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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심의 해로움을 똑똑히 알아보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말하자면 정말로 부끄럽다. 특히 최근 몇 년에 줄곧 이 원망심을 똑똑히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것을 없앤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마치 이 집착심은 줄곧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고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것을 발견했고 똑똑히 알아봤을 뿐이다. 오늘 그것을 폭로한 목적은 그것을 없애고 진정으로 법에 동화하며 자신을 순정하게 하고 사전(史前)의 서약을 더욱더 잘 실행하겠다는 결심을 내리기 위함이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엄청 받고 응석받이로 자라서 점차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습관이 양성된 것 같다. 이 집착심을 위해 복선을 깔아놓았다. 무슨 일이 내 마음에 부합되지 않기만 하면 이 원망심은 바로 등장하고 표현된다.

대법을 수련한 후 파룬따파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마음을 닦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노력해 법에 따라 했고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고려했으며 개인의 득실을 고려하지 않았고 사람과 싸우지 않자 마음이 조용해졌고 신체도 건강해졌으며 주변 사람과도 아주 사이좋게 지냈다. 모두 나보고 변했다고, 아주 좋게 변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파룬궁을 배웠기 때문에 비로소 개변됐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 마음이 아주 강렬히 표현됐다. 이 마음을 없앨 때가 되어 표면으로 표현됐을 것이다. 특히 수련생과 협력해 법을 실증할 때 늘 수련생이 하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속으로 원망하기 시작한다.

나와 늘 접촉하는 수련생은 두 명 있다. A와 B, 우리는 늘 협력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내 마음에 부합되지 않으면 언제나 그녀들보고 뭐라고 했고 어떤 때 심성이 좋지 않으면 그녀들에게 설교했다. 이 두 수련생은 심성이 높기 때문에 기본상 별 말을 하지도 않고 표현도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내가 뭐라고 하면 들었기 때문에 더욱더 안을 향해 찾지 않았고 스스로 정확하고 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몇 명 수련생과 버스를 타고 시골에 내려가 진상을 알렸는데 차에서 내린 후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눴다. A는 차에서 내린 곳에서 집합하자고 했고 시간을 정하고 우리는 제각기 마을로 들어갔다. 우리 팀은 아주 순조롭게 정확한 약속 시간대로 장소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른 한 팀은 1시간이 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A는 전화도 가져오지 않았고 다른 수련생의 전화번호도 몰랐다. 정말로 속이 탔다! 이때 좋지 않은 생각, 걱정, 두려움이 자꾸 머리로 솟구쳤고 아무리 눌러도 내리누를 수 없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속이 타 죽을 것 같았다. 이때 또 경찰차가 내 옆으로 지나가며 수련생이 간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을 보자 수련생의 안전을 더더욱 걱정했다.

다른 수련생을 통해 그녀들이 무사하고 다음 역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속으로 또 원망하기 시작했다! 만난 후 수련생의 해명도 듣지 않고 다짜고짜 그녀들을 책망했다. 금방 속이 두근거려 괴로웠던 것을 몽땅 쏟아냈다. 전혀 자신을 연공인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안을 향해 찾지 않았고 이것은 수련이라는 것을 완전히 잊었다. 우연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얼마 전에 또 A와 협력해 진상을 알리는데 아마 진상을 모르는 세인에게 고발당했을 것이다. 우리보고 뭘 하는 사람이라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고 또 멀지 않은 곳에 경찰 두 명이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발정념으로 사부님의 가지(加持)를 요청했다. 그리고 각자 아파트 복도에 들어가 잠시 숨었다. 이후에 아파트 문 앞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먼저 빠져나왔다. 두려움으로 인해 다시 돌아가 수련생을 부르지 않았고 그녀가 좀 지나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바퀴 돌고 돌아왔는데도 수련생을 보지 못했고 자전거도 없어졌기에 수련생이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줄곧 받지 않았고 몇 번이나 걸었는데도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자 또 불안하기 시작했다. 수련생 집으로 찾아갔는데 집에 없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이때 수련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지금 상점에 있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듣자 바로 “왜 그렇게도 생각이 없어요!”라고 했다. 그녀가 전화로 내게 알리지 않았다고 속으로 줄곧 원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을 다하자마자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 왜 또 원망했지! 이 마음은 정말로 없애기 힘들었다!

이후에 안으로 찾고 자신의 부족함을 찾았다. 이기심, 두려움, 자신을 보호하는 마음, 원망심이 있었고 선하지 않고 너그럽지도 못했다. 두려움이 생기자 먼저 떠난 사람도 나였고 수련생을 부르지 않은 사람도 나인데 왜 상대를 원망할까! 정말로 너무 이기적이었다. 수련생과 교류한 후 서로 마음이 바르지 못하기에 번거로움을 초래했다고 깨달았다. 우리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진상을 알리지 말자고 상의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될까 봐 걱정했고 잠재의식에서 이미 박해를 승인했던 것이다. 마음이 바르지 못해 초래된 일이었다.

그리고 또 A에 대해서도 관념이 형성됐다. 언제나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당시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몰랐다. 가장 주요한 것은 사부님을 믿지 않았고 법을 믿지 않은 것이다. 모든 수련인은 다 사부님 법신이 관할하고 있는데 이 걱정은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이 마음을 없애지 않으면 되겠는가?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 관념이 옳지 않고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번거로움을 불러온다.”[1]

그리고 만약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더욱 법에 있지 않았다. 수련생이 나와 함께 감당하지 않는다고 원망했고 내가 더 많이 노력했다고 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이것은 질투심이 아닌가? 특별히 자신의 감정을 강조했다. 어떤 때 사소한 일로 원망했다. 이후에 심성을 지키지 못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정말로 고민이었다. 사람 마음은 왜 이렇게 없애기 힘들까! 정말로 가슴과 뼈에 사무쳤다!

반복적으로 좋지 않은 상태가 나타나 스스로도 소침하고 있으면 주변 정진하는 수련생은 늘 격려해주고 정념을 가해주며 인내심을 가지고 날 도와주기도 했다. 여기에서 수련생의 도움에 감사드린다. 어떤 때 혼자서도 생각한다. 무슨 원인으로 이런 상태가 나타났을까? 한 마디로 말해서 여전히 법을 잘 배우지 못했고 열심히 법을 배우지 않아 형식에 그쳤고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발정념할 때 마음이 순정하지 못했고 정신을 딴 데 팔았기 때문이다. 즉 법에 따라 수련하지 않아 명, 리, 정 등 집착들을 담담하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존께서는 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제자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여러 번 점오해주셨다. 단체 법공부할 때 언제나 동시에 다음 단락을 읽게 하셨다. “우리 연공인(煉功人)에게는 모순이 갑자기 생길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이 평소 늘 자비로운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1] “이 한 갈래 길에서 가장 쉽게 나타나는 문제는 바로 자신을 느슨히 하고, 속인 중에 뒤섞이는 것인데, 특히 법을 실증하는 기간에, 압력 앞에서 각종 어려움 앞에서 더욱 쉽게 의기소침해지는 것이다.”[2] 법으로 대조하자 이것은 내 문제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느슨하게 했고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했으며 각종 사람 마음이 부풀어 오르게 됐다.

가정에서의 표현은 더욱 많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원망심이 나타난다. 거의 아주 많은 일에 존재하고 있고 너무 흔한 일이었다. 나와 어머니(수련생)도 늘 모순이 발생했고 말만 하면 다투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마음이 들지 않아 차근차근 말하지 않고 언제나 질책하고 원망했다. 자신의 관점을 어머니에게 강제로 주입시켰고 모순 중 자신을 찾지 않으면서도 어떤 때 씩씩거리기도 했다. 자신이 잘못했어도 다른 사람을 원망했고 뭘 하든 다른 사람을 원망했다. ‘내 이런 상태는 당신 때문이다’ ‘조금도 안을 향해 찾지 않는다’는 말이 습관이 됐고 입을 열기만 하면 원망했다. 표현이 좋지 않을 때 딱 속인이고 어떤 때 속인보다 못했다. 전혀 자신을 연공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속으로 ‘아! 이런데 어떻게 수련할 수 있을까! 언제나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심성을 제고해야 할 때면 늘 이런 꼴일까’라고 소침해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뛰쳐나오지 못했다.

사존께서 법 중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3]라고 말씀하셨다. 법공부를 통해 자아가 너무 강하기에 늘 타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최근에 ‘해체 당문화’를 읽었는데 내가 당문화의 해를 너무 깊이 받았고 생각도 변이된 것임을 알았다.(사회에서 몇 년간 정치 공작 요원을 했기에 강제로 많은 ‘당문화’가 주입됐음) 이 독소들을 없애지 못한다면 어찌 진정으로 법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당문화’는 내가 법에 동화하는 것을 엄중히 방해할 뿐만 아니라 수련생과 협력해 법을 실증하는 것을 심하게 방해했으며 사악에게 이용당해 사이가 틀어지게 만들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고, 명백히 말하자면 사람 마음을 없애지 못한다면 사존의정법을 엄중하게 방해하는 것이다.

어쨌든 꼭 노력해 잘해야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10-맨해튼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원문발표: 2018년 4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4/3/3636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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