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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자 표준에 도달하자 병업이 사라져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인의 표준으로 요구해야 한다.”[1] 사부님의 이 말씀을 많이 보았지만 줄곧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1년 반 동안 지속된 병업관을 넘으면서 끝내 그의 한층 함의를 깨닫게 됐다. 이 한 층 법리와 집착심을 제거해야 한다는 이치를 깨달은 후, 손으로 누르면 몹시 아프던 곳이 정진하니 단번에 아프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부동(不同)한 층차(層次)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다”[2]고 말씀하셨다. 이 부분은 잘 알고 있었지만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층차의 표준요구가 있다는 부분은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정진하지 않았기에 나는 기나긴 박해 속에서 사존께서 왜 한 번 또 한 번 정법 종결시간을 연장하시는지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 정도로 나쁘게 변했는데 왜 계속 구도하려 하시는지 몰랐다. 비록 노력해 진상을 알리기는 했지만 기쁘지 않았고, 사부님이 하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했다. 정진하지 않고 책을 보지 않아 떨어지기 시작할 때,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시면 그래도 즉시 정신을 차렸다. 이후에 어느 한 번은 떨어지고 또 떨어져서 맨 밑의 땅바닥 굵은 통나무에 떨어졌다. 그래서 머리를 숙이고 속으로 ‘될 대로 되라지’하고 생각했다. 이때 머리를 들어보니 사부님께서 내 왼쪽에 같이 앉아계셨다. 그 후에 나는 자신이 수련자라는 것도 잊어버렸다. 어느 날 꿈에 창 밖에 커다란 부처상이 있는 것을 보았고 부처상 위에는 ‘노천야(老天爷: 하느님)’라는 세 글자가 씌어있었다. 깨어난 후 이건 사부님께서 줄곧 내 곁에 계신다고 알려주시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재작년 여름, 나는 살이 쪄서 다이어트를 하려고 했다. 날마다 두 시간 동안 달리기를 했고 출근하지 않고 집안일도 하지 않았다. 며칠 달리니 두 다리 무릎 부위가 모두 아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며칠 지나 조금 나아지자 계속해 다이어트를 했다. 이후에 다리가 너무 아파 중단했고 몇 달 지나도 여전히 아파서 조금 의아했다.

2017년 여름, 나는 계속해 다이어트를 했고 함께 트레이닝 받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하지만 다리가 갈수록 아팠다. 어느 날, 두 사람을 보고는 한 바퀴 달린 후에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바퀴 돌고 오자 그 둘은 모두 떠났다. 그 날 집에 돌아온 후 다리가 너무 아파 걸을 수 없었다. 이때서야 나는 자신의 심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는 알고 있는 집착심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했다. 한 번 버리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효과가 크지 않아 너무 답답했다. 1년이 지나자 병이 아닐까라는 의심도 들었다. 저녁에 꿈에서 내가 다이어트하려고 길을 걷다가 다리 아픈 것을 병으로 여기는 것을 보았다. 깨어난 후 이건 병이 아니라는 사부님의 점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대체 왜 이러할까?

2018년 신정이 지나갔다. 나는 진작부터 다이어트를 하러 가지 않았고 예전보다 정진했지만 다리는 여전히 많이 아팠다. 예전에 심성이 좋을 때 소업하면 5~6일, 길어도 한 주일을 초과하지 않았다. 1주, 2주를 초과했다면 분명히 심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집착심이 없다고 여겼기에 왜 이렇게 아픈지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꿈에서 우리 집 지붕에 구멍이 있는 것을 보고 땔나무를 가져다 수리했다. 깨어난 후 이는 내 수련에 누락이 있다고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신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 줄곧 낡은 집을 걱정했는데 분명히 낡은 집에 대한 집착인 것 같아 그 집착을 버렸다. 그 후 잠이 들었고 또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고 있었고 두 여자아이가 뒤에서 쫓아와 얘기를 나누면서 함께 갔다. 얼마 뒤, 내 차에 있던 큰 보따리가 땅에 떨어졌다. 나는 보따리를 주우러 가겠으니 그들보고 좀 기다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보따리를 줍고 돌아오니 그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들을 찾지 못해 줄곧 어느 곳에서 기다렸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 기다리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이건 나에게 여색을 밝히는 마음이 있다고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신 것이었다. 꿈 두 개를 연결시켜서야 ‘수련인의 표준’[3] 이 말씀의 한 층 함의를 깨닫게 됐다.

수련을 갓 시작했을 때에는 심성 표준도 낮아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면 관을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높은 층차에 이르면 그 표준도 높아진다. 예를 들면 방금 수련을 시작했을 때 정법 노정에 따른 당신에 대한 심성 표준은 한 달에 한 장(丈)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10개월 수련했을 때 당신의 심성 표준도 10장 제고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한 달에 1장 미만, 9척 혹은 7척 제고했다면 10개월이 됐을 때 정법노정과 갈수록 차이가 벌어질 것이다. 당신 자신은 계속 수련하고 있다고 여길지라도 여전히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갈수록 정법 노정의 뒷다리를 잡아당기고 있다. 이렇게 오래 끌다 보면 병업이 나타나게 되고, 계속해 끌면 병업이 갈수록 더 심해져 각종 병업이 나올 수 있다.

아래 ‘전법륜’에서 사존께서 말씀하신 색욕 고비를 넘긴 사례에 관해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겠다.

“몇몇 미녀로 변화시켜 내게 보여주고 비천이 나에게 춤을 추어주는 것이로구나. 그가 한창 기뻐할 때, 갑자기 이 미녀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서 각종 동작을 하며 목을 잡아당기고 허리를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우리 수련생은 心性(씬씽)을 제고함이 아주 빨라 그때 이 젊은이는 곧 알아차렸는데, 그는 먼저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일반인이 아니며, 나는 연공인(煉功人)이다. 당신들은 나를 이렇게 대하지 말라. 나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다. 이 염두가 나오자마자 ‘쏴’ 단번에 무엇이나 다 없어졌다”[2] 그 젊은이가 수련을 이제 막 시작했을 때는 경각심을 갖고 자신을 연공인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이렇게 대하지 말라고 하면 관을 넘을 수 있었다. 그건 초기 요구로서 갓 시작했을 때에는 표준도 아주 낮다. “그가 한창 기뻐할 때”[2] 그가 기뻐할 때, 그 ‘기쁨’이 바로 여색에 대한 마음이 아닌가? 기뻐한 자체가 바로 그릇된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어찌 그렇게 기뻐해서야 되겠는가? 보면 본 것이고 수련은 마땅히 무위(無爲)여야 한다. 보고 기뻐했다는 자체가 바로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닌가? 더 깊이 얘기하자면 연공할 때 그를 봐서 뭘 하는가? 본 자체가 바로 집착이 아닌가?

수련에 정진하기 시작한 후, 침대에 누워 잘 때 나는 공중 맞은편에 한 미녀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머리를 돌려 전혀 상대하지 않았다. 예쁜 사람을 다시 돌이켜보면 색욕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고 어느 수련생이 말했다. 이에 대해 나 역시 공감하고 크게 계발을 받았다. 하지만 더 깊이 따져보면 처음 보았을 때 예쁘다고 생각한 것 역시 색에 대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닌가? 더 깊게 생각해보면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것도 색욕의 마음이 아닌가?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여기에서 다만 색에 대한 마음을 예로 들었을 뿐 다른 방면도 마땅히 같은 표준과 요구라고 생각한다.

꿈에서 나는 ‘수련은 아주 빠듯하게 배치했다’는 글씨를 보았다. 위와 같은 것들을 깨달은 후 나는 자신이 깨달을 수 있는 최고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고, 잠 잘 때의 일사일념을 포함해 느슨히 하지 않았다. 심성을 제고하니 모두 잘할 수 있었다. 어려움에 부딪히면 또 제고할 수 있기에 우선 기뻐해야 한다. 이 괴로움과 기쁨이 대뇌의 다른 부위에 있다는 것이 가끔 느껴진다. 괴로움은 대뇌 변두리, 기쁨은 송과체 부분에 있는 것 같았다. 이때 나는 다리가 빨리 회복된다는 것을 느꼈고 한 주 정도 지나자 1년 반 아팠던 다리가 거의 다 회복됐다. 하지만 손으로 누르면 가끔 여전히 좀 불편했다. 갑자기 이 불편함 역시 내가 줄곧 발견하지 못한 집착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집착을 버린 후 아픈 곳을 눌러보니 단번에 아프지 않았다.

과거 빈둥빈둥하던 내 모습을 지금 생각해보면 장기간 정법 노정의 뒷다리를 잡아당긴 것이었다. 이건 죄를 지은 게 아닌가? 죄가 있다면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바로 소업(消業)으로서 말하자면 업보라고 할 수 있다.

정진할 때 책을 보면 ‘전법륜’ 위의 글씨가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았지만 과거 심성이 떨어졌을 때는 사부님 법상(法像)을 피해가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지금 간신히 조금 뒤쫓아 온 것 같다. 정진하는 수련생들을 따라잡아 정법 노정에 따라 앞으로 돌진하고 하루 빨리 표준에 도달해 대법 일을 더 잘했으면 좋겠다.

이상은 개인이 수련 중에서 겪은 상황에 대한 깨달음이다. 바르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께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미국법회 설법-뉴욕좌담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2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2/3/3603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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