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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속에서 반본귀진을 다그치다

글/ 장시(江西) 대법제자

[밍후이왕] 4년 전, 운명은 또 나를 대법 속으로 돌아와 수련하게 했다. 전반 3년 동안의 착실한 수련은, 지난날을 차마 돌이켜 볼 수 없게 타락했던 나에게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서광을 보게 했다.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반본귀진의 길을 걷는 것은 정말 행복하다!

아래에 수련중의 짧은 이야기 몇 개를 모아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적절하지 못한 곳은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1. 부뚜막 풍파

“헤어진 부부가 다시 결합하다.” 는 것은 천고의 미담인데, 그 수가 적기 때문에 미담으로 된 것이다. 다시 아내 옆으로 돌아온 후 석자 부뚜막은 내 생활의 주요한 부분이 되었다. 말로는 아내를 용서했다고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아내에 대한 원망과 증오를 내려놓지 못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요리기술을 과시했지만 아내는 인정하지 않았다. 짜지 않으면 싱겁다 하고 딱딱하지 않으면 물렀다 하면서 이것도 입에 맞지 않고 저것도 입에 맞지 않는다 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는 어찌된 일인가. 당신도 수련인이면서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모순이 심할 때는 증오하는 마음도 일어났다. 겉으로는 참았지만 속으로는 늘 편치 않았다.

처음에 아내는 부뚜막의 위생에 대해 까다롭지 않고 스스로 광고지를 가져다 깔았다. 오래 되자 광고지에 기름이 끼고 지저분해졌다. 광고지를 뜯어내자 아내가 화를 냈다. 요리를 하고 나서 부뚜막을 깨끗이 정리하지 않고 게다가 광고지까지 뜯어 버렸다고 엄청 심하게 욕을 퍼부었다. 나는 오히려 생각했다. ‘내가 야채 씻고 반찬 만들고 설거지 하고, 이렇게 고생하는데 당신은 청소 좀 하면 안 되는가?’ 아내가 청소를 도와줬으면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을 꺼내지 않고 참고 있었는데 역시 겉으로만 참았을 뿐이다. ‘수련인은 다투면 안 돼. 역시 나 혼자 하라는 건가봐.’ 한번은 마트에서 젊은 부부를 봤는데 여성이 말했다. “부뚜막 닦는 냅킨을 샀어요!” 아 참, 부뚜막 닦는 냅킨! 그녀의 말이 나를 일깨워 주었다. 그래, 이러면 우리 집 부뚜막 위생은 해결된 것이 아닌가?

3년이 지났다. 아내는 기분이 좋을 때 말하곤 한다. “부뚜막 위생도 좋아지고 물탱크도 깨끗해요. 당신이 요리를 진지하게만 하면 솜씨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에요!”

아내의 도움 아래 내 마음속의 벽이 하나씩 무너지고 증오가 없어지고 원망도 적어졌다. 부뚜막에서 일하는 기분도 좋아졌다. 지금 부뚜막은 무사 평온하다!

2. 구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마우스로 클릭하니 사이트가 열려

밍후이왕에 접속하여 전 세계 대법제자의 교류문장을 보는 것은 심성을 제고하는 좋은 플랫폼이다. 금방 수련 속으로 돌아왔을 때 법을 깊이 배우지 않아 ‘구세력을 인정하지 않는’ 법리를 인식하지 못했다. 처음에 현지 수련생이 나에게 자유문(自由門)을 업그레이드하면 봉쇄를 돌파하는데 효과가 좋다고 알려주었다. 업그레이드한 후 한동안 무슨 민감한 시간이 됐다든가, 또는 사당의 중요한 회의시간이라든가 하면 인터넷 봉쇄가 심해져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없다고도 했다. 정말로 이러했다. 수련생은 나에게 최신버전이 안 되면 옛날 버전으로 인터넷 봉쇄를 돌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참 총명하다고 생각되었다. 실험해 보니 어떤 때는 정말로 접속됐다. 접속이 안 될 때는 필사적으로 발정념했다. 왼쪽, 오른쪽으로 발정념하고 사부님께도 요청하고 안으로도 찾았다. 너무 지쳐서 접속이 안 되면 그만두려고 생각했다. 안되지, 안 되고말고, 신 수련생이 밍후이왕에 접속하지 않으면 어찌 된단 말인가? 한 번 접속하면 곧 법회를 한 차례 연 것과 같았고, 접속하지 않으면 뭔가 빠진 듯이 늘 마음이 허전했다.

한번은 방송에서 수련생의 체험문장을 들었다. ‘인터넷에 대한 구세력의 봉쇄를 인정하지 않는다.’ 즉 언제든지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한 마디에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했다. 원래 자신은 법리가 명백하지 않아 구세력을 인정했고 봉쇄를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있단 말인가? 문제를 찾았다. 즉시 구세력을 부정하고, 구세력의 인터넷에 대한 봉쇄를 부정했다. 정말 영험했다. 구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마우스를 클릭하니 사이트가 열렸다. 매우 빨라서 1분도 걸리지 않아 접속했다! 시간을 얼마나 절약했는가.

올해 또 한 차례 두 달 동안 밍후이왕에 접속이 안됐다. 몹시 조바심이 났다. 안으로 한 바퀴나 찾았지만 못 찾았다. 마지막에 자신이 밍후이왕에 실린, 천상변화에 관한 수련생의 문장의 영향을 받은 것에 귀결했다. 정법시기가 결속되어 간다는 것에 집착했는데 이는 법을 이탈한 것이다. 보아하니 역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고 착실하게 수련해야 했다. 법리가 명백하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마음과 관념을 돌파하는 법보(法寶)이다! 문제를 찾아내고 마우스로 가볍게 클릭하자 사이트가 또 열렸다. 그 기쁨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3. 드디어 안으로 찾고 자신을 수련하는 법을 배우다

지식인의 한 가지 결점: 자아 고집

(1) 수련중의 “불이법문”[1]에 대하여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매우 똑똑히 말씀하셨다. 예전에 나는 가짜 기공을 배웠었다. 가짜 기공사도 인간의 일부 이치에 대해 말했고 게다가 한 고향 사람이라는 관념 때문에 속으로 가짜 기공사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정말 야단났다! 자주 가짜 기공 동작이 교란했는데 나는 문제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왜냐하면 7·20 이전의 후기에는 거의 혼자 수련하는 상태에 처해 있었기에 스스로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나도 말하지 않았고 일깨워주는 사람도 없었다. 파룬(法輪)이 변형되어 수련할 수 없을까봐 조급하고 두려워하자 갑자기 얼굴에 마욜리카 반점이 나타났다. 다시 대법 속으로 돌아와 수련하면서 나는 언제나 진심으로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을 믿고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믿었다. 금방 시작하자 또 교란이 나타났다. 이래서는 안 된다.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모두 정리해 좋은 것은 남기고 나쁜 것은 제거해 버림으로써 당신이 앞으로 수련할 수 있도록 보증하지만, 반드시 진정으로 대법(大法)을 배우러 온 사람이어야 한다.”[1] 나는 자신이 진짜로 수련한다는 것을 확고히 믿는다. 사부님은 내가 가부좌 할 때 녹나무 냄새를 맡게 해 주셨다. 아, 전에 나는 녹나무의 기를 채집했었는데 그것은 삿된 기공이 아닌가? 이전에는 왜 법을 보지 못했지?

이렇게 나는 원래 연마했던 것은 유해한 가짜 기공이었다는 것을 서서히 법에서 인식했다. 정말로 오성(悟性)이 매우 좋지 않았다! 두려운 마음이 없어지자 신심이 확고해졌다. 그 후 교란은 점점 적어졌다. 지금은 조금도 없다. 사부님께서 정리해주셨다.

(2) ‘眞(쩐)ㆍ善(싼)ㆍ忍(런)’ 세 글자를 대법 수련인은 다 안다. 특히 ‘忍(런)’에 대한 나의 수련과정과 체험은 속인처럼 강제로 참을 때가 많았고 수련인의 참음을 해낼 때가 적었다. 어떻게 안으로 자신을 찾는지 몰랐고 속인의 교양을 고수하여 다가온 모순과 충돌을 대했다. 다만 자주 사부님의 말씀 “고통을 겪음은 바로 업력의 빚을 갚는 것이다.”[1]로 자신을 달래고 위안하면서 자신의 어느 집착심이 가져온 교란인지는 찾지 않았다.

2016년 4월 불법적으로 15일 동안 행정구류 당하고 나서야 안으로 자신을 찾는 것을 배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금후 큰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정말로 엄숙하고 진지하게 수련을 대해야 한다. ‘밍후이 주간’ 대법제자의 교류문장이 또 나를 계발(啓發)해 주었기에 박해 당하게 된 집착을 찾아냈다. 저번에 진상을 알릴 때 사부님을 잊어버리고 대법을 잊어버렸으며 교만하기 시작했다. 전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어떠한 국면도 모두 대처할 수 있다. 말이 지나쳤다. 사부님이 안계시고 대법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날 저녁, 10여 명 고등학교 졸업생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와중에 술을 마신 소년이 신고했고 나는 구치소에 들어갔다.

‘밍후이 주간’의 다른 한 편의 문장 중에 ‘겸손’이란 두 글자가 매우 눈에 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금후 겸손하라고 점화해 주신 것을 안다. 한동안 나는 안으로 찾는 체험 문장을 집중해서 읽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안으로 찾고 안으로 수련한 것인가. 지금은 일에 부딪히면 기본적으로 안으로 찾을 수 있다.

4. 비바람 속에서 진상을 알리다

사부님께서 ‘전법륜’ 제1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1]

나의 수련과정 중에서 첫 번째이고 또한 가장 큰 난(難)이기도 한 것이 바로 색욕이다. 색욕심뿐만 아니라 색욕 사상업이기도 하다.

2013년 9월 말, 나는 새롭게 수련으로 돌아온 첫 날부터 나가서 진상을 알렸다. 수련생이 말했다. “금방 돌아 왔으니 다그쳐 법공부하고 진상은 우선 알리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그렇게 많은 빚을 졌기에 하루도 지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장사하는 초등학교 동창을 찾아갔다. 동창은 다 듣고 나서 물었다. “네가 삼퇴를 권하는 목적은 뭐야?” 나는 일시적으로 말문이 막혀 말이 나오는 대로 말했다. “공산당을 고립시키는 거야!” 이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기에 그는 당연히 탈퇴하지 않았다. 반나절 동안 한 사람도 탈퇴시키지 못했고 거절만 당했다. 얼른 법공부하고 밍후이왕에 접속하여 진상을 알리는 체험문장만 골라 봤다. 이튿날 2명 탈퇴시키고 삼일 째에도 2명을 탈퇴시켰다. 어느 날은 단번에 6명 탈퇴시켰다. 그 기쁨이란, 이때부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낮이든 밤이든 줄곧 일선에서 대면하여 진상을 알렸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은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두려운 마음, 의심, 색심(色心), 특히 색의 사상업은 여인만 보면 좋지 않은 생각이 올라 와 머리를 들고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고생스러웠다. 억제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어 사부님께 요청했다. ‘사부님, 저는 사람을 감히 못 보는데 어떻게 진상을 알립니까? 사부님, 저의 색의 사상업을 제거해 주십시오!’ 대략 보름, 한 달이 지나자 사상업이 적어지고 담담해져 머리를 들고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오랫동안 혼자 거리에서 사람을 보면 그 색의 정형화된 사유가 여전히 존재해 어쩌다가 위로 올라오고 올라오는데 역시 괴롭다. 그리하여 필사적으로 억제했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수련생이 색욕을 제거한 문장을 많이 보았다. 지금 색의 장애는 기본적으로 해체됐다.

사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정말로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사람들 앞에 있는 장애물이다. 나는 매체를 하기에 사람과 소통에 능숙하다. 남에게 선을 행하고 형님, 누님, 아저씨, 아주머니라고 부르면 무시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진상을 알릴 때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면을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대륙이기에 직접 공산당의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 전문적으로 무엇이 ‘眞(진)’이고 무엇이 ‘善(선)’이며 무엇이 ‘忍(인)’인가를 말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가?! 라고 묻는다. 그럼요! 그리고 전문적으로 장쩌민, 저우융캉, 링지화(令計劃), 쉬차이허우, 궈버슝, 수룽의 부패에 대해 말한다. 순찰하는 경찰은 내가 반부패 형세를 말하는 줄 안다! 공원에서, 부두에서, 거리에서, 플랫폼에서, 버스에서 부패 뉴스를 마음껏 말할 수 있고 사람들 또한 듣기 좋아한다. 그리고 한 사람씩 작은 목소리로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합니다.” 라고 말하면 삼퇴율도 높고 안전하다.

장악한 자료가 많기에 세인의 의혹에 대해 거의 다 해답할 수 있었다. 인상이 깊은 것은 한번은, 한 아주머니가 곤혹스러워하며 나에게 물었다. “파룬궁은 다 좋은데 사람들에게 탈당하라 하고 정치를 해서 나는 이해가 안 가요!” 나는 옛날 사대부의 ‘고생스러운 일에는 자기가 앞장서고 즐거운 일에는 남보다 뒤에 선다(先天下之憂而憂,後天下之樂而樂)’는 천하를 품는 고상한 풍격과 절조에서부터 현재의 부정부패하는 관원 ‘사대부’ 가 사리사욕에 정신이 팔린 것에 대해 말했다. 이는 정치가 아니라 인품이고 도덕문제이다! “우리 집 노인을 공경하여 남의 집 노인에게까지 공경함이 미치게 하고, 우리 집 어린이를 보살펴 남의 집 어린이도 보살핌을 받게 하다.(老吾老以及人之老,幼吾幼以及人之幼) 이것이 바로 고대 사대부의 윤리 표준인데 지금 관리는 몇 사람이나 해낼 수 있는가? 이는 정치가 아니라 도덕이고 윤리이다. 지금 사람은 도덕이 망가지고 윤리가 망가졌는데 우리는 왜 탈퇴하지 않는가?” 일장 연설에 그녀는 아들이 회사에서 받은 불공정한 대우가 생각났다. 사회가 확실히 나쁘게 변했다. 어디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있는가? 아주머니는 흔쾌히 단, 대에서 탈퇴하고 기뻐하면서 말했다. “내일 계속 얘기해요!”

5. 말로 다할 수 없는 경이로움과 감사

속인은 말한다. ‘심신 건강이야말로 진정한 건강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신체의 병을 제거해 주셨다. 스스로 느낄 수 있고 다른 사람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상 속의 좋지 않은 물건은 제거해 버려도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한다. 수련 중에서 확실히 느꼈다. 마음이 정화되고 신체도 정화되었다. 비할 바 없이 행복한 그런 감각은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느낄 수 없다. 사부님께 대한 감사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금방 수련으로 돌아왔을 때, 제4장 공법 ‘파룬쩌우톈파(法輪周天法)’를 연마할 때 솽서우수이지샤저우(雙手隨機下走)하여 종아리에 왔을 때 복부에서 커다란 것이 “툭” 떨어 졌다. 3년 동안 밖에서 진상을 알릴 때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를 정화해 주셨다. 내가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가슴의 통증은 매일 오후에 조금씩 제거해 진상 알리는 데에 영향주지 않았다. 몇 번은 정말 진상 알리는데 영향을 줄 정도로 괴로워서 더운 국물이 있는 훈둔이나 젠빙을 먹었다. 허기를 달래면 좀 괜찮아서 계속 진상을 알렸다. 수련생은 내가 진상을 잘 알린다고 하면서 방법을 소개하라고 했다. 나는 세심한 준비를 하였다. 요점을 쓰고 다른 한 법공부 팀의 수련생들에게 경험을 전수했다. 이튿날 아침에 가부좌할 때 사부님께서 단번에 나를 매우 높이 밀어 주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우 깊은 조용함과 입정(定)에 들었다. 하지만 금방 돌아와 수련하였기에 잡생각에 익숙해져 잡념이 매우 많았다.

장쩌민 고소가 시작됐다. 당시 나는 하루에 10여 명을 탈퇴시킬 수 있으니 폭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더욱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밍후이왕의 수련생들의 체험은 반드시 장쩌민을 고소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받은 박해를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장쩌민을 고소하려는 결심을 내리자 삽시에 에너지가 머리에서부터 내려왔다. 사부님께서 관정(灌頂)해 주신 것이다. 매우 경이로웠다. 장쩌민 고소장을 쓰고 나서 보내는 것도 곡절이 많았는데 역시 기적이 나타났다! 수련생이 알려주기를 우체국에 전화하여 택배원에게 가지러 오라고 하면 된다고 했다. 그 날은 큰 비가 내렸다. 수고를 덜기 위해 전 성(省)의 택배 연락처에 전화했다. 생각 밖으로 성에서 감시했다. 관련 부문에 장쩌민고소를 금지한다고 통지하였다. 회사 로비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서야 택배원이 왔다. “위에서 알게 됐고 직장에서도 여러 번 회의를 했습니다. 베이징으로 부치는 편지는 일률적으로 보내주지 않습니다.” 현지 공안부문에서 나의 직장에 통지하고 나와 담화했다. 최고법원에 장쩌민을 고소하지 못하게 했다. 택배회사에 한 전화 한 통이 이렇게 많은 번거로움을 불러왔다. 규모가 작은 개인 택배회사에서 소송장을 베이징에 보내는 건 불가능했다.

우체국 택배의 길이 막혔다. 생각 끝에 외지에 가서 부치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또 밍후이왕의 수련생 문장이 나를 일깨워 주었다. 일반편지로 부치면 통한다. 즉시 우체국에 가서 큰 봉투로 부쳤더니 진짜로 됐다! 우체국 직원이 나에게 빠른우편으로 보내도 된다고 알려 주었다. 방문 택배의 길이 막혔기에 그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공안 부문에서 함정을 판 것은 아닐까? 나는 일부러 침착하게 말했다. “나의 편지는 급하지 않아요. 일반으로 부치면 됩니다!” 결과 정말로 우리 지역의 우편 경로를 뚫었다. 거리에서 수련생을 만나 즉시 좋은 소식을 알려 주었다. 그는 얼른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서 베이징으로 장쩌민 고소장을 부쳤다.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 여기에서는 모두 우체국 창구에서 장쩌민 고소장을 부쳤다.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다(柳暗花明又壹村)!

이런 경이로운 느낌도 여러 번 있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 속에서 말씀하셨다. “마치 자신이 달걀껍질 속에 앉아있는 것처럼 미묘(美妙)하고 무척 편안한 감각을 느끼며, 자신이 연공(煉功)하고 있음을 알지만 온몸을 움직일 수 없음을 느낄 것이다. 이는 모두 우리 이 공법에서 반드시 출현한다. 또 한 가지 상태가 있어 앉아있다 보면 다리도 없어진 것을 발견하는데, 다리가 어디로 갔는지 분명하게 생각나지 않으며, 신체도 없어지고 팔도 없어지며 손도 없어져 머리만 남아있다.”[1] 이런 미묘한 느낌은 한 번 나타나면 대략 몇 십 분 또는 1시간 이상 지속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3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새롭게 수련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12/3628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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