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에 심성을 건드리는 일에 부딪혔다. 작아보이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아주 컸다.
작년 우리 가족은 현지 중국인 파룬궁수련인들의 법공부 장소를 관리하다가 나중에는 관광지에 공급할 진상 자료 인쇄를 임시적으로 돕게 됐다. 연말에 사정이 생겨 이 활동을 그만뒀는데, 인수인계 전에 관광지에 공급할 진상 자료가 부족할까 봐 걱정되어 밍후이주보(해외판)를 한 번에 4만부 인쇄했다. 이전에는 아무리 많아도 한 번에 2만부를 찍었다. 이번에 양이 아주 많으니 좀 더 장기간 배포하겠거니 생각했는데 1달 정도 기간에 배포가 끝났다. 이 일은 이후 심성 충돌에 복선이 되었다.
낭비가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최근 불학회 책임자는 여전히 중국인 수련인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내 이름을 거론하며 문제를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은 진상자료를 너무 많이 인쇄해 기한이 지나버려 낭비를 초래했고 인쇄한 자료가 심사를 거치지 않은 것이었으며 심지어 일부러 인수인계하고 현지 수련인이 중국어를 모르는 틈을 탔다는 등등이었다.
나와 아내(수련인)는 이 이야기를 듣고 심기가 불편했다. 자원을 낭비하지 않았고 밍후이왕 자료는 불학회 재심사가 필요 없는 것이고, 인쇄 계획은 수련인의 통역을 통해 전달했고, 불학회 책임자에게도 이 일에 관해 설명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 불만이 많았다.
기회를 봐서 공개적으로 사실을 밝히거나 불학회 책임자를 직접 찾아가 해명하고 따져보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련인은 밖을 향해 찾아선 안 되고 우연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내와 교류한 후 더 이상 해명하려 하지 말고 심성을 높일 기회로 여기자고 했다. 이런 기회는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심성을 착실하게 수련하는 기쁨을 맛봤다. 고생이 있고 내려놓는 것이 있으며 더욱이 승화 과정이 있었다.
‘홍음3-논쟁하지 말라’, ‘홍음 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의 사부님 가르침이 생각났다. 유명한 고사도 생각났다. 방장스님이 좋은 마음으로 버려진 아이를 맡아 길렀는데 사람들은 그가 음란한 행위를 했다는 오명을 씌웠다. 그러나 방장스님은 결백을 주장하지 않고 묵묵히 참았다. 이 일은 나중에 진상이 알려졌고 수련인인 그는 득도하고 원만했다. 그가 감당한 치욕에 비하면 내가 당한 일은 사소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심성 충돌이 단지 치욕을 참고 다른 사람처럼 대하지 말라는 것일까? 안을 향해 찾아보니 내가 이 일을 계기로 불학회 책임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 즉 원망(怨)의 물질이 생긴 것을 알게 됐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이는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을 뿐더러 스스로에게 장애를 조성할 수 있다.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한번은 아내와 교류하다가 1999년의 ‘7.20’ 박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우리는 중국에 있었고 나는 대학을 졸업한 지 2년 된 젊은이였다. 정치적 압력과 혈육의 정에 못 이겨 수련을 1개월간 포기한 적이 있고 중국공산당의 감시에 놓였다. 당시 아직 중국공산당의 블랙리스트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저 수련인 지간이었던 지금의 아내가 나를 보러 왔었다. 아내의 회상에 따르면 당시 내가 “몇 년간 많은 노력을 했는데 결국 이렇군. 얻은 게 뭔가?”(주: 나는 현지 보도원이었고, 수년간 적극적으로 홍법하며 많은 일을 했었음)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말이 뜻밖에도 내 입에서 나왔는데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아내가 그 일을 말하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아직 중국에 있을 때 내가 아는 현지 수련인 두 명이 노동교양소에서 ‘전화’당하고 나온 후 잇따라 나와 비슷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대법을 떠난 후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이들은 원망 때문에 대법을 떠나게 된 것 같다.
그렇다. 1999년 7월 사악한 중국공산당이 탄압을 시작한 이래 많은 수련인이 여전히 ‘수련’하고 있고 줄곧 ‘세 가지 일’을 하며 아주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왜 박해당하고 명예, 이익, 정(情)의 상처를 입고 인간세상의 여러 가지를 잃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원망의 물질을 자양시켜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믿음(信)을 동요시킨 것이 아닐까?
또 적잖은 수련인은 병업 고비를 넘는 과정에서 줄곧 세 가지 일을 견지하는데 왜 여전히 마난을 당하냐고 하는가 하면, 대법을 수련하면 복이 있어야 하는데 왜 생활에서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고 순조롭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원망의 물질을 생성한다. 이로 인해 대법에 대한 믿음에서 멀어졌다.
최근 10년간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정법이 끝나는 시기가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며 마음 속에 원망을 품은 수련인들이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원망의 대상은 자신을 잘 대하지 않는 속인, 가족, 수련인,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일반 사회 조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유엔난민기구(UNHCR), 중국의 진상을 모르는 기관, 어떤 때는 구체적인 대상이 없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하늘을 원망하고 심지어 자신을 원망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사부님께 불만을 갖고 대법을 원망하는 것이다.
많은 수련인이 밀레르빠 수련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법에서 수련하는 데에는 본보기가 없고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도 알 것이다. 이는 큰 국면에서 본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수련하면서 잘못해 놓쳐버린 제고의 기회들은 각종 형식의 원망하는 물질로 날마다 쌓이는데, 이는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불평, 원한, 불만, 미움, 불공평, 불쾌, 남을 깔보는 마음, 질투, 밖을 보며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고, 누가 마음에 들지 않고, 어떤 일이 눈에 거슬리고, 하소연하는 등을 포함해 모두 같은 물질이다. 이 물질은 날마다 쌓이고 쌓여 화산처럼 수시로 폭발할 수 있다. 자신에게 아주 많은 번거로움과 장애를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진짜로 수련을 제로(0)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누가 원망을 가지고 하늘에 올라갈 수 있을까? 정말 그렇다면 우주 대전이 벌어질 텐데 말이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제고의 기회로 생각하고 안을 향해 찾아 자신을 승화하고 원망의 물질을 없애 원만을 향해 걸어갈 것인가, 그 경지에 머물겠다며 제고를 포기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원망을 수련해 없애버리는 것은 ‘진선인(眞善忍)’의 끝없는 법리 중 한 부분에 동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경문을 통해 수련자 여러분들과 함께 노력하고자 한다.
경지(境界)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1]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경지(境界)’
원문발표: 2018년 3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27/3633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