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山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7년부터 파룬궁수련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큰 병은 없었지만, 잔병은 끊이질 않았다. 주로 머리가 아팠는데 심할 때는 머리가 빠개지는 듯했고 구토가 났다. 또 생리가 올 때면 하혈이 심하면서 쇼크를 일으켰다. 70년대 동북 농촌의 의료 여건은 아주 좋지 않았다. 교통도 아주 불편했고, 병원에 갈 수 없었으며, 수혈할 조건은 더욱 없었다. 부대에 있는 남편은 1년에 한 번밖에 휴가를 내지 못했는데 나는 혼자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온몸에 병만 남았다.
남편이 부대에서 전역한 후 우리는 산둥에 가서 살게 됐다. 그곳에서 목재장사를 하는 사람과 합작해 장사했는데 장사가 잘돼 나도 기뻤다. 후에 상대방이 또 목재를 보내줄 테니 먼저 송금하라고 해서 나는 그에게 송금했다. 그런데 그는 여러 가지 구실을 대면서 목재를 보내주지 않았다. 이때부터 시끄러움이 시작됐는데 나는 이 마음을 놓지 못해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다. 매일 혼미한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그 돈을 찾아올 것인가를 생각했다.
남편도 마음을 크게 먹으라고 나를 위안했지만 나는 좀처럼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 돈은 우리 피땀으로 번 것인데 밑천까지 다 날리게 됐다니! 나는 그 사람이 아주 미웠다. 내가 정신적으로 받은 충격은 너무나 컸고, 매일 하루의 시간이 너무 길었고, 남편이 출근하고 애들이 학교로 가고 나면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막막했다.
어느 날 오후 밖에서 산책하는데 동료가 나에게 파룬궁(法輪功)을 소개했다. 당시 나는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그날 저녁에 연공장으로 나갔다. 그날은 바로 사부님의 생신이어서 저녁에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다. 다음날 나는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를 받아 보게 되었고, 후에는 ‘전법륜’과 당시에 나온 모든 저작을 받아 보았다.
나는 ‘정진요지’에서 “혼세(混世)에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돈을 위해 살고 권세를 위해 죽는다. 파리 대가리만 한 작은 이익을 위해 기뻐하고 걱정하며 고달프게 다투니 일생토록 업(業)을 빚는구나.”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을 읽는 순간 마음속의 매듭이 확 풀리면서 마음이 열리고 맑아졌다. 법을 학습하면서 나는 실과 득의 관계를 알게 됐고 이때부터 정신을 차리게 됐다.
법을 얻은 7일째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를 정화해 주셨다. 저녁에 나는 침실에서 자다가 깨어났는데 온몸에 쥐가 나는 것 같았고, 머리가 아주 아파 몹시 괴로웠다. 다른 방에서 자는 남편을 불렀지만 듣지 못했다. 나는 먼저 참고 있다가 날이 밝으면 병원으로 가자고 생각했다. 날이 밝았는데 나는 깊이 잠들었다.
아! 잠을 깨고 나니 나는 좋아졌다. 머리는 어쩌면 이렇게 맑을 수 있을까? 몸도 가볍고, 심정도 특별히 좋았다. 진짜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가족도 나를 위해 기뻐했고, 열심히 수련하라고 격려했다.
아들이 대법을 지지해 복을 받다
부대에서 말단 군관으로 있던 나의 아들은 파룬따파의 법리에 대해 매우 공감했다. ‘7.20’이후 내가 박해당할 때 아들은 사부님 법상과 대법서적 등을 나를 대신해 잘 보관했다. 1999년 가을, 수련생들은 교류를 통해 응당 밖에 나가 연공해야 하며, 법을 실증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우리들은 이른 아침에 밖에 나가 연공했다. 연공하고 며칠 안 돼 우리들은 경찰에 납치돼 구치소에 15일간 감금됐다. 구치소에 따르면 석방되는 날, 또 직장 상사가 와서 마중해야 출소할 수 있다고 했다. 나의 아들은 그날 나를 마중하기 위해 사복을 입고 아침 일찍 구치소에 와서 기다렸다. 아들이 오전 내내 기다렸지만, 직장 상사는 오지 않았다. 점심때가 돼 구치소 직원들이 점심 식사를 하기에, 아들도 집에 돌아가 점심을 먹고 오후에 또 구치소로 왔다. 오후에 퇴근 시간이 돼서야 직장에서 사람이 왔다. 내가 나오자 아들은 곧 나의 팔을 잡고 부축하면서 “어머니, 우리 집으로 가요.”라고 말했고, 나를 원망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부대에서 말단 군관인 아들은 내가 파룬궁수련으로 인해 구금당했기 때문에 받는 압력은 대단했다. 그러나 아들은 그날 하루를 나를 기다려줬다. 그때 그런 환경에서 아들이 그렇게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들은 진상을 알고 나의 대법수련을 지지하면서 대법에서 복을 받았다. 아들은 연줄을 달지 않고, 뒷거래하지 않고서도 몇 년 사이에 연속 진급했다, 나의 손자는 7, 8세 때 늘 기침하고 열이 올라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효과가 없었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받으니 ‘폐결핵’이라고 하면서 지난폐결핵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라고 했다. 나의 아들과 며느리는 아주 많이 괴로워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말했다. “그럴 수 없다!” 나는 손자에게 “한 번 가서 바람을 쐬고 오너라.”라고 말했다.
그들 세 식구가 지난(濟南)전문병원에 가서 검사받았는데 의사가 폐결핵이 아니라고 진단을 내려 그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스무 살인 손자는 몸이 아주 건강하다. 대법의 은혜다. 아니었다면 돈을 잃고 아이는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또 있다. 그때 우리는 법 학습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몹시 어려웠다. 내가 아들에게 “우리가 너희 집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법을 학습해도 되겠냐?”고 묻자 아들은 아내가 담이 작아 두려워할 것이라고 했다. 내가 너희가 출근한 후 우리들이 가고, 너희가 퇴근하기 전에 우리가 끝내겠다고 말했다. 아들이 좋다고 대답해 우리들은 법학습 팀을 꾸리게 됐다.
이전에 나의 손자는 반에서 1등을 한 적이 없는데 그 학기에 손자는 전교 수학 시험에서 반에서 1등을 했다. 2016년 손자는 우수한 성적으로 중점대학에 합격했다. 나는 이것은 대법이 아들에 대한 격려이고 손자는 대법에서 복을 받았음을 알고 있다.
외손자가 대법을 인정해 지혜가 열리다
나에게는 아들딸이 있는데 아들이 맏이다.
딸도 대법을 인정하고 대법서적을 읽었지만, 연공은 다 하지 못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대법을 지원하고 나의 수련을 지지했다. 딸도 대법에서 복을 받았다. 딸에게는 중학교에 다니는 쌍둥이 아들이 있다. 2016년에 두 외손자는 현재 이 중점 학교에 전학했다. 이 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요구가 높았는데 외손자는 시험에서 200등 뒤에 있었다(전교 학생이 800명이 넘는다). 내가 그들에게 늘 파룬궁의 진상 이야기를 해주고, 그들도 대법을 인정하면서 그들은 학교 선생님이 대법을 손상하는 서명을 하라고 해도 모두 하지 않았다. 또 친구들에게 서명하면 안 된다고 알려 주었다. 두 손자는 또 매일 학교로 가기 전에 ‘전법륜’을 한 단락씩 외웠다. 밤에 잠자는 시간이 아무리 늦어도 매일 이렇게 견지했다.
두 손자의 머리는 갈수록 총명해졌다. 원래 작은 손자는 형보다 총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작은 손자는 대법을 아주 경건하게 대했으며 항상 스스로 자신을 대법제자라고 했다. 한번은 방금 비가 와서 학교로 가는 길에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학생들 옷에 흙탕물이 튀었다. 작은 손자가 보니 자기 옷은 깨끗했다. 작은 손자는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 엄마에게 사부님께서 자기를 보호해 주셨다고 말했다. 올해 여름에 작은 손자의 시험성적은 반에서 1등, 전교에서 21등이 되었다. 큰 손자는 반에서 2등, 전교에서 50등이 되었다.
이러한 기적은 모두 대법 진상을 알고 얻은 복이다. 대법이 지혜를 주었기에 손자들은 재능을 발휘하게 됐다.
남편은 기쁘게 대법을 얻고 새롭게 태어나다
공안국의 중급 간부인 나의 남편 역시 대법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1999년 ‘7·20’ 이후 공안국의 상사는 끊임없이 나의 남편을 찾아 담화하면서 압력을 가했다. 그래도 남편은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반대한 적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았기에 오늘의 화목이 있게 되었다. 남편은 수련생들이 우리 집으로 찾아오면 아주 친절하게 대했고, 나도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했다. 공안국 상사가 남편을 찾아 아내도 책임지지 못한다고 질책하면 남편은 그것은 개인 신앙이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내가 수련한 후 대법의 신기함과 비상함을 목격했기에 주동적으로 탈당했다. 2013년 남편은 대법수련에 들어섰고, 매일 소조 법학습에 참가하며, 아침 연공도 느슨히 하지 않았으며, 세 가지 일도 한다. 남편은 전화로 진상을 알리며, 진상자료를 배포한다. 수련생들의 도움을 받아 남편도 장쩌민을 고소했으며, 국보대대장에게 진상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남편은 심장병과 고혈압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도 받았지만, 대법을 수련한 후 몸도 좋아졌고, 칠십이 넘었지만 아주 젊어 보이며, 지금까지 약을 먹지 않았다. 남편은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는 식사한 후 약을 한 줌씩 먹었다. 지금은 몸도 건강하고, 정신도 유쾌해 자연적으로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
불광의 빛을 받아 우리 가족은 정말 행복하다.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대법에 감사드린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에 감사드린다!
우리 온 가족은 사존께 큰절을 올리며 사부님의 홍은에 감사드린다!
이것은 나의 수련체험이다.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바란다.
원문발표:2018년 5월 6일
문장분류:수련교류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6/36300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