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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과의 인연으로 바른길을 걷다

[밍후이왕] 나는 어느 날 수련생과 함께 진상 현수막을 걸었다. 무지개가 곧바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마치 투명한 칠색 다리 같았고 밝게 빛을 뿌리는 것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나와 수련생은 격동되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격려하신 것이다.

간혹 다른 사람이 내 앞에 와서 말할 때 느낌이 편안하면 나는 그들에게 홍법을 한다. “나는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며 연공한 후 신체가 아주 좋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삼퇴를 해 평안을 보장받으라 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한다. 한번은 수련생과 함께 둑에서 진상을 알렸다. 우리가 진상을 알린 후 얼마 가지 않아 뒤의 사람이 “저 두 사람은 보살이에요!”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박해가 가장 심하던 2000년에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 그때 사악한 당의 TV는 매일 거짓말을 방영했다. 나는 보지 않았다. 하루는 한 대법제자를 만났다. 나는 그녀 옆에 있었고 아주 편안함을 느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파룬궁을 배웠다고 했다. 대법은 정법(正法)이며 TV에서 나오는 거짓말을 듣지도 믿지도 말라고 했다. 나는 배우고 싶었다. 그녀는 책을 3개월 동안 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두꺼운 책을 3개월 만에 볼 수는 없으며, 아는 글자가 얼마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6개월간 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6개월도 안 된다고 했다. 그 후에 협조인 수련생이 내가 대법을 배우겠다는 말을 듣고 책을 구해 주었다.

가정 마난을 돌파하다

나는 책을 가방에 수개월 동안 넣어두었다. 훗날 남편이 알고 노발대발하며 수련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주방에 있는 제일 무거운 식칼을 갖고 그의 앞에 갖다 놓으며 “당신이 오늘 나를 베어 죽이면 나는 이 책을 보지 않겠어요. 당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이 책을 볼 겁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첫 번째 관을 돌파했다.

나는 사부님과 인연이 있다. 박해가 심해도 사부님께서는 나를 빠뜨리지 않고 대법을 얻게 하셨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나는 훗날 재혼했다. 남편은 내가 연공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다. 나는 대법을 수련한 후부터 3년 동안 하루도 그에게 맞거나 욕을 먹지 않은 날이 없었다. 팔을 비틀지 않으면 발로 찼다. 두 팔이 자색 사탕수수 같았다. 여름에는 치마를 입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또 화장실에 가서 젓가락으로 대변을 집어 내 입에 넣으려 했다. 나는 발정념으로 그의 배후에 있는 사악을 소멸했다. 그는 담뱃불로 내 얼굴을 지지고 겨울에는 찬물을 내게 뿌렸으며 여름에는 뜨거운 물로 내게 화상을 입혔다. 3년 동안 몸에 작은 상처가 끊이질 않았다. 남편은 비록 나를 때리고 욕하였지만, 내가 글을 몰라 물어보면 가르쳐주었다. 그는 사각(四角) 사전만 볼 줄 알기에 곳곳으로 가서 사려 했으나, 사지 못했다. 훗날 딸이 사전을 찾아 내게 갖다 주었다. 이로 인해 딸은 복을 받았다. 이전에 딸은 늘 배가 아팠으나, 그때부터 더는 아프지 않았다.

한번은 가부좌하고 책을 보고 있는데 남편이 침대에서 일어나 나를 겨냥해 소변을 보려 했다. 내가 “당신은 마가 들었다”라고 하자 그는 사부님의 법상으로 가 손을 대려 했다. 법상은 높은 곳에 놓여있었다. 그는 사다리를 타려고 했다. 나는 그를 당겨 의자에 눌러 놓았다. 그는 의자에 3일 밤낮을 앉아 있었다. 머리는 부어 삼태기 같았고 입술은 부어 뒤집어졌다. 또 한 번은 바닥에서 며칠 동안 기어 다니며 입으로 흥얼거리며 “우리 어머니가 40여 년간 모신 것이 지금 들어오지 못한다”라고 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해결하지 못하게 했다. 훗날 남편은 병으로 3년 동안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는 낮에는 진상을 알리고 밤에 연공하고 또 그를 보살피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남편의 아들이 또 나를 박해하려 했다. 그는 남편의 집에서 내가 사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이사하라고 했다. 그는 집 문을 여러 번 억지로 비틀어 열었고 신발을 마루판에 있는 경서에 놓았다. 나는 줄곧 바르게 걸었고 그와 충돌하지 않았다. 또 미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나를 도와 관을 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40여 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바람도 진상 알리는 것을 막지 못하다

손자를 어려서부터 4살까지 내가 데리고 있었는데 딸이 데려갔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엄한 혹서에도 나는 손자를 업고 나가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렸다. 바람이 불고 빗속에 데려가도 손자는 병이 나지 않았고 감기도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16살이고 중학교에 다닌다. 손자가 학교에서 배불리 먹지 못한다고 하자 나는 매일 도시락을 갖다 주었다. 아침에 수련생과 함께 진상을 알린 후 집에 돌아가 밥을 해서 손자에게 갖다 준다. 가는 길에 차에서 진상을 알리고 역에서 진상을 알리고 일부 관을 돌파했다. 학교에서도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 손자도 대법을 지지한다.

나는 친정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그곳은 마을과 마을 사이가 멀다. 대략 300여 호가 있고 대법제자가 없다. 나는 그들을 구도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련생에게 오토바이로 데리고 가달라고 했다. 매번 큰 가방에 자료를 가득 넣어 다니며 집집이 배포하고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렸다. 친정집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안다. 그들은 모모집 딸이 또 우리에게 진상을 알려주러 왔다고 한다.

나는 네 번 불법 감금되었으며, 매번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셔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나와서 사람을 구원하는 거센 흐름에 또 뛰어들었다. 한번은 구치소에서 ‘집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을 세 번 들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감방의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이튿날 아들이 나를 데리러 왔다. 한번은 구치소에 불법 감금되었다. 나는 몸을 수색당했다. 붙이지 못한 커다란 스티커 여러 장이 나왔다. 그들은 왜 몸에 종이 몇 장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위에는 분명히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가 씌어 있었다. 그들은 보지 못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불러와서 보게 했지만, 그들도 흰 종이라고 했다.

또 한 번 불법감금 되었다. 몇몇이 나를 혼내주려고 끌어당기고 또 발로 찼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큰 소리로 외웠다. “대법을 굳게 수련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나니 층차를 제고함이 근본이로다 고험 앞에서 진성을 보나니 공성원만하여 불도신이 되는도다”[1] 그들은 “당신은 신이 되려고 생각하네”라고 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들은 또 “왜 자료를 늘 배포하는가?”라고 물었다. 나는 “공산당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을 박해한다. 박해가 하루라도 멈추지 않으면 나는 계속 자료를 배포하겠다”라고 했다. 그들은 “당신은 영원히 이곳에 오지 마세요”라고 했다.

한번은 심성을 지키지 못해 두려운 마음이 나왔다. 불법 감금되어 벌금 5,000위안(약 84만 원)을 내고 집으로 돌아왔고 약 6개월간 다리가 떨렸다. 나는 상관하지 않고 밤에 나가 자료를 배포했다. 나중에는 법공부를 많이 하고 발정념을 해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고 차츰차츰 낮에 나가 진상을 알렸다. 2015년 장쩌민을 고소할 때 나는 고소장을 우송했고 벌금 5,000위안을 찾아왔다.

정념으로 마의 교란을 제거하다

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우리 집에 법공부 팀을 만들었다. 사악이 미친 듯이 날뛰어도 나와 수련생들은 줄곧 이 법공부 팀을 유지했다. 우리는 함께 법공부하고 소통하고 토론했다. 협조하여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으며 공동으로 정진했다.

간혹 심성관을 잘 넘지 못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내 앞에서 다른 수련생이 이것도 나쁘고 저것도 나쁘다고 했다. 이 수련생은 내 곁에서 계속 쫑알거렸으며 1주일 동안 계속 말이 많았다. 나는 참고 참다가 결국 폭발하여 큰소리로 그의 잘못을 열거하며 꾸짖었다. 사소한 일도 모두 들추어냈다. 나는 단번에 심성이 떨어졌다. 1주일 동안 머리가 어지러워 책을 보지 못하고 연공하지 못했다. 교란이 매우 컸다. 나는 자신에게 반드시 책을 봐야 한다고 했다. 사상업은 책을 보지 못하게 했고 나는 보려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 빌었다. ‘제자는 심성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수련생은 제가 심성을 제고하도록 도와주었지만, 저는 참지 못해 수련생과 다투었고 심성이 떨어졌습니다. 사부님, 저는 수련을 잘 하겠습니다. 반드시 일어나겠습니다.’ 꿈속에서 수련생 세 명이 또 내 잘못을 열거했다. 나는 이것은 나의 관이라고 했다.

나는 한 수련생이 병업관을 넘을 때 그녀의 집에 가서 발정념을 했다. 몇몇 수련생은 낮에 그녀를 도와 발정념을 했다. 수련생은 여러 번 까무러쳤고 나중에는 돌파했다. 몇 주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마는 나를 교란했다. 첫 번째 날 밤에 꿈에서 한 목소리가 “당신을 고험하겠다”라고 했다. 나는 “당신은 자격이 없다. 오직 사부님만 나를 시험하실 수 있다”라고 했다. 이튿날 밤에 또 꿈속에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내 곁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당신은 내 어머니가 아니다. 원신을 낳은 어머니가 내 어머니다. 당신은 가라”라고 했다. 3일째 날 또 꿈속에서 한 목소리가 “당신을 죽게 하겠다”라고 했다. 나는 “죽을 수 없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4일째 날 또 한 목소리가 “당신의 사부님은 당신을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는 나를 요구하신다. 너를 해체하겠다. 너를 소멸하겠다”라고 했다. 5일째 날 아침 6시 발정념을 할 때 한 목소리가 내 곁에서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라고 했다. 나는 “네가 죽어라. 너를 소멸하겠다”라고 했다. 6일째 날 연공할 때 마는 또 연공하지 못하게 교란했다. 내가 포륜(抱輪)을 할 때 내 손을 눌렀다. 나는 손이 만 근이나 되는 것처럼 무거웠다. 가부좌할 때 또 내 등을 눌렀다. 나는 허리를 펴지 못했다. 나는 “사부님, 제자를 구해주세요!”라고 외쳤다. 순식간에 마가 없어졌다. 나는 견정히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었다. 사부님께서는 내 신변에 계신다. 마는 아무것도 아니다.

18년 동안 대법을 수련하면서 법공부할 때마다 가부좌했다. 다리를 내리면 불편하다.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은 비바람도 막을 수 없다. 새해에도 중단하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는다. 어디 가든지 생각하는 것은 사람 구하는 것이며 사람 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쓰린 적도 있었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억울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중생이 구원받았을 때의 희열과 기쁨이 더 컸다.

어렸을 적부터 고생 속에서 자라 몇 글자밖에 모르던 내가 지금은 대법의 모든 경문을 유창하게 통독한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건져내어 씻어주시고 또 신이 되는 길을 걷게 해주셨다. 대법 중에서 수련해 대법제자가 되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만고의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기라! 이 수련(修煉)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라! 당신들이 걸어온 길을 소중히 여기라!”[2] 나는 바른길을 걸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진성을 보다(見眞性)’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대만법회에 보내는 축사’

 

원문발표: 2018년 4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4/1/3636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