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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외우는 중에서 승화

글/ 중국 산시성 대법제자 스위안

[밍후이왕] 나는 18년 동안 수련했지만, 남편에 대한 증오심을 버리지 못했는데 거기에는 남편이 사당의 독해를 아주 깊게 받아 진상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것도 일부분 차지했다. 나는 2017년 하반기부터 법을 외우면서 온 수련상태의 변화를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법공부를 통독에서 외우는 것으로 바꾸다

우리 법공부팀은 매일 새벽 연공한 후 7, 8년 동안 법을 외우는 것을 견지 해왔고 ‘전법륜(轉法輪)’은 단지 몇 번밖에 외우지 못했는데 다른 지역의 수련생들과 비교하면 다소 부끄럽다. 2017년 우리는 사이트에서 수련생들이 법을 외우는 것에 관한 심득 체험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을 보았다. 모두 탄복하는 동시에 일부 법을 외우는 것을 겁내는 마음도 나타났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말씀하셨는데 창춘대법제자들은 일찍이 법을 얻은 초기에 이미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또한, 거꾸로 외우기도 했는데 이와 비교하면 우리 자신의 오성이 너무 낮게 느껴졌다. 교류 후에 모두 각종 두려운 생각을 극복했고 법을 외우기로 했다.

2017년 3월부터 시작해서 우리 법공부 팀은 원래 매일 오후 ‘전법륜’ 통독을 ‘전법륜’ 외우기로 바꾸었다. 매일 오후 3시에 발정념을 마치고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했고 5시까지 외웠다. 5시부터는 발정념하고 각 지역 설법 혹은 ‘홍음’ 등 경문을 외웠다.

한동안 법을 외우면서 모두가 아주 빨리 법을 외우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이전에 법공부할 때는 늘 정신이 딴 곳으로 가서 귀중한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법을 외우기 시작해서 누구도 법공부에 지각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뒤처지지 않으려고 했다. 매일 모두 새로운 감수와 심성이 승화된 이후의 기쁨이 있었다. 우리 수련생 몇 명은 늘 농촌에 가서 우리가 법을 외운 후의 제고와 체험을 그곳 수련생과 공유했고 그들도 빨리 법을 외울 것을 건의했다. 지금 마을의 대다수 수련생은 모두 법을 외우고 있다.

법을 외운 후의 변화

수련한 후 나는 정공을 연마하고 발정념할 때 흐리멍덩한 상태가 오랜 시간 동안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몇 년 동안 곤혹스러웠지만 어떠한 큰 돌파가 없었다. 하지만 법을 외운 후, 나는 자신의 수련상태 변화가 무척 선명했다. 발정념 때 그다지 흐리멍덩하지 않았고 손이 넘어가지 않았다. 가부좌할 때도 그다지 아프지 않았는데 상태가 무척 좋아졌다고 느껴졌다. 나의 복사뼈(의사는 분쇄성 골절이라고 함)가 다친 지 이미 3, 4년이 되었고 통증이 계속 있었다. 며칠 전 발정념할 때 갑자기 발 중심에서 한 가닥 차가운 기운이 나왔고 발정념하고 길을 걸을 때 단번에 많이 홀가분해졌고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부종도 많이 없어졌다. 그 후 며칠 동안 날마다 좋아지더니 완전히 나아졌다.

동시에 나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겼다. 예를 들어 설거지와 주방 청소이다. 이런 일들을 이전에 거의 남편이 스스로로 감당했다. 나는 그가 쉬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니 내가 주동적으로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17년 여름은 아주 더웠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씻을게요! 당신은 가서 쉬세요. TV 보거나 나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오세요.” 그는 아주 기뻐했고 가끔은 또 나와 설거지를 앞다투어서 했다.

원래 나는 남편에 대해 아주 큰 원망이 있었다. 어느 하루 오전 남편이 문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더 두꺼운 옷을 입어야 했다. 내가 몇 벌을 찾았지만 모두 눌려서 쭈글쭈글한 상태라 입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얇은 털실 옷을 꺼냈지만 역시 안 되었다. 대충 찾아 입힌 후 나는 그의 등을 토닥여주며 보기에 많이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행동은 일반적인 부부 사이에 가장 평범한 일이지만 우리 두 사람한테는 오히려 놀라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전의 나는 그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오직 격렬하게 다투고 고함을 지를 때 이름을 불러본 적 있었다. 나는 남편이 나의 행동에 무척 감동받은 것을 보았다.

내가 남편에 대한 원망을 계속 풀지 못했던 주요 원인은 남편이 나의 법공부와 대법 일하는 것을 지체시켜 수련에서 층차가 떨어질까 봐 두려웠다. 어떻게 해서 내가 더 많은 시간을 쟁취할 것인지만 생각하는데 아무튼 바로 ‘나’를 중심으로 했다. 나는 그의 감정을 아주 적게 고려했다. 예를 들어 집에서 모두 각자가 각자의 일만 하고 서로 소통이 적어 마치 벽 하나가 막고 있는 듯했다. 자신이 어떻게 하면 법을 실증하는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잘할 것인가만 생각하고 가정의 평형은 홀시했다.

법을 외우면서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할 수 있었고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고 자신을 찾았으며 부족함을 발견하면 바로 시정했다. 특히 남편에 대한 원망심은 발견하면 그것을 바로 청리하고 해체시켰다. 지금은 진정으로 원한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아울러 그를 자비롭게 대할 수 있었다. 진정으로 내심에서 그를 위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오로지 당신 자신(自身)의 공의 변화만 강조하고 당신의 心性(씬씽)의 전변(轉變)을 강조하지 않는데, 그것은 오히려 당신의 心性(씬씽) 제고를 기다려서야 비로소 정체(整體)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1] 법을 외운 후 나는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법에 대해 더욱 깊은 깨달음이 있었다.

내가 변하자 남편도 변하다

과거에 남편과 나의 원한이 너무 깊게 쌓여서 나는 늘 그를 무시했다. 그는 술을 좋아하는 것 외에 취미가 없고 성격이 아주 거칠었는데 말하기만 하면 폭발한다. 나의 친정에 대해서도 아주 좋지 않게 대하여 나의 어머니는 화병이 생겼다. 나는 남편이 나에게 너무나 불공평하게 대한다고 원망했는데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일찍이 암에 걸려 죽었을 것이다. 나는 전에 법원에 가서 여러 번 이혼하려고 했고 또 대법을 배우고서 비로소 이혼하겠다는 생각을 없앴다.

1999년 법을 배운 후 나도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려고 노력했다. 남을 선하게 대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먼저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원한심은 늘 닦여지지 않았다. 비록 조금 나아졌어도 억지였고 마음이 평형 되지 않았는데 그가 대법이 좋지 않다고 말할까 봐 두려웠고 내가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영향 줄까 봐 두려웠기에 나는 아주 고달프고 지쳤다. 그래서 묵은 원망을 제거하기도 전에 새로운 원망이 또 왔다.

특히 그는 대법과 사부님에 대해 불경했고, 책을 훼손하고 진상을 듣지 않아 나는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또 일상생활에서 그의 혐오스러운 일부 나쁜 습관들이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매일 나를 괴롭혔다. 나는 입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화가 가득 났고 그를 흘겨보는 것으로 화를 풀었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그가 변한 것을 발견했다.

며칠 전 일이다. 나는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남편이 줄곧 진상을 듣지 않은 것은 나의 원한심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자신한테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고 남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었다. 일체는 모두 나 자신의 마음이 촉성한 것이었다.

그날 오전 밖에서는 비가 내렸고 그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활동실에 가서 책을 볼게요!” 나는 무슨 책인가 하고 물었다. 집에 볼만한 책이 없었다. 그는 손안의 책을 보여주면서 이 ‘장쩌민 그 사람’이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평소에 온갖 방법을 다해서 그에게 듣게 하고 보게 했지만, 그는 항상 배척했고 더 많이 말하면 역효과가 일어났는데 심지어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불경스러운 말을 했다. 매번 격렬한 다툼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 ‘장쩌민 그 사람’을 내가 서랍에 놓고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은 나를 반성하게 했다. 나는 자세히 되돌아 생각했다. 최근 한동안 가정 분위기가 확실히 개선되었고 정말로 화목했다. 이전에 그러한 부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완전히 화기애애함으로 바뀌었다. 이 몇 달 동안 우리는 반평생보다 더 많은 소통을 했었다. 이렇게 큰 변화가 있게 된 것은 주요하게 내가 몇 달 동안 법을 외운 데서 온 것이다. 가장 주요한 것은 법을 외우는 과정 중에 자신을 대조할 수 있고 관용의 마음이 생긴 것이다. 식탁에서 숨 막히는 분위기가 없어졌고 마치 이런 일이 전혀 없는 듯했다. 진정으로 내가 그 마음이 없어지자 그 일도 곧 사라졌다.

어느 날 내 여동생과 매부가 베이징에서 돌아왔고 아침 8시에 도착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그들이 마침 집에 도착해서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데 집에 찐빵이 없어요. 내가 찐빵을 만들게요!”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밖에서 튀김이나 두부를 사 먹어도 되지 않아요?” “우리는 집이 있잖아요. 집에 돌아와서 먹는 것이 맞아요. 만약에 당신 누나 형님이 멀리서 집으로 돌아왔다면 당신은 밖에서 식사를 대접할 건가요?” 그는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예전에 발생했다면 또 결과가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또 한 달 보름 동안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아주 담담하게 넘어갔다. 올해 남편은 주동적으로 나의 부모를 집에 모시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나의 부모님 모든 생활비용을 부담하여 형제자매의 부담을 덜려고 했다. 이는 전에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며칠 전 파출소에서 경찰이 와서 우리 집에 와서 사진 찍고 소란을 피워댔다. 나는 그들이 사진 찍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이 간 후 나는 남편한테 말했다. “당신 알아요? 그들의 행동은 사사로이 민간인 주택을 침입한 위법행위에요.” 남편이 말을 이었다. “그들은 공민의 초상권을 침범한 것이에요.” 남편한테 정의감이 생겼다. 예전이라면 그는 이런 말을 할 리 없었고, 또 기어코 나를 한바탕 난처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 나와 남편은 서로 관심을 갖고 상대방을 배려하여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화제가 많아졌다. 예전에 말의 절반도 서로 통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큰일이 작아지고 작은 일은 사라졌다. 가끔 내가 집에 늦게 들어와도 그는 한마디 원망도 없다. 내가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면 그는 더는 반대하지 않는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다(佛光普照, 禮義圓明)”[1]를 체험했다. 사실 사부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심성이 제 위치에 도달하면 우리가 노력해서 무엇을 헌신할 것도 없이 우리 가족도 변한다.

물론 이는 단지 나의 현 단계 수련의 한 점의 변화이고 남편에 대한 원망이 가끔 나올 때가 있다. 나는 법의 요구에 비교하면 아직 많이 멀었다. 나는 다그쳐서 계속 노력할 것이고 법을 잘 외우고 법의 표준으로 각종 사람 마음을 제거하여 자신에게 더욱 큰 비약이 있게 할 것이다. 정법 노정이 돌비맹진하고 있고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사람을 더 많이 구하고 사람을 빼앗아서 구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잘 닦는 것도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법을 잘 배우고 법의 요구에 도달해야 비로소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린다. 내가 한 것은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많고도 많은 것을 주셨다.

현재 발정념할 때의 효과가 신기할 정도로 좋고 일종 밀집도가 아주 큰 에너지에 감싸진 것을 느낀다. 강대한 염력의 집중은 내가 이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만약 적절치 못한 곳이 있으면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들께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3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23/3632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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