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촨 대법제자
[밍후이왕] (경축 513 밍후이 전문코너) 나는 1994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修煉)했다. ‘5.13’세계 파룬따파의 날 경축에 즈음하여 사존께서 자비롭게 구도해주시고 재조(再造)해 주신 은혜에 무릎 꿇어 감사드린다!
나는 1949년생으로 어려서부터 장애인인데, 절에 다니기를 좋아했다. 1990년 7월 적극적으로 부체기공을 연습했고 내가 아는 많은 지인을 이끌고 연습했다.
나는 부체의 통제를 받아 사람에게 처방을 내릴 수 있었는데 그 처방은 이러했다. 찾아온 손님이 무슨 병을 치료하려면 나는 그 병을 치료한다고 글로 썼다. 예를 들면 ‘위병치료’, ‘두통치료’ 등이다. 그러면 모두 치료할 수 있었다. 내가 ×기공 연마할 때 어디에서 기채집하면 그 초목이 죽었고 동물은 웅얼웅얼하며 소리 질렀다.
이 부체로 인해 나는 전신에 오한이 들어 무더운 날에도 군용 가죽 솜 외투를 입었으며 밤에 잠자려면 남편이 나를 끌어안아 전신에 열이 나야 잠들 수 있었다. 친척 집에 가면 누구도 나와 함께 자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도 나로 인해 추워서 무릎이 아프고 등과 가슴이 차가워졌기 때문이다. 전기담요를 사용해도 잠자리는 얼음같이 차가웠다.
부체공 연습으로 1993년부터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두 병이었고 경추 3번째 마디부터 5번째 마디까지 골질증식으로 신경을 압박해 메니에르 합병증으로 심한 어지럼증이 생겨 비행기가 하늘을 날거나 기차가 옆으로 지나가고 애들이 옆으로 달려가도 머리가 어지러워 쓰러졌다. 난소 낭종, 신경쇠약, 좌골신경염, 전신의 내장이 전체적으로 붓고……. 국내 병원, 의사들을 찾아다녀도 치료할 수 없었다. 40여 세 나이에 생활을 완전히 자립할 수 없게 됐고 지팡이를 짚어야 걸음을 걸을 수 있었다. 의사는 ‘살아있는 시체’라 말했고 기공협회의 사람들도 ‘살아있는 시체’라고 말했다.
사존을 따라 설법반에 참가
1994년 4월 청두 기공협회에서 나에게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청두에서 설법하고 공을 전하시기 전의 기공보고회 티켓 18장을 주었다. 뜻인즉 ‘살아있는 시체’가 공을 연습한다면 혹시 나아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1994년 5월 28일 오전 9시경 나는 청두 기공협회 안에 서 있었다. 그때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나의 앞에 멈춰섰고 사람이 내릴 때 여는 문이 나와 부딪쳤다. 내리는 사람은 매우 젊고 키가 컸으며 멋졌고 매우 선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았다. 바로 쉐쥔(薛軍. 나중에 이름을 알았다)이 차에서 내리며 몇 개 큰 짐을 들었고 무엇인지 물었더니 학습 자료라고 했다. 나는 함께 온 사람에게 함께 들어드리라고 하고 운반 후 열어보니 ‘파룬궁(法輪功)’과 ‘문예지창’이었다. ‘파룬궁’ 책을 펼쳐보니 작가의 사진이 있었고 매우 익숙했으며 바로 방금 차에서 내린 사람과 같았다. 여러 사람이 다시 살펴보니 바로 작가가 책을 가져온 것이었다! 그때 우리 몇 사람 모두 몇 권씩 구매했다.
사부님의 학술보고 중간 휴식 시간에 나는 곧 진행하게 될 9일 학습반 신청을 했다. 기공협회의 몇 명 영도는 나의 신청을 가로막으려 했다. “학술보고가 아직 결속되지 않았고 효과가 어떨지 모르는데 신청을 하다니, 황당하지 않아요?” 내가 말했다. “방금 사부님이 지적하신 현재 사회의 바르지 못한 기풍, 부패현상으로라도 이 사부님은 당신들 같이 서로 속이고 속이는 것보다 낫습니다. 나는 이 공을 배워야겠습니다!”
그 후 매일 오전 11시경 우리 4명은 집에서 청두 수리전력국(水利電力局)에서 사부님께서 개최하신 학습반에 참가했다. 근처의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기다렸다가 오후에 학습반에 참가해 강의를 들었다.
두 번째 날인 5월 29일 식사를 한 후 함께 간 사람들은 상가로 들어갔으나 나는 지갑을 지니지 않아 가지 않고 직접 학습반이 열리는 장소로 걸어갔다. 십자 교차로에서 갑자기 사부님께서 나의 앞에 서 계셨다. 가슴 앞에 팔짱을 끼고 나를 몇 번 보시고 몸을 돌려 앞으로 가셨다. 나는 저도 모르게 사부님을 따라갔다. 사부님께서는 몇 걸음 걸으시다가 멈춰 서서 머리를 돌려 나를 보고 다시 앞으로 걸으셨으며 나는 또 따라서 앞으로 갔다. 이렇게 걷고 멈추고 하면서 나는 계속 사부님을 따라 학습반 대문 입구에 도착했다.
설법반 장소 안을 살펴보니 많은 사람이 ×기공을 연마했고 나는 오랫동안 이 기공을 연습하지 않아 즉시 다가가 연습하려 했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사부님께서 또 나를 보셨고 나는 또 자연스럽게 사부님을 따라 사부님이 설법하시는 교실로 들어갔다.
오후 학습반이 시작되면서 사부님의 첫마디는 이러했다. “나는 종래로 이렇게 작은 학습반을 꾸려본 적이 없다.”(참가 인원이 7백여 명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이 매우 괴로웠고 속으로 말했다. “사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반드시 사부님을 위해 홍법할 것입니다.”
이어서 사부님은 방금 밖에 그 몇 사람이 연습한 공은 족제비의 동작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놀라서 차가운 땀이 흘렀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방금 그것을 연습하지 않았다. (사실은 사부님께서 연습하지 못하게 해주신 것이다)
이튿날 나는 또 십자 교차로에서 사부님을 뵐 수 있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가슴 앞에 팔짱을 끼셨고 나의 앞에 서 계셨다. 나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사부님을 따라 걸었고 어제처럼 걷다가 멈춰 서고 하면서 사부님을 따라 학습반 강당에 들어섰다.
그다음 날도 그렇게 사부님께서 나를 이끌고 설법하는 교실로 이끌어주셨다. 이때 나는 결심을 내리고 ×기공을 포기하고 한 마음으로 파룬궁을 수련하려 했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 나는 머리를 책상 밑으로 하고 펜으로 ‘파룬궁’ 책에 표기하느라 책 모서리에 ‘파룬궁’ 세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룬(輪)’ 이 글자 왼쪽 차(車)변을 아직 쓰지 못했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나의 몸에 마음대로 쓰고 그린다.” 그 말을 듣고 놀라서 펜을 땅에 떨어뜨렸다. 사부님께서는 어찌하여 모든 것을 알고 계실가!
9일 학습반 기간 남편이 매일 데리러 왔는데 매번 가로막는 사람 없이 교실로 들어왔다. 때마침 동공을 배우는 시간이어서 남편도 함께 배웠고 사부님께서 남편의 연공동작을 바로잡아주셨다. 그 뒤로 남편의 위출혈은 자신도 모르게 나았다.
하지만 기공협회 비서장이 몇 번이나 학습반에 참가한 나를 찾아와 다른 기공학습반에 참가하게 하려 했으나 들어오지 못했다. 한번은 그가 경비에게 애걸하듯이 말했다. “일 분이면 됩니다.” 경비는 그래도 그를 들여놓지 않았다. 그가 이 일을 나에게 알려줄 때 나는 믿어지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 나중에야 깨달았는데 이는 모두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하신 것이고 그런 부체기공이 나를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부님과 함께 촬영
9일 학습반이 끝난 후 사부님과 단체 사진 촬영이 있었다. 하지만 비가 내리고 있어 나는 비가 내릴 때 촬영하면 사진 효과가 좋지 않다고 하자 네이장(內江)의 한 젊은이가 “걱정 마세요. 저는 사부님을 따라 3번 학습반에 참가했는데 매번 끝나는 날에 비가 내렸지만 사진 효과가 좋았습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사부님과 함께 서세요, 제가 한 장 찍어드릴게요.” 내가 방금 사부님 옆으로 다가가 입을 떼지 않았는데 사부님께서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뭐해요?” 말과 함께 손바닥으로 나의 왼쪽 어깨를 때렸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사부님께서 꾸짖은 것은 바로 나의 몸에 붙어있는 족제비 부체였고 동시에 그 나쁜 것을 없애주신 것이다.
그때 나는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누군가 나를 부르며 우리가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울음을 멈추고 주저 없이 달려갔다. 하지만 모두 위치를 잡고 서서 전혀 내가 설 자리가 없어 나는 뒷자리에 섰다. 그때 사부님께서 조용히 나를 끌어당기셨고 나는 매우 자연스럽게 사부님 옆에 서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모든 사진이 효과가 좋았고 더욱 신기한 것은 13장 사진 중에서 유독 우리 사진에 붉은색 공기둥이 나타났다. 매우 안타까운 일은 비할 바 없이 진귀한 이 사진이 나중에 중공 ‘610’이 빼앗아갔다.
대법(大法)을 얻은 후 심신에 나타난 변화
94년 5월 28일 남편이 나를 부축했고 차에 오를 때 두 사람이 위에서 나를 당기고 두 사람이 밑에서 나를 들어야 차에 오를 수 있었으나 오후에 집에 돌아가면서 차에 오를 때 당기거나 들지 않아도 됐다.
강의를 들은 네 번째 날 난소를 잘라낸 나에게 생리현상이 나타났다.
9일 학습반이 결속된 후 어느 날 오후 나의 침대 세 면에서 한 자 높이의 금색 화염(火焰)이 솟아났다. 그날 밤 자면서 너무 더워 담요, 전기담요, 가죽 솜옷을 전부 치워도 매우 따뜻했다. 이에 남편이 말했다. “이것을 다 벗겨내고 춥지 않아요? 잠들 수 있겠어요?” 나는 “될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얼마 후 손주가 태어났고 나는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난로 위에서는 물이 끓고 손주가 울었고 집에는 누구도 없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급한 나머지 나는 한 손으로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로 주전자를 들고 보온병에 물을 부었다. 물을 다 붓고 나서야 나는 소스라쳐 놀랐다. 생활을 할 수 없던 내가 이런 일을 다 하다니!
병이 없어졌고 건강한 사람이 됐다. 나는 무엇이나 다 할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새 삶을 주셨다!
1995년 5월 사부님께서 청두로 오셔서 설법한 1주년 경축 대회에서 나는 두 번째로 발언했다. 나는 단상에서 격동돼 외쳤다. “파룬궁 만세! 나는 반드시 홍법할 것입니다!” 나는 울었고 참석한 사람들도 눈물을 흘렸으며 연구회 사람도 울었고 청두 파룬궁 보도소 소장도 울었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 나는 부체로 몸을 망쳐 전신에 병마가 붙어 생활할 수 없어 매우 괴로워 생에 한 가닥의 희망도 없었다. 대법을 얻은 후 몸에 병이 없이 가벼워졌고 마음이 즐거웠다. 하나의 생각이 있다면 어떻게 이렇게 좋은 파룬궁을 여러 사람이 얻어 모두 수혜를 보게 할 것인가이다.
원문발표: 2017년 5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12/346892.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7/5/18/1638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