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8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이기적인 물질에서 나온 요소에 끊임없이 뒤덮였고 자신을 보호하는 후천적 경험이나 관념에 쌓여 본성의 일면이 나올 수 없었기에 세간에서 오랫동안 길을 잃어버렸고, 오랫동안 착실히 수련하지 못했다. 법을 거듭 배우지만 오히려 자신이 알고 있는 표면 법리로 수련생과 대조하고 타인을 수련시키며 자신은 착실히 닦지 못했다.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삼고 세간의 명예와 허례허식을 내려놓지 못했으며 자신을 내려놓지 못해 곤두박질했다.
몇 번 넘어진 후 뼈를 깎는 듯한 반성을 했다. 특히 장쩌민 고소를 할 때 자신이 걸어온 10여 년 수련의 길을 철저히 분석하고 반성했으며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심을 똑똑히 보았다. 생명의 진아(眞我)가 도대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게 됐고 진일보 주의식을 강화했으며,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이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게 했다. 수련 중 크게 나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래는 최근 수련 중에서 약간의 체득을 수련생과 교류하려 하고 적절하지 않는 점은 자비로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구출 중 관념을 닦아버리고 진심으로 사람을 구도
2015년 나와 함께 진상 항목을 하던 남자 수련생이 갑자기 납치됐는데 파출소, 구류소, 구치소에서도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사악은 각종 가상을 만들어 일부러 혼란시켰다. 이 수련생이 어떤 중점 대상이고 집 입구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고 하며 이미 오랫동안 감시했다고 했다. 또 시 일급에서 직접 납치했고 성(省)·시(市)에서 직접 감독 처리하는 중요 사건이라고 했다. 한때 모든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 또 속인 친척이 알아봤는데 모 구치소에 감금돼 있고 특수 경찰이 체포했다고 한다. 원인은 총을 도둑질했다는 것이다. 진수 대법제자는 총을 도둑질한 것과 연루되지 않는다. 하지만 각종 소문은 일을 더욱 미궁에 빠지게 했다. 우리는 기회를 이용해 그의 친척과 함께 구치소에 옷을 가져다주었다. 결국 강도 사건은 납치된 수련생과 동명동성인 다른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8일 후 가족은 수련생이 납치 감금된 구류소를 확실하게 알게 됐다. 말하기를 15일간 구류한다는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장쩌민 고소다. 이 소식을 알고 가족과 많은 수련생은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구류기간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했고 선임한 변호사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 모두 느낌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협조인은 재차 수련생들에게 발정념을 느슨히 하지 말라고 일깨워줬다. 나는 그의 가족(수련하는 어머님과 수련하지 않는 아버님)이 사악을 건드리려 하지 않고 경찰을 분노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계속 15일이면 석방된다고 했다. 나는 가족에게 적극적으로 석방을 요구해야 한다고 일깨워줬다. 15일 후 사람을 데리러 갔는데 형사구류 됐다고 했다. 이때 나는 가족에게 원망심이 생겼다.
법에서 알 수 있는데 어떤 우연한 일도 없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도하는 것은 모든 고난을 풀 수 있는 만능열쇠다.
나는 가족과 변호사를 동반해 수련생을 만나러 갔다. 하지만 파룬궁 안건은 특수하다고 만나지 못하게 했고 반드시 안건 처리하는 사람이 동의해야 한다고 하며 변호사를 일부러 곤란하게 만들었다. 변호사는 주재 검찰에 구치소를 고소하고 구 검찰원에 구치소와 공안분국을 고소하기로 결정했다. 외부 많은 수련생이 협조해 발정념도 했다. 나와 수련생 가족은 검찰원 접대실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상을 알리려 했지만 변호사가 제지했다.
나는 수련생 어머니에게 검찰관에 진상을 알리자고 말하자 어머님은 발정념을 하신다고 했다. 나는 듣고 더 조급해졌고 말도 딱딱해졌다. “외부에서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리고 있어요. 당신의 책임은 진상을 알리는 것입니다.” 결국 수련생 어머님은 진상을 알리지 않고 나온 후 많은 화나는 말을 했다. 검찰관의 말을 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수련생 어머님께 두려운 마음 때문에 구실을 찾는다고 말했다. 결국 분위기가 좋지 않게 됐다.
집에 돌아가 나는 줄곧 그녀를 원망했다. ‘사람을 구하고 중생을 구한다고 하지만 진상을 알리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을 구하는가?! 사람을 구하지 않고 일에만 집중하면 사건을 추진할 수 있는가?’ 20여 일이 지났다. 매일 뛰어다녀도 도처에서 난관에 부딪히고 사악에 끌려갔지만 사람도 구하지 못했다. 속으로 억울하고 답답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반성했다. 사람을 구하는 생각은 확실히 잘못이 없다. 하지만 왜 수련생 어머니가 말해야 하는가? 자신도 가족 신분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가? 자신은 왜 말하지 못하는가? 가족이 두려운 마음이 있다고 원망하는데 자신에게는 두려운 마음이 없었는가? 만약 정말로 있었다면 무엇을 염려했는가? 가족에게 두려운 마음을 감추기 위한다고 했지만 자신도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알리지 못한 것이 아닌가? 자신은 왜 가족 수련생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지 않았는가? 나는 후회했다. 그 수련생은 나이도 많고 베이징에 법을 실증하러 갔다가 몇 번이나 박해를 당했으며 낯선 여기에 와서도 아들이 붙잡히는 것과 수련하지 않는 가족에게서 오는 원망심과 질책을 견뎌내야 하는데 압력이 얼마나 컸을까? 나는 얼마나 교만하고 자만했는가? 이것이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것인가?! 과정에서 자신을 수련인으로 보았는가? 자신을 닦았는가? 타인을 강요한 것은 당문화의 표현이 아닌가? 법에 대조하고 안으로 찾으니 사부님께 부끄러웠다.
20여 일간 우리 전체는 사건에 끌려다녔다. 변호사를 선임한 것도 변호사를 통해 수련생을 만나려는 마음이 존재하고 납치된 수련생의 원인을 신속히 알려는 목적이 있었다. 겉으로 보면 전체를 위한 것이고 불필요한 손실을 감소시키려 했지만 마음은 그리 순정하지 못했다. 가족 수련생도 조급해하며 가족이 빨리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나도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이었다. 과정이 정말로 진심으로 모든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인가? 자신에게 물어보니 자신 마음속 깊은 곳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고 마음과 입이 불일치했다. 그것은 거짓 자아가 대충하는 것이 아닌가? 매일 발정념도 힘을 잔뜩 써서 했기에 힘이 빠졌다. 무엇이 잘못된 것 같았지만 문제점이 무엇인지 몰랐다.
자신을 깊이 파헤치니 깊이 숨어있는 ‘두려운 마음’이 작용을 했다. 사실 많은 수련생으로 말하면 자신을 포함해 관념에 따라 ‘그 수련생이 사악에 위협 받고 심지어 고문에 당하고 견디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라고 걱정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밤중 한 시간 발정념을 담당했고 힘을 잔뜩 썼다. 자신이 무사하게 발정념을 해 수련생에게 ‘관을 넘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념인가? 얼마나 큰 ‘이기적인’ 마음이 감춰져 있는가? 이런 심태에서 발정념을 하면 사악을 해체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찾으니 정말로 놀라 몸에 식은땀이 났다.
자신에게 알려줬다. 반드시 개변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 광명이 나타나네”[1] 강요하지 않고 질책하지 않으며 원망하지 않고 확실히 진상을 알리는 것을 실제로 해내야 한다. 나는 가족 명의로 각 기관에 진상 편지를 쓰게 됐고 자비와 순정한 심태로 그들의 선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에게 선념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편지를 쓰니 이미 밤이 깊었다. 인쇄하고 다음날 진심으로 수련생 어머님께 사과하고 잠깐 교류하고 차에서 수련생 아버님께 편지를 읽어드렸다. 아버님의 의견도 들어보았다. 아버님도 진상을 더욱 잘 알게 하고 아들과 아내를 원망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며, 다른 한 방면으로는 노인을 존중하고 강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부모의 명의로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편지를 읽는 수련생은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수련생 아버님도 이런 방식을 인정하셨다. 직접 편지를 쓰겠다고 하셨다.
그 후 우리는 어느 기관 부서에 가도 진상 편지를 지니고 갔고 현장에 진상을 알릴 수 있는 것은 알리고 시간이 부족하거나 기회가 되지 않으면 편지로 남겼다. 모든 것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난 후 수련생이 말했다. 편지를 쓴 사람은 이치에 맞고 좋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사상이 법에 부합되고 기점을 바로 잡으며 위타(爲他)의 마음이 순정하면 사부님께서 비로소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다. 내 손을 빌어 써내게 하신 것이다. 법의 지혜는 많고 많다. 단지 우리의 마음이 그 위치에 도달했는지 보시는 것이다. 사존께 감사드린다!
수련생을 재차 구출, 협력 중 관념을 바꾸다
2017년 6월 초, 우리 지역 수련생은 남방의 아들 집에 갔다가 스티커를 붙이던 중 현지 파출소, 국보대대에 납치됐고 형사 구류됐다.
이 수련생은 한 지역의 협조인이고 능력이 강하고 매일 열정적이며 오랫동안 많은 일을 했고 만난 사람도 많았다.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놀랐다.
이런 일이 발생한 한 후 모두 우선 생각한 것은 사부님의 법상, 대법서적을 잘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 수련생 집에 가서 법상과 대법서적을 옮겼다. 다른 수련생은 즉시 밍후이왕에 사악을 폭로했고 함께 발정념을 했다.
그녀와 많이 접촉하는 수련생은 이때 이 수련생의 각종 부족한 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강압적이고 다른 사람이 말하지 못하게 군림한다는 것이었다. 교류를 통해 모두 인식했다. 수련 중에서 우연한 일이 없다. 이것은 모든 사람 앞에 놓여있는 공동 과제다. 박해가 발생한 것은 우리 전체의 누락이다. 구세력에 틈을 탄 것이다.(물론 누락이 있어도 우리는 모두 사부님의 대법에서 바로 잡으면 구세력도 교란하고 고험할 자격이 없음) 모두 진심으로 안으로 자신을 찾으면서 법에서 전체 제고했고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꿨다. 서로 주의식을 강화하자고 일깨워줬고 최소한 구세력의 한편에 서서 박해한 수련생의 부족한 점을 찾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찾는 것을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야 비로소 사악을 해체할 수 있고 진정으로 수련생을 도와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수련생에 대한 관념을 지니면 순정한 정념을 발할 수 없고 수련생의 공간장에 나쁜 물질을 넣어줄 수 있으며 반대로 구세력의 박해 구실을 가중시킬 수 있다.
인식은 인식이고 진정으로 해내야 수련이다. 우리는 24시간 릴레이 발정념을 했다. 나는 12시 이후의 시간이다. 발정념을 할 때 한편으로 모호하고 한편으로는 박해 받은 수련생이 지도자처럼 법리를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이 나타났으며 강압적으로 사람을 지휘하는 등 정경이 나타났다. 후천적으로 그녀에게 형성된 관념이 나타났다. 잠재의식에서 무엇이 나에게 그녀에 대한 인과 문제를 승인하게 하려 했다. 그녀는 강압적이지만 스스로 인식하지 못해 감옥에 들어가 단련해야 한다는 등이다. 나는 갑자기 인식했다. 이것은 구세력이 나에게 준 논리가 아닌가? 구세력은 나쁘다! 관념으로 형성된 거짓 자아를 나는 갖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곧 안으로 찾아 수련생을 거울로 삼고 하나씩 자신과 대조했다. 안으로 찾으니 나도 늘 다른 사람의 부족한 면을 보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지 못했다. 이것은 전형적인 질투심이다. 자신도 법리는 술술 잘 말하지만 법에서 배운 법리로 해내는 것은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다. 박해당한 수련생은 법공부를 할 때 이론을 배우는 것처럼 법을 읽고, 발정념하면 손이 넘어지며, 주의식이 강하지 않고 늘 다른 사람을 감시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나도 법공부할 때 마음에 닿게 하지 못한다. 수련생과 대조하면 자신의 안일심과 육친정, 색욕심, 좋은 것을 먹기 좋아하고, 옷차림에 신경 쓰는 등 사람 마음도 있다. 나는 그것을 똑바로 보고 갖지 않으며 해체했다.
수련생이 대법 진상자료를 붙인 것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고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것이기에 잘못이 없다. 이것은 박해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경찰은 보증서를 쓰고 후회하면 석방하겠다고 말했다. 수련생은 주저하지 않고 거절했다. 수련생이 법에 대한 확고한 이 일념으로 구세력은 박해할 자격이 없어졌으며 반드시 무조건 사람을 석방해야 한다! 어려움에 처한 수련생에게 경의가 생겼고 마음속이 확 트였다. 발정념을 하니 느낌에 수련생 공간장에서 직접 사악을 제거하는 듯했다.
남방, 북방의 수련생이 전력으로 구출했고 당사자 수련생도 정념정행을 했으며, 가족과 변호사도 끊임없이 협력해 석방을 요구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사부님의 보호 아래 이 수련생은 불법 감금 30여일 만에 소굴에서 뛰쳐나왔다.
수련 중 조금이라도 부연하거나 기만하면 안 된다. 밍후이왕 수련생 교류 문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생활을 수련의 일부분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수련의 큰 기초이기에 대충하고 흐리멍덩하게 하면 안 된다. 사부님께서 살을 베고 피를 흘려 우리에게 연장해주신 최후의 시기에 어떻게 자신을 바로 잡고 잘 닦으며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속인 사회 상태에 부합해 수련을 잘해야 하는 것 등은 아주 엄숙한 일이다.
마침 그 며칠간 밍후이왕에 ‘관념을 바꾸고 함께 안으로 찾자 위독한 수련생이 3일 만에 관을 넘기다’라는 이 음성파일 교류 문장을 듣고 더욱 인식할 수 있었다. 박해당한 수련생을 구출하든 병업에 박해당한 수련생을 구출하든 모두 무조건 자신을 찾아야 한다. 수련생이 박해당하면 반드시 자신의 요소가 있다. 우리는 전체에서 법과 비틀어진 것을 닦아 바로 잡아야 하고 관념에 지배당하면 안 된다. ‘위타’의 진정한 자아가 주인이 돼야 한다. 그러면 사악의 박해는 뿌리가 없어진다. 우리가 정체가 되면 모든 박해 가상은 사라진다.
나는 또 깨달았다. 박해를 해체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답해야 할 문제다. 사람마다 자발적으로 한몫을 닦으면 박해당한 수련생의 난을 한몫 감소시킬 수 있고 이 문제에 1점을 얻은 것이다.
수련생이 돌아왔지만 마음을 닦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많은 수련생은 그녀가 정념으로 뛰쳐나왔다며 마냥 칭찬했다. 나는 지도자처럼 허세가 더욱 강해진 그녀를 보았다. 이 점은 내 사람 마음을 건드렸다. 조급해 협조인에게 일깨워줬다. 사람 마음에 가로막히면 안 되고 그녀를 위해 교류해야 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줘야 구세력이 틈을 타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대면하기 싫었고 다른 수련생이 그녀와 교류하게 하려 했다. 결국 협조인도 누가 그녀와 교류하고 어떤 기회에 교류해야 하는지 생각해내지 못했다.
나는 고민했다. 자신에게 물었다. 왜 수련생의 표현이 내 마음을 애타게 하는가? 이 일에서 사부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닦으라고 하시는가? 법공부 전 발정념에서 사부님께서 갑자기 나를 일깨워줬다. 아직 수련생에 대한 관념이 있는 것이다. 수련생이 30일간 불법 감금된 관건 시기에 그런 부패물질은 짓눌러졌지 진정으로 닦아내지 못했다. 수련생이 안전한 큰 환경에 돌아온 후 짓눌렀던 관념이 죽었다 살아났다. 관념은 또 내가 상대 수련생을 눈여겨보게 했다. 이것은 나에게 가상을 연출해 준 것이 아닌가? 근본적으로 제고되지 못했다. 수련생이 부족한 점이 있어도 사부님께서 배치해 그녀가 인식하게 하실 것이다. 내가 사람 마음으로 조급해 할 필요가 있는가? 사람 마음으로 무엇을 배치할 필요가 있는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확 트였다. 마음속에 짓눌렀던 돌이 순식간에 녹았다. 사존께서 제자의 제고를 위해 고생스럽게 애쓰신 것과 자비로운 점화에 감사드린다.
가정 관계에서 관념을 바꾸고 자신을 닦다
딸은 어릴 때 나를 따라 법공부도 하고 ‘홍음’ 중 많은 시를 외울 수 있었다. 또 나를 따라 아파트에 가서 진상 자료도 배포했다. 고등학교 때 딸은 정치 선생님을 찾아가 ‘톈안먼거짓 분신사건’ 사기극을 똑바로 알렸고 진상도 알렸다. 줄곧 고3까지 우리와 함께 연공을 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 수업과 사회 활동이 그녀의 대량의 시간을 차지했고 마지막에 대법 책도 보지 않고 연공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삼퇴’를 권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법에서 점차 멀어졌다. 나는 딸이 걱정됐다.
딸은 본과 졸업 후 집에 돌아와 공부하며 연구생 준비를 했다. 방학에 딸에게 법공부를 다시 하게 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딸에게 대법 일을 말하면 손만 젓고 나와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딸은 매일 늦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매일 나와 몇 마디 하지 않는다. 남편도 수련해 우리 둘은 하루 세 끼가 아주 간단했다. 하지만 딸이 돌아온 후 음식을 대충하면 안 되기에 느낌에 시간이 촉박해진 것 같았다.
딸도 변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밥을 먹으라고 불러도 가지 않고 사촌형과 사촌여동생도 상대하기 싫어하며 그들이 자신의 일을 지체한다고 한다. 과일을 주면 좋아하다가도 순식간에 정색하며 문을 닫으라고 한다. 그 뜻은 ‘나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시하는 눈빛과 어투로 내 옷차림을 지적한다. 이런 일로 내 마음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 “빚진 것은 갚아야 한다”[2]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딸을 건드리지 않았고 피동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억제했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2] 충돌, 불편함, 억지 참음이 거듭됐다. 마침내 딸이 나를 무시할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매섭게 딸에게 설교했다. 딸에게 예의를 지켜야 하고, 효도해야 하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 등, 어쨌든 한바탕 사람의 이치를 말했지만 결국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졌다. 집안 분위기는 굳어졌다.
어느 날 남편 동창의 자녀가 본 시 대학 연구생에 합격했다. 남편은 우리집에 붙인 짐을 동창 아이에게 가져다주고 그 아이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딸에게 함께 식사를 하자고 했다. 딸은 듣고 태도가 좋지 않게 말했다. “저는 그 사람을 몰라요. 그와 왜 밥을 먹어야 해요? 아빠 일은 아빠가 해결하세요. 절 건드리지 마시고요.”
남편은 단번에 화가 났다. 남편은 과격한 말을 많이 했다. 딸은 울고 가정 분위기는 더욱 굳어졌다.
나는 단번에 경계했다. 안으로 자신을 찾아봐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수련하는 사람으로서는 곧 우주의 이 특성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하며, 속인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반본귀진(返本歸眞)하려 하고 당신이 수련해 올라오려 한다면, 당신은 이 표준에 따라서 해야 한다.”[2] 그렇다, 나는 왜 사람의 관념에 좌우지되는가? 인간 역할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가?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었는가? 엄마 역할에 깊이 빠졌는가? 사람의 이치에 서면 사람의 정은 상처를 입은 것 같다. 많이 지불했는데 보답이 없어 불공평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이것이 즉시 닦아버려야 할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업력이 누구에게로 떨어지면 바로 그가 괴롭기 때문인데, 보증코 이러하다.”[2] 대법제자 집에서 아이가 불편하고 괴로워하며 좋은 감정이 없다면 우리 수련하는 장이 편안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제고하지 않아 딸의 명백한 일면이 우리를 위해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가 우리를 도와 사람 마음을 폭로해주고 우리를 도와 마음을 닦게 한다. 나는 왜 인식하지 못했는가? 마음속으로 딸에게 감사하지 않고 반대로 가정의 권위로 딸을 제압하려 했다. 정말로 역할에 너무 깊이 빠진 것이다. 딸의 이기적이고 냉담한 표현은 자신의 그림자가 아닌가? 나도 진상을 이미 알린 친척과 친구에게는 연락하기 싫어하고 그들이 내 시간을 지체할까 봐 두려워한다. 내가 변하지 않고 마냥 타인을 개변할 것을 요구하면 어떻게 되는가? 나는 자신이 수련에서 착실하지 않는 것을 인식했다.
자신의 문제를 찾은 후 다음날 딸은 딴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우리와 더는 틀어지지 않았다. 수련은 참 현묘한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신생’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2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2/11/3606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