴), 장쩌민 고소 열풍,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등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옆에 있던 젊은 경찰은 아침에 제가 납치당할 때 비디오를 찍었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표정이 점점 엄숙해지더니 긴장하며 저에게 물었습니다. “방금 하신 말씀이 다 사실입니까?” 다른 한 명이 말했습니다. “불안하지? 오늘 네가 한 이 일은 너에게 아주 불리하단다.” 제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오전에 저의 핸드폰을 뺏고 집을 수색했던 젊은이가 울상을 하며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떡해요? 무엇을 좀 해 드릴까요, 저는 악한 보응이 두렵습니다.” 그는 나중에 다른 사람이 없을 때 자신의 핸드폰을 주어 전화를 두 번 할 수 있게 해주었고, 허스하며 저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동의를 얻어 저는 그에게 가명을 지어 단, 대 조직에서 탈퇴시켰습니다.

진상을 모르는 중생들을 보며 저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 진상을 알렸지만, 이곳은 거의 백지상태였습니다. 막 납치되었을 때 마음에 두려운 물질이 존재했지만, 지금 자신의 안위를 도외시하고 두려운 마음이 전혀 없으며, 마음에 자비심이 생기고 말할수록 정념이 충족했습니다.

3. 무 진술

한 시간 가량 진상을 말한 다음 2명만 남고 모두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들은 돌아오면서 저에게 먹을 것을 사다 주었고, 저는 먹지 않았습니다. 10시가 넘어 저를 납치할 때 앞장섰던 순경대장이 들어와 저에게 다른 방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컴퓨터 뒷면 의자에 앉으라고 해서 보니 카메라가 달려있었고, 저를 범인으로 판단하고 심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무지하여 업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환경이든지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말라.”[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의자에 앉지 않고 벽 쪽에 있는 침대에 앉았고, 방에 있는 4명은 서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말했습니다. “저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당신들 요구에 협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들한테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장은 “장쩌민은 곧 죽어가는 사람인데 그 사람을 고소해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우리를 이렇게 오랫동안 박해했는데 왜 고소해서는 안 됩니까? 그럼 저는 누구를 고소해야 합니까? 대장님을 고소할까요? 그러면 대장님은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장쩌민은 대법제자를 박해한 원흉입니다. 당신들도 피해자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올해 5월 1일 사법 개혁이 시작됐고, 베이징 최고 법원에서 ‘유안필립, 유소필리(有案必立,有訴必理, 안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하고,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심리한다)’ 라고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10여만 명이 실명으로 고소한 상태이고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3년 8월, 중국공산당 중앙정법위에서 출판한 ‘원죄(冤罪)·날조·오심 사건을 확실하게 방지하는 관련 규정’ 중에서는 명확히 ‘법관, 검찰관, 인민경찰의 직책 범위 내의 안건 처리에 대해서는 평생 책임을 진다. 법관, 검찰관, 인민경찰의 위법안건 행위는 관련 법률과 규정으로 책임을 추적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하면서 걸어가서 컴퓨터에 기록 했는지 보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아 제가 말한 것은 기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면 ‘신앙 무죄, 파룬따파 수련 무죄’라고 적으라고 했고, 그들은 더 감히 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에 대한 심문은 끝이 났습니다.

4. 신체검사 불합격

오후 그들은 저를 데리고 현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여 저는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대법제자의 장기를 적출하는 일이 여전히 행해지고 있어 나는 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당신에게 신체검사만 할 뿐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지만 저는 “경찰관님은 당연히 그런 짓을 하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다고 보증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그들은 더는 가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녁 먹기 전 남편과 딸(둘 다 수련하지 않지만, 진상은 알고 있음)이 저를 보러 와서 다른 수련생 3명이 납치된 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한 명은 10일 구류되었고 2명은 구속되었습니다. 딸은 엄마 상황도 심각하다며, 집에 있는 프린터 3대와 컴퓨터 1대가 모두 압수당해 차 한 대에 다 싣지도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때 천 대장이 와서는 “위에서 형사 구류하라고 했고, 우리가 곧 퇴직할 사람을 해고당하게 할 수 없지 않겠냐고 사정해서 12일 구류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압수한 그런 물건들로 몇 년을 판결할 수도 있었습니다. 만족하세요. 다른 사람은 모두 형사 구류됐습니다.” 그들은 종이 몇 장을 가져와 사인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인하지 않았고, 천 대장은 화가 나서 안색이 변했습니다. 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나를 감옥으로 박해해 가려고 했지만, 나는 당신에게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세요.” 그는 즉시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후… 서명하고 싶지 않으면 서명하지 마세요. 저도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남편과 딸이 저녁에 또 왔으며, 수련생들이 밖에서 저를 도와 발정념을 하고 있고, 형사 구류된 한 명은 신체검사에서 혈압이 높게 나와 오후에 보석으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경찰들이 내일 저에게 또 건강 검진을 받으라고 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딸이 저에게 건강검진에 합격하지 못해 집에 돌아갔다고 알려주는 이 소식도 우연한 것이 아니며, 사부님께서 저를 점화해 주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날 가기로 했습니다.

딸은 제가 정념이 좀 부족한 것을 보고 손을 잡아 주며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누구야?” “나는 대법제자다.” “맞아, 우리가 밖에서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신경 쓰지 마, 중요한 것은 엄마야, 스스로 잘하면 모든 것이 변해, 내일 엄마 정념을 볼 거야.” 딸이 오늘 이렇게 말하는 것이 놀랍고, 딸의 입을 빌려 저를 일깨워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러므로 12일이 아니라 하루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타지에서 일하는 사위가 딸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말했습니다. “장모님 너무 많은 말씀 하지 말고 휴식 잘하시고 몸조심하세요.” 저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 마음을 놓으라고 했습니다. 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여기 경찰 한 명이 사위 친구인데 오늘 진상한 일과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위에게 다 알려주어, 제가 표적이 되어 박해당할까 봐 걱정되어 그런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왕 이곳에 오게 된 이상 그냥 갈 수 없다. 진상을 많이 알리고 사람을 많이 구하는 것은 우리 사부님이 요구하신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과 딸에게 사부님이 계시니 마음 놓으라 하였고, 발정념을 해야겠으니 집에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남편과 딸이 돌아간 후, 저는 방 안에서 저를 지키고 있던 두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경찰관님들도 일찍 쉬세요.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러자 한 경찰이 나갔습니다. 저는 방에 남은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제가 많은 것을 말해주었는데 경찰관님은 당원이지요. 지금 옆에 사람이 없을 때 제가 얼른 탈퇴해 드릴게요.” 그는 당・단・대에서 탈퇴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나갔던 경찰이 다시 돌아온 후에 저는 기회를 보아가며 그도 3퇴를 시켰습니다.

두 사람을 도와 탈퇴를 시켜준 후 저는 집중해서 발정념하고 안으로 찾았습니다. 가장 큰 누락은 몇 년간 일하기에만 바빠 법공부 할 때 마음이 조용하지 않았고, 형식적으로 했으며, 발정념 횟수가 적었고 마음이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문제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는 것이 얕았고 세 가지 일을 착실히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밤 12시 발정념이 끝난 후에야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3시 반에 일어나 아침 연공을 하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8시 반에 다른 경찰이 교대를 하러 왔고, 가려던 경찰이 그에게 낮은 목소리로 비밀스럽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식견을 넓혔네. 저 분이 오늘 아침에 연공하는 동작을 나는 보았다네.”

경찰 2명과 저는 8시 반에 현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건강 검진 전 ‘사부님, 저는 사부님의 배치만 따르고 다른 배치는 모두 승인하지 않습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그들이 정한 항목에 따라 하나하나 검사하니 정상, 정상, 마지막까지도 다 정상으로 나왔고, 저는 마음이 조금 동요되었습니다. 하지만 즉시 안정시키고 사부님의 배치가 있으니 계속 발정념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일어나려고 할 때, 방금 저에게 신체검사를 해 주었던 연로한 의사가 “앉으세요, 혈압을 재 봅시다”라고 말하고 재보더니 “고혈압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재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의사는 180/120이라고 했습니다. 의사가 다시 한 번 측정 했으나 여전히 높게 나왔습니다.

우리는 다시 순경 대대로 함께 돌아왔습니다. 저는 ‘혈압이 이렇게 높으니 구치소로 보내지 않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순경 3명이 한 경찰차에 오르고 저에게도 타라고 하여 저는 어디로 가냐고 물었습니다. 한 경찰이 시 구치소로 간다고 했고 남편이 듣고는 화를 냈습니다. “이 사람은 건강이 줄곧 좋았는데, 여기 오고 나서 고혈압이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가 더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겁니까?” 그들은 위의 명령을 집행하는 것이라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갑시다. 갔다가 며칠만 있으면 돌아옵니다.” 십여 분간 대치하다가 저는 그들에게 끌려 차에 올랐습니다. 여기서 저는 박해를 전반적으로 부정한 것이 아니라 사악에 타협했습니다.

길에서 끊임없이 발정념하며,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도 저를 대하는 태도가 좋았습니다. 한 시간 반 후 시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구치소에 가면 점심 식사 시간이 지난 시간이고, 저녁 식사까지는 제가 너무 오래 기다려 배가 고플 것이라며, 같이 밥을 먹고 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식당을 찾아서 함께 밥을 먹었고, 그들 세 사람은 저에게 만두도 집어주고 반찬도 집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맥주를 마셨고, 저에게도 특별히 음료수를 사 주며 안에 들어가면 좋은 것을 먹지 못하니 잘 먹어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누님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방법이 없으니 며칠만 고생하세요.” 내가 “고생하는 것은 두렵지 않은데, 제가 걱정하는 것은 경찰관님들의 미래입니다. 나중에 국가와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온 장쩌민(江澤民)이 무너지면 우리는 공신(功臣)일 것인데 당신들은 무엇이 됩니까?”라고 말하니 그들은 침묵했습니다.

5. 구치소에서 받지 않다

구치소에 들어가니 오후 1시가 넘었습니다. 한 관리원이 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할 때 저는 발을 멈추었습니다. ‘오늘 왜 또 들어왔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 고향 수련생과 2001년 감옥에서 단식하고 집으로 가면서 함께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두 번 다시는 들어가지 않는다.’ 10여 년 동안 비록 험난한 길이었지만 사부님의 보살핌으로 정정당당하게 걸어왔습니다. ‘그러니 오늘 또 다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이 미칠 때 여 감옥의사가 슬리퍼를 끌며 다가오더니 먼저 혈압을 재고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결과는 현 병원과 같았고, 여 의사는 혈압이 높은데 약을 먹고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먹지 않는다고 하자 그들은 나중에 저를 받지 않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인솔하는 경찰은 우리 현 정부 임원들과 상의한 뒤 우리에게 다시 시 정식 병원으로 가서 혈압을 측정하고 증명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두 곳의 유명 병원에 가서 세 번이나 측정했고, 모두 높게 나왔으며, 한번은 저혈압이 125로 나왔습니다. 기간에 가장 젊은 두 경찰이 어제 타지에서 당직 서느라 진상을 듣지 못했다며, 이것저것 계속 물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주의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대답한 후에 저는 그것이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말했습니다. “제게 말을 걸지 마세요. 저는 지금 안정이 필요합니다.”

한번 또 한 번의 혈압 측정 과정에서 저는 정념이 부족하여 여러 번 측정하는 줄 알았습니다. 표면에서는 사악이 저를 쉽게 놓아주지 않아, 가족이 현 병원 구치소에서 사람을 찾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저의 문제였고, 마지막 검사에서야 저는 저의 마음이 불안정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매번 혈압을 재고 나면 저는 발정념을 소홀히 하고 환희심이 생겨났으며, 즉시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잴 때는 또 두려운 마음이 나타났고, 다음에 환희심이 나타날까 두려워하면 또다시 쟀으며, 또 다음번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한에 수련해 올라가 기뻐서 떨어지고, 무서워서 또 떨어진 것과 같았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 저는 자신의 염두를 바로 잡고, 이러한 나쁜 마음을 제거하고 마음을 안정시켰습니다. 그 결과 세 번째 측정 후 그들은 “기뻐해야겠습니다. 우리는 함께 집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더는 기분 좋은 느낌, 환희심이 들지 않았으며, 마음이 평온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저의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입니다. 경찰관님들이 진상을 알고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당신들에게 수련인을 박해하지 않게 한 것입니다.” 당시에 저는 사부님께서 신경 써주신 것에 대해 한없는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 젊은 경찰관이 말했습니다. “이모님, 내가 발견했는데 이모님은 이 공을 아주 신기하게 연마했습니다. 잠시 후에 혈압이 정상으로 되게 하면 우리 모두 이모님을 따라서 수련하겠습니다.” “제 혈압이 정상이면 우리가 지금 집에 갈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은 또 조종되어 나쁜 일을 하겠지요.” 그는 제가 매번 혈압을 측정할 때마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발정념을 한다는 것을 몰랐을 뿐입니다. 저는 또 그들에게 수련 중의 신기한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오후 4시가 넘어서 순경대대로 돌아갔고, 그들은 남편에게 전화해 저를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맺음말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자신의 수련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고, 사부님의 제자에 대한 자비로운 보살핌을 깊이 있게 체험했습니다. ‘수련은 얼마나 아름답고 또 얼마나 엄숙한가. 조금이라도 일념이 바르지 않고, 또 제때에 바로 잡지 않으면 번거로움을 불러올 수 있다.’

그 이후로 저는 세 가지 일을 이전보다 열심히 하며, 항상 자신에게 착실하게 수련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매일 법공부하는 일 외에 또 집에서 시간을 내어 법을 외우고 있습니다. 발정념은 예전에 비해 횟수가 늘었고, 진상은 더 신경 써서 알리고 있습니다.

한동안 착실한 수련을 통해 올해는 연공 할 때 자주 달걀 껍질 안에 앉아 있는 듯한 좋은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발정념할 때 효과가 좋고 에너지장이 강하며, 아주 조용하고, 예전에는 별로 못 느꼈던 느낌들이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더욱 정진할 것이며, 착실히 수련하여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보답하고, 중생이 기대하는 무한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으며,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것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

 

원문발표: 2018년 3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8/3/19/3623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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