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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스승으로 삼아 자아를 내려놓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은 바로 사람인바, 당신은 사람을 너무 높게 생각했다. 당신이 그를 구함에 더욱 큰 어려움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그가 너무 낮기 때문이며, 그가 너무 높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을수록 당신이 더욱 낮게 이야기해야만, 그는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가 정말 지혜가 있다면 그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1] 나는 이 한 단락의 법을 보고 진동을 느끼고 단번에 집착을 찾았다. 잠재의식에서 사람을 너무 높이 본 것이다.

나와 부모는 모두 고급 지식인이고 시댁도 고위 간부이기에 나는 자기도 모르게 남보다 높다는 생각으로 명리, 지위, 권세, 직무, 학력, 재능 등을 중하게 보았고 사람의 등급 관념이 있었다. 수련 후 명·리·정을 담담하게 보았지만, 뼛속에서 형성된 사람의 많은 이치는 버리지 못했다.

1. 법을 스승으로 삼아 안으로 찾고 관념을 버리다

1) 당 문화의 사악 이념을 버리다

1999년 ‘7.20’,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전 남편의 직계 친척이 부 시급(副市級) 간부이기에 남편은 압력을 받아 나와 이혼했고, 나는 직장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 부득이 사직했다. 이후에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다가 여러 번 불법 감금되고 노동교양 등 박해를 받았다. 일상생활과 경제적인 면에서 곤란하였고 일자리도 안정되지 못하여 생활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청소 등 힘든 일을 했다. 그러므로 가족과 친척, 친구에게 진상을 알릴 때 어려움을 느끼고 말을 잘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태로는 법을 실증하는 작용을 하지 못했고 자기를 낮게 보았으며 말을 해도 힘이 없었다.

나는 자신이 얼굴, 재간, 기술, 권력, 학식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람의 아름다운 생활을 바라고 사람의 물건을 중하게 보았으며 사람을 높게 보았다. 사실 사람이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들이 세간의 물건에 너무 깊이 미혹되었기 때문이다. 내 친척과 친구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은 내 집착과 관계있으며, 내 공간장과 대응된다. 근본으로는 마음이 바르지 않고 자기를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대법제자와 속인의 관계 즉, 구도하는 사람과 구도 받는 사람의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중공 사당문화(邪黨文化)에는 한 가지 설이 있는데, 남을 잘하게 하려면 우선 스스로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나쁜 짓을 할 때, 다른 사람에게 지적당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당신은 아직 잘하지 못했으니 나를 상관하지 마라. 당신이 나를 상관하려면 우선 당신이 잘해야 한다. 이는 위의 인식과 똑같은 억지논리이다.”[2]

나는 속인 중에서 돈과 권력, 집, 명, 리가 있어야만, 각 방면에서 속인보다 강해야만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의 수련인은 출가하면 아무것도 없고 오직 구걸하는 밥그릇 한 개만 있었다. 그러나 세인의 존경을 받았고 대덕, 고승, 도장이라 불렸다. 우리는 장기간 당 문화의 환경에서 생활해 왔기에 자기도 모르게 당 문화의 관념으로 문제를 사고하고 일을 하고 있다. 이 속에는 또한 아주 강한 질투심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2017년 8월의 어느 날 잠이 깨기 전인데 머리에서 “리훙쯔의 기치를 들고 대법의 명예를 파괴하지 않았는가?”라는 말이 떠올랐다. 깜짝 놀라서 안으로 찾아보니 어떤 때는 대법을 핑계로 제거해야 할 집착심을 덮어버렸는데, 속인 중 표현되는 것은 극단적인 것이었다. 일부 속인 중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대충 처리해버렸다. 몸에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타나도 중시하지 않고, 제때에 안으로 찾지 않으며, 발정념으로 제거하지 않아 대법을 실증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했다.

왜 한동안 매일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리지 못했단 말인가? 자기 몸의 비정상적인 상태가 대법을 파괴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 속인이 이해하지 못해 세인을 구도하는 데 영향을 준다는 것이 핑계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이는 곧 승인한 것이 아닌가? 무엇을 두려워하면 그것이 곧 온다. 사악은 당신의 몸에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타나게 하여 당신이 사람을 구하지 못하게 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내 사상의 심처에 다음과 같은 생각이 있지는 않을까? 대법을 수련하기에 보험에 든 것처럼 병도 없고 이런저런 것도 없다. 대법을 보호 방패로 삼아 얻는 것만 생각하고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 진상을 알리면서 대법을 배우면 복을 얻는 것만 말하고 대법을 얻으려면 그만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몸에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타나면 정상이 아니라고 여기며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이것은 당 문화의 사악 이념이므로 사악이 내 사상의 빈틈을 이용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사람들은 내 수련의 잘된 면을 보고, 복을 받는 것을 보고 구도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것도 한 일면이다. 사실 내 수련 상태가 어떠하든지 오직 내 마음이 법에 있으면 대법의 위력은 곧 표현되며, 진정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부님과 대법이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실 대법과 대법제자의 정념에 부합되지 않는 일체 것들은 모두 구세력이 참여하여 조성한 것으로, 자신의 바르지 않은 일체 요소를 포함하는데, 이것이 바로 왜 내가 발정념을 대법제자의 세 가지 큰일 중의 하나로 했는가 하는 이유이다. 발정념은, 하나는 외부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에 대한 것으로, 바르지 않은 것은 누구도 도망칠 수 없다. 단지 발정념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다르고 표현이 다를 뿐이다.”[3] 내가 깨달은 것은 바르지 못한 생각과 사람 마음, 집착, 관념, 부정적인 생각 등의 배후에는 모두 구세력의 요소가 있으므로 즉시 발정념으로 해체하고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2) 무사무아해야 선타후아할 수 있다

내가 평소 자료를 배포하고,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리지만, 매일 나가지 못했다. 어떤 때는 진상을 알릴 때 입도 열지 못한다. 여기에는 두려운 마음과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좋지 않은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 신사신법하지 않는 마음, 부정적인 생각이 있다. 사실 이기려는 마음이며, 쟁투심이자 질투심이고, 자기를 실증하는 것이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은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이자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당신이 진상을 알리지 않고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아 이런 과정이 없으면 어떻게 제고할 수 있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질투심을 당신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이 물건은 무시무시한 것이며, 그것은 당신의 모든 수련을 다 해이해지게 만들 것이고, 당신을 망칠 것이다. 질투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1]

나는 수련 중에서 항상 정진하지 못하는 상태를 발견했다. 항상 한동안은 좋았다가 느슨해진다. 지금 깨달은 것은 질투심이 교란하는데, 이 마음이 일어나면 소침해지고 정진하는 동력이 없어진다. 수련의 근본 목적이 위사이고 사람 중에서나 수련 중에서 좋은 점을 구하려는 것이다. 일단 얻지 못하거나 잃거나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바로 그만두는 것이었다.

하루는 법공부하면서, 노동교양소에서 ‘전향’한 이유는 자기를 실증하려는 질투심이 사악에 틈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사악이 내가 수련을 잘했고 층차가 높다고 칭찬하자 나는 자기도 모르게 환희심이 생기고 경각심을 늦추어 무의식중에 사악의 난법하는 물건을 보았다. 보는 것은 구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은 좋지 못한 것을 불러와서 절대로 서명하지 말아야 할 것에 서명했다.

2017년 5월 중순, 한 수련생이 ’축하 카드’의 은(恩)’자를 ‘악(惡)’자로 잘못 인쇄했다. 내가 왜 이것을 보게 되었을까? 안으로 찾으니 최근에 자기를 수련생으로 여기지 않았다. 한 노 수련생이 그의 손으로 베껴 쓴 ‘전법륜(轉法輪)’을 봐달라고 하기에 보았더니 틀린 글자가 너무 많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내게 영향 주고 내 시간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다. 본래는 그가 할 일을 내게 미루었기에 공평하지 않다고 여겼고 질투심이 생겼다. 사실 이 일은 사부님께서 내게 ‘하사하신 선물’이자 나를 제고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나는 ‘악(惡)’으로 대하면서 수련생을 원망하고 사부님을 원망하였기에 제고는커녕 도리어 업을 지어 정말 사부님께 죄송하다.

한 노 수련생이 기타 방면에서는 잘하는데, 매일 신당인 프로그램을 보고 이 프로그램 사회자의 수준을 평하는 등 집착이 심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아 나는 그를 좋지 않게 생각했다. 그가 문장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줄 때 조급해하면서 그에게 성질을 냈다. 이것은 질투심이 작용한 것으로 선(善)도 없고 자비심도 없다.

어떤 때 수련생에게 일이 생기면 깔보는 마음으로 비웃고, 자기도 모르게 그의 단점을 말하며 자기를 과시한다. 이러한 점을 이전에는 인식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이러한 염이 나오면 바로 제거한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하자. 일부 구체적인 일을 당신들이 나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내가 당신에게 대답하면 나는 당신이 마땅히 수련 중에서 걸어야 할 길을 허물어버리는 것이다. 그 일을 내가 알든, 내가 모르든, 내가 말하면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당신이 한 것이 아니고 내가 한 것이다. 내가 그것을 해서 뭘 하겠는가? 나는 당신들을 구하러 왔으며, 내가 당신들에게 그 길을 걸으라고 했는데, 당신이 나보고 걸으라고 해서 뭘 하는가?”[1]

사부님의 이 법에서 깨달은 것은 개인마다 모두 자기의 길을 걸어야 하고 의뢰하는 마음이 있어도 안 되며, 모든 일을 도맡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생겨도 모두 제고할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이 문제를 왜 여러 번 제기 하셨겠는가? 대법제자에게는 보편적으로 의뢰심이 있는데 사부님께 의뢰하지 않으면 수련생에게나 속인에게 의뢰한다. 문제나 모순, 좌절에 부딪히면 난관을 돌파할 생각을 하지 않고 어려우면 물러서기에 많은 수련의 기연과 제고의 기회를 잃는다.

내가 학력이 높기에 수련생들은 기술적인 면에서나 문장 정리 방면에서 내게 의뢰한다. 나도 자기를 실증하기 위해, 또한 체면을 생각하여 일을 도맡아 바삐 해내면서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이렇게 법공부와 심성수련을 소홀히 하여 조용한 마음으로 자기를 찾지 못했다. 왜 몸에 비정상적인 상태가 장기간 존재할까? 법을 실증하는 중 문제가 나타나면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면서 시간과 정력을 많이 낭비했다. 법에서 진정으로 안으로 찾지 않았고 자기를 바로잡지 않았으며 법에서 지혜를 열지 못했다. 사실 기점은 또 자기를 실증하는 데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사악이 어떻게 미쳐 날뛰든지, 당신이 만약 결함이 없으면 그것은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못한다.”[1] 내가 깨달은 것은 몸이 비정상 상태일 때는 먼저 부정하고 제거하고 나는 아무 일도 없다고 생각하며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게 문제가 있어 사악이 틈을 탄 것이다.

하루는 발정념 시 큰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옆에는 ‘죽다 살아난다’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나는 사람 마음은 뿌리에서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뿌리를 제거하지 못하고 나뭇가지와 잎만 제거하면 한동안 지나서 또 자라난다. 과시심과 질투심, 환희심, 쟁투심, 원망하는 마음, 색심 등은 모두 나뭇잎이다. 자아와 사심은 뿌리이다. 오직 위사위아의 낡은 우주특성을 제거해야만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신우주의 바른 각자로 성취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법(大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4]

이전에 이 법을 보았으나, 잘 몰랐다. 사부님께서 왜 ‘무사무아’를 앞에 놓고 ‘선타후아’를 뒤에 놓으셨겠는가? 내 심중에는 ‘무사무아’가 당연히 ‘선타후아’보다 경지가 높다. 내가 ‘사심’을 제거하겠다고 결심하자 갑자기 그중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의 이 말씀은 수련과정을 말씀하신 것이다. 먼저 ‘위사위아’의 사심을 내려놓아야 무사무아에 도달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며,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좋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 머리에 모두 자기 생각뿐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5] “나의 첫 일념(一念)은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 다른 사람을 우선해 생각하는 것은 이미 자연스러운 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6]

나는 이 법에서 수련이 갈수록 간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시는 이런 마음 저런 마음을 분별하지 않았다. 오직 내가 하는 일의 동기가 법에 있는지, 위사인지 아니면 위타인지만 보았다. 일할 때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미리 생각한다.

2. 자아를 내려놓고 마난 중의 수련생을 도와 착실하게 수련하고 정진하다

7월 초, 법공부 소조에서 법공부할 때 A 수련생의 여동생이 와서 그녀의 언니가 병업으로 허리를 움직이지 못하여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힘들다고 했다. 법공부 소조에도 못 오고 수련생들의 도움을 청했다. 우리 전체 수련생이 즉시 A 수련생의 집에 갔다. 이후부터 법공부 장소를 A 수련생의 집으로 정했다. 수련생들은 조를 짜 낮에 A 수련생의 집에서 함께 법공부하고, 어떤 수련생은 저녁에 A 수련생의 집에서 연공하고 발정념했다. 일주일에 5일 동안은 수련생들이 A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했다. 3일 동안 수련생들이 A 수련생과 함께 발정념했다. 법공부 소조의 B 수련생은 83세로 다리가 불편하여 다른 사람이 10분이면 걸을 수 있는 길을 40분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B 수련생은 A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를 견지하여 그 선심에 사람들이 감동했다.

나는 매주 3일을 A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하고 발정념했다. 시작할 때는 오전에 3강 ‘전법륜(轉法輪)’을 공부했다. 그 다음에는 2강을 공부하고 ’정진요지‘를 공부했다. 우리는 법리와 심성에 관해 교류했다. 보름 후 이 수련생의 상태는 좋아졌다. 원래는 아침에 한 시간 동안 고생해야 침대에서 일어났으나, 지금은 30분이면 일어나고, 천천히 길을 걷게 되었으며 문을 나설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A 수련생의 다리가 너무 아파 일어서지 못하고 어떤 때는 앉지도 못했으며, 바닥에서 기어 다녔다. 수련생들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의연히 그녀와 함께 법공부하고 발정념했으며, 신사신법의 정념을 견정히 했다. 한동안 그녀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법공부하고 발정념했다.

한동안이 지나자 A 수련생은 일어설 수 있었고 앉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낮에 법공부가 끝나면 함께 연공하자고 했다. 그녀에게 연공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라고 했다. 나는 연공하기 전에 발정념하면서, 그녀가 5장 공법을 반드시 다 연마해낼 수 있도록 사부님께 가지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아픔을 참고 나와 함께 동공을 연마했다. 그녀는 1장 공법을 끝내고는 아파서 눈물을 흘렸다.

낮 12시 발정념 후 나는 A 수련생과 함께 2·3·4장 공법을 연마했다. 제4장 공법은 제대로 연마하지 못했다. 그녀는 웅크리지 못하면서도 온 힘을 다했다. 그녀는 5장 공법을 연마할 때 힘들게 가부좌하고는 너무 아파 다리를 붙들고 움직이지 못했다. 내가 처음의 가지 동작을 끝낼 때 그녀는 수인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끝까지 한 시간의 정공을 다 연마했다. 나는 기뻐하면서 그녀의 의지에 탄복했다. 나는, 내가 처음의 가지 동작을 끝낼 때 그녀는 정념이 생겨 사부님께 ‘저는 연공하려 합니다. 사부님 저는 연공하려 합니다. 저는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사부님께 말씀드린 후 그녀는 바르게 앉아 사부님의 가지 하에서 정공을 완성했다.

문장을 다 정리한 지 두 달이 되었다. A 수련생의 상태는 날로 좋아지고 요추골과 다리의 아픈 것도 갈수록 나아졌으며, 침대에서 정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고 계단도 오르내릴 수 있었다.

A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했던 두 달 동안 나는 많이 제고했고 법공부와 연공도 강화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 다른 사람의 고충을 이해하고 관용하고 선하게 대하며, 무턱대고 남을 비평하거나 질책하거나 밖으로 보지 않는 것을 배웠다. 나는 A 수련생의 변화를 보고 신사신법의 정념을 강화했고, 내 몸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바꾸려는 정념도 강화했다. 사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으로, 우리는 오직 협력하여 A 수련생에게 단체 법공부와 교류 환경을 제공했을 뿐이다. 대법이 없고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가 없었다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7-미국 서부국제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2-2002년 보스턴법회설법‘

 

원문발표: 2008년 1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2/3599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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