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수련에서 ‘버림’을 깨닫다

글/ 후난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참음(忍) 속에 버림(捨)이 있는 것으로, 버릴 수 있음은 수련의 승화이다.”[1] 나는 ‘버린다’는 것이 착실하게 수련할 수 있는 중요한 내포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련인이 버려야 할 것은 참 많다. 각종 사람마음, 집착, 사람의 관념. 아래에 내가 겪은 실제 사례를 두 가지 들어보려 한다. 명예와 이익을 버린 일, 그리고 속인의 관념을 버린 일이다.

(1)

4년 전, 회사에서 한 임원이 나를 해당 부서 매니저로 추천했다. 당시 나는 나의 개인수련과 진상 알리는 활동이 영향을 받을까봐 완곡히 거절했다. 그러나 급여 인상과 근무 수당 역시 쳐주겠다는 등 상사의 신임하는 모습에 못 이겨 매니저를 하기로 했다.

첫해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우리 부서는 강한 전문성을 요하고 관련된 분야가 많아 업무 부담이 컸지만 내가 관리하는 팀은 협조를 잘해서 일을 조리있게 추진하고 업무 효율도 높아 각종 임무를 우수하게 달성했다. 그러나 이후 변동이 생겼다. 다른 부서로 가는 사람, 이직하는 사람이 나왔다. 그러나 인원은 보충되지 않았다. 원래도 일손이 빡빡했는데 갑자기 두세 사람이 나가면서 내가 떠맡은 일이 과해졌다.

정상적인 업무에 영향이 없도록 나는 잔업을 하며 장기간 억지로 버티다보니 매우 힘들었다. 이를 차치하고라도 개인수련과 진상 알리는 활동에도 영향이 있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됐다. 매니저 직책을 내려놓으면 월수입이 3000~4000위안(한화 약 51~68만원) 줄어들 테고 더욱이 체면도 깎일 것이다. 속인이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내려가지 않으려 버틸 것이다. 내 문제가 아니라 일손 부족이 문제니, 부서의 정상 가동 여부를 관심 밖으로 밀었을 것이다. 이 자리에 있기도 어려운데 왜 스스로 포기하겠나.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수련인이기 때문이었다.

속인의 도덕성 측면에서 본다면 부서 업무가 정상 가동되지 못하는 것은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설명하므로, 유능한 사람에게 자리를 내줘야한다. 정법(正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에서 본다면 자신을 잘 수련하고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 것을 첫자리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 수련인으로서 자그마한 명리(名利)마저 버리지 못하는가 싶어 호흡을 가다듬고 곧바로 직책 포기서를 제출해 일반 엔지니어가 됐다. 말은 쉽게 하지만 당시 내 마음은 한동안 괴로웠다. 이런 고통은 ‘버림’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고통을 감내하는 것도 수련인의 ‘참음’, 그 일부분일 것이다.

(2)

퇴직한 지 2년 된 아내는 건강이 나빠 집에서 늘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얼굴이 늘 고통스러워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병원에 잘 다닐 수 있게 비용을 대주고 집안일을 좀 분담하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 오전 7시가 좀 지나면 출근했고 저녁 6시가 넘으면 집에 왔다. 저녁식사를 마치면 약 1시간가량 집안일을 했다. 1시간을 하면 다리가 시큰했는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내에게서는 고통스러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좀 불만스러웠다. 나는 종일 고생했기에 집안일까지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고, 가사는 아내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내가 수련인인데 이 일에서 걸려했으니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쳐주셨는지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다. “사실 당신들이 속인 중의 명(名)ㆍ이(利)ㆍ정(情)에 해를 입어 괴로워한다면 아직 속인의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당신들은 기억해야 한다! 수련 자체가 고생스러운 것이 아니라, 속인의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당신들이 명(名)ㆍ이(利)ㆍ정(情)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될 때, 당신들은 비로소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2] 내가 무슨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불평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봤다. “아내는 출근하지 않으므로 집안일은 아내 몫이다.”라는 것은 속인의 관념이 아닌가. 수련인이 속인의 논리로 사고해서야 되겠는가.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소화상과 관련해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소화상은 고생을 겪을수록 더욱 쉽게 개공하며, 그 대화상은 향수(享受)할수록 개공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업력의 전화(轉化)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3] 수련은 고생을 겪어야 한다. 이것은 수련에 좋은 환경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점차 마음이 평온해졌고 속인의 관념도 차츰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마음의 평정을 찾자 화가 나지 않았고 수련인의 ‘참음’에 도달했다.

이상은 개인적인 체험이다.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점이 있다면 수련생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무루(無漏)’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진수(眞修)’[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4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4/17/362186.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