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해마다 12월 31일 이 날이면 온 가족은 10여 명이 즐겁게 한 자리에 모여 웃기도 하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기에 우리의 심신이 건강해져 즐겁고 행복했다. 문제에 봉착하면 모두 안으로 찾고 자신의 부족함을 찾으면 모순은 즉각 연기처럼 사라졌다.
우리가 수련의 길을 걷기 시작해서부터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몸을 정화해 주시어, 여러 해 동안의 천식, 신장염, 심각한 알레르기, 위장병, 통풍 등등 질병이 일소됐다. 우리는 법공부를 비기고 수련을 비기며 서로 교류했다. 우리는 진선인 요구에 따랐으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점화 하에서 용맹정진해 자신을 제고하면서 날마다 법광 속에 푹 잠겼다. 우리는 위대하신 사부님, 위대한 법을 만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우리는 행복하게 사부님을 따라 회귀의 길에 올랐다.
18년 전 풍운이 돌변해 중국공산당 우두머리 장쩌민 일당은 대법제자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발동했다. 우리도 요행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환경이 어떻게 준엄하고 형세가 어떻게 험악하든 우리는 조사정법, 중생구도의 사명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
그해 방금 중학교를 졸업한 남동생은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해주려고 작고 왜소한 몸으로 혼자서 하룻밤 기차를 타고 톈안먼 광장에 갔다. 광장 곳곳에는 모두 경찰차, 경찰과 특수경찰이 오가는 행인을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었다. 두려운 마음이 조금도 없는 그는 조용히 광장 중심까지 걸어가 온화한 모습으로 제2장 공법을 연마해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했다. 하지만 훈련이 잘된 특수경찰에게 걷어 채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의 몸은 날아올랐다가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고 머리는 기념비 계단에 심하게 부딪혔다. 속인이었다면 크게 다치거나 죽었겠지만, 동생은 사부님의 보호로 아무 일도 없었다. 아프지도 피가 나지도 않았으며 혹도 생기지 않았다. 그는 파출소에 납치된 후 경찰에게 구타당했지만, 미워하지 않고 미소로 보답했더니 마침내 경찰은 쳐들었던 손을 내리고 한 마디 던지는 것으로 구타를 끝내버렸다. “작은 파룬(그들은 파룬궁 수련생을 이렇게 불렀다). 너는 어쩌면 그렇게도 착하냐, 나마저 다 손을 댈 수가 없어.” 이후 여러 번의 구류, 노동교양, 강제 세뇌 박해를 당했다.
남동생이 여전히 수련을 처음처럼 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감당하신 것은 이보다 천만 배는 넘을 것이다. 당신이 일찍이 확고했던 그 발걸음을 중지하지 말며, 이 만고의 기연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회귀를 기대하고 계신다.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화기애애하게 음식을 먹었는데, 사부님께서 모욕당하고, 대법이 비방당하며, 수천수만 대법제자가 잔혹한 박해를 당하고 있는 때인지라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밖에 잠복해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사람이 밥을 먹으러 간 사이를 틈타 중국공산당에 중독된 중생에게 진상을 알려주려고 남동생은 진상 자료가 든 무거운 배낭을 메고 혹한을 무릅쓰고 집을 나섰다.
뜻밖에 밤중에 거위 털 같은 함박눈이 쏟아졌다. 그는 온 밤을 걸어 다녔고 온 밤 자료를 배포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로 여러 번 위험을 만났으나 무사했다. 날이 밝을 무렵, 그는 온몸에 흰 눈을 뒤집어쓴 채 마치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드디어 안심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얼어서 뻣뻣해진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남동생들은 서로 협력해 강대한 정념으로 사부님과 정신(正神)들의 가지(加持)와 보호 속에, 오전에 오가는 사람이 가득한 시장에 가서 거의 1~2백 장의 ‘풍우천지행’ CD를 중생에게 배포한 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여동생은 악인에게 모함을 당해 몇 번이나 불법 수감, 형을 선고 받았지만, 대법에 대한 그녀의 확고함은 조금도 개변되지 않았다. 여름이면 40도 고온에서 그녀는 혼자 수만 개의 진상 자료를 만들었다. 에어컨 살 돈이 없어 사지 못 하고 선풍기를 돌리니 종이가 날아갔다. 땀에 옷이 푹 젖었고 머리칼도 얼굴에 붙었으나 그녀는 땀을 훔칠 겨를도 없으면서 물 한 모금 마시고는 설비에 부채질해 온도를 낮춰 주었다.
입구에 서 있는 수련생은 눈물을 흘렸다. 예전에는 그렇게도 몸치장을 좋아했고 임대옥(林黛玉-홍루몽의 여주인공)처럼 유약하던 그녀가 늘 혼자서 오토바이를 타고 비바람 속을 오가면서 진상 자료가 담긴 무거운 상자를 한 상자 한 상자씩 날라다 주었다. 그녀에게는 쉬는 날이 없었고 밤낮이 따로 없이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 번은 그녀 혼자서 그녀 체중의 배나 되는 설비를 계단으로 올려가야 했다. 그녀는 속으로 사부님께 힘을 더해 달라고 빌었다. 과연 기적이 나타나 그녀는 옮길 수 있었다. 여동생의 집에는 여러 번 우담바라 꽃이 피었다. 나와 여동생이 발정념으로 납치된 수련생을 도와주었는데 이후에 수련생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나는 당신과 여동생이 함께 힘센 두 금강신(金剛神)처럼 위풍당당하게 악을 제거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조사정법, 중생구도는 비바람도 막지 못한다. 여동생아, 견지하거라, 비 온 뒤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펼쳐질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여동생은 억울한 징역형을 당했다. 사악의 강대한 세뇌 공격에서도 그녀의 마음은 거울처럼 밝았다. 사악은 그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고 했지만 알 수 없었다. 강제 세뇌 박해 때, 그녀는 확고부동해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으며 속으로 끊임없이 법을 외웠고 하나의 세포마다 모두 법을 외워 사악의 여러 차례 공세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녀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여전히 끊임없이 죄수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 어떤 죄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당신은 어쩌면 이렇게도 좋을까! 일찍 당신을 만났더라면 나는 이곳에서 이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또 누가 말했다. “공산당은 너무 나쁘다. 좋은 사람을 박해하면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이다!” 또 누구는 나가면 대법을 수련하겠다고 했다.
억울한 감옥살이가 끝나자 그녀는 또 조사정법(助師正法)의 홍류 속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으며 아직도 많은 중생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고, 자신이 짊어진 책임을 알고 있었다.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해 자신이 사부님을 따라 내려와 조사정법하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한 차례 힘든 선택을 거쳤다. 그녀는 결연히 일체를 체념하고 가족과 고별하고는 눈물을 머금고 집을 나섰다.
수련생의 안전을 위해 그녀는 더는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지 않았고 홀몸으로 먼 타향에서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체를 묵묵히 했다. 그녀는 고독과 곤란은 두렵지 않다면서 눈물을 깨끗이 닦았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으니 아무리 큰 어려움도 문제되지 않으며, 우리는 그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로 갈 뿐이라고 했다.
동생들은 모두 중국공산당 사당(邪黨)의 박해를 당하고 사악에 타협하지 않아 모두 사업을 잃었다. 그들은 삯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들은 제한된 자금으로 진상 자료점을 세웠는데 마치 혹한 속의 한 떨기 매화처럼 성결하게 피어났다.
사악과 스파이의 미행, 감시를 피하려고 그들은 몇 번이나 이사했는지 모른다. 매번 이사는 모두 매우 어려웠다. 소모품에 설비를 더하면 최소 1~2톤은 되므로 두세 사람으로는 짧은 시간 내에 차에 싣기 어려웠다. 낮에는 안전하지 못하고 밤에는 보이지 않는데 전등은 켤 수 없으므로 오직 날이 막 어두워지려는 그 한 시간 사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찐빵 조각에 짠지를 먹으면서 끼니를 자주 걸렀지만 그 아낀 돈으로 진상 자료를 만드는 소모품과 일체 필요한 설비를 사 왔다. 동시에 현지와 외지 수련생에게 자료점 여러 개를 세워주었으며, 현지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실을 해외에 보내 사악을 폭로하고 저지했다.
그들은 노동교양소에서 벌레가 낀 찐빵을 씹고, 위에는 벌레가 뜨고 밑에는 흙이 가라앉은 물을 마시고, 겨울이면 꽁꽁 언 수건을 얼음물에 녹여 썼다. 환경이 얼마나 열악하든 간에 그들 마음에는 대법이 담겨 있었고 쉼 없이 대법의 아름다움을 신변 사람들에게 알려주어 수감자들은 파룬궁이란 말만 들으면 모두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남동생은 일찍이 말한 바 있다. “전 세계 사람이 다 전향된다 하더라도 나는 전향되지 않을 거야.” 그 시각 천상의 신들은 모두 그 때문에 심금이 울렸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동생아, 오늘 너는 어디에 있느냐?
자녀들이 납치당한 후, 사부님께서는 슬픔이 극에 달한 노모를 위안하고자 그녀에게 다른 공간의 몹시 아름다운 정경을 보여주셨는데 모두 퐁퐁 뛰는 아주 귀여운 5, 6세 어린애들로서 그렇게도 순진하고 선량해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사부님의 법신은 금빛 찬란하게 노모 앞에 나타나 그녀가 용맹정진하도록, 억세게 버티도록 격려하셨다.
우리는 일찍 얼마나 행복한 대가족이었던가. 가정이 화목하고 아내는 현모양처였으며 자녀들은 효성스러웠다. 각자는 직장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득실을 따지지 않았으며 곳곳에서 남을 배려했다. 우리는 모두 직장의 우수 직원이었고 이웃 사이에서도 훌륭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오늘에는 중국공산당 악당의 박해로 가족이 흩어져 자식들은 연로한 부모님을 봉양할 수 없고 부모님은 그리운 자식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걱정하고 계신다. 이 모두는 단지 우리가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진선인(眞善忍)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기 때문이다.
2018년이 이미 도래했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아직도 얼마이든지 간에,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지 우리는 모두 대법제자이다. 우리의 굳센 의지는 변함없이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해 나갈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일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존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며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원문발표: 2018년 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5/3596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