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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 사이라도 자비롭게 대해야 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 나는 수련생 A를 만났다. A수련생에게 일부 사람 마음이 있고 집착을 제거하지 않은 것을 보고 나는 A수련생과 이야기를 나눠 그녀가 법에서 인식하고 법에서 자신의 언행을 바로 잡게 하려고 생각했다.

나와 A수련생은 시간을 약속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A수련생은 왜 이렇게 시간을 아끼지 않는지, 왜 시간을 다그쳐 용맹정진하지 않고 중생을 구도하지 않는지’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수련생을 질책하고 수련생을 원망하는 사상과 물질을 지니고 이야기 한 결과는 뻔했다. 우리는 결국 기분 나쁘게 헤어졌다.

A수련생은 자신의 집착을 덮어 감추고 나는 오히려 법리로 수련생을 요구하고 덮어놓고 수련생이 개변하기를 요구했다. 마치 나는 그 안에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다른 수련생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있어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어떻게 해야 상대 수련생을 도와줄 수 있는지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 사상이 머릿속에 나타났다. 이 일은 수련생에게 집착이 있고 사람 마음이 있으며 내가 수련생을 어떻게 도와주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수련생이란 이 거울로 안을 비춰 나 자신이 자신을 수련하는 과정이다. 수련생의 문제는 바로 내 문제다. 사부님은 법에서 말씀하셨다. “두 사람 사이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 제삼자가 보게 됐다면, 제삼자도 ‘나 자신은 어디에 잘못이 있는가, 왜 나에게 보게 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물며 모순이 발생한 두 사람이라면 더욱 마땅히 자신을 보아야 하며 안을 향해 수련해야 한다.”[1] 법리는 명백해졌고 사고의 방향이 명석해졌다. 나는 자신의 부족함과 사람 마음을 찾았고 법에서 즉시 바로 잡았다. 그런 다음, 나는 기회가 있으면 내가 자비와 선한 일념으로 진정으로 수련생을 위하는 심태로 수련생과 소통하게 해달라고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했다.

내가 재차 A수련생과 법에서 소통할 때 나는 일종 거대한 에너지에 포용되어 말하는 어조, 심태가 매우 평화로웠다. 우리는 매우 조화롭게 소통했다. A도 드물게 마음을 열어놓고 자신의 부족함, 사람 마음 및 일부 대법에 부합되지 않은 언행을 이야기했고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고 되도록 빨리 제고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내심 수련생을 위해 기쁨과 위안을 느꼈다.

그 후 나는 자신이 시시각각 그런 자비로운 상태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해봐도 당시의 어조, 심태로 말하고 일처리 하는 것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내가 이 문제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또한 진심으로 다른 수련생을 위하고 법에 부합된 것을 보시고 제자를 가지해 주고 제자에게 자비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체험해 제자를 격려해주신 것임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비는 거대한 에너지이며, 바른 신(正神)의 에너지이다. 자비로울수록 이 에너지는 더욱 커서 어떤 좋지 못한 것도 모두 해체할 수 있다.”[2] “자비는 신의 영원한 상태”[3] 한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자비심을 수련해야 한다. 이것은 한 정신(正神)의 기본 본성이며 역시 한 수련자가 반드시 구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지역은 정체 협조를 줄곧 잘하지 못하고 각자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고 자신을 견지한다. 또 모두 다른 사람이 정체를 형성하지 못한다고 질책한다.

비교적 특별한 표현은 많은 사람이 모두 협조인을 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작년에 우리 지역에 한 수련생이 불법적으로 체포되고 판결을 받게 됐다. 구출 과정에서 많은 사람, 나를 포함해 모두 협조인이 적극적으로 구출을 조직하지 못한다는 견해가 생겼다. 또 그녀가 전체 지역이 수련생을 구출하는 중에서 정체를 형성하고 사악을 해체하며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지체했다고 인식했다. 이런 질책, 원망의 정서와 물질은 오랜 시간동안 지역 수련생 사이에 휩싸였고 그것은 개인마다 상처를 주었다.

나는 이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의식했다. 한두 명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여러 수련생 모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강대한 집착이며 협조인 및 온 지역에 번거로움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이것을 깨닫자 나는 더는 다른 수련생의 부족함을 보지 않았다. 무엇을 보고 들으면 모두 내가 수련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러면 수련생을 구출하는 과정 역시 자신을 수련하는 과정이며 구도중생의 과정이다. 협조인은 수련을 가장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도 사람 마음이 있으며 부족함도 있다. 만약 우리 매 대법제자가 모순이 생기면 자신을 찾고 자신을 보고 자신을 내려놓고 정체를 원융하고 완벽하게 협조하면 정체를 형성한 것이 아닌가?! 자아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원융하는 그것이야말로 경지다.

사실 한 가지 일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들 중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것을 보지 않으며 우리들의 제고야 말로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얼마나 되는 사람을 탈퇴시켰든지 간에 마지막에 원만하지 않으면 모두 소용이 없다.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이야말로 정체를 형성할 수 있고 정체적으로 사람을 구하는 거대한 작용을 발휘할 수 있다.

개인의 체득이며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이 시정해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미국동부법회 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9-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3-왜 거절하는가’

 

원문발표: 2018년 1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6/3600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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