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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속에서 안으로 찾으며 대법에서 바로잡다

글/ 허난 대법제자 칭신

[밍후이왕] 나는 99년 2월에 대법 수련에 들어섰지만 중국 공산당의 박해로 몇 년간 뒤쳐졌다. 2012년 우리 법공부팀의 수련생 두 명이 외손자를 돌봐주러 가서 법공부 팀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우리에게 자료를 가져다주던 수련생A가 이 사실을 알고 우리 집 부근에 있는 수련생 두 명을 찾아 나를 그녀들의 법공부 팀에 가입시켜 법 공부를 같이 하게 하고 그곳에 자료를 가져가게 했다.

1. 역경 속에서 두려운 마음을 버려 작은 꽃이 더 왕성하게 피다

하루는 수련생A가 우리 집에 두 명의 수련생 데리고 와 잠시 교류하다 일이 있어 먼저 갔다. 수련생 중 한명이 아주머니 집은 자료 만들기에 아주 적합하다며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수련생들이 돌아 간 후 자료를 만드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빨리 법공부 팀을 찾고 밍후이왕에만 들어가 보려 했을 뿐, 자료를 만드는 일은 생각해본 적도 없고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았다. 또 갓 결혼한 아들이 중국 공산당의 거짓말에 독해를 받아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자료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두려운 마음이 있어 거절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대법제자에게 일어난 일은 우연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다 배치가 있는 것이다. 정법 노정이 이 일보에까지 온 것이 아닐까?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계속 거절해서는 안 되고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되지 않아 수련생이 기계와 소모품을 가져다주어 모든 준비가 다 되었지만 가정의 고비를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불화가 생기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려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아들과 남편이 출근한 후 집에서 몰래 하려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1]

A수련생의 컴퓨터가 하필 가족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대에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아 늘 우리 집 인터넷으로 다운로드하러 와 남편과 아들, 며느리와 마주쳤다. 가족들은 아주 기분 나빠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수련생을 존중하지 않아 나의 마음은 불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후에 수련생은 대법 책을 만들 때 기계가 좋지 않아 우리 집에서 책표지를 만들었다. 수련생은 법 공부를 다 하고 5시 반 이후에 왔고 애들은 7시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수련생과 자주 마주치자 불만스러워 했고 점점 반감을 가졌으며 나 또한 이 상황이 점점 부담스러웠다. 그들이 퇴근하여 보면 안 되는데 하며 마음이 조마조마 했고 그럴 때마다 딱 걸리게 되고 괴로운 나의 심정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애들을 원망하기도 했고 수련생을 원망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괴로웠고 불안했으며 힘들었다.

결국 남편과 아들 부부가 참지 못하고 폭발하여 화를 냈다. 내가 자료를 만들면 너무 위험하고 수련생이 늘 집에 오면 더 위험하다면서 이 집을 망치려 하냐고 했다. 이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며 즉시 자료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이후로 아무도 우리 집에 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나는 적극적으로 설득했지만 그들이 전혀 듣지 않자 화가 나 크게 울었다.

그러다가 차츰 정신을 차리고 냉정해졌다. 이것은 나의 두려운 마음을 겨냥해 온 것이 아니가? 나는 이 문제를 피하지 말고 반드시 좋게 해결해야 한다. 대법을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잘못이 없는데 왜 정정당당하게 하지 못하고 남몰래 근심하면서 해야 하는가? 대법제자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고 하는 일도 가장 신성하기에 존경을 받아야 한다. 무엇이 정법인가? 이것이 바로 정법이다. 정정당당하게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수호하고 그들도 구해야 한다.

나는 얼굴을 닦고 남편과 아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나는 네가 대학 다닐 때 매일 운전하여 돈을 벌어 가정생활을 유지했고 대학 뒷바라지까지 하느라 힘들어 고혈압, 심장병에 걸렸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나는 협심증이 발작할 때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너는 대출금으로 학교에 다녔고 너의 아버지와 나는 모두 직장을 잃어 밥 먹을 돈도 없었는데 병원에 갈 돈이 어디 있었겠니. 심장병은 병원에 간다고 해도 낫지 않는데 나는 다행히 대법을 얻어 병이 다 나았다. 그리고 네가 학업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게 했으며 집도 지었고 혼사도 치러주었다.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셨고 우리 집을 구해주셨는데 우리는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드려야 하고 은혜에 보답해야 하지 않니? 지금 장쩌민 집단과 중국 공산당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거짓말을 만들어 대법을 비방하고 국민을 속이고 해쳐 사람들이 모두 파룬궁(法輪功)을 혐오하게 했다. 자고로 죄는 지은 데로 가고 덕은 닦은 데로 간다고 했다. 장쩌민과 사당이 좋은 사람을 박해했으니 반드시 응보 받을 것이다. 전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너처럼 진상을 모르고 거짓에 속아 대법을 반대하고 대법을 증오하고 있니?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지어 사당과 함께 재난을 당하고 도태될 것인데 그들이 억울하지 않겠어? 우리 사부님께서 자비로워 우리에게 그들을 구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이기에 그들을 구해야 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지금 대법제자들은 모두 본인의 능력에 따라 시간을 다그쳐 사람을 구하고 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이미 시작됐다. 재난이 닥친다고 하면 닥치는 것이다. 엄마도 대법제자인데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있겠니?” 나는 마지막에 대법제자는 모두 세계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고 그들을 존경해야지 냉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 후, 그들은 다시는 나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았다. 남편은 선량하고 관대한 사람이었지만 이번 풍파에 말려들었다. 지금은 내가 자료 만드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늘 나를 도와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한다. 며느리는 이후부터 우리는 어머님께서 연공하시는 일에 관여하지 않겠으며 건강만 하시면 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아들 내외도 분가하였고 수련환경은 점점 여유가 있어졌다. 우리 집의 이 작은 꽃은 점점 왕성하게 폈다.

2. 과시심을 버리고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다

2015년 ‘안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하고 고소가 있으면 반드시 처리하라’는 새 정책이 나왔다. 나는 장쩌민을 고소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아주 기뻤다. 그러나 법률적인 문제도 모르고 해 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6월에 밍후이왕에 많은 수련생이 장쩌민을 고소했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우리 법공부 팀에서도 몇 번 교류했는데 어떤 수련생은 우리도 고소해야 한다고 했고 어떤 수련생은 우리는 좀 큰 박해[노교(勞教), 옥살이]를 받지 않았다고 여겼고 어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어떤 사람은 관망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나와 A수련생은 우리가 앞장서서 고소하기로 하고 여러 번 고소장을 썼지만 요구에 부합되지 않았다. 6월말에 가서야 그쪽 방면으로 잘 아는 수련생을 찾아가 봐달라고 하고서야 고소장을 완성했다.

7월 4일 나는 일찍 일어나 집에서 발정념하고 A수련생과 함께 우체국에 가 EMS로 우리 첫 고소장을 부쳐 여러 해 동안 염원했던 가장 큰 소원을 이뤘다. 장쩌민을 법정에 고소하여 우리는 매우 흥분했고 매일 컴퓨터에서 우리 편지를 추적했다. 얼마 되지 않아 베이징에 도착했는데 항천검사센터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일주일이 지나고 그 이후에도 더 이상의 정보가 없었다. 중국 공산당은 이미 베이징으로 부친 편지를 억류하고 있었다.

7월 16일 아침 나는 혼자 우체국에 가 등기우편으로 ‘량가오(최고인민법원, 최고인민검찰원)에 각각 1통씩 부쳤다. 때마침 A수련생도 같은 날 오전 우체국에 가 등기우편으로 ’량가오‘에 각각 1통씩 부쳤다. 우리는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동일한 시간 같은 우체국에서 두 번째 고소장을 부쳤다. 이후 우리는 회답을 기다리는 동안 고소장을 쓰지 않은 수련생을 도와 우리 팀 전체 수련생이 고소장을 부쳤다.

7월 26일 나는 마침내 량가오에서 ‘받았다’는 회답을 받았고 이어서 ‘EMS’로 보낸 고소장도 회답을 받아 매우 기뻤다. 나는 기뻐하며 A수련생에게 고소장을 받았다는 회답이 왔다고 말했다. 뜻밖에 그녀는 냉담한 얼굴로 다른 사람은 부치자마자 회답을 받았는데 이제야 받고 뭐 기뻐할 거 있느냐고 했다. 나는 머리에 찬물을 맞은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그녀가 회답을 받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내색을 내지 않고 그녀에게 회답을 받았는지 물었다. 그녀는 휴대폰이 없어 모른다고 쌀쌀하게 말했다. 이건 뭘 하는 짓인가? 나는 잔뜩 화가 나서 이 후로 그녀를 아는 체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후에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눈을 내리깔고 아는 체하지 않자 그녀는 난처해하며 나와 말을 별로 하지 않았다. 며칠 후 그녀는 우리 법공부팀에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보이지 않자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녀가 나를 이렇게 대할까 하면서 그 때를 돌이켜 안으로 찾아보았다. 우리 두 사람은 각각 수련생을 도와 장쩌민 고소장을 부쳤는데 내가 도와준 수련생들의 고소장은 택배회사를 통해 보냈고 전부 받았다는 회답을 받았지만 그녀가 도와준 수련생들의 고소장은 중국 공산당의 억류로 우체국에 차단되어 부치지 못했다. 나의 것만 량가오에서 받았다는 것을 알자 나는 속으로 환희심과 과시심이 나왔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인체과학 연구 중에서, 현재 과학자들은 사람의 대뇌가 내보내는 사유는 곧 물질이라고 인정한다.”[1] 다른 공간에서 모든 물질은 다 생명이 있는데 좋지 않은 나의 이 마음이 나오자 A수련생에게 반영되어 좋지 않은 상태가 나타나고 그녀는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을 안으로 깊게 찾지 않고 그녀가 나를 질투하는 마음이 있어 나를 그렇게 대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와의 모순이 발생한 근원은 나에게 있는 것이고 내가 그녀에게 상처 준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는 매우 부끄러웠고 2003년도 일이 연상되었다. A수련생이 나를 깨우쳐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대법 밖에서 한가롭게 빈둥거렸을 것이다. 그녀는 8, 9년 동안 비바람이 불든 엄한혹서(嚴寒酷暑)에도 멀리서 고생을 마다하고 제때에 우리에게 자료를 가져다주었다. 다른 수련생에게 일이 있으면 본인 일처럼 했고 대법이 필요하면 그녀는 무엇이든지 했으며 원망하지 않았다. 정말 좋은 수련생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눈물이 났고 마음속으로부터 나의 잘못을 인식했으며 그녀에게 미안했다.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먼저 말을 걸었고 진심으로 사과하여 두 사람 사이 간격을 제거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위치: 2018년 3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19/3630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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