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법이 널리 전해진지 벌써 26년이 됐고. 비바람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도 많은 어려운 세월을 걸어왔다. 대법제자들이 감당한 책임은 거대하고 전례 없는 시련을 겪었다. 이 대법은 우리의 인생을 개변했고 우리에게 생명의 참뜻을 사색하게 했다.
최근에 대륙에는 일부 사람 마음이 움직이는 상황이 또 나타났다. 우리는 누구도 자신에게 여태껏 사람마음으로 문제를 본 적이 없다고 보증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에 나타난 일부 보편적인 현상은 영향이 비교적 크다. 이런 현상을 겨냥해 그 중의 한 수련생으로서 나는 나의 생각을 여러분과 함께 교류하려 한다.
정법이 진행됨에 따라 많은 수련생이 아주 정진한다. 하지만 또 많은 수련생은 태만하기 시작해 법공부를 첫 자리에 놓는 것이 아니라 수련생 가운데서 속인의 서적과 광고를 홍보해 신수련생에게 심각한 교란을 만들어 주고 있다.
또 한 가지 현상은 법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해 100% 신사신법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 해 또 한 해의 기대와 기다림, 시간은 늘 기한 없이 멀고먼 것 같게 느껴지는데, 이는 버려야 할 한 가지 집착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에는 언제나 간절한 염원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희망을 속인에게 기탁하고 있는데 여러분 생각해보라. 이건 사부님께서 배치한 결과일까? 이런 마음이 빈번히 나타나고 있으므로 여러분과 좀 교류해 후회막급 하는 일을 피하려 한다.
속인 사회의 오염의 거센 흐름은 갈수록 심각해 지금 많은 사람은 온라인 게임에 깊이 빠졌다. 최근 대륙에도 가짜 경문을 보고 사오(邪悟)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고, 게다가 영향을 끼친 범위가 비교적 커서 그야말로 모두 기타의 ‘사부’를 인정하는데 구세력의 이끌림에 따라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들 본인은 도리어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사부님의 ‘20년 설법’이 발표된 후 어떤 사람은 또 집착심으로 가늠하면서 마땅히 정법이 종결되어야 하는데도 끝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이건 또 사람마음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신년이 다시 다가오자 각종 사람마음이 또 떠올랐다. 이를테면 생각한다. 올해는 종결이 될까? 스스로는 자신이 아직도 수련을 잘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지만 일찍이 자신이 자신에게 했던 서약에 대해서는 마음을 다잡지 않았고, 사부님의 설법 중에 매번 언급하신 ‘최후의 시간을 틀어쥐자’는 말씀 앞에서도 마비됐다. 사부님께서 왜 늘 이 말씀을 언급하시는지 우리는 조용히 생각해보지 않는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누구에게 말씀하시는 것인가?
간혹 남에게 집착을 지적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 때문에 많은 마음속 의문을 여러 사람에게 말하기 꺼려할 수도 있다. 누구나 다 이런 의문을 자기 마음속에 담아 둔다면, 오래 되면 대법에 대한 확고하지 못함을 빚어낼 것이고 대법제자의 상태에 부합하지 못하는 정도에 이를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도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표현의 배후는 무엇인가? 어떤 마음에 이끌린 것인가? 아직도 늘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구세력의 가상에 미혹될 것인가? 대법에 확고한가의 여부, 이는 하나의 심각한 문제다.
고대의 수련은 간고한 과정이어서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다시 제도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요재지이’(聊齋志異) 중에는 ‘노산도사(崂山道士)’ 이야기가 있었는데, 도를 얻으려는 왕칠(王七)이 지루한 세월을 견뎌내지 못하여 결국 한 가지 일도 성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사실 수련이란 곧바로 평범한 가운데서 단련하는 과정이 아닌가? 이 역시 한 가지 시련이 아닌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시적인 재미로 왔다가 결국에는 견지하지 못했던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건강 아니면 기타 방면에서 대법은 모두 무수한 기적을 펼쳐보였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은 아마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기적을 펼쳐 보인 수련의 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이렇듯 불안정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으니 생각해보라, 정말로 사부님께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사부님께서도 말씀하셨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당신에게 또 진짜도 아니고 가짜도 아니게 만들어 주어, 이 공이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도대체 수련하여 올라갈 수 있는지 없는지, 부처가 있는지 없는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당신으로 하여금 분간치 못하게 한다. 장래에 다시금 당신에게 이런 정황이 나타나게 할 것이며 당신에게 이런 착각을 조성해 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그가 마치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가짜처럼 느끼게 하는데, 바로 당신이 견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1]
수련은 길고도 지루한 과정이며 겹겹의 시련, 곳곳의 고비가 있다. 시간은 집착을 만들어 낼 것인즉 그러면 아마 도태될 수 있다. 시간은 곧 강물이고 파도는 모래를 밀어낸다. 어떤 교란이 나타나든, 남이야 어떻게 하든, 오직 대법에 따라 하는 것만이 옳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사부가 한 이 한마디 말을 기억하라. 즉 내가 어떻게 처리하든지 모두 바른 것이며 처리된 것들은 모두 그릇된 것이다. (박수) 왜냐하면, 그것은 우주의 선택이며 미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2]
우리의 사상, 우리의 언행은 천지를 속이지 못하고 자신을 속이지 못한다. 마치 무엇이든 다 내려놓은 것 같지만 집착만은 내려놓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라버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요 모두가 미혹 속의 어리석음이로다.”[3] 최후일수록 우리는 더욱 착실하게 끝까지 걸어야 하지만 이 때에 이를수록 대법제자의 집착심은 더욱 드러나게 된다.
수련의 과정에 대법제자마다 모두 법에 따라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고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는데 천지가 증명할 수 있다. 이 과정에 풍파를 면하기는 어렵고, 한 번 또 한 번 넘어지고, 한 번 또 한 번 기어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정진이다. 잘못이 나타나도 고치면 되지 않는가? 기연을 놓치면 영원히 잃게 된다. 수련은 초범적인 과정이며 속인 간의 어떤 일과도 다르므로 우리는 속인의 이치로 대할 수 없는바 이는 엄숙한 것이다.
우리는 법과 자신의 심성에서 누락을 찾을 수 있다. 법은 원융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식 부족으로 가끔 대법을 의심할 때가 있다. 더욱이 신수련생으로 말하면 기타 대법제자의 해석을 들으면 마치 또 그다지 맞는 것 같지 않기도 한데 자신은 또 이해할 수 없고 사부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다. 물론 수련 가운데서 의문이 있는 것은 모두 정상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영향을 받는다면 마땅하지 않다.
시간은 일체 답안을 알려줄 것이다. 우리는 비극이 재발하길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 사람이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도 자신에게도 물어봐야 한다, 왜 이런 현상을 나에게 부딪치게 했는가? 자신에게 어느 방면에서 누락이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마땅히 어떻게 대해야 좋은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특히 고통 속에서 견뎌내지 못하는 일부 수련생들이 가장 쉽게 인간 세상을 떠나 빨리 원만하려는 마음이 일어 이로 인해 사악이 틈을 타게 된다. 당신들은 이미 가장 간고한 시기를 지나왔으므로 마지막 한 가지 집착에서 부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제자들의 고통을 나는 다 알고 있으며 사실 나는 당신들 자신보다도 더 당신들을 소중히 여긴다!”[4]
“큰 난 중에서 견정해야 하나니 정진의 뜻은 접을 수 없도다.”[5] 세월은 일시적인 열정을 약화시킬 수 있어도 영원한 확고함은 약화시킬 수 없다. 비록 오늘 우리의 수련형식이 이전과는 다르긴 하지만 심성에서의 요구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바람은 민들레의 봄날을 몰아가고, 가을 나비의 꿈결을 날려 보낸다. 우리는 질퍽거리는 빗길을 걸으면서 손만 뻗치면 닿을 것 같은 그 무지개를 찾고 있지만 도리어 구름에 시선이 막혀 버렸다. 되돌아보면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고 발자국은 여전히 연장되고 있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도 하늘 끝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오직 확고한 정념만 있을 뿐 일체의 일체는 모두 시련이다.
오늘은 먼저 여기까지만 쓰겠다. 이상은 나 개인의 감상이므로 부적절한 곳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삼가 바라는 바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2 – 고집을 버려라’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 – 마지막 집착을 버리자’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2 – 견정’
원문발표: 2018년 1월 2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5/3600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