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17년에 진정으로 대법 수련으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자신을 신수련생이라고 부른다. 반년 넘는 시간에 너무나 많은 느낀 점이 있기에 써내어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합당하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미혹
2001년 교도소에서 나온 후 나는 줄곧 수련자의 상태가 아니었다. 법공부를 할 때 구하는 마음으로 보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면서 주의력이 집중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다른 시기에 발표하신 경문을 보아도 이해는 아주 얕았다. 가끔 나가서 CD를 나눠주고 진상을 알리는 등 이렇게 대법 속에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이런 상태에서사람의 각종 집착이 모두 나를 교란했고 명리정(名利情)의 유혹에 빠져 방향을 잃은 채 거의 속인처럼 지냈다. 도덕성이 아래로 떨어지는 사회에서 시대 조류에 휩쓸렸다. 신체 주위에 한 가지 장벽이 나를 가로막고 있다는 걸 느껴 돌파하고 싶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한 막막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 속인으로 다시 돌아가자니 정말 싫었다. 예전에 법공부를 하면서 수많은 초상적인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공에 뜬 채 올라가지 못했고 늘 머리에 두 가지 물질이 대치한다는 것을 느꼈다.
가끔 수련생을 만나 교류하면 의지가 좀 강해지고 정념이 강화됐지만 여전히 진심으로 법을 깨닫지 못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수련의 열정은 또다시 금방 식어졌다.
내 상태를 보고 아내 수련생은 아주 조급해했다. 날마다 법공부, 발정념을 하라, 정진하고 정신을 차리라고 일깨워주었지만 모두 귀담아듣지 않았고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나보고 수련생이 쓴 심득 교류 문장을 보라고 했다. 이 부분은 그래도 명백하기에 날마다 조금씩 보았다. 가끔은 문장 내용에 감동받아 격동을 금치 못하고 수련의 열정이 되살아났지만 금세 또 식었다. 다행히 그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나쁜 것들을 배척할 줄은 알았다. 이런 조그마한 정념이 남아있었기에 수련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시간은 하루하루, 한 해 또 한 해 흘러갔다.
각성
어느새 2017년이 됐다. 어느 날 저녁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볼 때 후천적으로 형성된 일부 관념에 대한 인식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당시 ‘후천적인 관념’ 이 글자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즉시 사부님께서 ‘전법륜2’에서 말씀하신 ‘불성(佛性)’ 경문이 생각났다. 집에 책이 있어 열심히 보았는데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았다.(사실 예전에 이 경문을 몇 십 번 보았음) 책 속의 글자가 내 머릿속으로 날아오는 것 같았고 한 번 보고 난 후 신체 주위의 나쁜 물질들이 조금씩 제거되는 것 같았다. 두 번 보았을 때 나를 속박하던 신체 주위 장벽이 단번에 사라지고 머리가 명석하며 심신이 그토록 홀가분해졌다. 눈물이 참을 수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나쁜 물질을 제거해 주시고, 점화해주셨으며, 오랫동안 길을 잃은 나를 일깨워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사부님께서 다른 시기에 말씀하신 후천적인 관념에 관한 법이 끊임없이 머리에 떠올랐다. 사람의 일면은, 지금 법리에서 후천적인 관념을 인식하고 제거할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튿날 출근길에 아주 똑똑한 소리가 머리에 들려왔다. ‘당신은 진정으로 수련하기 시작했다!’ 순간 멍해서 생각했다. ‘그럼 예전에는 수련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이때 또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진정으로 대법 속에서 수련하기 시작했다!’ 단번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한 생명이 대법에서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영예롭고 운 좋은 일인가! 그제야 한 사람이 ‘전법륜’을 보고 배우며 연공한다고 해서 그가 꼭 대법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수련에는 엄격한 표준이 있다.
이 몇 해 동안의 내 수련을 되돌아보면 줄곧 각종 집착심, 나쁜 생각들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이었다. 관념의 지배하에 기뻐하고 슬퍼했지만 전혀 나 자신이 아니었다. 법리가 똑똑하지 못했기에 수련하는 것 같았지만 실은 법에 있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누가 연공(煉功)하면 바로 그가 공(功)을 얻는다”[1] 고 말씀하셨다. 파룬따파는 주왠선(主元神)이 공을 얻지만 푸왠선(副元神) 수련은 사람의 신체를 운반체로 여길 뿐이다. 예전에 내가 각종 집착과 나쁜 생각들을 모두 자신이라고 여겼을 때 푸왠선이 수련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비록 표현 형식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것이다. 모두 사람을 운반체로 여겨 수련했으니 그럼 어찌 관념을 자신이라고 착각한 나에게 법을 줄 수 있겠는가? 절대 안 된다. 진정한 내가 수련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제야 예전 수련에서 큰 변화가 없고 마치 대법에서 허송세월 하는 것 같던 원인을 찾게 됐다. 갑자기 자신이 수련할 줄 알게 되고 자신이 수련하고 있으며 어떻게 수련해야 할 지 알게 된 것 같았다!(예전에는 수련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실은 바로 이러했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여러 차례 구세력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근본적으로 부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전반적’, ‘근본적’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진정으로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구세력은 그들의 원하는 걸 얻기 위하여, 푸왠선을 구도하는 이 일을 포함해 기나긴 역사 속에서(우리가 층층이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을 포함) 우리 모든 수련인에 대해 수단을 부렸다. 과정 중에서 형성된 일부 변이된, 더러운 관념은 오늘날 우리가 법을 얻고 이해하는 데 엄중한 저애작용을 일으켰다. 이게 바로 그들이 원하는 바이다. 구세력의 이치로 인해 그들은 주왠선이 법을 얻어 수련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 그럼 우리 매 수련자가 이 생에 수련할 때 만약 주의식이 똑똑하지 못하고 의지가 확고하지 못하다면 후천적인 관념에 지배당해 법의 내포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럼 오늘 정법 수련에서 우리가 실증하는 것은 대법인가? 아니면 낡은 우주의 변이된 이치인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온몸에 식은땀이 났고 처음으로 수련의 엄숙함을 느끼게 됐다. 예전에는 입으로만 엄숙하다고 말했지만 그 순간 무엇이 엄숙함인지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구세력이 배치한 길에서 당신이 아무리 뛰고 날아다녀도, 스스로 자신이 수련하고 정진한다고 여겨도 모두 사부님의 승인을 받지 못한다!
그 순간 기사회생한 것 같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속인 속에 빠졌지만 사부님께서는 날 포기하지 않으셨다. 나는 ‘크나큰 부처님 은혜’에 감격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회귀
그 며칠 동안 나는 진심으로 심신이 법에 용해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승화로 인해 “대도(大道)는 극히 간단하고 극히 쉽다”[2]는 뜻을 이해하게 됐다. 법을 배우고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후천적인 관념을 제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어느 날 사부님의 한 단락 말씀이 머리에 들어왔다. “수련이란 곧 사람의 사상을 수련하는 것이라 사상에서부터 변해야 한다. 당신의 사상이 어느 정도로 순정하다면 그것이 곧 과위다.”[3] 그제야 깨닫고는 자신의 일사일념부터 닦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람의 각종 관념, 집착, 명리정(名利情), 이런 것들이 사상업처럼 끊임없이 머리에 떠오를 때 정말 억제하기 힘들었다. 주이스(主意識)가 강하지 않다면 전혀 배척하거나 제거하지 못한다. 사람의 대뇌 생각은 극히 복잡하고, 각종 생명이 사람의 주이스를 장악해 주인 노릇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배척하고, 제거하고, 없애는 과정에서 만약 주왠선이 강하지 않다면 정말 제거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가끔 인식할 수 있고 가끔은 인식하지 못했다. 이 생각을 배척하면 저 생각이 떠올라 머리는 늘 집중 상태에 있었고 팽팽해졌다. 하지만 나 사람 이 일면의 주이스는 법리에서 내가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점만 알고 있으면 된다. 습관이 되면 차츰 외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그렇게 격렬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고, 차츰 나쁜 생각들이 머리에 나타나기만 하면 즉시 인식하고 제거해버릴 수 있다. 나의 주이스는 갈수록 강해지고 염력(念力)도 갈수록 강해졌으며 정념도 갈수록 강해졌다. 이는 정말 고생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과정이었다.
어려움을 말하자면, 주이스가 외부의 각종 교란에 유혹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고달프고 어려웠다. 정신을 집중해 시시각각 나쁜 생각을 배척하고 제거하는 과정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확고한 의지와 변치 않는 마음이 있어야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일사일념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법공부할 때 잡념이 갈수록 적어지고 진정으로 자신이 똑똑하게 법공부를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 기쁘기도 했다. 또한 연공, 발정념할 때 고요해질 수 있었고 가끔은 입정하기도 했다. 자신이 명명백백하게 수련하고 제고하며 진정으로 수련 상태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은 길을 걸을 때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아직 수련 성취되지 않은 일면이 어찌 주사상(主思想)을 억제하며, 이미 법을 얻은 일면을 억제할 수 있는가?”[4] 일사일념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주이스가 갈수록 강해지고 정념이 갈수록 강해져 사람 표면의 가장 약한 생각과 외부 의식의 주이스에 대한 교란을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면 정말 주왠선이 주인 역할을 하고 수련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무엇이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인지 느끼게 됐다. 사실 일사일념을 수련하는 것은 우리가 속인사회에서 수련하기 위해 하나의 기초를 닦고 있었다. 기초가 확고할수록 세간의 사람과 일에 미혹되지 않을 것이고 세속 중에서 본래의 특성을 잊지 않고 수련의 일념을 지킬 수 있다.
법의 표준으로 자신의 언행을 대조해보면 가장 빨리, 가장 직접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고 바로잡을 수 있다. 한 번은 아내가 동창들과 함께 단체로 여행을 가게 됐다. 돌아온 후 고열이 나고 심장도 불편했다. 사실 예전에도 동창들과 놀고 돌아오면 비슷한 상황이 나타났다. 먹은 음식이 깨끗하지 못한 건 아닐까? 신선하지 못하거나 익히지 않아서가 아닐까? 아내는 사람의 이유를 길게 늘어놓았다. 나는 아내에게 수련자가 어떤 일에 부딪히든 마땅히 법의 기점에 서서 자신을 대조해보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도 깨닫고는 많은 집착을 찾아내 며칠 뒤에 부정확한 상태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에 아내가 아파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현상이 반복해 내 앞에서 발생하는 것은 나보고 무엇을 깨달으라고 하는 것일까?’ 이때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머리에 들어왔다. “인위적으로 사악한 마를 자양(滋養)하여 그것이 법의 틈을 타게 한 것이다.”[4] 법으로 대조해보니 단번에 명석해졌다. 우선, 집착에 이끌려 속인에 부합되게 자신을 방임한 것은 ‘인위적으로 사악한 마를 자양한’ 것으로 구세력은 이로서 박해의 구실을 잡게 됐다. 또한 내가 법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았다는 걸 똑똑히 보아냈고, 구세력이 이것을 구실로 삼아 신체를 교란하고 박해하는 것을 제거했다. 한 손으로 사람의 물건을 붙잡고, 한 손으로 신을 붙잡고는 인위적으로 박해 중에서 반(反) 박해하고 있었다. 자발적으로 전일하게 수련한 것이 아니라 어느 새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고 있었다.
이 일을 통해 나와 아내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修煉)은 전일(專一)해야 한다’[1]에 대해 더 깊이 깨닫게 됐다. 이번에 아내와 법에서 교류한 후 그녀 신체의 부정확한 상태는 이틀도 안 돼 사라졌다. 법리가 더욱 똑똑해졌고 법공부와 착실한 수련의 중요성도 더 깨닫게 됐다.
단체 수련환경에 들어가다
단체 법 공부, 연공, 교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형식이다. 2개월 남짓 착실하게 수련하면서 개인 수련은 제고했지만 정법 수련, 대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똑똑히 알리며 중생을 구도하는 방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이때 나의 첫 일념은 법공부 팀을 찾는 것이었다. 법공부 팀 환경에서, 수련생들이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는 환경에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고, 정법 수련에 들어가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똑똑히 알리며 세인을 구도하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실행하려 하니 무척 어려웠다. 이 몇 해 동안 거의 수련생과 연계하지 않고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꼭 배치해주시리라 믿었다.
어느 날, 머릿속에 한 수련생이 떠올랐다. 이미 7~8년 연락하지 않았고 예전에 남겨준 전화번호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머릿속에 떠올렸다. 신기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휴대폰 11자리 숫자에서 앞 여섯 자리가 생각났고 끝 세 자리도 생각났다. 하지만 가운데 두 자리 숫자가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 후에 머릿속에 이 두 자리가 떠올랐고 전부 연결해보니 이 번호가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보니 바로 통했다. 예전에 가깝게 지냈기에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시간을 약속해 만나기로 했다.
전화를 끊은 후 사부님께서 도와주셨다는 것을 깨달았고 비할 바 없이 기뻤다. 이후에 수련생은 나를 법공부 팀으로 데려다주었다. 방에 들어서자 모두 예전에 알고 있던 수련생들이서 너무나 가깝게 느껴졌다! 한 수련생이 단번에 “왜 이제야 왔나요?”라고 말해 너무 감동했다.
단체 법공부에 참가한 후, 나와 아내는 수련자에게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깨달았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고 법의 표준에 따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시간이 길어지자 이 법공부 팀이 좀 특수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디가 특수한가? 여기에 온 수련생은 각자 상태가 다 달랐다. 방금 감옥에서 나온 사람도 있고, 그릇되게 깨달은 적이 있는 사람도 있었으며, 첩자라고 불리는 사람도 있고, 의식이 외래정보에 교란 받는 사람도 있었다. 교류할 때 노수련생은 말했다. “이런 수련상태가 있는 사람들을 어떤 법공부 팀에서는 받지 않아요. 다른 수련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요.”, “그럼 당신은 왜 그들을 오게 합니까?”, “사부님께서는 문이 없을 정도로 법의 문을 열어놓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도 우리 집에 문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전히 남을 위해 베풀고 전혀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노수련생의 행동에 나는 많이 감동했다!
법공부 팀에서 수련생과 교류할 때 나는 자신의 차이점과 부족한 부분을 찾아냈다. 특히 진상을 알리는 방면에서 격차가 너무 컸다. 수련생이 진상을 알린 경험을 열심히 들었고 아주 빨리 그들의 도움 하에 대면해 속인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
한 번은 수영장에서 19살 젊은이를 만났고 휴식할 때 그에게 말을 걸었다. 톈안먼 분신자살 거짓사건부터 시작해 많이 말했고 그 역시 귀담아들었다. 당시 나는 제3자 신분으로 얘기했는데 그의 눈빛에서 나를 파룬궁 수련자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다른 사람과 달랐습니다. 당신 얘기를 듣고 당신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마지막에 그는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했고 아주 기뻐하면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고마울 것이 없고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 후부터 진상을 알릴 때 나는 정정당당하게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말했다. 어느 한번, 아내와 함께 버스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생수병을 줍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방금 버스에서 내릴 때 버스 안의 휴지통에 빈 생수병이 몇 개 들어있었다고 알려주었다. 할아버지는 버스에 올라갔다 다시 내려왔다.(종점이기에 운전사들은 버스에서 내린 후 보통 문을 닫지 않음) 손에 빈 생수병 몇 개를 들고 있었고 기뻐하며 말했다. “젊은이,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나와 아내는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었다. 내 눈에 할아버지가 80여 세는 돼보였지만 알고 보니 95세여서 우리 둘은 깜짝 놀랐다. 아내가 그에게 공산당원이냐고 묻자 나는 속으로 이 연세에 학교에 다니기만 해도 괜찮은 것으로 설마 당원이겠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 할아버지는 당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젊었을 때 직장 당지부 서기로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왜 삼퇴(중국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듣고 나서 그는 기뻐하면서 탈퇴했고 잘 가라고 인사했다.
할아버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겉을 보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되고 후천적인 관념으로 사람과 일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새롭게 수련한 이 반년 넘는 시간을 되돌아보면 대법의 홍대함과 사부님의 자비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수없이 사부님의 ‘크나큰 은혜’에 감동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는데 그 어떤 사람의 언어로도 사부님에 대한 감사를 표현할 수 없다. 속인의 늪에 빠져 허덕이던 나는 오늘 운 좋게 다시 수련에 되돌아와 진정으로 대법 수련을 하고 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이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오직 법의 표준에 따라 시시각각 자신을 일깨워주고 바로잡으며, 세 가지 일을 잘 하고,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이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겨 정법노정을 따라가고, 합격된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어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해야만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대원만법-1. 공법특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법해’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도법(道法)’
원문발표: 2018년 3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7/3624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