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네이멍구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5세 때, 위에 형이 5명 있고 누나가 4명 있는 대 가정의 남편에게 시집갔다. 말주변이 없어 일만 했기에 시어머니는 나에 대해 편견이 있었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동서들도 나를 따돌리고 남편 역시 시어머니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1. 시어머니가 감동하다
남편은 술 마시고 마작을 하며 여자들과 방탕하게 지냈다. 집에 돌아와서는 묻지도 못하게 했고 말만 꺼내면 식탁을 뒤집으며 한바탕 싸웠다. 겉으로는 비록 복종했지만, 마음이 아주 괴로웠다. 일하면서 늘 눈물을 흘렸고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해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는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저녁 하늘에 만(卍)자 부호가 빽빽하게 있었고 용(龍)과 백조가 하늘을 날고 있는 꿈을 꾸었다. 전부 희귀한 영조(靈鳥)와 제왕의 수레였는데 그때 나는 아직 대법수련을 하지 않았다.
1997년 대법을 수련한 후에야 사부님께서 책에서 말씀하신 만자 부호를 예전에 꿈에서 보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알고 보니 법을 얻기 전에, 사부님께서는 내가 인간 세상의 애증에 빠져 정신 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아름다운 광경으로 격려해주신 것이었다. 대법 책을 받은 후 더없이 귀한 보물을 얻은 것 같았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날마다 연공하러 갔고 4~5리 길을 걸어 법 공부팀에 가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온몸이 나는 듯 가볍고 형언할 수 없는 행복에 푹 빠졌다. 예전에 걸렸던 류머티즘, 심장병, 피부병, 머리가 흐리멍덩하고 종종 트림하던 증상들이 전부 사라졌다.
남편은 형제가 많아 네 아들이 돌아가며 시어머니를 모셨다.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반년 동안 있으라고 권한 후 과거의 나쁜 감정을 털어버리고 성심껏 모셨다. 진선인(眞善忍) 법리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면서 시어머니를 극진히 돌보았다.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제때에 머리, 발, 몸을 씻겨드렸다. 마침내 시어머니는 감동하여 마을 사람과 딸들에게 내가 친딸보다 더 극진히 돌봐준다고 말했다.
2. 까다로운 며느리가 변하다
며느리는 시집온 후 나를 아주 냉담하게 대했다. 밥을 해놓고 먹으라고 불러도응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그녀 배후의 사악한 썩은 귀신들이 내 수련을 교란하려고 그녀를 통제하고 내 집을 망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나와 한집 식구가 되었으니 얼마나 큰 인연인가? 이 생명 역시 법을 얻기 위해 온 것이다. 나는 생각을 바로잡은 후 그녀 배후의 일체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에 기만당해 대법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그녀와 그녀 가족들이 하루빨리 대법을 제대로 인식하여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를 바랐다. 나는 여전히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나눠주었다. 그러자 며느리는 더 언짢아하면서 뒤에서고자질했고 나는 계속 발정념을 했다.
나는 집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석회 공장에서 숙박했고, 차를 따라다니며 석회를 날랐다. 가끔 저녁에 집에 가고 싶어 집 문을 두드리면 며느리는 나를 보고 눈을 부릅뜨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에 들어갔다. 저녁 식사를 했는지 묻지도 않았다. 나는 최근 법 공부와 연공이 따라가지 못해 이런 것이고, 더 정진하라고 독촉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석회 공장에서 돌아온 후 어느 날 집에서 꽃에 물을 주다가 화분 밑에 놓은 며느리의 슬리퍼를 적셨다. 집에 돌아와 이것을 발견한며느리는 내가 일부러 그랬다고 했고 나는 정말 보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슬리퍼를 가져다 솔로 닦았다. 그녀는 내가 변명한다고 화를 내며화분을 걷어차 넘어뜨렸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 꽃을 여러 번 걷어차면서 계속 트집을 잡았다. 나 역시 며느리는 아랫사람인데 어찌시어머니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며 화가 잔뜩 났다. 비록 이렇게 생각했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다. 말재주가 없는 데다 예전에 남편이 워낙 강경해 모순이 생겨도 말을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말만 하면 때리거나 욕했기에 말다툼이 일어나면 나는 긴장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아들이 효성스럽기에 저녁에 아들에게 알려주어 화풀이하려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우주의 이치에 따르면 며느리가 어른에게 불경(不敬)한 것은 그녀의 잘못이 맞지만, 나는 수련자이고 만약 내가 가정에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들은 대법과 수련자를 더 미워할 것이다. 그렇다면 장래 그들은 어떻게 구도 되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부서진 화분과 식물을 주운 후 속으로 발정념을 하면서 더는 그녀에게 따지지 않았다.
그 후 며느리는 더 버르장머리 없이 행동했다. 나를 그녀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고 물건을 찾으려 해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손녀를 훈계할 때 나를 빗대어 욕했지만, 나는 모두 참으면서 발정념을 했다.
장기간 며느리가 주는 정신적 압력에 시달리다 보니 나는 그녀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식사할 때 만약 며느리가 자리에 앉지 않으면 절대 수저를 들지 못했다. 절박하게 이 가정환경을 떠나고 싶어셋방을 얻으려 했지만, 아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수련생의 집에 가서 교류한 후 법에서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 며느리와 모순이 생겼을 때 입으로는 자신이 수련자이기에 그녀와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비록 며느리에 대해 겉으로는 참고 순종했지만, 원망하는 마음이 깊이 숨겨져 있었다. 며느리는 돈을 헤프게 쓰고 친정집도 넉넉하지 않기에 친정집에 크고 작은 일이 생기면 그녀는 늘 돈을 가져다 도와주었다. 심지어 친정 식구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집에 와 먹고 자고 우리 집 돈을 가져가면서 나를 함부로 대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고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여기에는 인연 관계가 있고 내가 닦아버려야 할 것들이 있지만, 다른 방면에서 대법은 자비와 위엄이 동시에 존재한다. 또한, 인간 세상에도 기본적인 효(孝)와 도덕이 있는데 나에 대한 며느리의 행위는 비록 나를 고험하기는 했지만, 나의 두려움과 방임이 그녀가 시어머니를 이토록 버릇없이 대하고 상식적인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 나의 참음과 감당은 그녀에게 아름다움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죄를 짓게 했고 동시에 나의 수련환경도 개선되지 않아 장기간 고난에 시달렸다.
이런 것을 깨달은 후 나는 이사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 내 집이기에 내가 여기에서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며느리에 대해서는 내가 닦아버려야 할 관념과 물질이 있기에 마땅히 집에 돌아가 이 환경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에 본질에서 자신을 바꾸고 지속해서 고밀도 발정념을 했기에 집에 돌아온 후 며느리는 더는 욕하거나 노려보지 않았고 가끔 태도가 온화하기도 했다. 다만 거의 나와 얘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훗날 그녀는 돈이 부족해 나한테 남아있던 현금 300위안(한화 약 5만원)을 아들을 통해 모두 가져갔다가 얼마 뒤 업보를 받았다. 며느리가 전화로 출근하러 갔다고 아들을 속였으나, 아들이 며느리 회사에 가본 후 거짓말이 드러났다. 둘은 한바탕 크게 싸웠고 아들은 이혼하겠다고 고집했다. 며느리는 친정 식구를 데려와 용서를 빌어도 소용이 없자 손녀를 시켜 나에게 사정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아들을 설득하여 재결합한 후 며느리는 나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 옷을 사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문을 나서기 전 옷을 더 두껍게 입어야 할지 물어보면 즉시 의견을 말해주었다. 어느 날 산에 가서 고기를 구울 때 자발적으로 내게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었다. 이것은 예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내가 사부님의 법에 따라 성심껏 안으로 찾고, 본질에서도 자신을 바꾸며, 마음 깊이 숨겨져 있던 나쁜 물질과 사람의 관념을 닦아 없앴기에 비로소 오늘날 고부간 관계가 호전된 것이다.
최근 아들이 화물차를 몰 때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사고가 발생했다. 아들에게 책임이 있었기에 구치소에 5개월 동안 갇혔고 거액의 배상금을 내서야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며느리는 돈을 벌어 빚을 갚고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밖에 나가 일을 했다. 모든 집안일, 그리고 두 손주도 모두 내가 책임지고 보살펴야 했다. 나는 크나큰 부담을 느꼈고 며칠 동안 고통에 빠졌다. 그러다 지금 인간 세상의 하루하루는 모두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당으로 바꾸셨기에 장기간 가정의 시련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이야말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사람이 된 목적이다. 나는 시시각각 대법제자의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
이러한 정념의 가지 하에 나는 생활 속에서 모든 기회를 이용해 사람을 구했다. 아침에 아이들을 보낸 후 집에 돌아와 법 공부하고 식사를 준비했으며, 점심때 아이들을 재운 후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는 나가서 진상 자료를 나눠주고 스티커를 붙였다. 오후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때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달력을 나눠주고 진상을 알렸다. 작년 섣달에만 달력 200권을 나눠주고 100명 정도 삼퇴(중국 공산당,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 조직에서 탈퇴)시켰다. 저녁에 길에서 노점을 벌여 물건을 팔 때 문의하러 오는 사람에게도 기회를 빌려 진상을 알리고 삼퇴 시켰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온 후 30분 이상 발정념을 했다. 시시각각 법에 있었기에 비록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보냈지만, 유난히 행복하고 충족감을 느꼈다. 사부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시고 보호해주시는 느낌을 받았다.
원문발표: 2018년 3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24/3492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