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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기점에서 모든 것을 가늠하자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5년 말 법을 얻은 노 대법제자다. 정법 수련의 길에서 운 좋게 사존의 자비로운 점화가 있었기에 결국 마음을 안정하게하고 바르게 수련의 길을 걷게 됐다.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지금까지 본인 현재 층차에서 일부 깨달은 법리와 일부 느낀 점을 수련생 여러분과 나누려 하고 부족한 점은 자비로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은 역사상 어떤 참고도 없다. 법리에서 대법에 대한 또렷한 깨달음이 없다면 우리의 길을 바르고 잘 걸을 수 없으며 구세력에 붙잡혀 지배당한다.

개인 인식으로 보면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자신의 길을 잘 걸어야 하고 반드시 사존과 대법, 대법제자, 구세력 3가지 방면의 관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 만약 3가지 방면의 관계에서 법리가 명확하지 않으면 교란과 시련은 끊이지 않고, 구세력에게 끌려가고 구세력의 배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구세력은 단지 타락한 구(舊) 우주의 개인 수련의 이치만 알고 있어 대법제자 몸에 개인 수련의 시스템을 강제로 배치해 놓았다. 그는 대법제자의 일사일념에도 모두 배치해 놓았다. 구세력의 배치에 대해 사존께서 장계취계 하셨고 이런 배치를 이용해 대법제자를 성취하고 중생을 구도하고 우주 대궁을 바로 잡으셨다. 만약 대법제자가 정념이 부족하고 구세력을 부정하지 못하면 그는 대법제자의 약점을 붙잡아 박해한다.

몇 년간 나는 어떤 수련생이 원망하는 것을 보았다. 사악이 이렇게 날뛰고, 대법제자가 감옥에서 잔혹한 박해를 받는데 법은 왜 이런 것이 존재하게 하느냐고 말한다. 이로 인해 대법에 바른 믿음을 잃어버린다. 이것은 모두 사존의 장계취계 법에 대해 분명한 이치를 알지 못해 야기된 것이다.

그러면 사존의 장계취계의 법은 어떻게 배치한 것인가? 개인의 현재 층차에서의 이해는 사존께서 제자에게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정법 수련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이다. 대법제자의 기점은 절대 개인 제고와 해탈에 목적을 두면 안 된다. 우리의 생각에서 구세력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정념이 있어야 한다. 그들이 배치한 모든 것은 절대 승인하면 안 되고 철저히 그것을 부정해야 한다. 대법제자는 마음을 닦고 집착심을 제거하든 잘 수련하든 못 수련하든, 혹은 어떻게 하든 그와 전혀 관계가 없다. 집착심이 있으면 안으로 찾는 것이 우리에 대한 사존과 대법의 요구와 원칙이다. 절대 구세력이 마땅히 참여해야 할 일이 아니다. 모두 사람 마음이 있어 닦아야 하지만 절대 구세력이 배치한 시련에서 이런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법에서 바로 잡는 것이다.

이 점을 해내려면 반드시 한 가지 확고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기점으로 모든 것을 가늠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닦고 집착심을 제거하고, 안으로 찾고 자신의 생활, 일과 수련생과의 협력, 법을 실증하는 항목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마음을 닦고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은 우리 개인의 제고와 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하면 우리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한 문제가 아니라 직접 중생을 소멸하고 우주 정법에도 영향을 준다. 사존께서 이렇게 우리의 모든 것을 배치하셨다. 우리가 제거하지 못하는 매 하나의 사람 마음은 고층과 대응하고 인간의 거대한 요소와 대응된다. 단지 우리 스스로가 수련을 잘하지 못한 문제만이 아니다.

이 원칙에 따라 나는 평소 자신의 일사일념을 가늠하는데 주의했다. 99년 초기, 성숙하지 않은 시기 나는 구세력의 일부 박해를 경험한 후 최근 몇 년간 줄곧 구세력에게 직접 박해당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내가 이 방면에서 일찍 깨달은 것과 직접 관계가 있을 것이다.

대법제자는 반드시 사존께서 요구하는 것을 실증해야 하고 절대 구세력이 배치한 모든 것을 가지면 안 된다. 사존께서 우리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하라고 하셨다. 법공부와 연공은 기초이고 이것은 우리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보증이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구세력이 대법에 대한 비방과 헛소문으로 인해 중생의 대법에 대한 부정적 사유를 타파할 수 있다.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것도 역시 중생이 선악을 구분할 수 있게 하고 자신을 위해 밝은 미래를 선택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구체적인 시행이다. 발정념은 신통으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 구도를 파괴하는 모든 사악한 생명을 소멸하는 것이고, 여기에 구제불능의 악당도 포함한다. 사존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세 가지 일 역시 법을 실증하고 중생 구도를 위한 목적이다.

몇 년간 정법 수련과정에서 나는 줄곧 이 원칙과 기점에 대조해 생활, 가정, 직장과 사회관계를 포함해 모든 것을 가늠했다. 내가 교란을 받을 때는 모두 이 원칙을 벗어난 것을 발견했다. 이 원칙을 벗어나면 자신도 모르게 구세력의 길을 걷게 되고 마땅히 나타나지 말아야 할 시련이 나타난다. 이후에 나는 자신에게 한 가지 규정을 정했다. 한 가지 일이 발생하면, 특히 구분하기 어렵거나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일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이 원칙으로 모두 가늠한다. 처리와 선택이 이 기점에 좋은 점이 있으면 실행한다. 만약 모두 유리하면 더 유리한 면을 선택해 실행한다. 이렇게 한 후 잘못된 일이 갈수록 적어졌다.

아래 몇 년간 기점을 바로 잡고 법을 실증한 일부 일과 문제에 대한 개인 체득을 말해보려 한다.

1. 기술 업무에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

사악의 박해 초기, 우리 지역의 자료는 모두 성소재지 수련생이 제공해주었다. 99년과 2000년은 사악이 가장 창궐한 시기였다. 수련생이 자료를 배달하는 것이 불편하고 위험했다. 그때 도로 도처에서 대법제자를 수색했다. 수련생이 자료를 지니면 눈에 아주 띠었고 그러므로 많은 위험이 나타났다. 얼마 후 성소재지 자료도 중단됐다. 그때 가장 중요한 진상 알리는 방식은 바로 자료를 배포하는 것이었다. 수련생은 박해당한 수련생을 위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또 자료의 출처에 관심을 가졌다. 나는 당시 컴퓨터 지식은 전혀 몰랐다. 마우스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강대한 일념을 내보냈다. ‘나는 컴퓨터를 배워 밍후이왕을 접속하겠다. 반드시 우리 지역의 자료 문제를 해결하겠다.’

법을 실증하고 중생 구도를 하는데 이 일념의 기점이 순정하자 법의 위력이 곧 체현됐다. 당시 사악에 박해당해 나는 경제 형편이 나쁘고 집에는 3천 위안(한화 약 51만원)의 적금 밖에 없었다. 보통 아내는 어떻게도 이 돈을 꺼내 컴퓨터 구매에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어찌된 일인지 아내는 동의했고 또 컴퓨터를 구매하는데 반대하지 않았으며 프린터 구매도 반대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시작했다. 일부 컴퓨터 서적을 사서 배웠다. 컴퓨터를 뜯고 안의 구조를 보았으며 뜯고 또 조립했다. 조립하지 못할 때는 속인 컴퓨터 수리점에 가서 그들이 수리하는 것을 배웠다. 한번은 랜 카드를 너무 꽉 끼게 설치해 반나절해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었다.(당시 인터넷은 숫자를 입력해야 접속할 수 있었다. 몇K의 속도에 불과했음) 마지막에 속인 수리직원을 찾아 집에서 수리하게 했다. 나는 옆에서 눈 넘어 배웠다. 그 사람은 보고 랜 카드를 위로 밀자 올라갔다. 나는 랜 카드 설치 하나도 이렇게 배웠다.

그때 컴퓨터를 정말로 어렵게 배웠다. 때로 PC방에 가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기본 조작법과 컴퓨터 지식을 배웠다. 한번 건드리면 한밤중이었고 늦어야 잠을 잤다. 하지만 나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반드시 컴퓨터 기본 지식과 조작법을 배워야 했다. 이런 것을 배워야 다음 일보에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있었다. 법을 실증하고 중생 구도의 생각을 품고, 사부님의 가지 하에 마침내 나는 컴퓨터 기본지식과 조작법, 인터넷에 접속해 자료를 다운 받는 기본 조작법을 배울 수 있었다. 밍후이왕에 접속하는 지식은 속인 컴퓨터 수리직원도 모른다. 게다가 나도 물을 수 없다. 당시 환경이 아주 사악해 이런 일을 속인과 언급할 수 없었다. 그때 자주 조바심이 낫다. 왜냐하면 수련생이 자료를 가져다 진상을 알리려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돌파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사부님께서 나의 법을 실증하는 마음을 보시고 또 한 번 나를 도와주셨다.

어느 날 PC방에서 바이두에 민감한 단어를 입력했는데(집에서 접속시 이런 민감한 단어를 입력하지 못한다. 사악이 감시할까 봐 두려워 PC방에 가서 방법을 찾아야 했음) 바이두 스냅 사진에 뜻밖에 대법 관련 단어가 나타났다. 이것은 처음으로 본 것이다. 그때 아주 격동했다. 하지만 또 두려움 마음이 나왔다. 사악이 감시할까 봐 두려웠고 PC방의 기타 사람이 볼까 봐 두려웠다. 두려운 마음으로 법에서 벗어났다. 타인이 보는 것을 두려워하니 컴퓨터도 다운됐다. 대법 홈페이지가 화면에 정지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해 나는 전원을 뽑아버렸다.

PC방에서 나온 후 나는 기쁘고 두려웠다. 이렇게 하면 대법 관련 문서를 볼 수 있구나! 나는 집에서도 되는지 시도해 보았다. 이때 또 두려운 마음이 나왔다. 만일 사악이 감시하면 어떻게 하지? 그때 사악의 인터넷 시스템 감시는 아주 엄격했다고 들었다. 사악에 박해당하면 어떻게 하나? 나의 사상은 치열하게 싸웠다. 나는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의식하고 끊임없이 정념으로 그것을 억제했다.(당시 발정념 법은 사부님께서 아직 설법하지 않으셨음) 내가 집에서 시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있겠는가? 나는 반드시 밍후이왕에 접속해야 한다. 마침내 정념이 사람 마음을 이기고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극복하고 작용했다. 기점은 법을 실증하는데 놓았다. 나는 집 컴퓨터를 열고 같은 방법으로 또 한 번 관련 대법의 자료를 볼 수 있었고 게다가 진정으로 인터넷 돌파 프로그램 화위안(花園) 프로그램을 찾았다. 이것이 바로 두려운 마음을 극복하고 기점을 바로 잡아 대법이 나에게 수확을 준 것이다. 나는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 설명에 따라 시도해 보았는데 단번에 사악한 인터넷 봉쇄를 돌파했다.

밍후이왕에 접속할 당시의 기쁨과 흥분이 한데 뒤섞여 눈물범벅이 됐다. 밍후이왕의 익숙한 파룬도형을 보고,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보았으며, 각종 정보와 자료를 본 후 나는 사부님의 무한한 가지에 감사드렸다. 나는 마침내 밍후이왕에 접속한 것이다! 성숙하지 않지만 첫 번째 자료를 편집 후 인쇄한 다음 내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니 나는 더욱 많은 기술 자료를 볼 수 있었고 목마른 사람처럼 배웠다. 동영상을 받고 DVD를 만들고 더 고급스러운 편집 기법으로 자료를 편집했으며 자유문(自由門)과 무계(無界) 프로그램을 더욱 잘 사용했고 시스템 설치(이후에 암호화 시스템을 포함)를 배웠고 컴퓨터 하드 고장 증세와 해결 방법도 배웠다. 이런 것은 단번에 배운 것이 아니다. 여기에 자신의 많고 많은 고생과 지불이 있었고 사부님의 가지가 있었다. 이런 것을 배우고 나는 또 다른 수련생을 가르쳤고 많은 자료점을 설립했으며 소모품 구매도 담당했다. 지금까지 우리 지역 자료점은 도처에 꽃이 피었다. 안전도 대대적으로 나아졌고 사악도 파괴할 수 없게 됐다.

몇 년간의 기술 일에서 나는 점차 한 가지 이치를 깨달았다. 어떤 일을 하든 법을 실증하고 중생구도의 기점에서 벗어나면 안 되고 개인 수련의 틀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그러면 직접 구세력의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 사람 마음이 나올 때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층차가 제고될 수 없고 사존과 함께 돌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법에 입각해 사람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이런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면 나는 중생을 해치고 자신의 서약을 지키지 못할 것이며 대법을 실증하지 못할 것이고 많은 천체와 생명이 나의 사람 마음 때문에 소멸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2. 병업 문제에서의 깨달음

수련 전 나는 약골이었다. 내 신체는 99년 이전 개인 수련기간 소업현상이 있은 후 기본적으로 ‘병업’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법을 실증하는 기점에 서서 문제를 생각하고 법리가 명확하면 구세력은 근본적으로 감히 우리에게 ‘병업’을 배치하지 못한다.

99년 7월 박해 발생 이후 사존께서 우리에게 어떤 개인 수련의 난과 고비를 배치해주지 않으셨고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데로 전면적으로 전환됐다. 이 점을 교란하는 어떤 행위와 요소는 모두 죄를 범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존께서 우리에게 한 차례 병업을 배치해 우리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법도 배우지 못하게 하며 진상도 알리지 못하게 하시겠는가?

몇 년간 나의 깨달음은 세 가지 일을 교란하는 관과 고비는 모두 사존께서 바라는 것이 아니고 모두 구세력이 강요한 것이다. 사존께서 우리에게 제고할 수 있는 모순을 주신 것은 절대 법을 실증하고 중생 구도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고 제고되어 올라오는데 유익하다. 예를 들면 수련생의 입을 빌어 당신을 자극하거나 속인 입을 빌어 당신을 한바탕 꾸짖거나, 혹은 당신이 한번 넘어지게 하거나 이런 식이다. 하지만 구세력은 당신에게 잔인한 수단을 쓰고 사악한 사람이 당신을 박해하게 하고, 당신 신체에 병업 상태가 나타나게 하며 심지어 당신이 세상을 떠나게 한다. 그는 당신이 법을 실증하거나 중생을 구도하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구세력은 이미 대법을 파괴하는 마로 정해졌다. 그것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파괴 작용을 일으킨다.

이런 이치를 깨닫고 나는 구세력의 ‘병업’을 타파하는 법리에 명확한 인식이 있다.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병업’을 배치하신 적이 없다. ‘병업’은 구세력이 우리 사람 마음의 빈틈을 잡고 박해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직접 우리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교란하는 큰일이다. 반드시 그것을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 사상 속에 두 가지 방면이 확고해야 한다. 첫째, 구세력은 절대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집착심이 있든 없든 구세력과 전혀 관계가 없다. 내 마음에 근본적으로 구세력의 그림자가 없다. 내가 잘 수련하든 못하든 단지 사존의 배치를 인정한다. 사존께서 나에게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방법을 배치해 주실 것이다. 하지만 절대 구세력의 병업 방식으로 나에게 이런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 나를 박해하지 않으신다. 정념으로 구세력의 모든 사악한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둘째, 집착심이 있어 구세력이 틈을 탄 것을 알면 안으로 찾아 집착심을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구세력의 참여를 타파한 후 안으로 찾아야 하고 병업의 시련에서 안으로 찾는 것이 아니며, 사존의 요구대로 하는 것이다. 나는 몇 년간 단지 한 번의 이른바 ‘병업’이 나타났는데 이렇게 제거했으며 아주 빨랐다. 사실 아직 기점 문제다.

한번은 어떤 수련생이 나를 다른 한 수련생의 집에 불렀다. 이 수련생은 허리가 이미 몇 십일 아파 걷기도 힘들었다. 발정념하고 안으로 찾아도 며칠간 좋아지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말하자 곧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 허리가 아파서 안으로 찾았는데 집착심을 찾으면 허리가 나아진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허리 아픈 것과 당신 집착심은 관계가 있나요? 만약 허리가 아프지 않으면 당신은 안으로 찾지 않을 것인가요?” 그녀는 듣고 무엇을 깨달은 것 같았다. 나는 계속 그녀와 교류했다. “당신은 허리가 아파 걸음도 걷지 못하고 연공도 영향을 받으며 외출해 진상 알리는 것조차 할 수 없어요. 이것은 사부님께서 배치한 것인가요?” 그녀는 움찔하더니 답했다. “사부님께서 배치한 것이 아니죠!” 나는 또 말했다. “사부님께서 배치한 것이 아니면 그것은 구세력이 배치한 것입니다. 사존께서 우리에게 구세력을 철저히 부정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왜 구세력이 배치한 허리 아픈데서 안으로 찾는 것인가요?” 그녀는 단번에 깨달았다. 허리 아픈 것은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안으로 찾는 것과 구세력은 관계가 없다. 마찬가지로 집착심을 찾아 그것을 없애야 한다. 하지만 절대 구세력이 배치한 시련에서 안으로 찾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내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큰일을 교란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3일도 지나지 않아 이 수련생은 허리가 나아졌다.

병업 문제에 관해 병업 중의 수련생이 병원에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데 관해 자신의 견해를 말해보려고 한다. 어떤 수련생은 말한다. 병이 있으면 절대 병원에 가면 안 된다고 한다. 병원에 가면 대법 원칙을 위배한 것이고 완전 끝장이라는 것이다. 개인 생각에 이 문제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분석해야 하고 전제는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으로 가늠해야 한다. 우리 지역 한 수련생이 있는데 장기간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하고 여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닦은 적이 없으며 대법제자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 구세력이 잔인한 수단으로 인해 엄중한 병업 현상이 나타났다. 많은 수련생이 참여했고 번갈아 그를 돌봐줬고 발정념하고 교류했지만 결국 수련생에게 의뢰심이 생겼다. 교류해도 그는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했고 그 사이에 많은 수련생은 그가 병원에 가는 것을 단호히 반대했다. 최후에 그는 집에서 사망했다. 주변 속인과 친척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개인 생각은 병업이 나타나면 병원에 가는가 가지 않는가는 반드시 이성적으로 대해야 한다. 대법제자는 반드시 주변 속인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야 하고,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기점으로 가늠해야 하기에 일률적으로 논하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해 일정한 정도로 축적됐고 또 어떻게 구세력을 부정해야 하는지 모르며 이미 정념으로 대할 수 없다. 이때 우리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야 하고 극단적으로 그에게 병원에 가지 못하게 하면 안 된다. 위에 언급한 그 수련생이라면 내 생각에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세인은 대법에 부정적인 생각을 품지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정념이 없는 ‘수련생’이 병원에 가지 못하게 해 중생을 해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법을 실증하는 기점에서 문제를 생각하면 병업 중의 수련생이 어떤 표준에 도달해야 하는 그 점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3. 색욕 제거와 나의 인식

먼저 이 방면에서의 깨달음을 말해 보겠다. 색욕은 수련인의 생사관이다. 과거 구세력은 이 점을 절대적으로 보았고 수련하려면 이것을 제거해야 하며 출가하려면 반드시 세간의 인연을 멀리해야 하고 가정과 아내를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수련 성취할 수 없다.

대법은 속인 사회에서 열었고 완전히 구세력의 수련과 별개의 일이다. 대법은 사람이 진정으로 신이 되는 길을 개척했고 진정으로 주원신(主元神)이 신으로 되는 것이다. 아울러 세간의 인연을 멀리하는 것도 아니고 속인 사회에서 성취하는 것이다. 이것은 간단히 일이 아니다. 대법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정상적인 속인 생활에서 제고하는 것을 보장할 수 있고 수련하면서도 한편으로 오염되지 않는다. 이것은 사존께서 우리에게 주신 정화의 기제에서 체현된다. 우리는 신의 일면이 있으며 수련한 일면은 곧 격리되고 신의 일면을 보존한다. 이렇게 하면 수련이 잘 된 일면은 세간에 재차 오염되지 않는다. 사람의 일면은 갈수록 적어지고 최후에 완전히 신의 일면으로 변한다. 개인 생각은 이런 방식은 수련하면서 한편으로 수련된 일면은 보호할 수 있다. 새 우주가 바로 이런 기제를 갖고 있고 이것은 사람이 신으로 되는 관건이다.

이런 수련 방식을 알고 나는 생각했다. 대법제자는 구세력의 그런 수련 방식으로 가면 안 되고 색욕심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법에서 아래 두 가지를 깨달았다. 심성에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지만 방식에서 극단적으로 가면 안 된다. 단지 당신의 심성을 닦으면 환경은 법에서 변화가 온다.

우선 대법제자는 반드시 색욕심을 제거하는데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며 제거해야 한다. 지금 사회는 물욕이 흘러넘치고 도처에 색정이 있으며 구세력은 사당(邪黨)을 종용해 일부러 사회도덕을 파괴하고 사람을 음란하고 변이되게 만들었다. 대법제자는 이런 환경에서 반드시 시시각각 자신의 일사일념에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색계를 범하고 자신을 망칠 수 있다. 법을 실증하는 기점에 서서 색욕의 위험성을 가늠해야 하고 색욕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우주 중생을 망치게 된다. 몇 년간 나는 이런 수련생을 많이 보았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육신까지 잃어버렸다.

다른 한 가지는 정상적인 부부관계 방식에서 극단적으로 가면 안 된다. 우리 지역 한 수련생이 있는데 대법 수련 후 강제로 남편과 별거해 남편에게 대법에 대한 반감을 야기했다. 마을에서 수련생과 대법을 욕해 나쁜 영향을 끼쳤다. 또 한 수련생은 처음 수련할 때 결혼하지 않으려 했지만 부모와 친척이 모두 속인이라 그녀에게 결혼을 강요했다. 최후에 그녀는 가족과 틀어지고 가족은 대법을 특히 반대했는데 특히 부모는 더욱 그랬다. 최후에 이 수련생은 다른 수련생에게 남편감을 소개 받아 부모님을 대처하려 했다. 하지만 전제는 부부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다. 수련생이 그녀에게 이런 남편을 찾아줄 수 있겠는가? 이 수련생의 가정환경에 큰 파괴 작용을 일으켰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극단적이다. 개인적으로 모두 구세력의 배치한 길을 걸은 것이다. 수련생이 이런 문제를 고려할 때 개인의 제고만 생각하고 결혼하면 남편(아내)과 함께 있으면 자신 제고에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워했다. 기점은 이기적인 것이고 이것은 개인 수련이다. 만약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기점에서 문제를 고려하면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대법의 기점에 서면 그(그녀)는 자신의 방법이 중생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 고려할 것이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이 한 법문은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서, 물질이익에서 당신에게 실제로 무엇을 잃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로 속인의 이런 물질이익 중에서 당신의 心性(씬씽)을 연마(魔煉)하는데, 진정하게 제고되는 것은 바로 당신의 心性(씬씽)이다.”[1] 대법제자는 새 우주의 참신한 수련 방식을 실증하는 것이다. 왜 타락한 구우주 구세력의 그런 수련 방식을 실증해야 하는가? 예를 하나 들겠다. 나는 과거 불교에서 이런 이야기 하나를 보았다. 한 사람이 출가해 스님이 됐다. 출가 후 아내와 아들을 포기했다. 이후에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절에 그를 찾으러 와 “당신이 없으면 나와 아들은 어떻게 생활하나요?”라고 그의 마음 돌리기 위해 간절히 애원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아내는 절망 속에서 아들을 안고 강에 투신해 자살했다. 두 생명은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됐고 그를 뼈에 사무치게 미워했다. 한번은 그는 작은 일에서 심성을 넘기지 못해 보호신의 보호를 잃었다. 두 억울한 생명은 그의 몸에 올라와 하마터면 그의 생명을 가져갈 뻔했다.

개인적으로 말하면 나는 대법을 수련한 후 여태 아내와 별거한 적이 없다.(아내는 속인임) 나는 지금 기본적으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지 않으면 아내도 생각이 없다. 별거할 필요가 없다. 이 방면에서 개인의 체험은 자신의 마음을 닦으면 환경은 법에서 개변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결혼하지 않고 별거한다고 해서 당신의 색욕심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런 환경에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면 색욕심은 더욱 확고하게 제거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가는 방법은 과거 수련 형식의 영향을 받아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교란을 한다.

단지 자신의 마음을 닦으면 환경은 법으로 개변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한편으로 당신이 색욕심에 대해 엄격히 제거하고 끊임없이 그것을 청리하고 방임하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속인이고 수련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형식에서 우리는 또 속인과 다르고 극단적으로 가면 안 되며 가족이 이해하지 못하게 하면 안 된다. 다른 한 방면으로 당신이 엄격히 자신의 마음을 닦으면 법은 우리를 도와 환경을 바꾼다. 당신이 수련해낸 공은 당신의 환경을 개변한다. 당신이 생각하지 않으면 법은 다른 한 사람을 제약할 수 있다. 당신의 심성이 표준에 도달하면 환경 문제는 당신이 고려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정상적인 부부 생활은 근본적으로 당신의 제고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단번에 욕망을 끊는 경지에 달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은 느슨히 하면 안 된다.

개인적으로 말하면 나도 색욕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시험을 치렀다. 나에게 가장 큰 교란은 인터넷이었다. 지금 인터넷에는 색정적인 것이 아주 많다. 나는 한동안 몇 번이나 빠져들었다. 나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념을 강화하고 내가 법을 실증하는 책임감을 강화하고 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도하는 책임감으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경계했다. 색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중생을 해친다. 내가 이런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면 얼마나 많은 중생이 소멸되는가? 나는 지금 기본적으로 인터넷에서 색정적인 것을 보고도 못 본 것 같고 듣고도 못 들은 것 같다.

다른 한 방면으로 부부 사이에 욕망의 문제가 있다. 나는 위에 자신이 법에서 깨달은 이치로 자신의 마음을 닦으면 환경은 법으로 개변된다는 것으로 자신을 지도했다. 형식에서 극단적으로 가지 않고 심성에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했다. 지금 기본적으로 내가 생각하지 않으면 아내도 움직이지 않는다. 가정환경은 갈수록 좋아졌다. 아내도 대법을 아주 지지한다. 사부님께 향도 피우고 공물도 올려 드리며 자주 ‘파룬따파하오’도 염한다.

여기까지 말하겠다. 개인의 깨달음이고 많은 편파적인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시정해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2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2/5/3604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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