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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명은 이 고향마을 사람들을 구도하는 것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76살이며 수련생이 대필해 사부님께 나의 수련 상황을 보고 드린다.

운명을 개변할 수 있는 대법을 찾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은 이 법을 얻기 위해 아주 쉽지 않았다. 아마 당신이 전반생(前半生)에서 겪은 고생은 모두 이 법을 얻기 위한 것일 수도 있는데, 이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다. 또 당신이 모르는 것도 있다. 아마 당신의 전(前) 몇 세 심지어 더욱 긴 시간에서 모두 이 법을 얻기 위해 고생을 겪었거나 고달픔을 겪었을 것이다.”[1]

이 단락 법을 보니 내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흘러 내렸다. 마치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내 앞에서 직접 설법하시는 것 같아, 갑자기 수십 년간 헤어졌던 엄마가 나를 따듯하게 감싸주는 것 같았고 또 집을 잃었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은 듯하여 비할 바 없는 흥분과 행복을 느꼈다. 나는 법을 얻기 전에는 수많은 고생을 겪었고 법을 배운 후에는 눈앞이 확 트였다. 나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내가 8살 때 어머니는 우리 여섯 남매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나셨다. 얼마 후, 아버지보다 20살이나 적은 계모가 우리 집에 들어왔고 우리에게는 또 남동생 셋이 늘게 됐다. 계모는 가정의 온 결정권을 틀어잡았고 “여자애가 학교에 다녀선 쓸모가 없어, 일이나 해.”라고 말했다. 막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었던 나는 어린 농민이 되어 세 언니와 함께 밭에서 농사를 지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착실하게 일했으며 고생을 많이 하고 밥을 적게 먹었다. 계모의 얼굴이 무서워 찍소리 못하고 살았다.

몇 년 후 나는 마침내 시집을 가게 됐다. 결혼 때 쓴 이불은 모두 시어머니가 다른 집에서 빌려온 것이었으므로 혼수 같은 건 언급할 나위도 없었다. 설에는 물만두조차 먹지 못했고 산후에도 조리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 아이 셋을 낳은 후 내 몸은 여지없이 망가져, 기관지염, 위장염, 심장병, 저혈당 등 아홉 가지 병에 걸려 사는 게 죽기만도 못했다.

하늘의 풍운은 예측할 수 없고 사람에게는 조석으로 길흉화복이 있다고 바로 이런 때에 남편이 반신불수에 걸려 나는 또 그를 보살펴야 했다. 나는 사선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난 왜 이다지도 고생스러울까! 그야말로 하늘을 불러도 시원찮고 땅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하늘이시여, 저를 구해주소서!

나는 도처로 다니며 신에게 빌어서 내 운명을 고쳐보려 했다. 셋째 언니가 천목이 열려 남에게 치료를 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언니를 찾아갔다. 1998년 초에 내가 다시 언니를 찾아갔을 때 언니는 말했다. “더는 날 찾지 마, 나 지금 파룬궁을 연마하고 있으니 너도 연마해 보렴. 이건 고덕 대법이어서 진정으로 너의 운명을 개변할 수 있단다.” 나는 언니에게 어떻게 연마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자리에서 나에게 동작을 해보이고는 말했다. “너희 마을에 가서 찾아봐, 꼭 있을 거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단체 연공, 단체 법공부를 하라고 하셨어.”

집에 돌아오자 나는 한 마음으로 파룬궁을 찾았다. 마을을 몇 바퀴 돌아도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서 찾는담? 한창 고민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말했다. “아주머니, 상에 술병이 있는걸 보니 아주머니는 술을 마시나요?” 내가 말했다. “안 마셔요, 배가 아파 견딜 수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럼 파룬궁을 연마하세요.” 내가 말했다. “내가 지금 찾는 중인데 어디 가서 연마해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 집에 오세요.”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야말로 쇠 신발이 다 닳도록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었는데 힘들이지도 않고 우연히 찾게 된 격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사람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신은 다 알고 계시는구나. 그녀는 틀림없이 신이 보낸 사람일 거야.’

저녁에 나는 10살 손자를 데리고 일찌감치 그 사람의 집으로 갔다. 제5장 공법을 할 때 나와 손자는 대번에 가부좌를 할 수 있었고 그녀들보다 가부좌를 더 잘해서 모두들 몹시 부러워했다. 이때부터 나는 확고하게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정념으로 생사고비를 넘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내 각종 질병은 재빨리 사라졌다. 9가지 병을 사부님께서 다 제거해주시고 자신은 조금도 감당하지 않는다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나는 한 차례 병업관을 넘어야 했고, 매 차례 모두 갑자기 나타났다. 이런 병업관은 그렇게 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법을 얻은 지 얼마 안 된 날, 내가 언덕길을 오르고 있는데 웬일인지 다리가 꼬였다. 다리와 발이 모두 90도로 돌아가서 갑자기 넘어졌다. 고통을 참으며 겨우 기어서 일어나 아주 힘들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다리가 퉁퉁 붓고 아파서 걸을 수 없었다. 나는 또 남편을 보살펴야 했으므로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2]를 외웠다.

속인은 근육과 뼈를 다치면 백일이 걸려야 낫는다고 말한다. 나는 정말로 석 달이 걸려서야 철저히 나았다. 이후 매 한 동안마다 사부님께서 내 다리로 다시 병을 밀어내셨다.

나의 다리가 다 나아지자 위장염이 도졌다. 먼저는 설사를 했는데 설사가 얼마나 심한지 걸을 수도 없었고 잇따라 토하기 시작했다. 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를 하는데 나는 침대에서 내려올 수도 없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고 나중에 토한 것은 모두 가래 거품이었다. 매번 참을 수 없이 괴로울 때면 나는 가부좌하고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를 외웠고 7일 후 완전히 나았다. 이번 소업을 거친 후 전신이 가볍고 환골탈태한 것 같았다.

딸이 피로연 요리를 가져와서 나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설이 곧 다가왔다. 나는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청소하고 설음식을 만들면서 설을 맞이했다. 남편이 말했다. “참 신기하구나! 의사도 필요 없이 나았으니!”

몸에 불편함이 나타날 때면 나는 그것을 대수로워 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 주시는 좋은 일임을 나는 알고 있다. 법공부, 연공을 함에 따라 내 몸은 매번 더 좋아졌다. 한 번은 몸의 왼쪽 윗부분에 복숭아만큼 큰 물집이 가로 세로로 났고, 더욱 괴상하게도 몸 앞뒤에도 다 났다. 아프기 그지없었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괴이한 현상이었다. 나는 오른쪽으로만 누울 수 있었고 몸을 돌릴 수 없었다. 날마다 너무 아파서 2, 3시간밖에 잘 수 없었다. 잘 수 없으면 일어나 앉아서 속으로 경문을 외웠다. 연공을 하기만 하면 물집이 터져서 옷에는 노란 딱지가 붙었다. 20일 후 이런 물집이 다 나았고 흔적도 남지 않았다.

이후의 7, 8년 동안 내 등에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치 찬물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듯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그 물집 뒤를 이어 계속 내 몸을 정화해 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나에게는 아무런 고통스런 감각이 없었다.

얼마 후 나는 또 온 입에 구창이 생겨 입을 벌릴 수 없었는데 밥을 먹을 때면 아주 고통스러웠다. 나는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조금도 적게 먹지 않았다. 나는 건량을 부수어서 사발에 불려 놓고는 젓가락으로 입안에 밀어 넣었다. 낮에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밤만 되면 입에서 침이 밖으로 흘러나왔는데 악취가 풍겨 역겨웠다. 나는 헌 옷을 턱 아래에 받치고 침이 밖으로 흘러나오게 했다. 어떤 땐 사레가 들려 깨어나게 되면 나는 아픔을 참고 일어나 가부좌를 하고는 경문을 묵념했다.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않았고 의사를 찾지도 않았으며 역시 20일 후 완전히 나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1999년의 7・20에서 7・20 이전의 수련생들을 전부 제 위치로 밀어주었는데 당신들의 가장 높은 위치로 밀어 올렸다.”[3] 오직 강대한 정념만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사악을 막을 수 있으며, 비로소 조사정법, 중생구도를 할 수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하지만 구세력은 교란하려 하고 그들은 우리가 너무 쉽게 수련한다고 여기면서 많은 고난을 만들어내 나에게 넘게 한 것이다.

구세력은 내가 매번 병업관을 모두 사부님의 보호 하에서 순조롭게 넘긴 것을 보고는 사신을 파견해 나를 위협했고 나를 세 번이나 까무러치게 했다.

그 중 한 번은 진상을 알리러 갔다가 아직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남의 집에서 까무러쳤다. 그녀는 나에게 저혈당 증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몹시 두려워했다. 깨어난 후 나는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무서워 말아요, 난 괜찮아요. 그저 이 집에 잠시 앉아있으면 나을 거예요.” 그곳에 한 시간 가부좌 한 후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내가 생사관을 넘은 것을 보았고 이는 또한 그녀가 진상을 아는데 기반을 다져 주었다. 이 역시 내가 병업관을 넘을 때 신변에 유일하게 사람이 있었던 한 차례였다.

실은 일체 모두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다. 그때부터 사신은 더는 나를 찾아와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내 몸은 아주 좋아 누가 보아도 나를 70여세로 보지 않았고 길을 걸으면 마치 젊은이 같았다.

진수하려면 반드시 혈육정의 관을 잘 넘어야한다

속인은 “영웅도 미인관은 넘기 어렵다.” 고 하는데 수련인으로 말하면 혈육정의 관을 넘기는 것도 아주 쉽지 않다. 무슨 병업관, 고난관 등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유독 이 혈육의 정이란 관은 나로 하여금 뼈를 깎듯 괴롭게 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나는 병이 있는 몸으로 보잘 것 없는 수입으로 남편을 치료하고 생활을 유지했으며, 남편이 세상 뜬 후에는 돈을 벌어 가정을 먹여 살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후에는 또 아들 식당에서 일해주면서 그의 장사를 도와줬다. 밥 먹은 것을 제외하고는 10여 년 동안 아들은 나에게 한 푼도 준 적이 없어도 나는 모두 참았다. 그러나 나라에서 우리의 묘지를 점하게 되어 보상해 준 돈을 아들이 갖고도 나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묘지에 묻은 사람은 나 혼자서 보살펴 주다가 세상 뜬 시어머니와 남편이다. 이는 아들이 나를 너무 무시한 것이라고 나는 느꼈다.

나는 수련인이므로 어려움이 있으면 사부님을 찾기 마련이고 사부님께서는 나의 근심을 풀어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법공부를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하는 사람은 세간을 떠나서 생명의 원만을 이룸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어떠한 세간의 득실과 이익에 집착하더라도 원만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수련인은 세간의 수련 중에서, 바로 속인이 집착하는 여러 가지 마음을 버려야만 신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간의 어떠한 하나의 마음과 어떠한 하나의 걱정하는 요소도 모두 사람을 떠나지 못하게 잠가두는 자물쇠로 된다.”[4]

사부님의 가르침은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수련인으로 몸은 세속에 있으나 생각은 밖에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세간에 온 것은 다만 이 한 뙈기 땅을 이용해 연공할 뿐이다. 바로 여관에 묵는 것처럼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며칠 묵고는 총총히 떠나는 것이다. 진정한 집은 이곳이 아니라 하늘에 있으니 이곳을 자신의 집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더 말한다면 아들이 나에게 한 푼도 주지 않는 것을 보면 육도윤회 중 내가 남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 모르는 것이다. 지금 나는 먹고 마실 게 있는데 돈을 가져서는 뭘 하겠는가?

나에게는 아들이 하나뿐이므로 나이 많은 나는 그와 함께 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아주 많은 모순이 생겼고 이 모두는 내가 넘어야 할 혈육정 관이었다. 며느리는 다른 법문을 연마하는 사람으로서 ‘7.20’ 이후 그녀는 나를 교란했을 뿐만 아니라 또 늘 아들과 손자며느리를 시켜 나를 상대하지 않도록 하고 고립시켰다. 이는 내 마음을 시시각각 모두 자비로운 상태에 있도록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생길 수 있었다. 4대가 한 집에 모여 사는 대 가정에서 내가 가장 늙었지만 수련하니까 나는 자신을 늙은이로 대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다 했다. 하지만 내가 한 밥을 며느리는 먹지 않았고, 해놓은 일도 며느리는 만족해하지 않았으므로 아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니?” 아들이 말했다. “이제부턴 밥을 하지 말고 일도 하시지 마세요.”

한 평생 집에서 일을 해온 나에게 일을 하지 말라고 하니 내 마음은 균형을 잡을 수 없었고 편안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좋지 않은 무슨 일이든 수련인에게는 모두 좋은 일이라고 하셨다. 맞다! 좋은 일이야. 나는 진지하게 생각한 후 관념을 바꾸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량의 시간을 전부 대법에 쏟아 부었다.

나는 날마다 밤 12시에 일어나 발정념하고, 2시에 일어나 가부좌를 세 시간을 하면 달걀껍질 속에 앉은 것처럼 미묘해 일순간처럼 지나가 버렸다. 동공을 한 시간 하고 잇따라 발정념을 했다. 오전에 ‘전법륜’ 세 강, 혹은 기타 설법을 읽고, 광저우 설법 한 강을 들었으며, 오후에는 나가서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했다. 나에게 일하지 못하게 하니 나의 정법을 교란하지 않아 나에게는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게 되었다. 나는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 시간이 있게 되어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승려가 탁발을 하려면 도처로 다니면서 집집마다 동냥을 해야 했지만 지금의 나는 도처로 다닐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먹을 밥도 있으니 참으로 좋았다. 그러나 또 새로운 일이 나타났다. 누구도 설거지를 하려 하지 않았고 다 먹고 나서는 그릇을 그대로 놓아둔 채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설거지를 맡았다. 이때부터 청소 일은 내가 도맡았고 하지 말라고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 모두가 심성을 제고하도록 사부님께서 나에게 배치하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모두 순조롭게 넘었고 또한 모두 아주 습관이 됐다. 이런 생활상 작은 일 때문에 무슨 마찰이 생기지 않았다. 며느리가 어떤 수작을 부리든 나는 모두 포용할 수 있었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련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하니 얼마 후 내 몸에 무척 큰 변화가 있음을 느꼈고 몸이 과거보다 더욱 홀가분한 감을 느꼈다.

며느리는 언제나 꼼수를 썼다. 예를 들면 내가 물을 끓일 때면 늘 물이 끓지도 않았는데 불을 꺼버린다. 수련인은 물이 끓지 않아도 대수롭지 않았으므로 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목욕을 할 때 바깥의 물을 덥히는 전기 스위치를 꺼버린다. 그러면 나는 아들, 손자며느리가 집에 있을 때면 그들에게 밸브를 봐 달라고 했다. 어떤 때 며느리는 삿대질을 하면서 나를 ‘고약한 응어리’ 등등으로 욕하지만 나는 응대하지 않았다. 이후에 며느리를 병에 걸렸고 아들은 며느리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치료했다.

아주 오랫동안 앓고 나서도 며느리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얼마 후 또 나를 이렇게 대하니 나는 사람 마음이 올라와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손윗사람인데 너는 응보도 두렵지 않은가 보구나.’ 나는 심성을 지키지 못했고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5]를 해내지 못했다. 나는 말했다. “위에는 하늘이 있고 아래에는 땅이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을 신이 보고 있고 장부에 적혀 있다.” 아들이 듣더니 날 야단쳤다. “엄마, 아내를 저주하세요?” 보아하니 그는 인과응보를 분명히 알고 있고 지난번에 병원에 가게 된 원인도 알고 있었지만 며느리를 감히 건드릴 수 없었을 뿐이었다. 이번에 내가 또 이렇게 말하자 실제로는 내 질투심이 나온 것이므로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어 나를 점화해주신 것이다. 알고 난 나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이 관을 넘지 못하고 남과 다투었던 것이다. 아들이 입을 열자 나는 즉각 의식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필경 자신을 파악하지 못해 나쁜 말로 남을 해쳤던 것이다. 나는 후회막급 했다.

손자며느리는 들어온 후 나를 몹시 존경했다. 손자며느리는 며느리의 사나움을 잘 알고 있는 터라 그녀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고 나와 말을 적게 했다. 아들은 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었으므로 손자며느리의 산욕기에 아들은 나에게 손자며느리에게 밥을 해주라고 했다. 그러나 밥을 다 해 놓아도 며느리는 손자며느리가 먹지 못하게 하고 그녀가 다시 해서 그녀가 한 밥을 먹였다. 아들은 아내를 감히 건드릴 수 없어 말했다. “엄마, 앞으론 하지 마세요.”

손자는 몹시 화를 냈다. 자신의 엄마가 할머니를 이렇게 대하는 게 눈에 거슬렸지만 방법이 없었고,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욕을 보는 게 싫었다. 어떻게 말했으면 좋을지 몰라 말했다. “할머니, 여기서 떠나세요!” 뜻인 즉, 엄마가 늘 할머니를 얕보니 떠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내가 말했다. “내가 어디로 간단 말이냐? 여기는 내 집인데 나는 내 집에 있으련다.”

나에게는 딸이 있는데 나를 아주 잘 대해준다. 하지만 딸집은 우리 집이 아니다. 나에게는 또 남편과 같이 살던 작은 집이 있었는데 그곳은 아주 조용해 아무 시비도 없으므로 나에게 번거로움을 만들어줄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나에게 심성을 제고시켜 줄 사람이 없을 것이고 수련하기도 무척 어려울 것이다. 나는 가정환경이 나쁘다고 이 집을 떠날 수는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이 한 법문은 속인 환경 속에서 수련한다고 하셨으므로 나는 자신의 집을 떠나 좋은 환경을 찾을 수 없고 절에 갈 수 없다.

지금 사회 기풍은 아주 나빠 많은 노인들은 밥을 입에 떠 넣어줄 형편이 아니고는 아들, 며느리와 같이 살려 하지 않는다. 나는 수련인이다. 나에게는 아들이 하나뿐이므로 전통적인 도덕 습관으로 따지면 나는 마땅히 정정당당하게 아들과 함께 살아야 하고 며느리가 아무리 사납다고 해도 나를 감히 쫓아내지 못한다. 관건은 내가 수련에 정진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처럼 어떠한 환경에서든 모두 중생에 대한 자비를 체현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도무형이라, 각종 환경에서 모두 수련할 수 있다. 온 인류 사회는 모두 우리의 연공장이고, 우리의 절이며, 어디에서든 다 수련할 수 있으므로 그저 자신이 수련에 정진하는가 안 하는가에 달렸을 뿐이다. 정진하지 않기 때문에 며느리가 때때로 일을 만들어 내어 나를 교란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인심의 교란이 없이, 당신이 거기에 앉아 있기만 하면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는가? 그것은 안 된다. 사람은 실천 중에서 진정하게 자신을 연마(魔煉)해야만 비로소 제고해 올라올 수 있다.”[6]

교란이 있어야 비로소 당신이 제고할 수 있는지 보아낼 수 있다.

나는 자신의 생각을 손자와 말했고 그는 몹시 찬성하고 나를 지지했다.

‘명품 파룬궁’이란 좋은 별명을 얻다

파룬궁 수련에 들어선 후부터 나는 아주 확고했다. 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평생 추구했던 것임을 알고 있다. 대법은 나의 운명을 개변했고 나는 비할 바 없이 확고히 믿는다. 어떠한 힘도 나를 동요시키지 못한다.

우리 마을에는 1천여 명이 살고 있는데 원래는 많은 사람이 연공을 했다. ‘720 박해 후, 연공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에 나는 박해를 단호히 반대했고 나에게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었다. 무슨 두목이 와서 나에게 파룬궁을 아직도 연마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연마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누가 연마하지 말라고 하면 나는 말한다. “내 온몸에 병이 다 나았는데 연마하지 못하게 하면 병이 날 텐데 그럼 당신을 찾아오라는 건가요? 우리 집에 지금 병 있는 늙은이가 있는데 당신 집에 데려갈까요?” 그러면, “아니요, 아니요”라고 말한다. 서서히 누구도 다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나도 누구든 속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명품 파룬궁’이라는 좋은 별명을 얻게 됐다.

박해가 시작되자 마을 사당 서기는 대법제자에게 사당 당부에 가서 회의에 참가하라고 통지했지만 처음 두 번은 가지 않았고 이런 방식으로 그들을 저지했다. 세 번째는 가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잰걸음으로 들어갔다. 문에 들어서니 서기가 말했다. “아주머니, 그래도 역시 오셨네요.” 내가 말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려주려 합니다.” 그가 말했다. “네! 네! 그럼 나가지 말고 집에서 연마하세요.” 그리고는 즉시 말했다 “회의를 마칩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연마하지 못하게 하고 나가지 못하게 하다니, 안 돼! 나는 반드시 나가서 우리 사부님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고,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할 것이다.’

중생은 사악한 중국공산당에 중독되어 모두 진상을 모르고 있어 대법제자에게 강대한 압력을 형성했다. 많은 사람이 듣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전단지를 배포한다 해도 아주 위험했으며 혼자서 공개적으로 가는 곳마다 말하면 고발하는 사람이 있었다. 많은 대법제자가 납치당해 내 마음도 안정되지 않았고 압력이 있었으며 이런 사람들이 참으로 어리석다고 여겼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 또한 그들이 한때는 얼마나 위대한 생명이었으며, 이처럼 큰 험악함을 무릅쓰고 몸을 던져 험악한 곳으로 내려왔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 자체만으로도 당신들이 그들을 구도할 가치가 있으며, 그들을 끌어내야 한다.”[7]

중생은 모두 법을 위해 왔다. 그들이 지금 진상을 모르는 것은 그들이 사당에 너무 심하게 중독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또 그 세계의 대표인데 그들이 구도되지 못하면 그들 세계의 중생도 함께 소멸될 것인 즉 그건 너무 무서운 일이다. 우리는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 대법제자이므로 반드시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해야 한다.

밤이면 나는 수련생과 함께 나가서 자료를 배포했다. 어떤 때는 낮에도 나갔다. 남편이 세상을 뜬 후에는 수련생과 짝을 지어 아주 먼 곳까지 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였다. 자료가 부족하면 우리는 색 분필을 지니고 가서 곳곳에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세계는 진∙선∙인(眞∙善∙忍)이 필요하다’ 등등을 써 놓았다. 가장 어려울 때는 분필마저 없어 나는 수숫대 껍질을 벗겨 부드러운 심으로 볼펜을 대신해 종이에 써서는 내다 붙였다. 한 번은 내가 한창 붙이고 있는데 다른 마을 수련생이 오더니 두말없이 달려와 나를 도와 붙였다.

나는 아들 식당에서 일을 도왔는데 밥을 먹으러 온 사람을 될수록 전부 구도하려 했다. 한 번은 외현 사람이 왔는데 그가 먹는 도중에 말해주었더니 그는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식사를 마치고는 가더니 잠시 후 다시 돌아와 말했다. “당신은 말을 참 잘합니다. 좀 더 듣고 싶습니다.” 나는 그에게 삼퇴를 권유하지 않아 그가 와서 구원을 바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잇따라 왜 ‘삼퇴’해야 하는지 이야기 했다. 그를 탈퇴시켜 주었더니 그는 기뻐서 나에게 절을 하고는 돌아갔다.

나의 본체는 개변이 비교적 잘 되어 마을에서 이야기하면 효과도 아주 좋았다. 나는 이곳 중생은 틀림없이 나와 아주 큰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세상에 내려오기 전에 신께서 그들을 우리 마을에 배치해 나에게 구도하라고 하신 것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틀림없이 내가 맡은 범위일 것이며, 내 사명은 이 마을 중생을 모두 구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마을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을 몹시 중시했다.

마을 사람은 모두 내가 과거에 몸이 아주 엉망이었으나 파룬궁을 연마한 후 일신이 무병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비록 노인이긴 하지만 남의 불공정한 대우에 직면해 다투지도 싸우지도 않았으며, 원망도 증오도 없어 다른 사람과는 식견이 달라 속인들은 모두 나를 높은 자태라고 했다. 그러므로 내가 진상을 알리면 순조로워 말해준 사람마다 거의 다 탈퇴했다. 내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던 초창기에 나는 먼저 당서기의 아내를 권유하여 탈퇴시켰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 앞으로의 평안 행복을 위해서 이 늙은 숙모의 말을 몇 마디 들어봐요.” 그녀가 말했다. “숙모님, 저 숙모님 말씀 듣겠어요, 숙모님은 제 앞에서 세 가지 조직을 모두 탈퇴하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모두 탈퇴할게요.” 얼마 후 나는 또 당서기도 탈퇴시켰다. 나는 말을 시작했다. “숙모는 이 몇 해 동안 자네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았지, 내 자네에게 몇 마디 할 테니 들어보게. 자네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말했다. “숙모님, 저도 숙모님 말씀을 듣겠어요. 저에게 당, 단, 대를 모두 탈퇴시켜주세요.”

한 번은 내가 한 부인에게 말했더니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외모만 보고도 저는 당신의 말을 다 듣겠어요. 당신은 70여 세인데도 앉음이 시계 같고, 서 있음이 소나무 같네요. 얼굴은 옥 같고 걸음걸이가 바람 같아요. 우리 마을에 어느 누가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요? 당신은 정말 ‘명품 파룬궁’에 부끄럽지 않아요. 이 여러 해 동안 정말 대단해요!”

‘삼퇴’한 사람에 대해 나는 그들이 대법에 들어서도록 인도했다.

70여세의 사당 당원이 ‘삼퇴’한 후 그녀는 또 그녀의 아들, 딸 그리고 그들의 자식을 이끌어 다 탈퇴시켰고 재빨리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날마다 법공부, 연공을 하고 밍후이왕 교류 문장을 보았으며, 나에게 그녀 집에 가서 단체 공부를 하게 했는데 표현이 아주 정진했다. 한 동안 배우고 나서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원래 천상에서 꽃병 하나를 깨놔서 떨어진 것입니다. 어서 잘 수련해 나의 그 집으로 빨리 돌아가야겠어요.”

정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내 수련의 길은 아직도 다 걷지 못했으니 나는 꼭 끝까지 조사정법하며 걸어갈 것이다. 나는 시간을 아껴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해 나의 사전 염원을 완수하겠다.

부족하고 잘못 표현된 곳은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베이징 국제교류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법해’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 제1차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 ’각지 설법5-2005년 맨해튼 국제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7]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9–씬탕런 방송토론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6/3596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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