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파룬궁을 수련해 사회에 복을 주다: 교사 편(1)

글/ 정신(正信)

[밍후이왕] 지금 중국은 도덕성이 날로 타락해 일부 교사는 최저한의 도덕적 품행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재물을 긁어모으거나’ 학생을 능욕하는 사람으로 전락됐다. 특히 얼마 전에 지속적으로 폭로된 아동 학대 사건으로 세인들의 중국 교사들에 대한 평가는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워도 어쩔 수 없고 무기력했다.

그러나 이런 난세에도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않고 고상한 도덕성을 굳게 지키는 일부 교사들이 있다. 지식을 가르침과 동시에 진실과 선량함을 학생 및 주위 사람에게 전달하고 있다.

싼허(三河) 시위원회 당 간부 학교 강사 이야기

1) 십여 년의 완고한 고질병이 사라지다

쑹젠궈(宋建國)는 전 싼허시 시위원회 당 간부 학교 교사이고 연구실 부주임이며 강사였다. 1991년 허베이 사범대학(전 허베이 사범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학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싼허 시위원회 당 간부 학교에 배치됐다.

쑹젠궈는 어릴 때 몸이 허약하고 자주 질병에 걸렸다. 만성 기관지염은 겨울만 되면 발작해 매년 병원에 갔다. 중학교 3학년 때 신경쇠약에 걸려 늘 잠이 많았고 고등학교 때는 수업시간에도 잤으며 머리는 늘 모자를 씌운 것 같았다. 대학교 때 계단식 교실에서 수업을 하므로 좌석이 고정되지 않았다. 어떤 때 옆에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늘 수업을 들으면서 잠이 들어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면 여학생이 깜짝 놀라 피해 매우 난처할 때가 많았다. 그는 이렇게 10여년 질병에 시달렸고 공부와 직장 일에 큰 영향을 받았다.

1993년, 그의 운명에 변화가 생겼다. 그해 7월 25일 쑹젠궈는 무의식중에 친구 소개로 새로운 기공인 파룬궁에 대해 들었는데 그는 갑자기 흠칫했고 영문도 모르게 흥분되어 베이징 공안대학에 가서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의 9일 학습반에 참가했다. ‘전법륜’ 등 파룬따파(法輪大法) 저작을 배우면서 그는 갑자기 마음이 확 트였고 수년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를 깨달았으며 본인의 운명이 왜 이런지 알았다. 아울러 보고 들은 많은 진실한 사례에서 파룬궁의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해지는 신기한 효과를 보았다.

파룬궁을 수련해서 1년 좌우, 그를 10여 년 괴롭혔던 만성기관지염과 신경쇠약증이 흔적없이 사라졌다. 그는 건강해졌고 지금까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파서 병원에 간 일이 없다.

2) 마음을 닦아 선량한 좋은 사람이 되다

수련하기 전 쑹젠궈는 일을 열심히 하긴 했지만 성격이 급하고 오만했다. 공을 세워 업적을 쌓으려 했고 승진을 추구하고 가문에 영광을 남기려는 명예욕이 늘 올라왔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그는 성격상 결점을 고치기에 노력했고 명예와 금전을 담담히 보아 도덕 경지가 많이 향상됐다.

1998년 큰 홍수 때 직장에서 헌금을 조직했다. 그는 50위안을 헌금한 후 또 민정국에 가서 50위안을 헌금했다. 당시 그의 월급은 고작 몇 백 위안이었고 가정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부담이 컸지만 파룬따파의 마음 닦고 선량해야 된다는 가르침을 받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2005년 좌우, 그는 베이징 왕푸징 서점에 책을 사러 갔다. 당시 날씨는 비교적 추웠고 행인도 많지 않았는데 길가에 팻말을 놓고 구걸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는 팻말을 보고 자세하게 물어보니 아이는 고등학생인데 베이징에 아버지를 찾으러 왔다가 찾지 못하고 속임수를 당해 집에 돌아갈 여비를 모두 잃었다고 했다. 당시 쑹젠궈는 수년간 박해를 받아 경제 형편이 어려웠고 속임수가 아닐까 근심했지만 똑똑하게 물어본 후 아이에게 61위안을 주어 여비와 따뜻한 국수를 사먹게 했다. 아이는 아주 감격했다. 그는 또 베이징 창안거리에서 싼허에서 일하는 산둥성 여성의 짐을 들어주고 표를 끊어 버스를 타고 베이징 기차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렇게 남을 돕는 일을 매우 많이 했다. 큰일은 아니지만 본인이 곤경에 처했을지라도 타인을 생각하고 도와주는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사람의 고상한 지조를 나타냈다.

직장에서 쑹젠궈는 건성으로 하지 않고 성실하게 수업 준비를 하고 실효를 중시했으며 여러 차례 각 직장과 향진에 가서 수업해 학생들의 환영과 호평을 받았다. 아울러 그는 업무 수준 향상에 노력해 학교에서 첫 번째로 ‘강사’ 자격을 받은 교사가 됐다. 그의 논문과 교안은 성(省)과 랑팡시의 표창을 받았다. 2000년 전후 그는 랑팡 당 간부학교에 가서 시범 수업을 했다.

직장에 무슨 힘든 일, 어려운 일이 있으면 상사는 그를 찾았고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동료를 진심으로 대하고 포용하고 양보했으며 이익 앞에서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아 동료와의 관계가 좋았다. 연구실의 원로 주임이 퇴직 연령이 됐을 때 두 교장은 모두 그를 발탁하려 했다. 그때 다른 한 여성 동료도 전문 기술이 있어 두 사람은 어느새 경쟁 상대가 됐다. 쑹젠궈는 이 일을 담담히 보고 개의치 않았다. 이후에 두 차례 시위원회 시정부에 들어갈 기회가 있을 때도 그는 권세에 빌붙어 이익을 꾀하지 않았다.

구이양(貴陽)의 우수 교사 이야기

1) 파룬궁을 수련해 체질 개선

저우칭은 구이저우성 구이양시 우수 교사이고 학생들 마음속의 백퍼센트 ‘A’선생님이다.

저우칭은 기공 애호가였다. 그는 가끔 서점에 가서 새로운 기공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1996년 여름 그는 서점에서 ‘전법륜’을 한 권 사갖고 보았다. 2달 후 학생 한 명이 그에게 징산현 대강당에 연공장이 있다고 알려주어 그는 찾아가 파룬궁 동작을 배우고 정식으로 수련하기 시작했다.

저우칭은 큰 병은 없었지만 체질이 그다지 좋지 않아 겨울이면 늘 기침을 했고 찐득한 가래가 나왔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그해 겨울 이런 증상이 사라졌다. 저우칭은 양성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있어서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는 비계를 먹지 못했지만 수련한 후 한 번에 몇 개를 먹어도 문제가 없었다. 체질이 뚜렷하게 개선됐다.

2) 학생이 백퍼센트 ‘A’라 평가한 선생님

파룬궁을 수련한 저우칭은 체질이 좋게 변했을 뿐만 아니라 성격, 근무 태도도 아주 큰 변화가 발생해 학생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학생들 마음속의 백퍼센트 ‘A’ 선생님으로 됐다.

1999년 전 어느 한 번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의 2개 반 수업을 맡았다. 가르치는 과정에 그는 늘 ‘진선인’을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했다. 예를 들면 숙제를 고쳐서 바로잡아 줄 때 ‘∨’표를 하거나 ‘×’표를 하는 데만 그친 게 아니라 어디에 문제 있는지 주석을 달아주었고 어떤 학생에게는 격려를 해주었다. 1년이 아주 빨리 지나갔다. 학교에서 관례대로 교사에 대한 검증과 학생 평가를 했다. 학생 평가는 매 반 학생이 그 반을 가르친 모든 교사를 종합 평가하는 것이다. 업무 수준, 성적, 교사의 도덕성 등 여러 방면이 포함되며 A, B, C, D 4등급으로 나눈다. 부정적인 경향이 없도록 학교에서는 0퍼센트를 무효로 하고 백퍼센트도 무효로 한다고 규정했다.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상황은 모두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학생 평가에서 그는 만점을 맞았다. 전반 76명 학생이 모두 그에게 ‘A’ 등급을 주었던 것이다. 학교에서도 평소 그의 근무 태도를 보고 이 백퍼센트를 인정했다. 다른 한 반 학생이 그에게 준 평가도 반 최고 점수였다. 그때 한 젊은 교사가 그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잘해도 어차피 2순위로 밀리니 정말 선생님과 같이 가르치고 싶지 않습니다.”

3) 학교에서 명리를 추구하지 않아 동료들이 감탄

한 번은 한 동료 교사가 병원에 입원해 교사들이 다 가보았다. 하지만 그 교사의 대리 수업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다들 잊어버렸다. 학교 지도자도 잊어버렸는데 저우칭이 이 문제를 발견하고 묵묵히 대신 수업을 했다. 관련 지도자가 이 일이 생각나 확인해보니 그는 이미 몇 교시를 수업했다.

대리 수업을 마친 후 관련 지도자는 저우칭에게 몇 교시를 수업했는지 물었다. 담당 교사가 몇 교시를 수업하지 않았기에 상응한 봉급을 공제하고 저우칭에게 상응한 돈의 1.5배를 주어야 했다.(학교 규정임) 저우칭은 말했다. “동료끼리 서로 돕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동료가 아파서 고통스러운데 돈까지 공제하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일을 따지지 않겠습니다.” 저우칭도 도대체 몇 교시를 대리 수업했는지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며칠 후 지도자는 다른 교사를 찾아 저우칭이 대리 수업한 상황을 확인하고 대리 수업비를 사실대로 계산하고 그 이외에 80위안의 상여금까지 주었다. 저우칭은 이 80위안을 돌려주면서 편지 한 통을 써 지도자에게 주었다. “연공인은 원래 타인을 생각해야 합니다. 타인을 도우면서 보답을 받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더 많이 받으면 수련인의 처음에 먹은 생각을 위배한 것입니다.”

지도자는 편지를 본 후 저우칭을 직접 찾아가 면담했다. “저는 당신들이 명리를 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 일의 의의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학교는 이런 정신이 너무 필요합니다. 이 80위안은 선생님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정신을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우칭은 지도자에게 이런 좋은 인식이 있는 것을 보고 지도자의 성의를 받았다. 며칠 후 학교에서 이 일을 통보하면서 마지막에 “명리를 추구하지 않은 그에게 탄복합니다”고 썼다.

완저우(萬州) 외국어 학교 교사의 이야기

1) 건강을 되찾아 공부와 일을 더욱 우수하게 하다

탄펑하오(譚風皓)는 전 완저우 외국어 학교 교사다. 시난(西南)대학 외국어대학 영어학과를 졸업했다.

탄펑하오는 1996년 대학 3학년 때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하기 전 그녀는 심각한 신장 결석이 있어 늘 약물을 먹었고 몸에 큰 손상을 주는 체외충격파쇄석술을 실시해도 근치하지 못했는데 연공한지 10여 일이 되자 결석이 사라졌다.

건강이 좋아지자 활력이 넘치고 학습 효율도 좋아져 대학교 4학년 때 높은 난이도의 영어 8급 시험을 쉽게 통과했다. 1998년 그녀가 번역한 영문 단편 소설이 ‘백화원’ 잡지에 발표됐다.

2) 학부모가 보지 못했던 좋은 교사

파룬따파는 탄펑하오에게 건강한 신체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되는 이치를 깨달았고 그녀를 인도해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의 언행을 지도해 다른 사람, 사회에 유익한 좋은 사람이 되게 했다.

완저우 외국어 학교에 배치된 후 그녀는 두 개 반 영어 수업을 맡았고 그 중 한 개 반의 담임교사를 맡았다. 그녀는 근면하게 일했고 교무 연구에 노력했으며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았다.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자녀가 선생님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게 하려고 여러 번 그녀에게 돈을 주고 선물을 주었지만 그녀는 모두 거절했다. 다른 교사가 일이 있어 그녀에게 대리 수업을 해달라고 하면 본인 수업과 충돌되지 않으면 그녀는 최선을 다했고 거절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스스로 돈을 내 학생을 도와주었다. 반에 한 여학생이 신증후군에 걸려 소금을 넣은 밥과 요리를 먹을 수 없었다. 탄펑하오는 매일 그녀를 집에 데려다 식비 한 푼 받지 않고 소금을 넣지 않은 밥과 요리를 직접 만들어 주었다. 그녀가 맡은 두 반에서 성적이 좀 낮은 학생들에게는 일요일 휴식시간을 이용해 수업료 한 푼 받지 않고 보충 수업을 해줬다. 학생들이 영어 공부에 흥미를 가지도록 그녀는 자비로 VCD를 사서 학생들에게 영어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반에서 활동할 때 비용이 부족하면 그녀는 학생들에게서 거두지 않고 본인이 보탰다. 학부모들은 모두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맺음말

오늘날의 중국 각 분야 예법은 이미 대부분 파괴됐다. 특히 교사들이 ‘학부모의 뇌물을 받고 요구하며’, ‘수업시간에 가르치지 않고 수업이 끝난 후 학원에서 돈을 받고 가르치는’ 현상이 정상 상태가 됐다. 어느 아이의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뇌물을 주지 않으면 이 아이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을 수 있다. 어느 아이가 자기 담임교사가 운영하는 과외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이 아이는 학교에서 잘 지내지 못할 것이다. 교사들의 덕망을 잃는 행위에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으로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교사들은 ‘진·선·인’을 기준으로 본인의 일상행위를 지도한다. 본인이 어려움에 처해도 다른 사람을 돕는다. 그들은 학부모가 자발적으로 주는 돈이나 물품을 받지 않으며 자발적으로 학부모에게 뇌물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늘 본인의 휴식시간을 내어 무상으로 그들 학생을 도와주며 동료 사이의 이익 경쟁에서 다투지 않고 곳곳에서 타인에게 양보한다. 이런 고상한 품행을 가진 교사는 어느 사회에서든 모두 환영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 때문에, 타인을 기꺼이 돕고 학생과 학부모의 사랑을 받는 교사들이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학생을 떠나야 하고 교육 분야를 떠나야 했으며,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쑹젠궈는 최소한 6번 불법 규류됐고 9번 구금됐으며 사인상(死人床: 양팔과 양다리를 묶는 침대)에 묶여 18일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등 10여 종의 고문을 받았다. 노동교양을 두 차례 받아 총 5년 9개월 수감됐다. 전기 고문, 살승(殺繩: 끈이 살 속에 들어가 보이지 않게 하는 고문) 등 10여 가지 고문을 받았으며 핍박에 못 이겨 2년간 유랑했다.

학생들 마음속의 백퍼센트 ‘A’급 교사 저우칭은 교직에서 제명됐고 여러 차례 납치되어 구금됐으며 세뇌반에 수감되어 박해를 받아 온몸이 마비됐다.(이후에 수련을 통해 정상으로 회복됨) 불법적으로 4년 징역형을 판결 받았다.

학부모의 마음속 좋은 교사 탄펑하오는 불법적으로 4년 징역형을 받았고 노동교양 2년을 받았다. 고문방에 수감됐으며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금지했고 매 맞고 장시간 벌을 섰으며 군대식 쪼그리고 앉기(얼굴은 벽을 향하게 하고 한쪽 다리로 쪼그리고 몇 시간 앉아 있게 하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다리를 바꾸지도 못하게 하는 체벌 방식), 테이프로 입을 막기, 손발을 묶어 놓는 등 수십 가지 고문을 받았다. 2002년 한 때 박해를 받아 정신 이상이 생기기도 했다. 26살에서 36살은 여자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데 그녀는 대부분 감옥에서 지냈다.

사람들이 교육이 타락하고 교사의 인품이 떨어졌다고 한탄할 때, 훙황란(紅藍黃) 유치원 ‘교사’들의 비인간적인 행위에 분노할 때, 사람들이 ‘이 사회가 어찌된 일일까? 근치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고 막연해할 때 필자는 늘 생각한다. 이번 파룬따파에 대한 모함과 박해가 없었다면, 중국에서도 세계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파룬궁을 수련할 수 있었다면, 파룬궁이 중국에서 순조롭게 오늘까지 전해졌다면, 이런 파룬궁수련생들이 여전히 정상적으로 본인의 근무지에서 학생을 가르쳤다면 오늘날 교육계는 반드시 다른 광경이었을 것이다!

 

원문발표: 2018년 3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15/362805.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