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베이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20년을 수련한 대법제자인 나는 올해 63세이다. 이 몇 년간 착실하게 수련하는 중 스스로 과시심, 쟁투심, 질투심 등을 거의 다 없앴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이 마음들이 아직 아주 강하고 아주 깊이 숨어있을 뿐만 아니라 표현은 더욱 교활하고 심지어 스스로는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작년에 사소한 몇 가지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안으로 찾았는지 수련생과 교류하겠다.
1. 사악한 스티커를 없애면서 모순이 나타났을 때 안으로 찾아 과시심을 없애다
작년 5월 상순, 현지 현 정법위는 ‘610’과 결탁해 사악한 스티커를 전 현에 붙이기 시작했는데 스티커에 파룬궁을 모욕하는 글이 있어 대면적으로 세인을 해치고 있었다. 이 일을 협조 수련생과 교류한 후 그것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보통 두 명 혹은 세 명을 한 팀으로 나눠 저녁에 나갔다. 처음에 젊은 수련생과 협력했다. 매번 200여 부의 진상자료를 들고 나갔고 사악한 스티커를 없애는 동시에 배포했는데 매번 아주 순조로웠다. 이후에 우리는 셋이 같이 하면 더욱 빠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셋이 함께 나갔다. 전 몇 번의 ‘경험’이 생겼기에 두 사람이 200여 부의 진상자료를 다 배포할 수 있었으니 한 사람이 더 많으니까 많이 배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수련생과 상의하지도 않고, 더욱이 그들이 직장인이라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100여부 더, 즉 300여부를 갖고 나갔다. 이번에 아주 많은 교란을 받았고 농가 몇 집은 우리를 도둑으로 봤기에 배포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3시간이나 더 걸렸다.
집으로 돌아온 후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났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마음을 바로잡고 법공부를 했다. 사부님께서 “당신의 공능이든 당신의 개공이든 당신은 대법(大法) 수련 중에서 얻은 것이다. 만약 당신이 대법(大法)을 부차적인 위치에 놓고 당신의 신통을 중요한 위치에 놓거나 또는 개오한 사람이 당신 자신의 이런 인식 저런 인식이 옳다고 여기며, 심지어 당신 자신이 대단하여 대법(大法)을 능가한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이미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곧 위험하며, 갈수록 더 잘못된다고 나는 말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단번에 자신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바로 자아에 집착하고 과시심, 환희심, 큰일을 벌이고 공을 세우기는 좋아하는 등 사람 마음이 아닌가? 이번에 수련의 엄숙성과 사람 마음을 없애지 못하면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데 가져다주는 교란을 깊이 체득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고 그것을 수련해 없애겠다고 결심했다. 이성적인 인식의 승화에 따라 사부님께서는 좋지 않은 물질을 없애주셨다.
2. 진상자료를 만드는 과정 중 순조롭지 않을 때 안으로 찾고 일하려는 마음을 없애다
이 작은 꽃은 사부님의 보호 하에 이미 5년간 피고 있다. 최근 3년간 내가 진상을 알릴 때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이웃 진(鎭) 법공부 팀에게도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작년 8월 상순 진상자료를 만들기 며칠 전부터 프린터가 갑자기 일을 멈췄다. 아무리 그것과 교류해도 소용없었다. 그리하여 일하려는 마음이 나왔는지 안으로 찾았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찾았다. 확실히 일하려는 마음이 있고 요즘에 법공부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마음을 다잡고 5시간 넘게 법공부를 한 후 다시 기계를 작동시켜봤더니 프린터는 신나게 일했다.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로서 정법 일을 잘하고 자신의 일체를 잘 원만하게 하자면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얼마나 바쁘든지 반드시 법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원만의 최대 보증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이고 조사정법하는 대법제자이며 대법이 만든 생명이기에 법이 없으면 공기를 떠난 사람과 마찬가지다.
이번 일을 통해 법공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날부터 매일 아무리 바빠도 견지해 열심히 법공부를 했고 법공부하는 시간을 매일 2시간 이상 보장했다.
3. 수련생에게 오토바이를 타는 것을 가르칠 때 안으로 찾고 질투심을 없애다
이웃 진(鎭)에 한 남자 수련생이 있는데 그는 다른 성에서 친척에게 의탁하려고 우리 현에 온 사람이다. 나보다 한 살 더 많은데 자전거를 탈 줄 몰라서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 거의 걸어 다녔고 먼 지역이면 버스를 타고 다녔다. 이 수련생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을 유지했는데 어떤 때 월급을 받으면 바로 꺼내서 진상자료를 만드는데 사용했기에 손에 돈이 줄곧 넉넉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에게 자전거 타는 것을 가르쳐주려는 생각이 생겼다.
두 진 사이 거리는 15km 떨어졌는데 그를 몇 번 만나 이 일에 대해 교류했다. 나는 “지금 수련생 집들의 자전거는 오토바이에 의해 도태됐고 낡은 오토바이를 집에 그냥 내버려두는 경우도 있어요. 만약 수련생이 배우고 사용한다면 역시 충분히 대법자원을 이용하는 겁니다!”라고 했다. 몇 번 교류를 통해 수련생은 간신히 동의했다. 한 강둑길을 찾아 먼저 자전거 타는 것을 가르쳐줬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그에게 기본적인 요령을 알려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평형을 잡는 것이라는 것도 알려줬으며 시범도 보여줬다. 그리고 그는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때 그에게 동작을 바로잡아주면 내키지 않아 하는 것 같아 속으로 ‘그래 혼자서 알아서 해요’라고 생각하고 강둑에 서서 보기만 했다. 그는 기본은 배웠다.
이튿날 수련생은 또 반나절 배웠다. 그에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네, 탈 수 있어요”라고 했다. 수련생이 가자 마음이 또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의로 자전거 타는 것을 가르쳐줬는데도 날 꺼려한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 ‘난 연공인인데 어찌 이렇게 좋지 않은 마음이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진정으로 수도(修道)하는 사람 중에도 역시 이런 반영이 있어 서로 간에 불복하는데, 쟁투심을 버리지 않으면 역시 질투심이 생기기 쉽다.”[1]라고 말씀하셨다. 이건 쟁투심이 아닌가? ‘혼자 알아서 하라’라는 마음도 질투심이 아닌가? 불평할 것이 뭐가 있는가?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 것이 뭐가 있는가? 수련생의 행위를 대조해 자신을 찾아봤다. 나도 다른 수련생 집에 가서 이런 행위를 하지 않았던가! 수련생에게 감사해도 모자란데! 속으로 힐끔 웃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사부님의 ‘논어’를 외웠고 해야 할 일을 하러 갔다.
며칠이 지난 후 이 수련생은 오토바이 타는 것을 배우겠다고 날 찾아 왔다. 나는 그를 강둑길로 데려갔고 오토바이 각 부위의 기능을 상세하게 알려줬다. 그런데 수련생은 오토바이에 올라타자마자 2번 넘어졌다. 나는 무서워하지 말고 계속 배우라고 격려해줬다. 세 번째 오토바이에 올라탄 후 20미터쯤 달린 후 오토바이가 강둑 아래로 내려갔다. 빨리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했지만 그는 내 외침을 듣지 못했다. 사람과 오토바이가 함께 강으로 굴러 떨어졌다. 바로 달려가 수련생을 부축해 일으키고 오토바이를 일으켰다. 수련생은 다리에 상처가 났고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큰일은 아니었다. 수련생에게 “다른 곳을 찾아 배웁시다. 여기는 너무 위험해요”라고 했다. 우리집 부근의 넓은 장소를 찾아 가르쳐줬다. 수련생의 온몸이 땀에 젖은 것을 보고 집에 가서 물 한 병을 가져왔다. 수련생보고 멈추고 물을 마시고 계속 배우라고 했다. 그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침을 시멘트바닥에 뱉었다. 그의 행동을 보고 “마당이 이렇게 깨끗한데 여기에 침을 뱉으면 바르지 못한 행위가 아니에요?”라고 했다. 그러자 수련생은 부끄러워 침을 닦은 후 물을 받아갔다.
수련생이 침을 함부로 뱉는 것을 보게 한 것도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안으로 자신을 찾아봤다. 나도 거리에서 함부로 침을 뱉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갑자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큰 뜻을 품고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으며(懷大志而拘小節)”[3]라는 것이 생각났다. 수련에는 사소한 일이 없고 속인 중 양성된 나쁜 습관은 다 없애야 한다. 식은땀이 쫙 났다. 대법제자여, 시시각각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오토바이를 다 배운 후 수련생은 오토바이를 집으로 밀고 가 혼자서 연습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가면 걱정됩니다. 운전할 줄 아는 수련생을 찾아가 내일 또 가르쳐주라고 할게요. 내일 그가 밀고 가라고 하면 밀고 가요. 어때요?”라고 했다. 수련생은 동의했다. 저녁에 우리는 함께 법공부하고 발정념을 했다.
이튿날 아침 연공하고 6시 정각에 발정념을 한 후 운전할 줄 아는 수련생을 찾아가 언제 오토바이를 가르쳐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먼저 가면 바로 따라 나갈게요. 우리 중학교 운동장에서 만나요”라고 했다. 여름방학이라 운동장에 사람이 없었다. 그의 말을 듣자 ‘난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수련생이 다친 것은 좋은 훈련장소를 선택하지 못한 나 때문이 아닌가?’라고 생각하자 수련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학교 운동장에 도착한 후 수련생은 오토바이 각 부위 기능 및 오토바이를 타는 요령을 설명해줬고 시범도 보여줬다. 오토바이를 배우려는 수련생은 귀담아 들었고 운전할 줄 아는 수련생이 어떻게 연습하라고 하면 그는 그대로 연습했다. 나는 속으로 ‘정말로 날 깔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1시간 후 운전할 줄 아는 수련생은 “이젠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 되요”라고 했다.
그리하여 수련생은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마음속으로 또 다시 그 수련생이 사람을 깔본다는 마음이 튀어나왔고 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런 상태가 좋지 않다고 인식한 나는 바로 결가부좌를 했다. “기공사가 학습반을 열면 어떤 사람은 거기에 앉아서도 불복한다. 아, 무슨 기공사인가. 그가 말하는 그런 것들을 난 듣고 싶지도 않다. 기공사는 정말로 그가 말하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그 기공사는 그 자신의 한 문(門)의 것을 말하는 것이다.”[1]라는 법을 보고 자신을 대조해봤다. 이건 내가 아닌가, 아이고, 이건 또 질투심이구나. 오토바이를 가르쳐주는 수련생의 능력이 나보다 낫고 오토바이를 배우는 수련생이 운전할 줄 아는 수련생만 존중한다고 질투했으며 나의 허영심, 체면을 자극했다. 수련생이 오토바이를 배우는 이런 형식으로 질투심을 폭로하고 그것을 없애게 하기 위해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많은 애를 쓰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다시 한 번 수련생 분께 감사드린다!
자신의 수련을 한번 돌이켜 봤다. 비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직 깨끗이 없애지 못했지만 확고하게 신사신법(信師信法)하면 꼭 법 중에서 승화할 것이고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찾고 대법에 동화하고 자신을 바로잡으면 넘길 수 없는 고비가 없을 것이고 꼭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축사’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성자(聖者)’
원문발표: 2018년 3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11/3627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