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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더없이 넓은 세상이 됐다

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밍후이왕] 정법수련의 길에서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가지(加持)해 주시고 중생을 구도하시는 동시에 끊임없이 우리를 점오해주셔서 우리가 집착을 층층이 제거하고 끊임없이 승화하도록 해주셨고 또 끊임없이 대법제자의 미래를 원만케 해 주신다는 것을 나는 늘 느꼈다.

나와 샤오롄(小蓮)은 함께 글짓기 항목을 인계받아 현지 대법제자들이 10여 년간 받은 박해를 전면적으로 폭로해 현지 주민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렸다.

중생 구도를 위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구상하다

이 항목을 잘하려면 순정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다, 중생 구도를 전제로 하면서 속인들이 진상을 이해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게 될수록 개인 집착과 주관적인 요소를 문장에 넣어 독자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국내의 각종 선전 매체는 당(黨)문화 요소, 선전, 설교, 주입이 가득하고, 강요하는 것이 너무 많아 사람이 반감을 갖는다. 만약 우리들이 박해 사실과 주관적인 문장을 평범하게 나열하면 사람들은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우리와 대립이 된다. 그럼 우리의 문장이 어떻게 독자들을 사로잡고 나아가 진상을 알리도록 할 것인가? 나와 샤오롄은 함께 속인의 심리 상태와 현지 주민들의 특징을 상세히 분석했다.

우리는 단순하게 박해 사실만 폭로하는데 국한하지 말고 문장 중에서 대법제자의 선량함과 꿋꿋하게 인내하는 정신을 표현해 정의의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고 인식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지 파룬궁 수련생들의 10여 년간 박해 사례 중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은 ‘진(眞)·선(善)·인(忍)’ 수련을 통해 정신적으로 승화된 하나하나의 생생한 이야기가 있는데 박해 중에서 대선대인(大善大忍)의 정신을 표현해냈다. 우리는 박해 문장 중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의 고상한 인격에 따라 표현했다. 이러면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며, 우리의 이야기에 다가가서 그중의 인물, 사건, 줄거리 및 정신에 감화되고 심지어 감동할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을 구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논의한 후 주제를 다듬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현지 대법제자가 10여 년 동안 중국 공산당에 박해당한 경험을 전면적으로 폭로하는 동시에 대법제자가 박해 중에서 표현해낸 선량함과 꿋꿋하게 인내하는 정신이었다. 이런 정신은 바로 작품의 정신 혹은 영혼이다.

주제가 확정된 후 우리는 현지 대법제자가 받은 박해 소재와 반(反)박해, 법을 실증하는 소재에 근거해 대응되는 두 가지 줄거리를 열거했다. 하나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처음부터 한 걸음씩 박해하던 데로부터 점차 몰락과 멸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대법제자가 박해 중에서 처음부터 견디기 힘들던 데로부터 점차 세인들에게 전면적으로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도하는 과정이다. 만약 이 문장을 한 폭의 그림으로 비유하면 중국공산당의 광적인 박해는 그림의 배경으로 되고 거기에 주목받는 것은 대법제자가 어려움과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표현된 선량함과 꿋꿋하게 인내하는 형상이다.

문장의 주제와 글짓기 줄거리 및 짜임새를 확정한 후 우리는 표현 기법과 언어 품격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는 작품 중에서 될수록 객관적인 묘사를 사용하고 주관적인 평가를 적게 사용했다. 소박한 문구를 세련되게 사용하고 감정을 과장되게 묘사하는 것을 적게 사용했다. 나는 이전에 샤오롄과 웃으면서 우리가 일종 예술적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내가 느꼈다고 말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오래된 용수나무 아래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한 노인이 옆에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한 무리 사람들이 겪은 고통과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의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경의가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노인의 이야기를 편하게 경청했다.

나와 샤오롄은 글짓기의 전체 기획과 구상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피곤해 지쳐있을 때 우리는 항상 사부님의 가지를 받아 한 단계씩 돌파해 갑자기 절묘함이 확 트이는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중생을 위해 생각할 때 사부님께서는 지혜를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속에 샘물처럼 주입해주신다. 글짓기 항목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과정 중에서 우리는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배치해 주셨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제자는 다만 순수하고 사심 없는 마음으로 중생을 구도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사부님께서 배치해놓은 것이 실천되어 세간에서 표현된다.

집착을 내려놓으니 더없이 넓은 세상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가지해 중생을 구도하시는 동시에 또 늘 제자를 일깨워 제자들이 글짓기 항목 중에서 드러나는 집착을 인식하게 하고 이를 제거해 승화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더욱 순정한 글을 써내 더욱 많은 세인을 구도하게 하셨다.

구상을 마치고 우리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샤오롄은 주필이고 나는 협조인이다. 구상부터 구체적인 문장이 줄곧 비교적 순조롭게 될 때까지 나와 샤오롄은 기본상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가 가장 마지막 부분에 갔을 때 그곳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또 핵심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왜냐하면, 여기 세인들은 중국공산당의 박해가 몰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았기에 대법제자는 전면적으로 반박해를 시작해 박해 원흉을 고소하고 세간에서 정의의 힘으로 전면적으로 사악을 공격했다. 본문의 요점은 바로 대법제자의 정신을 이 부분에서 승화시키고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쓰고 나서 나와 샤오롄은 이 부분 소제목에서 의견 차이가 생겼다. 샤오롄은 세인들의 양심을 깨우치는 방면의 제목을 채택하자고 건의했고 나는 대법제자의 정신을 표현하는 제목을 채택하자고 고집했다. 우리는 줄곧 의견을 교환했다. 표면적으로 나는 샤오롄의 생각을 존중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기 생각을 매우 고집했다. 만약 샤오롄의 건의를 채택한다면 문장이 나의 본래의 뜻에 완전히 어긋난다고 나는 생각했다.

몇 번 교류한 후 마음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샤오롄에게 감정을 갖고 건의 메일을 섰는데 메일 속의 어떤 말은 아주 선하지 못했다. 나의 선하지 못한 말로 인해 샤오롄은 나의 뜻을 오해했고 갈등은 내 마음속에서 날카로워졌다. 나는 마음속 불평을 억누르고 샤오롄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주필의 생각을 존중한다면서 그의 건의를 채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복하고 나서 나는 전체 구상의 틀이 무너진 감을 느껴 마음속으로 몹시 괴로웠다. 다시 이 항목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샤오롄의 사고방식대로 계속 갈 수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기울인 심혈이 물거품이 됐다고 느껴 이 항목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이 몹시 괴로웠다. 한 줄기 힘이 나를 이 항목에서 멀리 떨어지게 해 다시는 이 항목에 참여하지 못하게 재촉했다. 나도 마음속으로 자신을 회피해 이 항목은 이미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샤오롄이 마무리하면 어떻게 되든지 그녀에게 다 결정하라고 생각했다. 자아를 고집하고 자아를 회피하는 갈등 속에서 나는 샤오롄과 열흘이나 연락하지 않았다.

갈등과 고통으로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나는 몇 번이나 한 수련생에게 가서 하소연했다. 사실의 과정과 생각을 그에게 말하자 그는 듣고 나서 별일도 아니라면서 “당신의 건의도 아주 좋고 샤오롄의 생각도 아주 좋으니 모두 채용할 수 있어요. 중생을 구도할 수만 있으면 되는데 자기 생각을 고집할 필요가 있나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알고 있지만 내려놓을 수 없어 괴롭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수련생은 왜 괴로운지, 무엇이 괴로운지를 찾아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나를 깨닫게 했다. 맞다, 무엇이 이렇게 괴롭히는지 나는 봐야겠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를 점오해 주신 것임을 알았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20년 동안의 나의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고 자신이 어릴 때부터 성장한 과정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았다. 나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하나의 극단적인 관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하고 나서 완벽한 결과를 보려고 한 것이었다. 만약 이상적인 결과가 없으면 전혀 흡족해하지 않는다. 이런 관념으로 어린 시절에 내가 만든 장난감은 친구 중에서 가장 좋았다. 학생 시절에는 내 성적이 가장 우수했고 사업에 참여해서는 내 업무 능력이 동료 중에서 최고였다. 그리고 대법수련에 들어서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정진하는지 대해 다른 수련생과 비교했다.

나는 자신의 인생역정을 파헤쳐 보고 이런 극단적인 배후의 물건을 층층이 분석했다. 내가 한 가지 일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나에 대해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는 과정에서 노력하고 심혈을 기울여 완벽한 결과를 추구하는 것은 좋은 점을 얻기 위해서였다. 성공 후에 누릴 영예, 명성, 지위 혹은 이익이었다. 만약 노력과 심혈을 기울인 후 결국 좋은 점을 얻지 못하면 나는 견딜 수 없었다. 여기에서 나는 오랫동안 수련 중에서 자신의 근본 집착을 줄곧 의식하지 못한 것을 보았다. 왜 대법의 길에 들어섰는가, 대법이 나에게 좋은 점을 주기 때문이다. 왜 수련 중에서 정진하는가, 왜 법을 실증하는 일에서 성심껏 최선을 다하는가, 노력해서 얻은 최종 결과가 나에 대해 좋은 점이 있고, 위덕이 있으며, 수련생들의 총애와 신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이 글짓기 항목 중에서 자신의 근본 집착을 그중에 혼합하면 작품이 순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나는 이기적인 가짜 나와 대법 중에서 수련해낸 사심 없는 진짜 나를 분리하자 그가 정말로 진정한 나가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가슴속에 맺힌 갈등과 고통이 한꺼번에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나는 원고를 꺼내 들고 다시 한 번 샤오롄의 의견을 분석해보았다. 아주 적합해 내 건의를 반드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주필인 그가 구체적인 글짓기 과정 중에서 문장에 대해 더욱 깊은 이해가 있기에 나는 정말로 그의 건의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메일을 열어보고 몹시 후회했다. 샤오롄은 10일간 줄곧 내 답변을 기다렸는데 내 집착으로 인해 항목이 10일이나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둘러 원고를 집어 들고 한 수련생을 찾아가 그에게 심사를 맡기고 의견을 제출하게 했다. 수련생의 좋은 의견은 나에게 문장 중에서 존재하는 당문화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보여줬다. 수련생도 마지막 한 부분에 만약 내 건의를 채택하면 더욱더 객관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좀 난처했지만 다시는 불필요한 갈등이 일어날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여전히 자신의 건의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독자에게 더욱 순정한 글을 보여주고, 더욱 좋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인데 왜 선의로 샤오롄과 교류하지 못하는가?

나는 샤오롄을 불러 심성 교류를 하면서 그와 소통을 했다. 샤오롄은 이 며칠 동안 원고에 조정할 곳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마지막 부분 제목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샤오롄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를 열어보자 눈에 뜨이는 것은 그가 내 건의를 채택했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또 몇 개의 예비제목을 제공해 내가 참고하도록 했는데 내 마음은 매우 평온했다. 어떻게 결정하든지 나는 의견을 존중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예비 제목 중에서 네 글자 단어를 보자 눈이 번쩍 뜨이면서 몸이 전율했다. 와, 이 단어가 어쩌면 그렇게 좋고, 그렇게 알맞으며, 객관적이고, 진실하며, 정확한가. 또 곤경 속에서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 대법제자의 대선대인(大善大忍)의 형상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는데 내포와 경지가 내 건의를 훨씬 능가했다.

그 순간 나는 세상이 가없이 넓고 사상, 경지가 아주 원대해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또 한 차례 제자를 가지해 주셔서 더 높은 경지의 지혜를 제자에게 보여주셨음을 알았다. 자신의 근본 집착을 진정으로 인식하고 버리려고 할 때 사부님께서는 나를 승화시키고 진정으로 중생에 어울리는 단어를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나와 샤오롄은 이 제목을 채택하고 아주 빨리 원고를 마감했다.

나는 중생을 구도하고 자신을 수련하는 이 길에서 사부님께서 우리 대법제자를 위해 노심초사하고 계심을 깊이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의 원만과 중생구도를 위해 언제나 제자를 보호해주시고 가지해주신다.

사부님께서는 “나는 당신들만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해 온갖 걱정을 다 했으며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해 거의 나의 일체를 소모했다.”[1]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는 보답할 길이 없어 오로지 눈물을 흘리며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정진해 원만하려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스위스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3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1/3623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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