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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인 마음가짐 바꾸니 나쁜 일이 좋은 일로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1년 이래 나는 그야말로 난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설 전인 25일 두 수련생이 납치됐고, 정월 25일에는 아버지가 택시에 부딪히셔서 뇌출혈로 중환자실에서 12일간 응급치료를 했다. 장인어른도 온종일 잠을 이루지 못해 가슴이 뛰어 견딜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정월 23일 사장이 외지 공장에 가서 생산을 제외하고는 내게 모두 관리하라고 했고, 아내와 어머니는 때때로 불쾌한 일이 생겼으며, 5살인 아들이 이따금 열이 나는가 하면, 두 협조인 수련생이 잇달아 병업 형식으로 박해당해 세상을 떠났고, 프린터와 자료점 운행에 문제가 생기고, NTD수신기 신호가 사라지고, 진상 핸드폰 카드가 없어지고, 박해당하는 수련생이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등 이런 일이 나타났다. 그래서 종종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1]를 외우기도 했다.

정법 최후 시각, 사부님께서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지불로 바꾸신 사람을 구하는 시간에, 나는 오히려 더욱 큰 힘으로 협력해 중생구도를 할 수 없었다. 내 수련에 틀림없이 큰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2] 수련에 번거로움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번거로움 속에서 자신의 집착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하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수련자는 사람의 마음을 갖고, 업의 빚을 갖고, 집착을 갖고서는 원만에 이를 수 없다.”[3]

1. 아버지의 입원이 실외 연공을 촉진하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부친은 24시간 가족이 지키면서 언제든지 부르면 가야 했다. 나는 아들이므로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는 내가 당번이었다. 아침 8시면 아들이 학교에 가야하고 낮에는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이렇게 하자니 체력에 대한 큰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수련은 가장 좋은 휴식이다. 당신이 잠을 자도 다 도달하지 못하는 휴식에 도달할 수 있다. 내가 연공하여 너무나 지쳤기에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내가 연공하니 온몸이 가벼워져 하룻밤 자지 않아도 피곤한 감이 없고, 온몸에 힘이 솟는다고 말할 뿐이다. 하루 일을 끝냈는데도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듯, 이렇지 않은가?”[4]

이 난을 지나가려면 오직 연공을 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수련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연공해 보기는 99년 7.20 이후 구치소에서 뿐이었다. 그때도 박해를 당해 연공하지 않으면 안 될 궁지에 몰렸었다!

아버지의 입원 날, 나는 또 실외 연공을 했다! 병원 복도에서, 병실에서, 공원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미묘함을 느꼈다. 99년 7.20 이후 나의 연공은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기본적으로 5장 공법을 다 하지 못했다. 정공은 입정이 어림도 없었다. 가부좌하고 10~20분이면 다리가 떨어졌다. 동공은 제1장은 하기 싫고, 터우딩빠오룬(頭頂抱輪)을 할 때 기본적으로 똑바로 서있지 못했다. 날마다 견지한다는 건 제3장과 제4장이었다. 작년 2월 23일, 부친이 입원한 이튿날, 밖에서 연공한 첫 날, 나는 다시 5장 공법을 다 할 수 있었다. 정공은 달걀 껍질 속에 앉은 듯 미묘함을 느낄 수 있었고, 터우딩빠오룬을 할 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일심을 버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날마다 공원에 가서 연공은 견지한다. 집에서 공원까지는 10분 거리다. 이 한동안의 최대작용이라면, 막 일어날 때 어떻게 졸리든지 집 문만 나서면, 연공장에 닿기만 하면 정신이 아주 맑아진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지금 남의 부축을 받아 걸을 수 있게 되셨다. 아버지는 이전에 정식으로 수련에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책은 보셨다. 진상 지폐를 그렸고 자료를 보내주거나 나의 장쩌민 고소장에 서명까지 하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법을 얻은 모든 사람을 보호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버지께서 사업하실 때 사악한 공산당의 당서기였기에 당문화에 심각하게 중독됐고, 알코올 중독도 심해서 술잔을 쥐지 않고는 식사를 못하셨다. 사고가 나던 때는 자동차에 머리를 부딪혀 유리마저 산산조각 났었다. 의사는 뇌간 출혈이란 진단을 내렸다. 교통경찰에 따르면 이런 상황은 90~95%는 살 수 없다고 한다. 당시 의사도 후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나에게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 ‘오직 신사신법(信師信法)하기만 하면 반드시 문제가 없다.’ 나는 날마다 MP3 두 개를 갖고 가서 아버지에게 사부님 설법 녹음을 들려드렸는데, 중환자실 의사와 간호사도 도와주면서 전기가 없으면 충전하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바로 이렇게 듣고 배우고 했다. 지금 아버지는 날마다 어머니와 함께 연공하신다. 비록 동작이 표준적이지 못하지만 연공하려 하셨고,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하니 당신도 마시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이번 일 역시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해 큰 업을 갚았으며 지금은 한창 수련에 들어서고 계신다.

2. 장인어른이 넘는 병업관은 나에게 성심껏 있는 힘을 다하게 했다

장인어른께서는 1999년 7.20 이전에 대법 수련을 하셨지만 박해 후 따라가지 못하셨다. 하지만 진선인(眞善忍)의 씨앗은 이미 가슴속에 심어졌다. 법공부를 견지하지 못했던 탓으로 지난 해 말부터 장인어른은 늘 흐리멍덩하셨다. 장모님은 장인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라고 권하셨다. 장모님은 이전에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각종 질환이 있었는데 대법을 수련한 후 건강이 좋아져 농촌 가정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힘든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되셨다. 장인어른도 연공은 몸에 매우 좋다는 것을 깊이 믿으신다. 작년 말부터 장인은 날마다 법공부와 연공을 하기 시작하셨다. ‘전법륜’을 5, 6번 공부해 스스로도 몸이 많이 나아졌다고 느끼셨다. 그런데 설날 뒤부터 주무실 수 없었고, 지난 3월 초부터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온종일 주무실 수 없었다. 현지 수련생도 발정념을 했지만 효과가 없어 장모님은 나에게 전화로 문의하셨다. 말 속에 병원에 갈 뜻이 비쳤다. 당시 장인어른은 이미 ‘전법륜’을 10번 째 읽고 계셨고 매일 두 차례 연공했다. 당신도 수련하고 싶지만 너무 괴로워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사람이 세상에 온 것은 대법을 얻어 수련하기 위해서이며 장인어른의 상태는 분명히 관을 넘는 것이고, 한 동안 수련하지 않은 탓으로 구세력이 난도를 강화해 수련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병원에 간다면 병업관을 잘 넘기지 못한 것이고 수련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는데 그건 너무 아쉬운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장인어른이 버텨내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서 “병이 있으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 대법에 손해를 끼칠까 봐 걱정했다. 나는 오직 정념이 강하고, 신사신법하며 오직 열심히, 있는 몸과 마음을 다하기만 하면, 수련생이 겉으로 어떻든, 죽어가는 듯이 보인다 할지라도 모두 생각을 움직이지 않기만 하면 난관을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퇴원하신 후, 아침 6시면 간병인이 대신 보게 하고 8시 반이면 출근했다. 그래서 시간을 아껴서 6시 반이면 장인어른 집에 가서 1시간 발정념 하고 매일 교류했다. 장인어른께 날마다 반드시 법공부를 견지하라고 격려해드리는 동시에 법으로 자신의 수련을 지도하라고 인도해드렸다. 바로 이렇게 장인어른은 조금씩 관념을 개변하셨다. 몸의 괴로움은 병이 아니라 소업이라고 여기며, 자신의 병업 상태는 두려운 마음이 불러온 것이다. 괴로움이 커지고 시간이 길어지니 죽을까 봐 두려워한 것이다. 법공부를 통해 실은 괴롭고 아픈 것은 사람을 죽게 하지 않으며 “그의 정신이 그를 사망하게 한 것이다.”[1] 서서히 장인어른은 당신의 사상 중에 병이 있다는 관념을 배척해버렸다. 다른 수련생도 와서 도와주어 10여일 후부터는 통증을 물리칠 수 있게 되어 내가 날마다 갈 필요가 없게 되어 1주일에 한 번, 이후에는 2주에 한 번씩 가도 됐다. 나는 몸과 마음을 다한다는 함의와 표현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장인어른은 밤에 취침할 수 있게 됐다.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지금 장인어른은 날마다 최소 ‘전법륜’ 한 강을 보고, 그 다음에는 각지 설법을 한두 편 이상 보신다. 장인어른의 몸 상태를 보면서 나는 병업 형식으로 사람 몸이 끌려간 수련생을 떠올렸다. 내가 타인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고, 수련생이 박해당할 때 몸과 마음을 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수련생에게 미안하고 사부님께 죄송하다.

3. 가정 모순은 나에게 질투심을 분명히 알게 했다

아버지의 입원으로 관련된 사람과 일이 비교적 많았고 직면해야 할 일도 비교적 많았다. 시간이 비교적 긴박하고 체력적으로도 좀 힘들고 몸이 힘들어 쉽게 짜증이 났다. 사람마다 일처리 방법이 다르다 보니 잘 처리하지 않으면 모순이 쉽게 생겼다. 아내와 어머니는 때때로 불쾌한 일이 생겼고 다투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뒤틀려 있었다.

고부 갈등은 왜 줄곧 까다롭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까? 얼마 동안 고부 간을 관찰하면서, 나는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고집하고 모두 자신이 옳다고 여기며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직접적인 표현은 질투심, 즉 남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이때 아들이자 남편으로서 내가 아주 관건적인 작용을 일으킨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그때 나도 남을 얕보는 심각한 질투심의 표현이 있었다. ‘아내가 밥을 열심히 짓지 않고 법공부할 줄 모른다. 어머니는 마음이 좁아 질책하고 원망만 한다. 고부가 서로 업신여기니 모두 질투심이다. 어머니와 아내는 왜 자신을 닦을 줄 모를까? 왜 자신을 볼 줄 모를까?’ 마음이 몹시 지치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어머니와 아내의 부족함이었다. 이런 모순이 늘 나타나고 시간이 길어지니 자신마저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자 대번에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떠올랐다. “상대방이 어떠어떠하다고 그들이 본 것으로 반대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6] 원래 나의 그것도 질투심이었던 것이다. 남의 부족함을 보았을 때 아무 감정 없이 상대방에게 알려주지 못하고, 남의 장점을 보아내지 못하는 그 자체 역시 질투심의 체현으로서, 남을 업신여기는 표현인 것이다. 내가 질투심을 분명히 인식했을 때 나는 아내도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날마다 출근해야 하고, 장을 보고 밥을 해야 하며, 또 아이를 보살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날마다 출근하는 것만도 몹시 힘든데 또 집에 돌아오면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시아버지, 심성을 지키지 못하는 시어머니의 책망을 들어야 하는 환경이다. 어머니도 쉽지 않으시다. 80이 다 됐지만 아주 강직해서 누구에게도 요구하는 법이 없으시다. 70kg이 넘는 아버지를 하루에 몇 번이나 돌아 눕히는지 모른다.

질투심을 버리니 자비심이 자연히 생겨났다. 참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것은 일종의 홍대(洪大)한 관용(寬容)이고, 생명에 대한 자비이며, 일체를 모두 선의(善意)로 이해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인간의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7]를 체험하게 됐다. 내가 집착심을 찾아내자 가정 모순은 아주 쉽게 해결됐다.

아들이 열이 나는 데 대해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아이는 지금 5살이다. 막 태어났을 때 주사 한 대를 맞아보고는 어떤 약물도 쓴 적이 없다. 나와 아내가 다 수련하니 그 아이 역시 법을 얻으러 온 것이다. 열이 날 때는 대부분 나와 아이 엄마의 법공부가 따라가지 못할 때였다.

4. 소극적인 마음가짐을 바꾸다

최근 한동안 좋지 못한 일을 듣기만 하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지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찾아보니 많게는 용량이 일정한 정도에 도달하자 번거로움이 귀찮아 청정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이 동안의 과정을 회고해보았다. 중환자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아버지와 접촉하면서 MP3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톈안먼 분신자살’ 진상을 듣고는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았으며 공산당의 사악함을 분명히 인식한 후 삼퇴했다. 아버지가 한 병실에 2달 넘게 입원해있는 동안 다른 환자들이 끊임없이 바뀌면서 삼퇴를 하고 돌아갔다. 날마다 공장에 야채를 사주면서 접촉한 그런 야채 상인도 삼퇴했을 뿐더러 줄곧 1위안짜리 진상 지폐를 예약했다. 1달이면 5000~6000명이나 되는 그런 사람을 생각하게 됐다. 비록 과정은 어려웠지만 결과는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는 대법제자이므로 마땅히 담당, 감당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신이 접촉한 사람은 모두 진상을 들으려는 사람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조사정법하고 중생 구도를 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마음가짐으로 매사를 대해야 한다.

지금 사상 중에 또 다시 소극적인 생각이 반영되어 나온다면 나는 자신에게 그건 좋은 일이라고 일깨워준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떤 모순과 마주치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흑색물질이 백색물질로 전화(轉化)되고, 德(더)로 전화되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1] 물론 일이 많은 것 역시 구세력이 교란하고 파괴하는 요소가 그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크기 때문이다.

20여 년의 수련을 회상해 보면 환골탈태했다. 사람에서 신으로 가는 과정 중에 기쁨도 실망도 있었지만 지금은 유감을 남겼던 일들이 더 생각난다. 그렇게 큰 위덕을 수련해내지 못했고, 마땅히 구해야 할 많은 생명을 잃어 중생에게 미안하고 더욱이 사부님께 죄송하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시카고법회’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설법’
[5]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시간과의 대화’
[7]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2-2002년 보스턴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1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18/1/18/3597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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