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타이완 지룽 수련생 우스쩌(吳世澤)
[밍후이왕] 1994년 공무원에 합격한 후 저의 인생행로가 점차 평탄해지기 시작할 때,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심각한 과민성 알레르기와 기관지염으로 오랫동안 시달려야 했습니다. 유명하다는 한의와 양의를 찾아다니며 수많은 치료를 받았고, 좋다는 각종 운동도 해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갈수록 건강이 악화됐습니다. 한 번은, 의사가 귀에 고인 물을 빼내다가 부주의로 고막을 터뜨린 적이 있습니다. 타이완 의과대학 의사에게 고막이 터진 것을 말하자, 수술을 받아야한다고 했습니다.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는 말이 제게 다가온 것입니다. 공포와 무력감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아 근심걱정하고 있을 때 친구로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소개 받고 수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법수련을 한 후 건강은 아주 빨리 회복되었고, 인생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1998년 법을 얻어, 처음 공원단체연공에 참가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파룬따파를 배우기로 결심한 것을 보고,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은 알지만, 파룬따파 수련을 하려면 비구니처럼 집과 가족을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 때문에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단체법공부와 단체연공을 반대했습니다. 당시, 남편의 이런 걱정과 반대가 교란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속인의 생각대로 ‘가정과 수련의 균형을 잘 맞춰, 남편이 대법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하자.’ 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낮에는 직장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여 가사를 돌봐야 했으므로 단체법공부와 단체연공에 참가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혼자 수련했습니다.
2010년 우연히 한 수련생을 만나게 되어 그때부터 단체연공에 참가하게 되었지만,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하지 못했음을 알고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특히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해야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랐습니다. 2014년 한 동료에게 파룬따파를 소개했는데, 그는 법을 얻은 후 매우 정진하면서 매우 빨리 대법을 실증하는 진상활동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또 저에게 RTC전화플랫폼에 참가 하도록 주선해줘서 정법노정을 따라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낮에는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매일 퇴근 후에 전화 진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미리 가족과 상의한 후에 하는 일이기는 해도 가족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이고, 또 강제로 마케팅 하는 것과 같다.” 며 반대 입장을 표하며, “휴일에 진상거점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이 합당하다.” 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서 근무하는 아들이 동료와 함께 게시판에서 중국공산당의 생체장기적출을 보도한 영화 ‘철증여산(鐵證如山)’ 공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남편도 “대륙에서 사람의 장기를 본인 모르게 몰래 적출해 판매한다는 보도를 TV에서 보았는데, 임산부가 제왕절개수술을 받을 때 자신도 모르게 신장 하나를 절취당한 경우도 있었다.”며 눈을 크게 뜨며 할 말을 잃고 있었습니다. 병원은 사람을 구하는 곳인데, 어떻게 도살장으로 변할 수 있는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천직인 의사가 도살자(屠夫)로 변했으니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우리 가족은, 그 보도가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한다는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증하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진상활동을 지지해주었습니다. 휴일에는 진상거점에 갈 때 남편이 항상 데려다 주었으며, 집에서 전화 진상을 할 때도 가능한 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다음은 수련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겪었던 일부 체험과 당시 느꼈던 소감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1. 전화를 걸어 진상을 알리다
전화를 걸어 진상을 알릴 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사람마다 모두 저의 사람마음을 단련해주어 마치 행각하는 것 같습니다. 플랫폼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입니다. 전화로 진상을 알리면서 ‘중국경제성장의 가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상대방은 대화와 관계없는 다른 문제로 말머리를 돌려 집중적으로 질문하면서 교란했는데, 마치 마에 홀린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애를 쓰며 대화를 바로 잡으려고 했어도 맘대로 되지 않아 진상과는 아주 멀어졌습니다. 그가 말하는 것을 잘 알지 못했으므로 결국 사람을 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는 생각으로 무척 후회했습니다.
또 한 번은 대륙의 한 중국인에게 전화를 걸어 “공산당원이냐?”고 묻자, 그는 국민당이라고 말한 후 곧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지 구도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는 생각에서 이튿날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또 국민당이라고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시 걸어도 받지 않다가 3일째 되는 날에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그는 타이완, 홍콩, 마카오 등 지역을 다녔기 때문에 파룬궁에 대해 모두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정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공산당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에게 “삼퇴(공산당, 공청단, 소선대)는 정치에서 탈퇴하라는 것이다. 공산당조직에서 탈퇴해 공산당의 희생양이 되지 말고 자신과 가족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라.” 는 것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는 삼퇴에 동의 했습니다. 저는 그토록 완고했던 그를 탈퇴시킨 후 참으로 감동받았고, 모든 중국 사람은 소중하니 누구에게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전화 진상의 경험은 진상거점에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할 때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렇게 거듭되는 전화 진상을 통해 경험을 쌓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어 대륙관광객에게 진상을 알릴 때 온화한 태도로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되었고, 더욱 이지적으로 똑똑하고 분명하게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삼퇴를 권하는 효과도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2. 신수련생을 돕다
어느 날 우리 단체 연공장에 한 노년 수련생이 왔습니다. 그가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그를 볼 때마다 “법을 읽고, 들으라.” 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사부님의 설법녹음을 듣거나 ‘전법륜(轉法輪)’을 읽을 때, 머리에서 웅웅 소리가 나며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했습니다. “수련을 시작했으므로 업력이 교란하는 겁니다. 확고히 수련한다면 그런 교란은 금방 지나갈 것입니다.” 하고 말해준 후, ‘전법륜(轉法輪)’ 첫 발간식 설법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한 단락을 읽어주었습니다. “예컨대 이 사람이 출국하여 비교적 잘 사는 나라에 가서 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이 나라에서 진 빚을 당신이 모두 갚아야 하는데, 당신이 툭툭 털고 가버린다면 그것이 되겠는가? 모두 다 갚고 나서야 당신은 비로소 갈 수 있다.” 그는 듣고 나서 법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과거에 일하다가 척추를 다쳐 일곱 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똑바로 서지 못하고 잘 걷지 못하는 등 일정한 정도의 불구상태였지만, 대법수련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허리가 곧게 펴지고 잘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심신의 변화도 아주 컸습니다. 그는 기쁨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친척과 친구들에게 대법을 수련해서 불구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어 재활치료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는 원래 강직한 성품이었지만 아주 조급한 성격이었습니다. 직장 다닐 때부터 늘 아내에게 월급을 맡겼으므로 퇴직 후에도 여전히 아내가 경제권을 갖고 있으면서 그가 원하는 돈을 주지 않아 불만이 쌓여 갔습니다. 그는 아내가 자신을 업신여겨 기분이 몹시 상해 대법수련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어느 날 크게 화가 난 그는 아내에게 앙심을 품고 아내와 함께 죽으려고 자살을 하려고 했을 때 한 가닥 어떤 힘이 가로막는 바람에 죽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사부님 법신께서 자신을 망치지 말라고 자살을 막아주셨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아내가 당신을 업신여긴다고 하는데, 그건 예전에 당신이 아내에게 빚을 졌을 수 있습니다. 빚을 졌으면 얼른 갚는 게 좋지 않나요? 소업(消業)하는 중에서 심성을 제고할 수 있고, 공(功)도 자랄 수 있으니 이게 좋은 일이 아닙니까?” 그 후부터 그는 열심히 법을 읽고 설법녹음을 들으며 법 공부를 했습니다. 환골탈태로 파탄지경에 처했던 그의 가정이 많이 회복되어 화목해졌습니다.
신수련생의 시련과 수련의 어려움은 대부분 아내의 교란에서 왔습니다. 그의 아내가 션윈공연을 본다면 그의 수련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들 부부에게 션윈공연을 관람하도록 초청했습니다. 관람 후 이튿날 새벽연공 때 그가 말했습니다. “아내가, ‘예전에 민속무용을 가르쳤고, 수많은 공연을 보았지만 이런 최고의 공연은 본적이 없다.’고 했어요. 션윈을 관람한 후 아내는 마침내 파룬따파가 정법(正法)이라는 것을 믿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후부터 제가 원하는 대로 돈을 주겠다고 하면서 더 이상 통제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다시 한 번 대법의 위력을 체험하게 된 신수련생은 수련의 길을 확고하게 걷게 되었습니다.
3. 샌프란시스코법회에 참가
재작년 샌프란시스코법회에 참가했을 때 한 대륙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제가 전화진상 팀에 참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타이완 수련생들의 전화 진상이 대륙에 큰 작용을 일으킨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수련생이 납치돼 파출소로 끌려갔을 때 타이완 수련생이 제때에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선한 마음을 일깨워주어 즉시 풀려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전화를 건 그 타이완 수련생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대륙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박해가 시작되기 전 그의 집은 법공부 장소였고, 가족들 대부분이 대법제자였으나, 박해가 시작되고 나서 가족들이 박해 받았고, 그 본인도 아홉 번이나 납치되어 9년 동안 투옥되어 모진 고문과 박해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대륙 수련생들은 그렇게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확고하게 수련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찌 정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법회가 끝난 날부터 설사를 하기 시작했고, 타이완에 돌아와서는 감기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기침이 심해 말하기조차 어려웠지만, 신기하게 밤에 잠잘 때는 기침을 하지 않았으며, 또 전화 진상을 할 때도 기침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진상전화가 끝나면 어김없이 심한 기침이 나왔습니다. 바로 그 때 중생들이 진상을 비교적 잘 들었고, 비교적 삼퇴도 많이 했습니다. 기침을 수반한 소업은 2개월 넘게 지속됐습니다. 늘 갑자기 고열로 숨조차 쉬기 어렵거나, 얼굴이 온통 벌겋게 부어 걷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때 온 몸이 두꺼운 한 층의 흑색물질에 휩싸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번은 숨이 막혀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그런 제 모습을 본 동료와 가족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걱정하는 남편은 자꾸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걱정 말라며 그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힘들 땐 ‘혹시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니겠지?’ 하는, 다소 두려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이내 좋지 않은 마음을 즉시 부정했습니다. 사악이 나쁜 생각을 이용해 틈을 타지 못하도록 발정념을 했고, 몸을 일으킬 수 있을 때는 5장공법을 했지만, 그래도 여의치 못해 나중에는 사부님께 청을 드렸습니다. ‘부족한 제자를 구해주십시오. 저는 아직 많은 일을 잘 하지 못했고, 서약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 얼마 후 신기하게 고통의 고비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4. 뉴욕 법회에 참가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에, 내가 공을 전하고 설법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장래에 당신은 알게 될 텐데, 당신은 이 시간이 매우 보람찼다고 여길 것이다. 물론 우리는 연분(緣份)을 중시하는데, 여러분이 여기에 앉아 있는 것도 연분이다.” 매번 이 부분을 읽을 때면 사부님 설법을 직접 들을 수 있기를 몹시 기대했습니다. 작년 5월 뉴욕법회에 참가하여 사부님을 뵙게 되었을 때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온갖 고생과 고난을 겪다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사부님의 매 한 마디 말씀이 저의 몸 구석구석과 미세한 입자에까지 파고들어 불은호탕의 깊은 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각 장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 수련생들이 대형 마트의 화장실을 사용했습니다. 앞에 많은 수련생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무심결에 비어 있는 남자화장실을 보고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봐도 되나요?” 하자, 한 수련생이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미국사람들은 법과 규정을 잘 지킵니다. 만약 대법수련자를 알아볼 수 있는 복장을 하고 들어갔다가 신고당한다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저는 즉시 사과했지만, 저와 그 수련생과의 격차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인각을 새길 때 시간이 오래 걸렸고, 또 추운 날씨에 비까지 내려 모두 물에 빠진 모습이었지만, 현장은 대단히 성스러웠습니다. 특히 80대 노년 수련생이 비를 맞으며 환한 미소를 띠며 인각하는 모습이 감동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호텔로 돌아온 저는 “모습이 이렇게 좋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한 수련생이 “위덕을 건립하는 것”이라는 일침을 가해, 역시 아직도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또 깨달았습니다.
뉴욕법회에서 돌아온 후 수련상태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끊임없이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세 가지 일을 잘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진상을 알리거나 션윈을 전할 때 가능한 한 필요에 따라 했으며, 전화 진상을 할 때 상대방이 모욕감을 주거나 심지어 욕을 해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혜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릴 때도 평화롭고 이지적이어서 삼퇴를 권하는 효과도 더 좋아졌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그래서 부끄럽다고 정법의 막바지 단계에서 후회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오직 대법제자로서 수련의 길을 잘 걷고, 바르게 걸어야만 구도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것이고, 간절한 중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상은 개인의 수련과정에서 체득한 것이니, 합당하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18년 2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2/12/3606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