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광저우에서 제4회 학습반이 열리기 전 사존께서는 1994년 7월 15일부터 19일까지 후난성 천저우(郴州)에서 4일 동안 설법반을 개최하셨다.
원래 사존께서 1994년 그 일 년의 설법반 일정이 꽉 차있었지만 1994년 1월 6일 천저우 기공협회는 초대 서한을 보내 사존께서 학습반을 개최해주실 것을 요청했다. 사존께서 동의하셨고 천저우 수련생은 계약서에 서명했다. 천저우 기공협회는 적극적으로 매표에 나섰고 입장료는 한 장에 50위안(한화 8,460원)이었다. 나중에 파룬궁 연구회에서 갑자기 전화로 사존께서 정말로 너무 바쁘시기에 천저우 학습반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천저우 기공협회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매표 상황을 사존께 반영해주실 것을 제안했다. 나중에 연구회에서는 학습반 시간을 단축해 9일 학습반을 4일에 끝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시간상 관계로 오직 법만 전하고 공은 전하지 않으며 천저우 기공협회에서 더 받은 금액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면서 신수련생은 30위안(한화 5,000원), 노수련생은 20위안(한화 3,380원)을 받아야 한다는 표준을 정해줬다. 그리하여 천저우 수련생들은 반환 금액을 참가자들에게 돌려주었다.
천저우 학습반은 4일 만에 전 과정을 설법하셔야 했으므로 밤낮으로 시간이 추가돼 사존께서는 매우 노고가 많으셨다. 그러했지만 사존의 수련생에 대한 관심은 극진했으며 친히 베이징 연구회에 전화해 ‘중국파룬궁(中國法輪功)’ 서적을 보내라고 하셨다. 또 수련생의 기념촬영 요구도 들어주시고 일부 수련생을 거느리고 소선령(蘇仙嶺)에 가서 천저우 환경을 관찰하셨다.
한 광저우 수련생의 회상에 따르면 1994년 7월 14일 일행 10여 명은 오전 10시 경 기차를 타고 다음 날 오후 2시 경에 천저우에 도착해 학습반이 열리는 천저우 여자배구 집중훈련기지 숙소에 왔다. 사존께서는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다. 오후 4시 사존께서 문 앞에 정차한 지프차에서 내려 광저우 수련생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셨다. 매일 저녁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강의하셨고 일요일은 오후에 강의하는 것으로 바꿨다. 이 학습반은 설법만 하고 공을 가르치지 않았으며 강의를 들은 수련생 대부분은 현지 각 계층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교란을 배제하다
사존의 천저우 학습반은 교란이 비교적 컸으며 천저우 현지에서 조직한 것도 이상적이지 못했다. 광저우 수련생들은 현지 수련생들이 수강 자세가 제멋대로이고 이쪽저쪽으로 비스듬히 기대고 듣는 사람도 있었으며 장내에 끊임없이 드릴로 벽을 뚫는 소리가 들렸다. 학습반에서 또 누군가가 들것에 실려 들어오기도 했다. 일요일 오후 4시 경, 사존께서 강당에서 설법하는데 갑자기 강당 밖에서 광풍이 몰아치며 번개와 우레가 동반했고 지붕이 곧 날아갈 듯 했다. 수련생들은 즉시 갑자기 닥친 날씨 변화에 마음이 끌려 잇달아 밖을 내다보았다. 사존께서 즉시 말씀하셨다. “밖을 보지 마세요. 제 말을 들으세요.” 그때 장내의 등이 꺼졌고 잠시 후에 다시 켜져 장내 사람들이 환호했다. 사존께서 이때 옆에 있는 수련생에게 등이 다시 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정말로 잠시 후에 장내의 등이 또 꺼졌고 잠시 후에 다시 켜졌다.
저녁 식사할 때 수련생들은 사존을 모시고 함께 식사하려 했다. 그때 사존께서는 식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눈을 감고 데커우샤우푸(疊扣小腹) 동작을 하셨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셨다. 일부 수련생은 어찌된 일인지도 모르고 사존을 불렀으나 사존께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잠시 후 사존은 한 수련생과 식사를 하실 때 방금 그 일을 처리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오후 강의를 교란한 일) 저녁 식사가 끝나고 수련생들이 주변에서 거닐고 있었는데 사존께서 다가오셔서 광저우 수련생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려올 때 그것들은 내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소선(蘇仙)이 득도를 했으나 질투심이 이렇게 강해 두 마리 용으로 변신해 교란했습니다! 여러분은 몰랐을 겁니다. 그 번개를 친 것은 내가 온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그것은 나의 내력을 몰랐습니다. 만약 그것이 나의 내력을 알았다면 감히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수련생들은 듣고 나서 많은 것을 크게 깨달았다.
학습반이 열리는 동안 사존께서는 매우 바쁘셨다. 수련생들은 사존께서 매일 방에서 다그쳐 무엇인가 적는 것을 보았고 식사시간에도 수련생과 함께 식사하시지 못하고 끼니마다 방에서 만두를 드셨다. 수련생들이 나중에 만두에 조금 곰팡이가 낀 것을 발견했으나 사존께서는 여전히 드셨다. 수련생들은 보고나서 매우 가슴이 아파 사존께 말씀을 올렸다. “사부님, 야위셨습니다.” 사존께서는 매우 가볍게 응대하셨다. “그래요?” 어느 날 수련생이 매우 푸짐한 요리를 준비하고 사존을 모셨다. 하지만 사존께서는 총망히 조금 드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 사존께서 중생구도를 위해 얼마나 시간을 다그치고 있는지 얼마나 마음을 쓰시는지 알 수 있었다.
소선령을 거니시다
저녁에 강의가 있고 낮에는 꽤 시간이 있어서 한 수련생이 사부님께 인근 소선령으로 관광할 것을 제안했고 사존께서 동의하셨다. 그리하여 광저우 수련생이 여자배구 훈련기지에서 30위안(한화 5,000원)을 내고 버스를 빌렸다. 2명의 천저우 수련생의 배동 하에 이튿날 사부님을 따라 천저우 교외에 있는 소선령에 관광을 갔다. 소선령은 당나라 때부터 ‘천하 제18복지’라는 명성을 갖고 있다. 소선령에는 주로 3개의 경관이 있다. 하나는 전설속의 소선이 백일비승한 곳에 큰 바위가 있는데 비선석(飛仙石)이라 하며, 두 번째는 산 위에 절이고 마지막 하나는 산 아래를 굽어보면 보이는 ‘사슴이 머리를 돌리는 모습’이다.
비선석에 도착했을 때 수련생들은 꽤 흥이 났고 사부님께서는 비선석을 가리키며 수련생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들을 데리고 하늘을 날 것입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고 비선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광저우 수련생이 자신의 사진기로 찍으려 했으나 찍을 수 없었고 수련생은 곧 사부님의 사진기로 바꿔서 찍었는데 2장을 찍고는 또 찍을 수 없었다. 수련생들은 어찌된 일인지 몰랐고 사진기의 고장 난 곳을 알아보려 할 때 사존께서 다가오시더니 사진기를 가져가며 “찍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신 후 또 한마디 더 하셨다. “이미 신선으로 됐으면서 여전히 질투심이 이렇게 강렬하군요.” 사존께서 가리킨 것은 소선령의 소선이었다.
‘소선령’ 절 입구에 도착했을 때 사부님께서 손가락으로 입구에 배치한 돌사자의 발을 건드렸다. 그리고 수련생들과 함께 절로 들어갔다. 이때 절의 오른쪽 바닥에 한 젊은 승려가 가부좌를 하고 있었으며 정면에 있는 불상 위에 ‘법륜상전(法輪常轉)’ 네 글자가 있었고 단 위 팻말에는 ‘유구필응(有求必應)’이라는 글귀가 있었다. 사존께서는 방금 절로 들어가시면서 불상 앞에서 두 손으로 무엇인가 잡아서 분리하는 동작을 하신 후 주변 수련생에게 우리는 모두 불가이므로 절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절에서 선방(禪房)으로 가보니 적잖은 승려들이 가부좌하고 경을 읽고 있었다. 사존께서 옆에 수련생에게 물으셨다. “당신들이 보기에 경을 염하는 승려 중에서 누가 가장 잘 수련한 것 같나요?” 옆에 수련생은 자세히 열심히 경을 읽는 승려 중에서 찾아보더니 나이 든 사람을 가리키자 사존은 아니라고 하셨고 다시 수련생이 열심히 경을 읽는 승려를 가리키자 사존께서는 여전히 아니라고 하셨다. 몇 사람을 가리켰으나 사존께서는 모두 부정하셨다. 사존께서는 수련생들이 찾아내지 못하자 변두리에 앉아 열심히 경을 읽지 않고 이리저리 보고 눈을 껌벅거리는 승려를 가리켜 수련을 가장 잘했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절에서 나왔다. 잠시 후 한 승려가 절에서 바삐 쫓아와 사존을 찾으셨다. 수련생이 살펴보니 바로 그 사존께서 수련을 가장 잘했다는 승려였다. 사존은 이때 주변 수련생들에게 따라오지 말라 하시고 그 승려와 절에서 약 15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셨다.
절 구경을 마치고 수련생들은 사존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갔다. 산 정상에 거의 오를 때 사존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맞은편 산에 작은 방을 가리키며 왜 옆에 있던 건축물이 없어졌냐고 물으셔서 천저우 수련생이 허물었다고 말씀드렸다. 사존께서는 그건 당나라 건축이라 말씀하시면서 사부님께서 전에 천저우에서 3차례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말씀하셨다. 산 정상 인근에서 둘러앉아 휴식을 취했고 사존께서는 또 잠시 설법을 하시면서 현재 인류는 모두 부패되어 마치 사과가 썩은 것 같다고 비유하셨다. 세 번째 관광 경관인 ‘사슴이 머리를 돌리는 모습’은 산허리에서 모퉁이였는데 사존께서 그 경관 앞으로 가셔서 보시고 바로 몸을 돌려 수련생들에게 이곳에서 떠나라고 하셔서 수련생들은 신속히 그곳을 내려왔다. 나중에 수련생은 회상에서 그곳을 지날 때 어떤 힘이 사람을 아래로 밀어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4일간의 천저우 설법반을 마치고 사존께서는 또 급히 광저우 제4회 학습반으로 가셔야 했다. 원래 사존께서는 천저우에서 광저우로 가는 기차 티켓을 구매했으나 수련생들이 사존과 더 함께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 사존을 모시고 같은 기차로 가고 싶다고 해서 사존께서는 이미 예매한 티켓을 취소하고 광저우 수련생과 함께 광저우역을 경과하는 기차를 타셨다. 그런데 승객이 너무 많아 통로마저 빼곡했다. 침대 티켓으로 알아봐주겠다던 한 열차 승무원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나중에는 수련생들도 침대가 있는 객실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 사존께서는 차를 타신 후 좌석마저 없어서 세면대 옆 바닥에 무엇인가 깔고 앉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셨다. 한 수련생이 마음이 아파 즉시 열차 승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수련생의 남편도 승무원이었기에 침대 티켓 한 장을 구해 사존께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게 해드렸다.
이튿날 사존께서는 또 신경을 써서 수련생에게 도움을 준 그 승무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라고 부탁했다. 사존과 함께 한 일행이 광저우로 도착한 그날이 바로 광저우 제4회 학습반이 열리는 날이었다.
원문발표: 2015년 3월 7일
문장분류: 온고명금(溫故明今)>사부님의 은혜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3/7/305522.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5/3/21/1494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