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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黨)문화를 없애고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다

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반세기 이상 중국인은 사악한 당(黨)문화에 매우 깊이 중독됐다. 한 세트로 주입된 투쟁철학은 우주의 특성 ‘진선인(眞善忍)’을 완전히 위배하고 사람을 위험한 변두리까지 밀고 갔다. 이것 역시 구세력이 당초 인류를 훼멸할 목적으로 고의로 배치한 것이다. 60여 년 인생 과정에서 나도 사악한 당문화에 깊이 중독돼 해를 입었다. 그러나 대법을 수련하면서 자신의 몸에 존재하는 당문화의 요소를 끊임없이 제거하고 줄곧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으면서 마음이 갈수록 깨끗해졌다. 나는 자신의 당문화를 없애는 것도 수련의 일부분이라는 인식이 든다.

1. 사악한 당문화를 분명히 가려내고 그 위해성을 확실히 인식하다

퇴직 전 나는 중국공산당의 당(黨)기관 부문에 다년간 근무했다. 매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모두 사악한 당문화의 세트화된 이론과 매커니즘이었다. 장기간 듣고 보는 과정에서 자연히 고유의 사유방식이 형성돼, 그 속에서 시비를 제대로 가려내고 인식할 방법이 없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대법에 대조하는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존재하는 일부 법에 부합되지 않는 변이된 요소를 보았고 그것이 내가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고 대법에 동화하는 데에 심각한 영향을 끼침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바로 문제의 근원을 찾아보지는 않았다.

2004년 11월, 기서(奇書) ‘9평 공산당’(이하 9평)이 혜성처럼 나타나 나를 크게 일깨웠다. 내 마음은 매우 진동했고 수십 년간 습관이 됐던 ‘상식’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처음 9평을 보았을 때는 혼비백산해서 심지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고 인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지성은 내게 9평이 옳고 책의 내용이 모두 진실이며 진리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후 나는 진정한 자신이 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붙은 공산사령이 해체될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자신의 바르지 않은 관념이 가로막은 것이고 악당이 수십 년간 주입한 독소가 작용한 것이다. 이런 것들이 수련인이 정진하는 것을 심하게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변이된 관념을 철저히 바꿔나가야만 이 바르지 않은 요소를 깨끗이 제거할 수 있고, 그래야 자신을 바로잡고 법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내게서 나타나는 당문화의 표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법공부를 하는 동시에 시간을 내서 9평을 연거푸 보았다. 줄곧 보면서 9평에 대한 인식도 갈수록 깊어졌다. 나는 9평이 사악한 당문화를 없애는 예리한 검이라는 인식이 들어 감개무량했다. 9평을 보지 않으면 우매하게 삶을 보내는 것이다. 세상 사람이 모두 9평을 보면 좋겠다.

나는 점차 9평을 통해 사악한 당문화가 생활 속에서 표출되는 현상을 분명히 가릴 수 있게 됐고 세인에게 끼친 해악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게 됐다. 그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파괴하고 사람을 도덕적 규범이 없고 정상적 사유가 없는 변종이 되게 한다.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파괴하고 평등한 상호 이익 관계가 아니라 서로 빼앗고 속고 속이는 약육강식의 비인간적인 관계로 변하게 한다. 불안한 분위기를 조장하고 정상적인 생활에 대한 가치관이 없어지게 했다. 당문화를 없애는 것은 인류의 도덕규범을 회복하고 중국인의 기본권을 되찾는 것인가 하면 수련인에게는 원만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련되는 주요 방면이라고 생각한다. 쟁투심, 증오심 등을 버리지 못하면 절대 하늘로 갈 수 없다.

사악한 당문화의 표현과 위해를 확실히 인식하는 외에 나는 자신에게 존재하는 일부 당문화 요소에 대해서도 다소 인식할 수 있었다. 이후 ‘해체당문화’가 출간됐다. 나는 이 책을 거듭 읽으면서 내게서 종종 표현돼 나온 당문화를 더 확실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줄곧 호불호가 분명하고, 나쁜 일이나 나쁜 사람을 원수처럼 싫어하고, 성격이 시원하고 솔직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하고 승부욕이 강하고, 도도하고 설교하기를 좋아하고, 독선적이고, 타인에 대해 부정하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들을 장기적으로 장점으로 여겼다. 사실 모두 당문화의 표현이다. 이를 인식한 후 수련 중에서 이 물질을 제거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싹은 발견 즉시 발정념으로 제거했다. 이후 이 물질이 갈수록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두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제거해주셨다.

2. 가정에서 당문화를 제거하다

우리 가족은 몇 명이 사악한 당정부문에 근무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가정보다 당문화가 짙다. 남편은 퇴직 전 악당의 부서에서 장기간 최고책임자였는데, 당문화의 영향으로 업무 태도가 강성이고 무슨 일이건 자기중심적으로 하고 타인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 당문화의 악습은 집에서도 그대로였다. 말투가 강해 평온하고 온화하게 말하는 일이 없고 늘 식구들을 억압했다. 의심도 경계심도 많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벌컥 화를 낸다. 전형적인 당문화다. 나도 이전에 이런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모순이 있으면 완충의 여지가 없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강한 태도로 남편을 바꿔보려 했지만 효력이 없었다. 남편이 변하지 않는데 속수무책이었다. 끝내 냉전 상태가 됐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생겼고 부부사이가 나빠졌다. 대법을 수련하면서도 자신에게 존재하는 당문화를 제거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다 보니 싸우려는 요소가 남아있어 우리 부부의 화목에 영향을 끼쳤다. 남편은 나를 통해 대법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구도되는 데에 부정적인 작용이 있었다.

몇 년 전 한 수련인이 내게 솔직하게 말해줬다. “당문화의 요소가 적지 않고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나는 흠칫 놀랐다. 대법을 수련하는데 어쩌면 아직도 이런 말을 듣게 될까? 이러면 대법에 먹칠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 문제를 빨리 고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1] 나는 사존의 가르침대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했다. 법공부를 통해, 정상적인 여성이라면 온화하고 선량하며 남편에게 관심을 갖고 그를 잘 보필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나는 언행과 행동거지가 여자답지 않았다. 그 수련인의 말대로였다. 나는 사악한 당문화가 내게 해악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식한 후 나는 발정념으로 제거하는 것을 중시하는 외에도 평소에 스스로를 엄격히 요구했다. 말투를 될수록 선하고 겸손하게 해서 사람들이 대법제자의 미덕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나는 단지 나라는 하나의 작디작은 개체만이 아니라 대법제자의 이미지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남편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잘 보살폈다. 가끔 그가 말로 나를 자극하면 감정을 억제하고 다투지 않았다. 우리 부부 사이는 차츰 좋아졌다. 이전에 서로 양보하지 않고 각자 시비를 다투며 불편했던 사이가 지금은 서로 상대에게 맞추고 일이 있으면 온화한 태도로 상의하니 막히는 것이 없다. 내 심성이 올라오면서 사부님께서 내게 있던 당문화의 물질을 일부 제거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법에서 나는 현재의 세인들이 모두 내력이 있고 각자 방대한 우주 체계의 대표로서, 세상에 와 대법이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번 생에 대법제자와 가족의 인연을 맺었다면 분명 높은 층차에서 왔을 것이다. 그들이 인간세상에서 어떤 모습이건 모두 법을 위해 왔다. 사부님의 정법은 모든 중생을 구도한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원용해야 한다.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것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고, 평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진상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대법에 대한 인식이 생길 것이므로 그들이 구원받는 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잘 하지 않으면 안된다.

법리에서 승화하면서 내게도 매우 큰 변화가 생겼다. 너그럽고 관용하고 타인을 위하며 곳곳에서 수련인의 풍모를 나타내 사람들에게 대법제자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다. 어쩌다 남편이 화를 냈을 때 마음이 불편하면 사부님의 법을 반복적으로 외웠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2] 법은 아주 빨리 평정을 되찾게 했다. 남편이 극단적으로 무얼 해도 따지지 않았고 집안일을 어떻게 처리하건 남편을 존중했다. 원망도 질책도 않고 약점을 잡지 않았다. 대법은 나를 건강하게 해주었을 뿐더러 끊임없이 흉금을 넓혀줘 타인의 부족한 점을 이해하고 포용하게 했고 타인의 장점을 보게 했다.

사실 남편도 장점이 적지 않다. 동네에서 효자로 유명하다. 나도 노부모를 공경하게 됐다. 자식으로서 마땅한 것이고 전통미덕이다. 그러나 도덕이 급속히 미끄러진 지금, 많은 사람이 효도를 잘하는 것을 과하다고 여기고 있다.

우리 집은 남편, 노부모님, 자녀 모두 수련하지 않는데 이들은 자신의 처세 기준과 방식이 있다. 나는 수련인이므로 법의 표준으로 스스로를 요구해야 한다. 가족에게 어떻게 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되고 자비롭고 선량한 마음으로 가족을 대해야 한다. 오늘날 가족은 내게 수련환경을 제공하고 대법제자인 나를 성취하게 하기 위해 굴욕과 고통을 감당했다. 내가 가족을 잘 대하지 않을 어떠한 이유도 없다. 대법제자가 자비롭고 선량하지 않으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다.

나는 수련을 오래 했지만 2년 전에야 사부님의 이 부분 법을 이해한 것 같다. “한 수련인(修煉人)으로서, 속인의 환경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을 연마(魔煉)하여 집착심과 각종 욕망을 점차적으로 버려야 한다.”[3] 대법이 속인 사회에 나타나, 온 인류사회는 대법제자에게 하나의 큰 연공장을 제공했다. 이 복잡한 환경 중에서 각종 좋지 않은 관념과 집착심을 제거할 수 있고 비로소 수련을 착실히 할 수 있다. 속인은 모두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 대법제자는 사회 환경에서 수련하는 외, 가정에서도 반드시 수련을 해야 하고 이 점을 홀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남편이 눈에 거슬리고 그가 독단적인 것이 싫었고 당문화가 심하다고 싫어했다. 마음속으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그에게 맞섰다. 나도 당문화로 그를 대했고 악으로 악을 다스리려 했다. 지금은 남편에게 당문화의 언행이 나타나기만 하면 곧바로 나를 보고 자신에게서 찾아봤다. 특히 말하는 방식과 어조에서, 나도 이렇지 않은지 찾아봤다. 이전에 나는 상대방을 위한다거나 혹은 지적을 해줄 때 딱딱한 말투로 선의가 부족했다. 출발점은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었는데도 상대방은 듣고 심기가 불편해했다. 남편은 거울처럼 내게 존재하던 많은 문제를 비추어줬다. 목청이 높고 앞질러 말하고 말이 빠르고 어투가 선하지 않고 늘 반문하는 등이었다. 내가 이 문제를 찾은 후 주의를 기울여 이 문제를 닦아버리자 스스로 크게 달라진 것을 느꼈다. 적잖은 사람이 내가 이전과 많이 다르다고 했다. 이전에 잘 알던 몇 명은 몇 번이나 농담조로 “잘 모를 때는 (당신의) 말이 꼭 훈계하는 것 같았는데, 알고 나니까 사람 좋고 잘난 척 하지도 않고 편해요. 단지 말하는 태도 때문에 사람이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은 내 성격이 남자 같고 여성스러운 느낌이 부족하고 순하지 않다고 했다. 이전에 나는 정말 그랬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이 다 맞았다. 악당이 나를 여자답지 않은 여자로 변하게 했다.

지금 집에서 나는 시어머니, 자녀와 남편을 대할 때 ‘진실, 선량, 인내’ 원칙으로 자비롭게 대하고 그들의 어떤 결점도 잡지 않는다. 그들은 가족일 뿐더러 대법이 구도할 소중한 생명이다. 가족들이 나의 수련의 길에서 감당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 내게 관용하고 너그럽고 법에 부합되는 정념의 에너지장이 있게 되자 복잡하던 가정은 화목해졌고 모두 사이좋게 살고 있다. 정말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3]이다.

3. 글을 쓰면서 자신을 바로잡다

우리 지역에서는 2004년부터 현지 악인, 악경이 대법제자를 박해한 범죄사실을 대거 폭로했다. 밍후이왕에 내용이 발표된 후 다시 현지 진상 전단지로 편집해 광범위하게 배포해 현지 악인을 크게 진섭시켰다. 나는 이 몇 년간 지속적으로 폭로 관련 원고를 쓰는 활동에 참여했는데, 글을 쓰는 과정도 수련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내 몸에 장기간 존재해온 당문화의 쟁투심, 분노하고 증오하는 마음 등 각종 완고한 사람마음이 이 과정에서 적잖이 제거됐다.

1999년 이전 우리 지역에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많았다. 1999년 7월 20일부터 장쩌민 집단은 우리 지역의 대법제자를 참혹하게 박해했다. 현지 민중에게 현지 사악을 폭로하라는 내용이 담긴 사부님의 설법이 발표된 후 우리는 정법 노정이 이미 이 일보까지 왔고 현지의 악인을 드러내 정법의 노정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깨달았다. 이 같은 문장은 사실을 기반으로 작성해야 하므로 자료 수집이 필요하다. 박해당한 수련인의 진실한 정황을 조사하고 폭력을 휘두른 자의 정보도 있어야 한다. 잘 알지 못하는 수련인은 각종 경로를 통해 찾아가 조사해야 하기에 모두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든다. 수련인들은 공통의 목표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협조하고 함께 자료를 수집하면서 일체를 이루었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여러 수련인이 함께 완성했다. 나는 집필을 했다. 이전에 원고를 다 쓰면 수련인이 타자해 인터넷에 올렸다. 이런 종류의 문장은 사악한 요소가 심하게 교란했다. 간혹 타자하는 수련인이 시간을 들여 모두 타자했는데 갑자기 한 글자도 보이지 않거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인터넷에 올리려는데 파일을 이유 없이 잃어버리고 초고도 없어 다시 써야 하는 일이 있었다. 이 중에는 사악한 요소가 교란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때 조급하고 귀찮아하고 원망하는 등 각종 집착심을 없애 버렸다. 대법의 어떤 활동이건 모두 수련 제고의 아주 좋은 기회임을 체득했다.

아래에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집착심을 버린 체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인생의 전반부에서 사악한 당문화에 깊이 중독됐던 나는 쟁투심이 돌출됐다. 박해를 폭로하는 문장을 처음 쓸 때는 파룬궁수련인에 대한 악경의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기술하노라면 정말이지 경찰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증오심이 일었다. 늘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원고를 쓰다 멈추고 정서를 안정시켜야 했다. 매번 박해사실을 기술한 뒤에는 악행을 한 자에 대해 한바탕 평론하곤 했다. 신랄하고 적의에 가득찬 용어가 가득했다. 그때 그들을 원수처럼 미워했고 그들이 즉시 응징받아 죽지 않는 것이 한스러웠다. 나는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이 악인들에게 자비를 말해서는 안 된다고 인식했었고, 발정념을 할 때 그들이 즉시 보응을 받으라고 했다. 또 여러 번 법공부 팀과 일부 수련인 앞에서 외지의 악인은 보응을 적지 않게 받았는데 우리 지역의 악경은 왜 한 사람도 보응을 받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이것은 사실 법에 대한 불경과 의심이며 증오, 쟁투 등 일종의 폭력적인 심리다. 정법노정은 사부님께서 주관하시고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질서 있게 배치하셨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고 분노를 배출해 한을 푸는 보복심리 뿐이었다.

현지 세뇌반의 한 여자 책임자가 교통사고가 나서 두개골 수술을 했는데, 당시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기뻤고 이 악인이 드디어 보응을 받았다고 여겼으며, 나중에 그가 완쾌됐다는 말이 들리자 마음이 좀 불편했다. 그 후 어떤 수련인이 그 일에 관해 교류했다. “그 역시 생명이기에 좋아져야지요. 그 사람도 피해자잖아요.” 당시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진부하다고 느꼈고 싫었다. 이런 악인은 더 큰 보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수련인과 비교하면 경지 차이가 많이 났다. 내가 버리지 않은 증오심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증오심이 심하니 순수한 문장을 쓸 수 없었다. 한번은 전향한 사람이 세뇌반에서 수련인을 박해한 것에 관해 원고를 작성했는데, 인터넷에 올리는 수련인이 보더니 “어느 부분은 보면 사람을 욕하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나는 미안해하며 인정했다. “알아요. 그들이 너무 싫어서요.” 이후 수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문장이 부드러워졌다. 매번 사악한 요소를 폭로하는 문장을 본 어떤 수련인이 “이 문장을 보면 한이 풀린다.”라고 하면 나는 그 말이 듣기 좋았고 내가 필력이 예리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구절마다 쟁투와 증오가 폭로된 것이고 수련인이 마땅히 지녀야 할 자비와 선량이 부족한 것이다. 아주 관건적인 한 방면이 말이다.

2010년부터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사부님께서 발표하시는 최신경문을 보면서, 폭로 문장은 사사로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고 참여자의 체면을 꺾이게 하는 것도 아니며 복수를 위해 폭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중생이 중국공산당의 참혹한 폭행과 사악함을 확실히 인식하게 하고 그것을 멀리 하게 하려는 것이다. 박해에 참여한 자가 자신의 죄악을 알게 하고, 대법을 박해하면 자신에게 가져오는 액운을 알게 해 그들을 일깨워 악행을 멈추고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하게 하려는 것이다. 목적은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들 역시 법을 위해 왔다. 단지 구세력의 배치로 정법(正法)에 부정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생명이 된 것인데, 그것은 이 생명의 진정한 염원이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이번 박해의 진정한 피해자다. 대법제자의 책임은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며, 그들을 구하는 것도 우리가 책임진 범위다. 우리는 마땅히 관대하고 자비롭게 모든 중생을 대해야 한다. 이것 역시 법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이다.

지금은 박해를 폭로하는 원고를 쓸 때 다른 주제의 문장처럼 단어를 고르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당문화로 야기된 변이된 물질을 제거하니 마음이 평화롭고 문장도 평온하고 깨끗한 분위기가 되었다. 다른 수련자들도 내가 요새 쓰는 원고는 이전과 다른 느낌이라고 한다. 나는 대법이 나를 바로잡은 것을 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한 걸음 한 걸음 나를 부축해주시어 오늘에 이르렀다. 비할 바 없는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욱 심혈을 기울여 법을 실증하는 문장을 씀으로써 법이 내게 부여한 이 사람을 구하는 활동을 잘 해내어 사부님께서 마음 놓으실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干擾)’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何爲忍)’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8년 3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22/3619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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