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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 문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배움과 수련을 비기다

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5년, 나는 대법 수련에 정식으로 입문했다. 올해 3월 중순부터 4월 12일 저녁까지 나는 분망함과 충격 속에서 보냈는데 사부님께서 나에게 제고할 기회를 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2017년 5.13 세계 파룬따파 날 원고 모집 전, 법공부 소조 수련생 언니 A는 지나가는 말처럼 나에게 문장을 쓰는 것이 두렵지 않은지 물었다. 나는 조금도 겸손하지 않게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 두 사람은 다른 노 수련생의 수련 이야기를 채취하고 편집했다. 노 수련생은 먼저 우리에게 친히 경험한 일을 얘기했고 나는 그것을 문장으로 썼으며 다른 두 명의 수련생은 문장의 사건에 대한 묘사 부분에 부족한 부분을 보충 완성하고 진실하지 못한 부분을 수정했으며 필요치 않은 감정 표현에 대해 삭제했다.

문장을 수정하는 과정은 참으로 마음을 닦는 과정이었다. 두 수련생이 내가 출력한 초고를 수정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서운했는데 내가 쓴 문장을 수정하는 것은 나를 부정하는 것만 같아 내가 그렇게 쓰게 된 원인을 부단히 강조하면서(실제는 남들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 수정하라고 하면 짜증을 내면서 심지어 ‘내가 당사자도 아닌데 그렇게 수정 잘하면 자기가 쓸 것이지’라는 부정적인 생각까지 했다.

문장을 한번 또 한 번 수정하면서 나는 법을 실증하는 문장은 과장, 연상, 정서를 부추기는 등 속인의 문장 쓰는 기교가 필요 없이 진실만 필요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모든 일은 천상의 신들이 전부 보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 내가 이러한 기적을 적어 인간 세상에 알리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영광이기에 나는 꼭 그것을 잘 써서 대법을 실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힘을 모은 덕에 문장이 발표됐다. 나는 한편으로 자신의 과시심과 환희심을 억제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참지 못하고 다른 수련생들에게 이 문장을 막 추천했다. 우리 주변 수련생의 진실한 수련 이야기라고 말했지만 말 밖의 뜻은 수련생에게 ‘내가 쓴 것!’이라고 알렸다. 집에서도 마찬가지고 부모님께 수련생이 신사신법하면서 나타난 기적을 읽어주면서 겉으로는 그들이 대법을 믿고 다시 대법에 돌아오도록(부모님은 99년 7.20전에 수련하셨음) 하려는 것이지만 내심은 여전히 그들에게 내가 썼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긴 시간 동안 나는 자신이 잘했다는 착각 속에 들떠있었는데 이러한 나쁜 마음을 수련해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참지 못하고 또 과시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마음이 안정되었다.

2018년 대법의 날 원고 모집 공지가 나왔다. 수련생 언니 A는 나에게 현지 다른 수련생 언니 B의 수련 이야기를 쓰라고 제의했지만 나는 망설였다. 왜냐하면 수련생 언니 B의 이야기를 나는 들은 적 있는데 그녀의 이야기는 조금 특별했다. 그녀의 두 가족은 모두 그녀가 수련을 한 후에 사망했다. 내 마음속에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1]고 말씀하셨는데 그녀 집에는 왜 이러한 일이 생겼을까? 당시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까? 이 진실한 일을 사실대로 써내면 그것은 부정적인 소재가 아닐까? B는 현재 엄청 정진하는데 매일 집에서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리는데 그녀의 일을 나는 써야 하나? 어떻게 쓰지 등이었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나는 B를 만났다. 오후 반나절 교류를 통해 나는 사부님의 고심(苦心)을 알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내 마음에 매듭이 있고 수련에 대해 아직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을 보고 B와의 교류를 배치하신 것을 깨달았다. B는 숨김없이 나에게 모든 과정을 말해주었다. 말하는 과정에 대법과 사부님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없었으며, 반대로 그러한 상황 하에 사부님께서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한 보살핌에 대해 그녀는 너무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분의 일은 나에게 사부님의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간섭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지할 수 없다. 아내와 자식, 부모형제를 포함한 그들의 운명, 그것이 당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2] 이 단락의 법을 깨닫게 했다.

수련생 B의 문장을 정리하면서 나는 그릇된 인식에서 나올 수 있었다. 즉 ‘파룬따파를 수련하기만 하면 보험에 든 것 같다’(진정으로 법에서 착실히 수련하여야만 제일 안전한 것)는 생각이었다. 동시에 가끔 노년 수련생이 세상을 떠나는 데 대해 최초 대법에 대해 조금의 의문과 수련생 본인에 대한 아쉬움에서, 다시금 수련 과정에서 자신의 일사일념을 꼭 잘 수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하나의 누락도 없이 수련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깨달았다. 수련생 B의 문장을 금방 정리하자 기다리고 있던 수련생 C와 수련생 D도 시작하게 되었다.

매 한 수련생의 자신이 직접 경험한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한번 또 한 번 깊은 감동을 받았다! 수련생들의 신사신법하는 확고함과 탄압 후 불굴의 정신으로 각종 생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표현들은 모두 감동적이었다. 그들은 그 특수한 시기에 여러 번 세뇌, 구속, 공갈을 당하면서 어떻게 더듬으면서 힘들게 나왔는지 말했다. 그때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없었고 진상 자료와 완성된 자료도 없었으며 수련하는 누군가를 본보기로 할 수도 없이 수련생들은 사부님과 법에 대한 확고함으로 지혜를 다하여 자신의 진상을 알리는 길을 개척했다.

수련생 C와 A는 또 많은 협조인들이 모두 그렇게 확고하고 대법을 널리 알리는데 많은 일을 했지만, 그 후의 박해 중에서 표현이 각기 달랐는데 현재 어떠한 상태도 다 있는데 참으로 쉽지 않다면서 층층이 다 아래로 떨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에서는 뒤졌던 사람이 앞사람을 추월하는 것도 적지 않은데 수많은 신 수련생이 대법이 박해받는 중에서 대법이 무엇인지 깨닫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계속해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는 정말로 앞사람이 끝나기 바쁘게 뒷사람이 꼬리를 물고 입장하는 장면이 보였다. 수련은 거센 파도가 모래를 이는 것과 같다. 수련생과의 교류 중에서 사부님의 한 번 또 한 번의 점화를 말했는데 사부님께서는 한 명의 제자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제자를 점화해 길을 잃은 제자들을 불러서 깨우셨는데 사부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참으로 모두 확고하게 신사신법하면서 머리가 떨어져도 몸은 여전히 가부좌하고 있을 것인가?

수련생 D와 A는 몇십 년 전 동료였는데 이번에 사부님께 수련 문안을 올리려고 우리를 찾아왔다. D도 줄곧 사부님만 확고히 믿고 사부님 말씀에 따라 매일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도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늦은 시간까지 들었다. 나는 매 한 수련생은 모두 보물창고와 같다는 것을 느꼈다. 20여 년간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 많았는데 책으로 쓸 수 있을 정도였다. 수련생 D가 말하는 매 한 가지 일들은 신 수련생인 나에게 모두 큰 감동을 주었다. 대법에 대한 확고함으로 그는 몇십 년 원한을 내려놓게 됐고, 확고함으로 그는 이익을 내려놓고 모욕과 학대 하에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3]를 하면서 매일 분주히 가족을 돌보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 연분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70이 다 되는 사람이 고생을 낙으로 여겼다.

이번 법회 원고 모집에서 수련생들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나는 이 수련생들은 모두 처음으로 원고를 투고한 것을 발견했다. 수련생들의 놀라운 이야기들은 쓸 줄 몰라 마음에 계속 묻어뒀으며 또 일부는 썼지만, 그 놀랍고 신성한 일들은 수련생의 몇 마디 표현 중에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오늘 점심 나는 배추에 당면찜을 먹었다’는 것처럼 그렇게 평범했다. 하지만 나는 수련생들이 법에서 평범함과 인자함을 수련해 낸 것을 봤는데 나의 경솔함과는 선명한 비교가 되었다. 비교 후 나는 내 수련이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너무 부족해 사부님께 말씀드릴 것이 없었는데 참으로 걱정이었다.

이번 원고 모집을 통해 사부님께서는 직접 나에게 수련생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그들이 모순과 각종 고험 하에서 일사일념의 움직임을 알게 해주셨는데 나는 사부님께서 이러한 방법으로 나를 위로 끌어당기시는 것을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을 통해 내가 수련에서의 이 공백을 보충해주셨으며 현재 유리한 조건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수련생들은 이전에 박해 중에서 막막해하고, 분별하며, 사고하고, 더듬으면서 넘어지고 잘못 걸었지만, 오늘날 막 수련에 입문한 나는 노 수련생이 옆에서 일깨우고 도와주며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시고 보살펴주시면서 이러한 기회를 주셨는데 실로 의외의 소득이었다! 정진하지 않으면 나는 사부님의 심혈에 어떻게 보답하겠는가?

모든 것은 사부님의 배치다. 몇십 년 전 사부님께서 나에게 문장을 쓰는 능력을 주신 것처럼 나의 이 모든 것은 오늘날 대법을 실증하는 데 쓰라고 배치하셨다. 문장이 발표되든 되지 않든 나는 나의 노력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데 사실 내가 한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은 다 사부님의 배치가 아닌가?

문장 쓰는 능력이 있는 수련생들이 펜을 들 것을 호소한다. 우리 많은 노 수련생에게는 많은 감동적인 일들이 있는데 쓰지 않으면 너무 아쉽다! 우리가 이 기적을 세상에 알리자. 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는 것은 우리 매 제자가 해야 하고 문장을 쓰는 과정은 마음을 닦고 제고하며 배움과 수련을 비기는 과정인데 왜 즐기지 않겠는가?!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4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4/19/3643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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