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캐나다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8년 말에 파룬따파를 알게 됐고 1999년부터 수련을 시작하자 온몸에 있는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1999년 7.20부터 공산당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와 한 수련생은 함께 정부에 민원을 넣으러 갔다가 붙잡혔고 그 후부터 나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다. 2000년 나는 혼자 베이징으로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하러 갔다. 톈안먼 광장에서 현수막을 펼쳐 잡혔지만 사부님의 보호로 나는 정정당당하게 구치소에서 걸어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 캐나다 관광지에 갔을 때 나는 비록 사람을 구도하려는 성의는 있었지만 막상 도착해 많은 사람들을 보자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랐다. 사람들에게 거절당할까 두려웠고, 또 탈당시키지 못하면 체면이 서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이것저것 두려워하다 보니 사람의 마음이 생겨 입을 감히 열지 못해 벤치에 앉아 발정념을 했다. 사실 그때 내 마음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생각마저도 집중이 안됐다. 마음은 조급했고 스스로 왜 그렇게 잡념이 많은지 원망했다. 예전에 경찰에게 진상을 알릴 때도 대담했고 과감히 버스에서 딸과 일문일답식으로 파룬궁 진상과 톈안먼 광장 분신자살의 각종 의문점과 누락된 부분들도 말했다. 비록 차에서는 숨소리조차 없었지만 승객들은 모두 귀 기울여 들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빤히 쳐다봤지만 우리는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은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지 모르겠다. 중국에 있는 내가 아는 수많은 수련생들을 생각하니, 대법 진상을 알리다가 다시 잡혀 들어가고 감옥에서는 시달리고 노역을 당하는데 나는 왜 그들을 위해 소리를 내지 못할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했다. 좋고 나쁨을 막론하고 진상을 하는 것만이 바른 길이다. 그리하여 관광객에게 다가가 사진도 찍어주면서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대화가 이어졌다. 처음 출국한 중국인들은 이국 타향에서 동포를 만나면 유독 정이 간다. 특히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나면 말이다. 고향 말투로 말하면 더욱 좋아한다. 그들은 내가 캘거리에 산다는 것을 알고 캐나다의 여러 가지 복지 정책을 물어보면서 흥미를 갖더니 이민을 오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과 캐나다의 두 가지 제도를 비교하니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생활에 대한 관심어린 존중,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들에게 봉사한다는 점이 비교가 됐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모두 잘 알고 있다. 공산당은 부패하고 민심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사람마다 당원, 단원, 소선대에 가입했고 선서까지 했다. 나는 그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줬고 그를 도와 선서를 제거하고 평안을 찾아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행운을 집으로 갖고 가서 운명을 바꾸고 바라는 바를 이루길 바란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모두 기쁘게 받아들인다.
나는 관광지에서 적지 않은 인연 있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사부님께서도 그들을 나에게 배치해주셨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나에게 파룬궁에 관한 많은 문제들을 물어보았다. 파룬궁은 왜 공산당을 반대하는가? 왜 정치를 하는가? 분신자살은 어떻게 된 일인가? 파룬궁은 왜 약을 먹지 않고 병이 있어도 치료받지 않는가? 정말 생체 장기적출을 하는가 등등이다. 나는 우선 그들이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마음속 말을 하는 것에 감사한다. 이렇게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혔고 대립된 태도를 변화시켰다. 그러고 나서 조작된 분신자살 사건의 허점부터, 대량의 장기이식 수량과 제한된 장기 공급원, 숨길 수 없는 사실들은 그들의 생각, 선한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마음의 매듭이 풀리니 다시 대법 진상을 말하자 쉽게 받아들였다. 어떤 관광객은 나에게 말했다. 그가 다니는 회사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동료가 있는데 그에게 여러 차례 얘기를 했지만 모두 탈퇴하지 않았고 말했다. 이번에는 이해하고는 아주 기쁘게 공청단원에서 탈퇴했다. 어떤 사람은 내심 우러러 나에게 감사를 표했는데 두 손을 오랫동안 잡고 놓지 않으면서 감사를 금치 못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를 끌고 그 가족들과 무조건 사진을 찍어야한다며, 나를 가운데 둘러싸고는 그들의 수호신처럼 대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은 그들의 내심이 진정으로 이해한 그 면이 구도를 받은 기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출국해 관광을 나올 수 있는 중국인은 보통 생활조건이 비교적 좋고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아직 똑똑히 모르지만, 국내 환경오염, 유독식품, 스모그 등의 현상에 대해서는 고생을 겪고 있으면서 왜 그런지는 모르고 있었다. 캐나다에 와서 그들은 루이스(Louise) 호수의 그림 같은 아름다움과 깨끗한 공기에 진심으로 감탄한다. 나는 서로 다른 사회제도로부터 공산당이 ‘진선인(眞善忍)’을 탄압하고 파룬궁을 박해하며, 가짜와 악행 및 투쟁을 종용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판단하게 해 사회기풍을 파괴하고 진심이 없으며, 사람마다 책임지지 않아 환경오염을 조성해 국민들에게 피해를 줬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환경,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민심의 내재적인 관계를 알게 했다. 특히 장사하는 사람들은 공상도시 관리나 권력기관의 탐욕스럽고 가증스러움에 뼛속 깊이 통탄한다. 그들에게 공산당의 사악함과 부패를 이야기하자 그들은 모두 공감했다. 비록 그들도 가끔 모조품을 팔기도 하지만 그들은 사기당하지 않고 속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고객들이 모두 파룬궁 수련인처럼 진선인을 수련해 그들에게 시비를 걸지 않기를 바라는데, 그래야만 그들도 마음 편하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장사하는 한 사람이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파룬궁 수련인은 절대로 그녀를 속이지 않았고 게다가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그녀는 당원이 아니라 스카프를 메었는데도 탈퇴해야 하는지 몰랐다. 나는 가명으로 그녀에게 탈퇴를 해줬고 그녀는 기뻐서 연신 “좋다, 좋다, 좋다,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마치 운명이 이미 바뀌고 앞날이 밝아짐을 느끼는 듯 했다.
관광지에서 진상을 많이 알림에 따라 끊임없이 경험을 쌓고 고치고 제고하면서, 삼퇴한 사람 수는 점점 많아지고 효과도 점점 좋아졌다. 처음에는 각종 사람의 마음이 노출됐다. 쟁투심, 환희심, 체면, 비교하는 마음, 허영심, 실망, 질투심, 고생과 힘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불평하기 좋아하는 마음 등등을 삼퇴하는 과정에서 모두 없애버렸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64살에 캐나다에 왔고 이국 타향에서 반복적인 생각을 거쳐 영어를 배울 것을 결심했다. 0부터 시작해 나이 많고, 기억력이 떨어지며, 시간이 적다는 등등 사람의 관념을 버렸다. 언어관을 넘어야 더욱 많은 사람을 구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오전 영어학원에 가고 오후와 저녁에는 일을 해 용돈을 벌어 생활을 유지해 나갔다. 점심에는 법공부, 연공과 학업숙제를 했으며, 배운 영어로 서양인과 인사하고 진상을 알렸다. 나는 반에서 나이가 가장 많지만 내 성적은 가장 좋았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모두 나를 인정해주고 존경했다. 그들은 내가 파룬궁 수련인임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진선인을 수련하여 온 가족이 박해 받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나를 좋은 학생이라고 한다. 내가 강한 여성이기에 늘 나를 본보기로 삼아 젊은 학생들에게 학업에 노력해 진도에 따라가라고 격려한다. 그들은 나를 동정하고 지지하며 내가 준 서명 용지는 무조건 서명하는데 가끔은 집으로 가지고 가서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서명을 요구해 파룬궁을 지지하라고 한다. 나는 선생님, 학생들과 깊은 우정을 맺었다.
중국 영사관 부근에 가서 발정념을 하든, 수련생을 구원하는 기자회견장, 그리고 반(反)박해 집회, 또는 중국공산당 생체 장기적출 저지 자동차퍼레이드, 관광지 진상 알림을 막론하고 내가 참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참가했다. 그 어디를 가든 나는 파룬궁이 중국에서 박해를 받고 파룬궁 수련인들이 생체장기적출을 당하는 진상을 말할 것이다.
햇볕이 쨍쨍한 하늘을 막론하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며 한겨울 눈이 펑펑 쏟아져도 나는 많은 사람들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말한 중국공산당의 생체 장기적출에 대한 진상을 듣고는 공감하면서 나를 안고 울고, 우리는 함께 눈물을 흘렸다. 어떤 사람은 애정 어린 손길로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나에게 동정과 지지를 해주었다. 어떤 사람은 남의 일이라 상관하려 하지 않고 손을 흔들며 서명을 거절했다. 하지만 내가 파룬궁 수련인들이 중국공산당에 의해 생체 장기적출을 당한다는 진상을 알리자 선량한 본성 때문에 다시 돌아와 서명하며 나에게 사과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동정하고 지지와 힘을 주었으며 그들은 내 손을 잡고 따뜻하게 말했다. “행운을 빕니다!” 나는 적극적으로 나를 찾아와 서명하는 중국 노인을 만났다. 그들의 지지에 감사하다고 하자 그는 도리어 평온하게 “마땅히 해야 하는 겁니다. 우린 모두 동포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한 마디는 내가 소중한 중국인을 구도하려는 마음을 격려해주었다.
2015년 9월 나는 캘거리 수련생과 함께 미국 시애틀에 가서 캐나다를 방문한 시진핑에게 장쩌민을 사법 처리하고 파룬궁 박해를 중단할 것을 호소했다. 이른 아침 우리는 일찍이 시진핑이 지나가는 경로에 서서 플래카드를 펼쳐 조용히 길 옆에 서 있었다. 이때 나는 서양인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우리들의 항의하는 현장을 촬영하고 있기에 마음속으로 기뻤다. 그녀가 나에게 가까이 오자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오늘 여기에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제 딸은 중국에서 당신처럼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다가 4년형을 받아 감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단지 파룬궁 수련인이란 이유 때문입니다. 저는 시진핑을 만나려고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왔고 편지도 준비했습니다. 저는 그가 장쩌민을 사법처리하고 파룬궁 탄압을 멈추기를 바랍니다.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내 말을 들은 그녀는 관심을 갖고 시애틀 학회 수련인의 도움으로 그녀는 나를 1시간 넘게 취재했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한 이유 없는 잔혹한 박해와 기본적인 인권유린 및 가족에 대한 10여 년 박해를 경청하고는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반드시 당신 가족에 대한 박해를 보도하고 시진핑에게 파룬궁 박해를 멈출 것을 호소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녀는 약속을 지켰고 취재 내용을 시애틀 매스컴에 올렸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다.
관광지나 혹은 다른 형식의 진상을 알리든 표면적으로는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각종 집착심을 수련해 버리는 것이고 단련해 제고하는 과정이다. 나 자신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은 이미 아주 촉박한데 나는 마음을 수련하고 욕망을 끊어 엄격히 자신을 요구해 되도록 빨리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하고 서약을 실천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3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16/3629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