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0살 때 도를 들은 대법제자다. 당초에 법에 대해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로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외할머니는 대법제자이고 나를 데리고 수련하는데 세 가지 일을 하셨지만, 항상 임무를 완성하는 느낌이었고 자료를 나눠주어도 심리적으로 평온하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최근 2년간 외할머니가 나를 떠나고 어머니도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하셨다. 법공부를 통해 제고 과정 중에서 나는 점차 무엇이 수련인지 알았다. 수련 중 나는 안으로 찾는 즐거움을 느꼈다. 관을 넘는 중에서 이전에 모순에 부딪히면 입으로는 안으로 찾는다고 했지만, 모순 중에서 그래도 상대방의 잘못을 말하고 이 일은 내가 이치가 있고 다른 사람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한 수련생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당신에게 참으라고 할 때마다 당신은 스스로 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한 마디 말은 나를 일깨워주었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답안을 찾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한(羅漢) 그 층차에 도달하면 어떤 일과 마주쳐도 다 마음에 두지 않고, 속인 중의 모든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으며, 언제나 싱글벙글하면서, 아무리 큰 손해를 보아도 싱글벙글하며 개의치 않는다.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나한의 초급과위에 도달한 것이다.”[1] 이를 공부한 후 깊은 깨달음이 있었는데 나한의 표준과도 나는 아직도 거리가 멀었다! 이 한 단락을 알게 된 후에야 심성제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왜냐하면, 나는 모순 중에서 맞고 틀리고 항상 시비를 가리는데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셨다. “우리는 모순 앞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면 더없이 넓은 세상이라고 말하는데, 보증코 다른 광경이다.”[1] 현재의 시험 중, 관을 넘기는 중 나는 문제에 부딪히면 상대방의 틀린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찾는다. ‘한 발자국을 물러선다!’는 이치를 배웠다. 예를 들면 한번은 어머니께서 나에게 내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봤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이전 같으면 나는 설명하고 변론하겠지만, 지금은 제고됐다. 내가 말했다. “제 눈빛이 틀렸을 수 있는데 제 잘못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심정이 유쾌해졌는데 나는 이는 법에 부합된 느낌이라는 것을 알았고 비할 바 없는 행복을 느꼈다. 백 분의 백으로 매번 잘하지는 못했지만, 자기가 제고됐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에서야 알게 됐는데 이전에도 책을 보고 법공부를 하면서 세 가지 일도 했었지만, 자기를 수련하지 않았다! 형식만 취했는데 오늘 법공부에서 무엇이 ‘착실한 수련’인지 알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모순에 부딪히면 내가 맞든 틀리든 자신을 돌아본다. 이 일에서 내가 어떤 잘못한 점이 없는가? 정말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모두 이처럼 생각하는데 첫 일념이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를 생각한다. 누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정한 대법 수련자가 아니다.”[2] 정법 수련 중에서 자기를 잘 수련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대법 일을 하면서 자신의 수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직 자기를 잘 수련해야만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마음으로 법공부를 잘하면 법이 우리의 수련을 지도하고 부동한 층차의 법리가 체현되며 법공부의 수량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때 나는 집착을 정확하게 찾지 못하고 곧 사건의 맞고 틀린 것을 보는데, 예를 들면 어떤 집착인지 잘 찾지 못할 때 곧 법으로 가늠하고 이 일이 대법제자,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되는가를 가늠한다. 수련인이 마땅히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항상 법으로 자기를 가늠한다.
이상은 나의 제고 이후의 인식인데 만약 맞지 않으면 자비로 바로잡아 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원문발표: 2018년 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5/3596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